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6. 최홍희와 김운용

  

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6. 최홍희와 김운용


"최홍희 총재는 민족주의자"


정우진 회장은 세계태권도연맹 계열 특히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추종하는 사람들로부터 빨갱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의 활발한 남북한 태권도 교류활동은 세계태권도연맹 사람이 아닌 태권도인들로부터도 국제태권도연맹 사람이 아니냐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정우진 회장을 국제태권도연맹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세계태권도연맹 사람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것이 그의 활동 폭을 보면 두 조직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기서 한가지 말하자면 정우진 회장의 사무실에 가면 김운용 국기원 원장 명의로 되어 있는 국기원 8단 단증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경기는 세계태권도연맹 룰로, 틀(품새)은 국제태권도연맹 것으로 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우진 회장은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태권도연맹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 총재는 그를 특별히 신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그는 현재 북한에 건설되고 있는 태권도성전 건설추진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최홍희 총재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다. 최 총재가 최근 일본에서 태권도 보급활동을 열심히 벌이는 이유도 다 민족주의적인 정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총재는 왜놈들을 태극기 앞에 머리 숙이게 하는 것이 태권도 말고 무엇이 있는가?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 총재와 정 회장이 함께 북한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떤 사람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왜 최 총재님은 김일성 주석 뺏지를 달지 않느냐?"고 질문을 한 일이 있었다. 그에 대해 최 총재가 숟가락을 놓으며 "나는 여러분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러 왔소, 정치를 하러 온 것이 아니오"라고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숟가락을 놓고 그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최홍희 총재가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친북적인 활동을 한다고 해서 요즘 젊은 태권도인들은 그를 아예 북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우진 회장은 최 총재를 그저 태권도에 미친 한 민족주의자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중립적인 위치, 또는 세계태권도연맹 쪽에서 최홍희 총재를 접촉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정우진 회장을 통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선 정우진 회장과 최홍희 총재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정우진 회장은 "태권도와 관련해서 북한과 교류하거나 협의할 일이 있는 사람은 최홍희 총재를 통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그(최홍희 총재)를 태권도를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태권도인으로 보지 않고 그저 북한 태권도계에 영향력을 가진 친북 인사 정도로만 본다면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운용 총재는 물러나야"



평소에 정우진 회장은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물론 김 총재를 비판하는 사람이 비단 그뿐만이 아니지만 그 강도가 가장 강한 편에 속한다.

비판하는 내용은 다른 비판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권도를 경기 위주로 발전시켜 태권도를 기형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부터 30여년간 장기 독재를 해오면서 태권도를 김 총재의 사유물화 했다는 것 등이 모두 다른 비판자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비판자들과 그가 확연히 다른 점은 전혀 꾸밈이 없다는 것이다. 전혀 외교적인 수사를 달지 않고 내뱉는 말이 많아 기자들이 그대로 옮겨 적기가 곤란한 경우도 많을 정도다. 김운용 수령이니 국기원은 김운용 당이니 하는 표현은 양반이다.

정우진 회장은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제 김운용 총재는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권도를 위해서도 그렇고 김 총재 자신을 위해서도 백번 좋다는 것이다.

"김운용 총재는 지금 물러나야 해요. 조금이나마 힘이 남아 있을 때 물러나야 그게 김 총재에게도 좋아요. 태권도를 얼마나 많이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었어요 그 사람이. 이제 세상이 변해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김 총재보고 할 말은 하잖아요. 지금 물러나야 해요."

정우진 회장은 태권도의 경기화를 양복 입고 갓 쓴 꼴로 표현한다. 금메달리스트가 최고 대접을 받게 되면 단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장애인이 나갈 수도 없고 가정주부도 나갈 수 없는, 경기 중심으로 태권도를 발전시키면 결국 태권도는 힘세고 건장한 젊은 사람 그 중에서도 운동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하는 운동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최 총재와 김 총재를 태권도밖에 모르는 사람과 태권도를 이용해 영달을 누린 사람으로 각각 표현해 두 태권도 지도자에 대한 다른 시각을 숨김없이 보여줬다. 그가 이렇게 일부의 오해를 무릎 쓰면서까지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많은 태권도 원로들이 그렇지만 그도 가까이서 지켜보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사고와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그의 생각에 대한 찬반의견을 떠나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비록 사업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태권도가 앞으로 인류에 큰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순수한 무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끝>
#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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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원섭귀하


    평소에 소중한 글, 이해하기 어려운 생소한 말씀 고맙다고 전합니다.

    웹 싸이트를 참고 하셔서 좋은 기회를 모두가 역사적 사실을 함께 공유 하였으면 합니다.

    제가 기끔 찿아가는 태권라인 에는 소문이 연계 되지 않은 투명하고 태권도에 기쁨과 사랑을 그리고 즐거움을 함께 하는 후배들로 기회가 되신다면
    www.tawkwonline.com 기억을 하시면 값진 추구를 기억 할겁니다.
    좋은 말씀 기대 합니다.

    서울에서 림 원섭 선배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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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 원 섭

    태권 넷,
    최 홍희, 내가 죽기 전에 태권도 기구 통합 이루겠다는 글을 보고.

    스웨덴, 림 원 섭, 태권도 개척자의 말.

    1966년에 해외로 태권도의 개척의 사명을 질 머지고 나갔던 본인은 당수도(공수도)에 9년, ITF에 19년, WTF에 15년을 두루 두루 운명이 기구하여 다닌 자의 말이고, 1982년 1월5일부터 6월3일까지 이북 국제 사범 제2기생을 가르킨 자의 말이며, 1984년에 ITF 통합위원 이였다. 현재는 국기원(WTF) 소속이며, 1996년에 전(全) 무도 윤리 학회를 세운 자의 말이다.

    1, 최홍희씨에게 질문 ?
    2, 태권도 철학과 동작 문제.
    3, 태권도 통합 문제.

    1. 최홍희씨에게 질문 ?

    ㄱ, 위 내용 중에 세계 태권도 연맹은 가라테에서 벗어나지 못한 태권도 --
    ㄴ, 세계 태권도 연맹이 지나치게 경기 화된 형태로 올림픽 종목에는 잘 못된 일이지만 일단 들어갔으니 계속 정식 종목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라고-
    ㄷ, IOC 위원장 선거에서 김운용 총재가 당선이 되면 태권도 틀(품새)도 정식 종목이 되어야 한다고 -
    ㄹ, 1950년대 당시부터 태권도 명칭을 만들고 가라테와 다른 새로운 무도인 태권도를 고수해왔다고--

    질 문;

    ㄱ,에 대한 나의 의문, 최홍희께서 얼마나 많이 품새를 하셨습니까 ?
    WTF 품새를 해 보셨습니까 ? 얼마나 장, 단점을 아십니까?

    ㄴ,에 대한 나의 의문, 지나치게 경기 화 된 것이 잘못인데, 이왕 들어갔으니 정식 종목으로 되어야 한다고 -. 지나치게 시합을 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동작이 지나치던가요? 콧대가 부러져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시합 종류가 WTF보다 더 많은 ITF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합니까?
    그리고 WTF가 올림픽에 드려가려고 각가지로 노력할 때 어찌 쌍 지팽이를 집고 최홍희씨는 반대를 그간 했는가 ?

    그리고 그 말은 무도 동작에서 반올림이 있어도 되고, 이렇게도 좋고, 저렇게도 좋다, 즉 목적을 위해서는 불의하고도 타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
    혹은 벽돌담을 쌀 때 밑에 것 빼서 위로 올리고, 또 다시 밑에 것 빼서 위로 올려놓아도 된다는 뜻입니까 ?

    ㄷ,에 대한 나의 의문, IOC 위원장의 권한으로 올림픽 종목을 집어넣기도 하고 또 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 아니면 사탕발림의 말입니까 ?

    ㄹ,에 대한 나의 의문, 1950년부터 명칭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2000.9.25일자 태권도 신문 6장 최홍희씨 태권도 명칭 이렇게 만들었다." 아래 15쪽에 그는 부관인 남태희씨와 함께 옥편을 뒤적거리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

    이렇게 쓰여 있는데,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는 남태희씨와 최홍희씨로 해야 한다고 본는데 그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왜, 같이 연구하고 옥편을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무도인 태권도로 고수하였다는데, ITF는 대회라는 것이 없습니까 ? 스포츠는 상대가 있어 대회를 하고, 무도는 상대가 없고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맛 습니까? ITF는 상대도 없이 혼자 만 대회를 했습니까?

    2, 태권도 철학과 동작 문제.

    WTF의 품새와 ITF의 틀의 동작 문제.

    A. 형과 품새와 틀은 무엇이 같은가 !

    a, WTF, ITF의 두 단체에서 쓰는 태권도란 글자가 같다.
    b, 한쪽 동작으로 하는 막기나 찌르기를 할 때 다른 손은 허리에 오는 것이 똑 같다.
    c, 차렷! 경례, 준비, 시작, 고만도 같고, 기압, 얏! 하는 것도 같고, 또 차렷서기, 준비서기, 뒷굽이서기(니은자 서기), 앞굽이서기(고정서기), 주춥서기(앉는서기), 겨루기 서기(맛서기서기), 몸통 밖갓 막기(밖갓 팔목 밖갓 막기) 혹은 안 막기, 손날거드러막기(손칼대비막기), 등등 지면 관계상 모두 쓸 수 없다. 그리고 각종 차기가 같다.

    B. 형과 품새와 틀과의 다른 점 !

    a, 이름이 다르다.
    b, 연무선이 다르다.
    c, 만약 왼발이 앞으로 나와서 왼 앞굽이서기(왼 고정서기)를 하면서 몸통(가운데)찌르기를 했다고 하자, 왼발 쪽인 왼 앞 주먹으로 찔었을 때 품새는 몸통 반대 찌르기라고 하고, 틀에서는 오른 앞주먹으로 가운데를 찔었을 때를 반대 찌르기라고 한다.
    d, 품새에서는 틀에서 있는 걷는서기가 없고, 또 틀에서는 품새에서 있는 앞서기가 없다.
    e, 품새에서의 빗차기가 틀에서는 없다.
    f, 형과 태권도의 옆차기가 다르다.
    g, 틀에서도 1960-1970년대 초까지 형이라고 사용했다.

    C. 철학문제.

    a, WTF 품새 철학에서 중국의 복희씨가 만든 팔괘가 나오고 중국의 주돈이가 만든 태극 즉 음양을 사용했다.

    b, ITF 틀에서는 단군(조상), 도산(안창호), 중근(안중근), 충무(이순신), 의암(손병희), 충장(김덕령), 서산(서산대사), 삼일(3.1절), 세종(세종대왕-한글을 만드는데 좀 도와 준 자임.), 통일(민족 통일), 이 8개의 틀의 이름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목숨을 내 놓고 막은 자들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와 왜놈 통치 35년 동안. 그래서 우리 민족의 맥을 살렸던 이 분들의 역사 표현을 일본의 문화인 공수도(가라데) 동작으로 사용했다.

    다음, 불교인인 원효(원효대사)는 설총이의 부친으로 사대의 시조 김춘추, 화랑도 김유신 정부에 어용 했다.

    다음, 화랑(화랑도), 유신(김유신)은 사대의 시조인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외세를 끌려들어 반민족적인 행실로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와 손을 굳건히 잡고 같은 언어와 풍습을 가친 민족을 망하게 하고 고구려의 거대한 우리 땅을 빼앗기고 한반도로 움츠러들게 한 자다.
    즉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로 놓아 민족이 2국으로 통일되게 한 자다. 이로 인하여 사대주의 사상이 천년화근이 되었다. 이런 민족의 대 죄인을 틀의 이름으로 쓴 것은 식민사관 이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율곡(이이)틀과 퇴계(이황)틀은 중국의 유학-주자학의 학문을 연구한 학자이고 지배층 학자 혹은 어용 학자을 한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광계, 연개, 을지,(고구려 왕 및 장군), 포은(정몽주-친明파), 문무(신라의 문무대왕), 계백(백제의 계백장군), 주체(김일성-공산주의자-1980년 중반까지는 고당(조만식-외세 미군정에 협조자.))을 썼음. 이렇게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이름 및 호를 따서 틀을 만들었는데 동작은 왜놈의 문화, 공수도(karate) 동작으로 썼다.

    또 ITF의 교본을 보면 잘 쓴 최홍희의 붓글씨가 많다. 이 글씨들은 공자, 맹자, 노자, 순자들의 말이다. 이것은 완전한 모화(慕華)사대주의 사상가가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본인이 ITF에 있을 때, 최홍희 총재님은 공자목사라고 했었다. 왜, 중국에도 없는 공자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 이였다.

    물론 리조 5백년 중국에 예속 상납 속국 이였고, 일제가 35년 동안 우리 나라를 강점하면서 민족고유사서 20만 권을 깡그리 분서(焚書-책을 불 살아 버림) 했던 관계로 즉 식민사관으로 역사를 왜곡 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하며 개혁(改革-새롭게 뜯어고침)해야 발전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무(武)를 해도 문(文)도 함께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민족의 국기의 태권도 인이라면 최소한, 우리 민족의 역적 사대의 시조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과 고려가 인도 문화인 불교로 살았고, 신라가 중국 문화인 유교로 살았고, 왜놈한테 35년 동안 짐승처럼 살았고, 지금은 지중해 문화인 기독교로 사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태권도가 자기 방어 운동이라면 내 몸을 적으로부터 막는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코리아를 막는 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참 상속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국기인 태권도는 외세를 막는데 앞장서는 것이 참 무도 인들의 임무 일 것이다. 오늘에 대한민국의 태권도인이라면 노근리 외 엄청 많은 양민학살 문제도 알아야하고, 국제 비행 사격장 매향리 주민들의 고통도 알아야하고, 한미행정협정(SOFA)예속 규정도 알아야하고,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불의 한지도 알아야하고, 서울 시민의 생명수 한강에 미군들의 독극물 방류 문제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즉 몸통 밖갓 막기(가운데 밖갓막기)다. 밖갓이란 외세를 즉 적을 뜻하는 것이다. 품새(틀)에 밖갓(밖으로) 막기가 참 많다.

    그리고 또 한국 신학원 원장님 지승원은 최홍희씨가 만든 천지, 단군 등의 형은 YMCA의 윤병인 선생으로부터 전수된 중국 북방 권법의 장권, 팔기권 정도라고 했다.(태권도 신문,1997.3.31. 시론)

    그러면서 우리 태권도의 동작은 기상천외(奇想天外-상식을 벗어난 아주 엉뚱한 생각)요, 환골탈퇴(換骨脫退-얼굴이 변해 전보다 아름답게 됨, 남의 문장의 취의를 본뜨되 그 형식을 바꿔 자작처럼 꾸밈)라고 하였고, 본인은 도용(盜用-남의 것을 몰래 씀)이라는 말보다 표절(剽竊-남의 시가, 문장, 등의 설, 또는 글귀를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발표함.)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두 태권도 철학은 중국의 철학을 사용하였으니 모화(慕華)사대주의 사상이고 동작은 왜놈 것을 사용했으니 친일파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태권도 통합 문제.

    ITF는 1966년도에 WTF는 1971년도에 생기여서 남북이 자본주의 공산주의 남의 것 사상으로 서로 엄청 지 백성들을 살상한 이런 못된 사상을 가지고 자기 것들인 것 모양 으시대며 부끄러운지 모르고 그 정치적인 남의 사상 문제로 참 많이 서로 잘 났다고 퍽 많이 들 매도하며 씹었다. 그러나 그 것이 집안의 일이라 속으로 꿍꿍이 알고 있는 이 통합을 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30-35년이란 세월, 강산이 3번은 변했을 세월 여기에서 두 단체는 자기 식 데로의 땀과 눈물과 피와 경쟁에서 경험 철학과 그 나름 데로의 역사를 쌓아서 명실 공히 세계의 많은 태권도 인들을 어깨에 근육을 때때로 자랑하며 18세가 넘었다고 우쭐대며 태권도는 코리아 것이라고 한다. 또 그 들 데로의 역사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올림픽 종목이다.

    그래서 이 통합은 이들에게 많은 문제를 주어 혹 뿔뿔히 어마어마하게 갈아 질 수도 있다. 왜, 계급이 축소되기 때문에 - 그래서 태권도 단체는 참으로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코리아 국기원 밑에 WTF, ITF 두 총재를 두어 같이 발전하고, 같이 협조하고, 같이 국가 경제와 민족 철학을 위해서 다 문화와 친교를 맺는데 많은 이익이 있을 것이다. 혹은 많은 이득을 차려야 할 것이다.

    외세가 잘라 논 우리 땅을 잇는데, 오늘도 서로 우리가 매일 도복 띄를 매듯 대화하며 친교를 맺으며 우리의 소원인 민족 통일에 앞장서 땀과 피를 쏟으면서 태권도 철학을 우리 것으로 바꾸고 또 동작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 발전을 시켜야 한다고 본다.

    또 한 다른 방법은 끝으로 본인이 WTF의 소속이라서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위에서 설명을 했듯이 냉정한 태권도 가치관은 ITF 틀들의 이름이 매우 잘못된 역사의식(식민사관)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이 것을 꼭 꼬집지 아니하면 몹시 부끄러운 일이니 말을 아니 할 수 없어 하는 것이며 또 다리 난간 가까이로 가는 어린아이를 부축여 주지 아니 할 수 없는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을 아니하는 것도 큰 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품새는 간단히 더 멋지게 고칠 수 있어도 틀은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고로 ITF가 WTF 쪽으로 오는 것이 훨씬 지혜 있는 일이며 큰 기둥에 혹은 언덕에 편히 기대는 격이다.

    이 뜻은 한번 이발을 했다고 늘 말쑥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거울에 먼지가 낀 것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하옵건데 이(그) 길만이 지금 보이지 않는 후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피하게 될 것이며, 사람이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은 오직 남에게 준 것뿐일 것이다.


    00.11.09 스웨덴
    태권도 개척 사범, 시인 림 원 섭 씀.
    wonsup@chello.se / amea@chello.se

    2000-11-1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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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두

    김운용 회장님이 없었으면 태권도,뿐만 아니라 한국 또한 존재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운용 회장님이 차기 Ioc회장님 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나라를 세계속에 태권도로 채택하고 노력하시고 지금도 수 올림픽 영구
    종목 으로 채택하 시려고 노력 하시는 김운용 총재 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것이다. 그것이 우리 태권도 가 존재하고 우리 태권도 인이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누워서 침뱃기 어린 아이행동은 이제 그만 했으면 ....
    철좀들었으면 아무튼 우리나라에 태권도를 세계 정상에 스초츠로 우리 한구인 모두 태권도 인은 김운용 총재님을 비롯하여 더욱더 하나가 되고
    뭉쳐야 할것이다. 새벽 레포트를 찻던중.태권도를 사랑하는 현두가....

    2000-10-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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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 원 섭

    태권도 ITF 틀의 동작들과 국기원(WTF)의 동작들의 품새는 과연 우리 것인가 ?
    * 2000.9.25일자 태권도신문 6장 "최홍희씨 태권도 명칭 이렇게 만들었다."
    * 월간 말 9월호 태권도 창시자, 이제는 말하고 싶다. 의 글 등을 보고.

    태권도 림원섭 개척 사범의 견해.

    1, 최홍희씨는 태권도 세 글자를 혼자 창시했다고 볼 수 없다.
    왜? 아래 15쪽에 "그는 부관인 남태희씨와 함께 옥편을 뒤적거리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 이렇게 쓰여 있다. 그러면 앞으로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는 최홍희씨와 남태희씨로 되여야 할 것이다.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를 최홍희씨로 만 사용하여 쓴다면 옳지 않다고 본다.
    2, 국제 태권도 연맹(International TKD Federation-ITF)을 창립했다고 볼 수 없다. 왜? 혼자 만들었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만약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들었다면 창립자라고 할 수 없다.3, ITF 태권도 최홍희 총재는 틀(품새)를 창시한 것이 아니다. 왜 ? 그 이유는 예를 들어 막기의 기본인 ITF 낮은데 막기(WTF-아래 막기) 하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즉 막았을 때 막지 않는 손(주먹)은 허리에 오기 때문이다. 이 동작은 일본 공수도(karade) 동작과 같다. 일본 공수도 동작은 태권도보다 먼저 생겼다. 그래서 창시냐, 준 창시냐? 아니면 표절이냐, 옮겼냐, 비슷하게 만들었냐 ? 이것이 문제다. 최홍희씨는 일본 중앙대학 범과에 다닐 때 쏘도관을 했다고 한다.
    그럼 WTF 품새는 어느 누가 만들었는가 ? 그 만든 자는 공수도를 한 자인가을 구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틀과 품새 동작들은 일본 공수도(空手道-karade) 동작과 같다. 일개 국의 국기가 남의 나라 무술 동작과 같아야서야 되겠는가! 본인의 의견은 당연히 틀과 품새는 바꿔져야 한다고 본다.

    4, ITF 24 틀과 국기원(WTF) 17개 품새, 팔괘 8개.천지, 단군(성조), 도산(안창호), 원효(대사), 율곡(이이), 중근(안중근), 퇴계(이황), 화랑(화랑도), 충무(이순신), 광계((광계토대왕), 포은(정몽주), 계백(백제의 명장, 계백 장군), 의암(손병희), 충장(임진왜란, 김덕령장군), 주체(김일성)-(고당-조만식)-월래는 고당으로 되었던 틀을 1985년 전후로 해서 주체 틀로 바꾸었다. 삼일(3.1운동), 유신(김유신), 최영(고려 말기 장군), 연개(연개소문), 을지(을지문덕), 문무(신라 13대왕), 서산(대사), 세종(세종대왕), 통일. 17개 품새: 태극1장-2,3,4,5,6,7,8,장,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십진, 지태, 천권, 한수, 일여.팔괘 1장-8장까지. 이런 이름들을 붙인 것은 좋은 생각 이였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식이 짧아 잘 못 이였다. 팔괘는 중국의 음양의 철학이고. 품새에서 태극도 중국의 지방장관 이였던 주돈이(1017-1073)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태극(중국의 점괘)이다. 중국 무술 중에서 태극권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것은 어디에 있는가?

    5, 형에서 틀로, 품새로 - ITF 교본 1966.7.1일자 국방부에서 출판된 책에서와 1972.5.10일 책에는 형(型)으로 되었다가 1983년 영문으로 된 책에서부터는 틀로 바꿨다. 그 형(型)의 용어는 공수도 용어다.
    6, 틀과 품새 동작은 예속이다.
    ITF 책에 들어 있는 우리 선조 단군과 항일 하다가 목숨을 받쳤던 도산, 중근, 충무와 전 백성이 독립운동으로 많은 희생이 되였던 날 3.1일, 등등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틀들은 일본 공수도 동작으로 만들어지었다. 결국 근 세대에 우리 민족의 맥을 살렸던 의로운 선조들의 정신을 고려의 문화를 일본 문화인 공수도(karade) 동작에다가 예속시킨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7, ITF 및 국기원(WTF) 급, 단 제도
    유도 창시자 가노지고로씨가 만든 급, 단 제도를 100년 넘은 오늘까지도 국기라는 태권도에서 사용하고 있다.

    8. 화랑틀과 유신틀을 만든 자의 역사의식.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누구이며 삼국통일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592-667)의 잔꾀의 몇 수에 놀아난 것은 소위 외교에 능수 능난 했다던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시조(始祖) 김춘추는 결국 남에게 그 넓은 땅까지 주면서 빼앗기면서 예속이 된 것이 였으니까 말이다. 이 때 유명한 장군은 사대주의의 시조 화랑도 출신 이였던 김유신(595-673)은 김춘추(태종 무열왕=604-661)와 동서지간이다. 그 외 부하들 화랑도는 그 들의 명령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을 무지막지하게 살상한 자들이다.

    바로 그때 그 므렵 민간 청년 단체 화랑도는 관에서 운영 총 지도자에 국선(國仙, 源花, 花主) 그 밑에 화랑이 있었다. 이 화랑이 지켜야할 도리는 유, 불, 선(儒, 佛, 仙) 3교(敎)의 정신인데. 그것은 석가의, 공자의, 노자의, 가르침이였고, 화랑의 지도와 고문을 담당한 원광법사(圓光法師)가 귀산(貴山) 추항( 項)하여 두 화랑에게 가르킨 세속오계(世俗五戒) 1, 사군
    이충(事君以忠), 2, 사친이효(事親以孝), 3, 교우이신(交友以信), 4, 임전무퇴(臨戰無退), 5, 살생유택(殺生有擇) 이것만 보아도 완벽히 세뇌되여 인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였는가 ?

    말하자면 화랑의 정신은 유가덕목(儒家德目)인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을 철저히 가르쳤지만 그것이 모순이고 위선이였다. 그 모순은 완벽히 삼천포로 빠지는 어긋난 살인을 밥먹듯이 했던 위선의 행각을 했었다. 즉 화랑정신은 인(仁), 도(道), 예(禮), 덕(德), 의(義)가 전혀 없었던 정치 깡패 살인 집단 이였다. 왜냐하면 ! 물론 이 때의 시절을 너무도 욕심이 많게 요구하는 지는 몰라도 화랑도에서 인(仁)이란 글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인(仁)이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것이 인(仁)인데, 즉 사랑인데 화랑에서는 남을 위해 인(仁)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사용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또 충(忠)과 효(孝)와, 신(信)과, 용(勇)만 있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올바르게 하는 것인 예(禮)도 없고. 또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의(義)데 이 의(義)도 없다. 특히 지혜로움(智)은 공경을 통해 남을 용서하고 관용을 배프는 자비 같은 것도 없다.

    특히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불의(不義)는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과 그 사회를 나라를 공경하는 도(道)인데 이것도 없고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확실히 분별하여 사람들을 살게 해주고 사람들의 생활 윤택과 의식수준을 높여주게 해주려고 힘쓰는 도(道)가 없다. 더더욱 생명의 근원인 덕(德)이 없는 단체가 화랑도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37년(576)이나 그 보다 전인 진흥왕 23년 (562)에 이미 화랑은 가야 정벌에 종군하여 대야성을 공격하여 큰공을 세웠다. 그러니까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체를 후에 국가적으로 편제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진평왕 19년(597) 백제와 싸움에 나아가 적진 돌진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200여명의 훌륭한 업적, 말하자면 신라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함은 그 만큼 살인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정치 깡패 집단 이였다, 즉 특수 게리라 부대였던 것이다. 화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지 모르겠지만 당 나라 소정방을 끌어 드리지 말고 고구려 장군이나 백제 장군을 끌어드려 김춘추와 김유신의 그 특유한 간교(奸巧)한 머리로 백 번 이용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나라 땅덩이가 작은 나라가 아니 되었을 것이다.(그 나마도 잘려 있지만).

    동대 사회학 강정구 박사는 이렇게 글을 쓰며 억울해 했다.
    통일신라의 민족통일국가 수립은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통한(痛恨)의 족 적을 남긴 치욕(恥辱)이였다. 왜냐하면 동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외세를 업고 같은 민족을 멸망시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이 조국을 등지게 하는 반민족적. 외세 의존적 통일이었고, 민족통일국가를 좁은 반도의 한 귀퉁이로 움츠러들게 하여 만주벌판에서 웅비하던 우리 민족의 위상을 위축시킨 "역사갈림길" 이였다 라고 말하면서 신라에 의한 민족통일은 첫째,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어 동족을 멸망시킨 반민족공동체적이고 반 자주적인 통일 이였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3국 통일이 아니라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 아래에 놓아 민족을 분단시킨 2국 통일 이였다. 일부 학계에서는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와 유사한 구도가 형성 되였고 또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하는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통일이였다.
    셋째, 민족구성원을 끌어안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섭하기보다는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내부 식민지화하여 수많은 백제 유민이 신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일본으로 이주하게 한 지배 종속의 통일 이였다.
    넷째, 이렇게 영토 적 통일과 민족적 반 통일성은 그후 조선 초기까지 무려 800백년 이상 민족적 질곡과 멍에를 남긴 통일 이였다. (통일시대의 북한 학-강정구, 210-211쪽=당대)

    소설가(45-50여권의 책을 씀) 국문학자 정비석(1911-1991)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비통해 했다. 자고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라고 하시면서-. 고구려와 신라는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오는 동족 국가들이다. 그런데 집안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피가 다른 당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처사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세나라가 통합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혈통이 다른 당나라의 도움만은 받지 않았어야 옳을 일 이였다. 신라는 이민족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했다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인가.

    고구려는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이민족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오고 있는데다가, 남쪽에서는 동족 국가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 급급하여 이 민족인 당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과 북으로 고구려를 협공해 왔기 때문이다. 신라가 만약 이민족인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치지 아니하고 동족 국가인 고구려와 힘을 모아 당나라로 쳐들어갔드라면, 오늘날 광범한 만주 전역은 우리네의 국가가 되어 버렸을 것이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신라는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결론적으로 약소민족의 비운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이 민족인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 무열왕(김춘추)과 화랑도 김유신이 있을 때다.
    일반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을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의 위대한 업적이였다고 찬양해 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족사적 견지에서 볼 때, 그러한 견해는 과연 올바른 비평이였을까 !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 통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민족인 당나라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버림으로써 고구려가 이미 점령하고 있던 광대무변한 만주 대륙을 이민족에게 도로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뿐이랴.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으로 전락됨으로써, 당나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원(元) 명(明) 등의 이민족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했던 것인가.그렇게 따지고 보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이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라는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상잔의 불상사를 일으켰기 때문이였다. 옛 글에서 보면 형제끼리는 비록 담 안에서는 싸울망정, 외부에서 덤벼올 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는 비롯 싸우기는 하드라도, 형제간의 싸움에 이민족을 불러들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수시로 반복 되여도, 피가 같고 말이 같은 동족은 언제나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무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그와 같은 영원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목전의 소(小)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민족적인 대의(大義)를 그르쳐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천여 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도 우리 겨레는 약소 민족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영토가 귀한 줄만 알고 피가 귀한 줄은 모른 까닭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큰 우(愚)를 범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사대주의 사상이라는 천년화근(千年禍根)까지 심어 놓았다. 신라는 남의 힘을 빌려 삼국을 억지로 통일했기 때문에, 힘을 빌려준 나라에 대해 머리를 굽신거려야 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신라는 당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겨 왔었다.
    그 후에 당나라가 원나라와 청나라로 바뀌고, 신라가 고려로 변했다가 조선 왕조로 바뀐 뒤에도 그들은 우리 나라를 항상 종속국 취급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5백년 동안 매년 7백만 양씩 상납하고 사람도 금은 보화도 빼앗기고 주어 가면서 살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대주의자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 두 동서의 생각 빈곤으로 백성들은 가난하여 허덕이며 엄청 죽어야 했다.
    그와 같은 사대주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기를 위촉시키는 데 커다란 작용을 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원한 죄인이며 역적이다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1982.1.-6월초까지 평양에서 이북 제2기생 국제 사범들을 가르킬 때 그 학생들에게 의암과 고당을 또 화랑과 유신 틀을 가르킬 때, 나에게 배우던 학생들 모두는 질문하는 시간에 위 4개의 틀에 대해서 본인에게 공격 특히 고당, 화랑, 유신 틀에 대해서 나쁜 사람들입니다 라고 항의를 할 때 나의 궁색한 대답은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있어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고 답을 했지만, 그렇게 답 한지 18년이 지난 오늘도 난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 내가 죽지 아니하고 만약 만나게 된다면 난 진심으로 질문한 그들에게 사과를 하려고 한다.
    9. 정치의식
    의암 손병희 선생님은 3.1운동 때 33인의 대표(33인 거이다 배신)였다. 갑오 봉기 후 북접(호서지방), 남접(호남지방) 즉 일본으로 망명하고 뒤돌아와 신파, 구파의 갈등으로 해서 완전 종교화 시켜 버린 것과 고당 조만식 선생은 조선 민주당 반 소련 기독교(쾌이켜)인으로 미군정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보아서 우리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 두 분이 틀에 들러갈 정도로 큰 인물이 될 수 있는가에서 최홍희씨는 식민지 지배의식으로 그 시절의 정치, 역사의식은 오늘에 정치, 역사의식을 따라가기에는 퍽 바쁘다. 물은 흐를 수록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10. 월간 말지 9월호 133쪽 맨 위 "영국을 방문해 한 영국 유단자에게 시범을 보이며 교육중인 최홍희씨를 보면 도복을 입은 자에게 사복을 입고 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사복을 입고 있을 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방어를 해야한다. 그러나 쎄미나에서 사복 입고(가죽구두를 신지 아니하고 했으리라 믿는다.) 태권도 교육하는 사람은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뿐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11. 태권도는 자기방어 운동 코리아 국기인가 ?
    언젠가 어떤 신문에서 나온 기사를 보고 본인은 매우 분노한 적이 있다. 그 신문을 오려 놓지 아니하여 오늘도 후회를 하고 있다. 내용이란, 서울특별시 지하철에서 미군 몇 명이서 한국 여자에게 희롱을 몹시 심하게 하여 한 의로운 남자가 저지를 하니 미군들이 그 의로운 남자에게 집단 폭행을 하는데, 어느 누구 한 사람 그 곳에 참여하는 자는 아무도 없고 오히려 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아 - 우리 대한의 국기 태권도는 죽었구나 한 적이 있다.
    ㄱ, 국기원(WTF)과 ITF 태권도가 공산주의에 자본주의에 동조를 했는가? 막은 적이 있는가 ? ㄴ, 노근리 외 여기 저기 많은 양민학살에 대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태권도 인이 말하는 자가 있는가 ?
    ㄷ, 한미 행정협정(SOFA)이 완전 예속이 된 규정인데,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누가 말하는 자가 있는가 ? ㄹ, 매향리에서 미 공군 사격장의 소음으로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누가 말한 적이 있는가 ? ㅁ, 서울 시민의 생명수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는데 국기원에서 ITF에서 말하는 자는 과연 있는가 ? ㅂ, 오늘에 민족 통일을 위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말하며 일어서는 자가 있는가 ?
    ㅅ, 이북 우리 동포가 자연재해로 굶주려 허덕이는 것을 보고 들으며 대한 민국 국기 태권도는 ITF 태권도는 무엇을 하는가 ?
    12. 두 태권도가 통합 통일되는 것을 본인은 반대한다. 왜? 예 본인이 베트남에 태권도 교관으로 배타고 1966년도 갈 때 갑판에 나가 있는데 누가 림원섭하고 불어서 가보았더니 너도 림원섭이야? 하고 말하며 처다 보는 그 어색한 인상이 꼭 땡감 먹을 때의 인상 이였다. (내가 림 자를 썼더니 반공 이데오르기에 푹 빠져 노예가 된 어떤 놈이 나보고 이북 놈이라고 하드라고 그래서 야, 말본 공부했어! 임자는 한문으로 任자로 쓰고 림는 한문으로 林자로 쓴다고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이름이 같다고 합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 ITF 틀과 국기원(WTF) 품새를 두 개를 모두 99% 터득한 사범으로서 볼 때 도복도 다르고 틀과 품새의 이름도 다르고 동작도 다르다. 물론 조직도, 규정도, 역사도, 용어도 다르다. 같은 것이 있다면 태권도라는 이름과 많은 막기 동작에서 왼손으로 막았다면 다른 손은 반대 허리에 오는 것만이 같다. 막기의 기본인 ITF 틀에서 낮은데 막기를 할 때 팔굽이 약간 구부리인다. WTF 품새 아래 막기를 할 대 팔굽이 펴졌다. 그리고 ITF 서기 동작에서 품새에서 있는 앞(짧은)서기가 없다. WTF 서기 동작에서는 틀에서 있는 걷는 서기가 없다.
    또 ITF의 첫 틀 천지틀을 시작할 때 가 방향을 보고 시작을 하여 끝날 때도 가 방향을 보고 끝난다. 이때 가운데 찌르기로 끝이 나는데 어깨 높이다. 그런데 WTF의 첫 품새 태극1장은 시작할 때 가 방향을 보고 시작을 하여 끝 날 때는 가의 반대 방향인 나 방향을 보고 끝난다. 이 때 몸통 찌르기로 끝이 나는데 어깨 높이 보다 약간 낮춘다. 그리고 틀 총 706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품새, 팔괘까지 합하여 600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틀과 품새에서 없는 차기 동작이 더러 몇 개 맛 서기(ITF)와 겨루기(WTF)에 있다.
    특히 ITF 태권도 역사는 틀을 만든 자 최홍희에 의해서 만들어 졌고, WTF 태권도 역사는 품새를 만든 자 이종우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이 두 사람은 생각도, 꿈도, 생김새도 다르다. 그리고 한 개보다. 두 개가 많고 좋다고 생각하며. 풍부하게 서로 지혜에 의해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두 태권도에서 사용하는 용품들도 각각 다르니 국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13. 태권도 공원
    모가지에 핏대를 세우고
    이 이야기를 한지
    이 말은 한지
    훨씬 넘어
    어-연 강산이 두 세 번은 변하였나 -
    아 - 네 것, 내 것,
    참 우리 것이라면 -
    태권도 마을, 태권도 동산, 태권도 공원
    한라산에 있으면 더 좋고
    백두산에 있으면 더 좋고
    설악산에, 지리산에, 금강산에, 묘향산에, 도봉산에,
    단풍의 고향 정읍 내장산에 있으면 참 멋 질 거야
    그러나
    으뜸 엄지손가락 지역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용산 미8군사령부 자리가
    최고 일거야 - 2000.05.10일 씀.

    축, 코리아,
    올해는 이남에서 평화상을 탓으니, 내년 2001년에는 이북에서 타서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전쟁과 예속(식민지)이 떠나고, 사대주의가 없어지고, 따라만가는 해바라기 성 기질이 확 짤리고, 어연번듯하게 자주 국으로서 떳떳이 우리 배달은 꼭 이 인류 문화 중심 국이 될 것이며 스승의 나라가 되리라 믿습니다. 노벨 평화상은 인구 4백 오 십만으로부터 7천만이 받는 것인가?
    개인 김대중께서 받는 것인가? 대한민국 4천만 동포가 받는 것인가? 그 동안 목숨 내놓고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국내외에서 한자들이 받는 것인가?

    어제의 평화상이 세계의 행동하는 양심 인들이 배달을 위해 주는 것으로 의식하며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은 외세들에 눈치 보지 아니 하고 겸손히 그리고 당당히 민족 통일 문제에 더욱 박차를 가 하길 바라고 그리고 나오는 그 돈도 민족 통일 사업에 걸식하는 어린 새싹들
    을 위해 쓰여지길 참 빈다. 2000.10.14일 씀.

    14, 단풍나무
    참 아름다운 단풍나무야
    뻘건 단풍나무야
    난 니가 왜! 빨간지 알겠다
    넌 올 가을도 엄청 열 받았지 !
    일본 총리 모리라는 정신나간 사람이 독도가 지 땅이라 한다.
    극동에 저울추가 없다고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
    통일 후에도 미군은 있어야 된다고 한다.
    노근리 외 퍽 많은 양민 학살 문제는 어떻게 하고,
    매향리 국제 미군비행기 사격장도 포함되었나,
    한. 미 행정협정(SOFA)은, 국군 통수권은 ?
    국가 보안법은, 한강 독극물 방류 문제는 ?
    오늘도 걸식하는 아동 엄청 많다는데
    살인, 친일, 친미 매국노 왜놈 장교 박정희 기념관도 세운다고 한다.
    백억, 2백, 5백 억도 들어서
    오늘도 난 시끄름한 생선 찌게 먹었다.
    단풍나무야
    내년 봄 4월에는
    참 아름다운 단풍나무야
    예쁜 단풍나무야
    제발
    초록, 파랑 눈빛으로 새싹 좀 주거라 2000.10.01. 씀.

    2000.10.14일 스웨덴 시인 림 원섭 씀.
    태권도 개척사범, 전(全) 무도 윤리 학회, 물흙길, 폭죽 안전 발사대 발명, 특허권자.
    시집; "흐르는 물 함께 가는데" (살림터 2000.5.6일 출판).


    2000-10-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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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림 원 섭

    태권도 ITF 틀의 동작들과
    국기원(WTF)의 동작들의 품새는 과연 우리 것인가 ?

    * 2000.9.25일자 태권도신문 6장 "최홍희씨 태권도 명칭 이렇게 만들었다."
    * 월간 말 9월호 태권도 창시자, 이제는 말하고 싶다. 의 글 등을 보고.

    태권도 림원섭 개척 사범의 견해.

    1, 최홍희씨는 태권도 세 글자를 혼자 창시했다고 볼 수 없다.
    왜?
    아래 15쪽에 "그는 부관인 남태희씨와 함께 옥편을 뒤적거리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 이렇게 쓰여 있다. 그러면 앞으로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는 최홍희씨와 남태희씨로 되여야 할 것이다.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를 최홍희씨로 만 사용하여 쓴다면 옳지 않다고 본다.

    2, 국제 태권도 연맹(International TKD Federation-ITF)을 창립했다고 볼 수 없다.
    왜?
    혼자 만들었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만약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들었다면 창립자라고 할 수 없다.
    3, ITF 태권도 최홍희 총재는 틀(품새)를 창시한 것이 아니다.
    왜 ?
    그 이유는 예를 들어 막기의 기본인 ITF 낮은데 막기(WTF-아래 막기) 하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즉 막았을 때 막지 않는 손(주먹)은 허리에 오기 때문이다. 이 동작은 일본 공수도(karade) 동작과 같다. 일본 공수도 동작은 태권도보다 먼저 생겼다. 그래서 창시냐, 준 창시냐? 아니면 표절이냐, 옮겼냐, 비슷하게 만들었냐 ? 이것이 문제다. 최홍희씨는 일본 중앙대학 범과에 다닐 때 쏘도관을 했다고 한다.

    그럼 WTF 품새는 어느 누가 만들었는가 ?
    그 만든 자는 공수도를 한 자인가을 구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틀과 품새 동작들은 일본 공수도(空手道-karade) 동작과 같다. 일개 국의 국기가 남의 나라 무술 동작과 같아야서야 되겠는가! 본인의 의견은 당연히 틀과 품새는 바꿔져야 한다고 본다.

    4, ITF 24 틀과 국기원(WTF) 17개 품새, 팔괘 8개.
    천지, 단군(성조), 도산(안창호), 원효(대사), 율곡(이이), 중근(안중근), 퇴계(이황), 화랑(화랑도), 충무(이순신), 광계((광계토대왕), 포은(정몽주), 계백(백제의 명장, 계백 장군), 의암(손병희), 충장(임진왜란, 김덕령장군), 주체(김일성)-(고당-조만식)-월래는 고당으로 되었던 틀을 1985년 전후로 해서 주체 틀로 바꾸었다. 삼일(3.1운동), 유신(김유신), 최영(고려 말기 장군), 연개(연개소문), 을지(을지문덕), 문무(신라 13대왕), 서산(대사), 세종(세종대왕), 통일.

    17개 품새: 태극1장-2,3,4,5,6,7,8,장,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십진, 지태, 천권, 한수, 일여.팔괘 1장-8장까지.
    이런 이름들을 붙인 것은 좋은 생각 이였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식이 짧아 잘 못 이였다. 팔괘는 중국의 음양의 철학이고. 품새에서 태극도 중국의 지방장관 이였던 주돈이(1017-1073)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태극(중국의 점괘)이다. 중국 무술 중에서 태극권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것은 어디에 있는가?

    5, 형에서 틀로, 품새로 -
    ITF 교본 1966.7.1일자 국방부에서 출판된 책에서와 1972.5.10일 책에는 형(型)으로 되었다가 1983년 영문으로 된 책에서부터는 틀로 바꿨다. 그 형(型)의 용어는 공수도 용어다.

    6, 틀과 품새 동작은 예속이다.
    ITF 책에 들어 있는 우리 선조 단군과 항일 하다가 목숨을 받쳤던 도산, 중근, 충무와 전 백성이 독립운동으로 많은 희생이 되였던 날 3.1일, 등등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틀들은 일본 공수도 동작으로 만들어지었다. 결국 근 세대에 우리 민족의 맥을 살렸던 의로운 선조들의 정신을 고려의 문화를 일본 문화인 공수도(karade) 동작에다가 예속시킨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7, ITF 및 국기원(WTF) 급, 단 제도
    유도 창시자 가노지고로씨가 만든 급, 단 제도를 100년 넘은 오늘까지도 국기라는 태권도에서 사용하고 있다.

    8. 화랑틀과 유신틀을 만든 자의 역사의식.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누구이며 삼국통일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592-667)의 잔꾀의 몇 수에 놀아난 것은 소위 외교에 능수 능난 했다던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시조(始祖) 김춘추는 결국 남에게 그 넓은 땅까지 주면서 빼앗기면서 예속이 된 것이 였으니까 말이다. 이 때 유명한 장군은 사대주의의 시조 화랑도 출신 이였던 김유신(595-673)은 김춘추(태종 무열왕=604-661)와 동서지간이다. 그 외 부하들 화랑도는
    그 들의 명령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을 무지막지하게 살상한 자들이다.

    바로 그때 그 므렵 민간 청년 단체 화랑도는 관에서 운영 총 지도자에 국선(國仙, 源花, 花主) 그 밑에 화랑이 있었다. 이 화랑이 지켜야할 도리는 유, 불, 선(儒, 佛, 仙) 3교(敎)의 정신인데. 그것은 석가의, 공자의, 노자의, 가르침이였고, 화랑의 지도와 고문을 담당한 원광법사(圓光法師)가 귀산(貴山) 추항( 項)하여 두 화랑에게 가르킨 세속오계(世俗五戒) 1, 사군
    이충(事君以忠), 2, 사친이효(事親以孝), 3, 교우이신(交友以信), 4, 임전무퇴(臨戰無退), 5, 살생유택(殺生有擇) 이것만 보아도 완벽히 세뇌되여 인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였는가 ?

    말하자면 화랑의 정신은 유가덕목(儒家德目)인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을 철저히 가르쳤지만 그것이 모순이고 위선이였다. 그 모순은 완벽히 삼천포로 빠지는 어긋난 살인을 밥먹듯이 했던 위선의 행각을 했었다. 즉 화랑정신은 인(仁), 도(道), 예(禮), 덕(德), 의(義)가 전혀 없었던 정치 깡패 살인 집단 이였다.
    왜냐하면 !
    물론 이 때의 시절을 너무도 욕심이 많게 요구하는 지는 몰라도 화랑도에서 인(仁)이란 글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인(仁)이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것이 인(仁)인데, 즉 사랑인데 화랑에서는 남을 위해 인(仁)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사용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또 충(忠)과 효(孝)와, 신(信)과, 용(勇)만 있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올바르게 하는 것인 예(禮)도 없고. 또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의(義)데 이 의(義)도 없다. 특히 지혜로움(智)은 공경을 통해 남을 용서하고 관용을 배프는 자비 같은 것도 없다.

    특히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불의(不義)는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과 그 사회를 나라를 공경하는 도(道)인데 이것도 없고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확실히 분별하여 사람들을 살게 해주고 사람들의 생활 윤택과 의식수준을 높여주게 해주려고 힘쓰는 도(道)가 없다. 더더욱 생명의 근원인 덕(德)이 없는 단체가 화랑도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37년(576)이나 그 보다 전인 진흥왕 23년 (562)에 이미 화랑은 가야 정벌에 종군하여 대야성을 공격하여 큰공을 세웠다. 그러니까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체를 후에 국가적으로 편제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진평왕 19년(597) 백제와 싸움에 나아가 적진 돌진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200여명의 훌륭한 업적, 말하자면 신라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함은 그 만큼 살인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정치 깡패 집단 이였다, 즉 특수 게리라 부대였던 것이다. 화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지 모르겠지만 당 나라 소정방을 끌어 드리지 말고 고구려 장군이나 백제 장군을 끌어드려 김춘추와 김유신의 그 특유한 간교(奸巧)한 머리로 백 번 이용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나라 땅덩이가 작은 나라가 아니 되었을 것이다.(그 나마도 잘려 있지만).

    동대 사회학 강정구 박사는 이렇게 글을 쓰며 억울해 했다.

    통일신라의 민족통일국가 수립은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통한(痛恨)의 족 적을 남긴 치욕(恥辱)이였다. 왜냐하면 동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외세를 업고 같은 민족을 멸망시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이 조국을 등지게 하는 반민족적. 외세 의존적 통일이었고, 민족통일국가를 좁은 반도의 한 귀퉁이로 움츠러들게 하여 만주벌판에서 웅비하던 우리 민족의 위상을 위축시킨 "역사갈림길" 이였다 라고 말하면서 신라에 의한 민족통일은 첫째,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어 동족을 멸망시킨 반민족공동체적이고 반 자주적인 통일 이였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3국 통일이 아니라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 아래에 놓아 민족을 분단시킨 2국 통일 이였다. 일부 학계에서는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와 유사한 구도가 형성 되였고 또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하는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통일이였다.

    셋째, 민족구성원을 끌어안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섭하기보다는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내부 식민지화하여 수많은 백제 유민이 신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일본으로 이주하게 한 지배 종속의 통일 이였다.
    넷째, 이렇게 영토 적 통일과 민족적 반 통일성은 그후 조선 초기까지 무려 800백년 이상 민족적 질곡과 멍에를 남긴 통일 이였다. (통일시대의 북한 학-강정구, 210-211쪽=당대)

    소설가(45-50여권의 책을 씀) 국문학자 정비석(1911-1991)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비통해 했다. 자고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라고 하시면서-.

    고구려와 신라는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오는 동족 국가들이다. 그런데 집안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피가 다른 당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처사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세나라가 통합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혈통이 다른 당나라의 도움만은 받지 않았어야 옳을 일 이였다. 신라는 이민족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했다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인가.

    고구려는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이민족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오고 있는데다가, 남쪽에서는 동족 국가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 급급하여 이 민족인 당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과 북으로 고구려를 협공해 왔기 때문이다. 신라가 만약 이민족인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치지 아니하고 동족 국가인 고구려와 힘을 모아 당나라로 쳐들어갔드라면, 오늘날 광범한 만주 전역은 우리네의 국가가 되어 버렸을 것이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신라는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결론적으로 약소민족의 비운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이 민족인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 무열왕(김춘추)과 화랑도 김유신이 있을 때다.

    일반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을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의 위대한 업적이였다고 찬양해 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족사적 견지에서 볼 때, 그러한 견해는 과연 올바른 비평이였을까 !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 통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민족인 당나라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버림으로써 고구려가 이미 점령하고 있던 광대무변한 만주 대륙을 이민족에게 도로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뿐이랴.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으로 전락됨으로써, 당나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원(元) 명(明) 등의 이민족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했던 것인가.그렇게 따지고 보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이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라는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상잔의 불상사를 일으켰기 때문이였다. 옛 글에서 보면 형제끼리는 비록 담 안에서는 싸울망정, 외부에서 덤벼올 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는 비롯 싸우기는 하드라도, 형제간의 싸움에 이민족을 불러들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수시로 반복 되여도, 피가 같고 말이 같은 동족은 언제나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무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그와 같은 영원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목전의 소(小)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민족적인 대의(大義)를 그르쳐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천여 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도 우리 겨레는 약소 민족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영토가 귀한 줄만 알고 피가 귀한 줄은 모른 까닭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큰 우(愚)를 범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사대주의 사상이라는 천년화근(千年禍根)까지 심어 놓았다. 신라는 남의 힘을 빌려 삼국을 억지로 통일했기 때문에, 힘을 빌려준 나라에 대해 머리를 굽신거려야 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신라는 당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겨 왔었다.

    그 후에 당나라가 원나라와 청나라로 바뀌고, 신라가 고려로 변했다가 조선 왕조로 바뀐 뒤에도 그들은 우리 나라를 항상 종속국 취급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5백년 동안 매년 7백만 양씩 상납하고 사람도 금은 보화도 빼앗기고 주어 가면서 살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대주의자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 두 동서의 생각 빈곤으로 백성들은 가난하여 허덕이며 엄청 죽어야 했다.
    그와 같은 사대주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기를 위촉시키는 데 커다란 작용을 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원한 죄인이며 역적이다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1982.1.-6월초까지 평양에서 이북 제2기생 국제 사범들을 가르킬 때 그 학생들에게 의암과 고당을 또 화랑과 유신 틀을 가르킬 때, 나에게 배우던 학생들 모두는 질문하는 시간에 위 4개의 틀에 대해서 본인에게 공격 특히 고당, 화랑, 유신 틀에 대해서 나쁜 사람들입니다 라고 항의를 할 때 나의 궁색한 대답은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있어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고 답을 했지만, 그렇게 답 한지 18년이 지난 오늘도 난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 내가 죽지 아니하고 만약 만나게 된다면 난 진심으로 질문한 그들에게 사과를 하려고 한다.

    9. 정치의식
    의암 손병희 선생님은 3.1운동 때 33인의 대표(33인 거이다 배신)였다. 갑오 봉기 후 북접(호서지방), 남접(호남지방) 즉 일본으로 망명하고 뒤돌아와 신파, 구파의 갈등으로 해서 완전 종교화 시켜 버린 것과 고당 조만식 선생은 조선 민주당 반 소련 기독교(쾌이켜)인으로 미군정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보아서 우리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 두 분이 틀에 들러갈 정도로 큰 인물이 될 수 있는가에서 최홍희씨는 식민지 지배의식으로 그 시절의 정치, 역사의식은 오늘에 정치, 역사의식을 따라가기에는 퍽 바쁘다.
    물은 흐를 수록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10. 월간 말지 9월호 133쪽 맨 위 "영국을 방문해 한 영국 유단자에게 시범을 보이며 교육중인 최홍희씨를 보면 도복을 입은 자에게 사복을 입고 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사복을 입고 있을 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방어를 해야한다. 그러나 쎄미나에서 사복 입고(가죽구두를 신지 아니하고 했으리라 믿는다.) 태권도 교육하는 사람은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뿐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11. 태권도는 자기방어 운동 코리아 국기인가 ?
    언젠가 어떤 신문에서 나온 기사를 보고 본인은 매우 분노한 적이 있다. 그 신문을 오려 놓지 아니하여 오늘도 후회를 하고 있다. 내용이란, 서울특별시 지하철에서 미군 몇 명이서 한국 여자에게 희롱을 몹시 심하게 하여 한 의로운 남자가 저지를 하니 미군들이 그 의로운 남자에게 집단 폭행을 하는데, 어느 누구 한 사람 그 곳에 참여하는 자는 아무도 없고 오히려 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아 - 우리 대한의 국기 태권도는 죽었구나 한 적이 있다.
    ㄱ, 국기원(WTF)과 ITF 태권도가 공산주의에 자본주의에 동조를 했는가? 막은 적이 있는가 ?
    ㄴ, 노근리 외 여기 저기 많은 양민학살에 대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태권도 인이 말하는 자가 있는가 ?
    ㄷ, 한미 행정협정(SOFA)이 완전 예속이 된 규정인데,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누가 말하는 자가 있는가 ?
    ㄹ, 매향리에서 미 공군 사격장의 소음으로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누가 말한 적이 있는가 ?
    ㅁ, 서울 시민의 생명수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는데 국기원에서 ITF에서 말하는 자는 과연 있는가 ?
    ㅂ, 오늘에 민족 통일을 위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말하며 일어서는 자가 있는가 ?
    ㅅ, 이북 우리 동포가 자연재해로 굶주려 허덕이는 것을 보고 들으며 대한 민국 국기 태권도는 ITF 태권도는 무엇을 하는가 ?

    12. 두 태권도가 통합 통일되는 것을 본인은 반대한다.
    왜?
    예 본인이 베트남에 태권도 교관으로 배타고 1966년도 갈 때 갑판에 나가 있는데 누가 림원섭하고 불어서 가보았더니 너도 림원섭이야? 하고 말하며 처다 보는 그 어색한 인상이 꼭 땡감 먹을 때의 인상 이였다. (내가 림 자를 썼더니 반공 이데오르기에 푹 빠져 노예가 된 어떤 놈이 나보고 이북 놈이라고 하드라고 그래서 야, 말본 공부했어! 임자는 한문으로 任자로 쓰고 림는 한문으로 林자로 쓴다고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이름이 같다고 합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 ITF 틀과 국기원(WTF) 품새를 두 개를 모두 99% 터득한 사범으로서 볼 때 도복도 다르고 틀과 품새의 이름도 다르고 동작도 다르다. 물론 조직도, 규정도, 역사도, 용어도 다르다. 같은 것이 있다면 태권도라는 이름과 많은 막기 동작에서 왼손으로 막았다면 다른 손은 반대 허리에 오는 것만이 같다.

    막기의 기본인 ITF 틀에서 낮은데 막기를 할 때 팔굽이 약간 구부리인다.
    WTF 품새 아래 막기를 할 대 팔굽이 펴졌다. 그리고 ITF 서기 동작에서 품새에서 있는 앞(짧은)서기가 없다.
    WTF 서기 동작에서는 틀에서 있는 걷는 서기가 없다.

    또 ITF의 첫 틀 천지틀을 시작할 때 가 방향을 보고 시작을 하여 끝날 때도 가 방향을 보고 끝난다. 이때 가운데 찌르기로 끝이 나는데 어깨 높이다.
    그런데 WTF의 첫 품새 태극1장은 시작할 때 가 방향을 보고 시작을 하여 끝 날 때는 가의 반대 방향인 나 방향을 보고 끝난다. 이 때 몸통 찌르기로 끝이 나는데 어깨 높이 보다 약간 낮춘다.

    그리고 틀 총 706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품새, 팔괘까지 합하여 600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틀과 품새에서 없는 차기 동작이 더러 몇 개 맛 서기(ITF)와 겨루기(WTF)에 있다.

    특히 ITF 태권도 역사는 틀을 만든 자 최홍희에 의해서 만들어 졌고, WTF 태권도 역사는 품새를 만든 자 이종우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이 두 사람은 생각도, 꿈도, 생김새도 다르다.

    그리고 한 개보다. 두 개가 많고 좋다고 생각하며. 풍부하게 서로 지혜에 의해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두 태권도에서 사용하는 용품들도 각각 다르니 국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13. 태권도 공원

    모가지에 핏대를 세우고

    이 이야기를 한지
    이 말은 한지
    훨씬 넘어
    어-연 강산이 두 세 번은 변하였나 -

    아 -
    네 것, 내 것,
    참 우리 것이라면 -

    태권도 마을
    태권도 동산
    태권도 공원

    한라산에 있으면 더 좋고
    백두산에 있으면 더 좋고

    설악산에,
    지리산에,
    금강산에,
    묘향산에,
    도봉산에,
    단풍의 고향 정읍 내장산에 있으면 참 멋 질 거야

    그러나
    으뜸 엄지손가락 지역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

    2000-10-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림 원 섭

    태권도 ITF 틀의 동작들과
    국기원(WTF)의 동작들의 품새는 과연 우리 것인가 ?

    * 2000.9.25일자 태권도신문 6장 "최홍희씨 태권도 명칭 이렇게 만들었다."
    * 월간 말 9월호 태권도 창시자, 이제는 말하고 싶다. 의 글 등을 보고.

    태권도 림원섭 개척 사범의 견해.

    1, 최홍희씨는 태권도 세 글자를 혼자 창시했다고 볼 수 없다.
    왜?
    아래 15쪽에 "그는 부관인 남태희씨와 함께 옥편을 뒤적거리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 이
    렇게 쓰여 있다. 그러면 앞으로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는 최홍희씨와 남태희씨로 되여야 할
    것이다.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를 최홍희씨로 만 사용하여 쓴다면 옳지 않다고 본다.

    2, 국제 태권도 연맹(International TKD Federation-ITF)을 창립했다고 볼 수 없다.
    왜?
    혼자 만들었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만약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들었다면 창
    립자라고 할 수 없다.
    3, ITF 태권도 최홍희 총재는 틀(품새)를 창시한 것이 아니다.
    왜 ?
    그 이유는 예를 들어 막기의 기본인 ITF 낮은데 막기(WTF-아래 막기) 하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즉 막았을 때 막지 않는 손(주먹)은 허리에 오기 때문이다. 이 동작은 일본 공
    수도(karade) 동작과 같다. 일본 공수도 동작은 태권도보다 먼저 생겼다. 그래서 창시냐, 준
    창시냐? 아니면 표절이냐, 옮겼냐, 비슷하게 만들었냐 ? 이것이 문제다. 최홍희씨는 일본 중
    앙대학 범과에 다닐 때 쏘도관을 했다고 한다.

    그럼 WTF 품새는 어느 누가 만들었는가 ?
    그 만든 자는 공수도를 한 자인가을 구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틀과 품새 동작들은 일
    본 공수도(空手道-karade) 동작과 같다. 일개 국의 국기가 남의 나라 무술 동작과 같아야서야
    되겠는가! 본인의 의견은 당연히 틀과 품새는 바꿔져야 한다고 본다.

    4, ITF 24 틀과 국기원(WTF) 17개 품새, 팔괘 8개.
    천지, 단군(성조), 도산(안창호), 원효(대사), 율곡(이이), 중근(안중근), 퇴계(이황), 화랑(화랑
    도), 충무(이순신), 광계((광계토대왕), 포은(정몽주), 계백(백제의 명장, 계백 장군), 의암(손
    병희), 충장(임진왜란, 김덕령장군), 주체(김일성)-(고당-조만식)-월래는 고당으로 되었던 틀
    을 1985년 전후로 해서 주체 틀로 바꾸었다. 삼일(3.1운동), 유신(김유신), 최영(고려 말기 장
    군), 연개(연개소문), 을지(을지문덕), 문무(신라 13대왕), 서산(대사), 세종(세종대왕), 통일.

    17개 품새: 태극1장-2,3,4,5,6,7,8,장,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십진, 지태, 천권, 한수, 일여.
    팔괘 1장-8장까지.
    이런 이름들을 붙인 것은 좋은 생각 이였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식이 짧아 잘 못 이였다. 팔
    괘는 중국의 음양의 철학이고. 품새에서 태극도 중국의 지방장관 이였던 주돈이(1017-1073)
    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태극(중국의 점괘)이다. 중국 무술 중에서 태극권이라는 것이 있
    다. 우리 것은 어디에 있는가?

    5, 형에서 틀로, 품새로 -
    ITF 교본 1966.7.1일자 국방부에서 출판된 책에서와 1972.5.10일 책에는 형(型)으로 되었다가
    1983년 영문으로 된 책에서부터는 틀로 바꿨다. 그 형(型)의 용어는 공수도 용어다.

    6, 틀과 품새 동작은 예속이다.
    ITF 책에 들어 있는 우리 선조 단군과 항일 하다가 목숨을 받쳤던 도산, 중근, 충무와 전
    백성이 독립운동으로 많은 희생이 되였던 날 3.1일, 등등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틀들은 일
    본 공수도 동작으로 만들어지었다. 결국 근 세대에 우리 민족의 맥을 살렸던 의로운 선조들
    의 정신을 고려의 문화를 일본 문화인 공수도(karade) 동작에다가 예속시킨 것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다.

    7, ITF 및 국기원(WTF) 급, 단 제도
    유도 창시자 가노지고로씨가 만든 급, 단 제도를 100년 넘은 오늘까지도 국기라는 태권도에
    서 사용하고 있다.

    8. 화랑틀과 유신틀을 만든 자의 역사의식.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누구이며 삼국통일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592-667)의 잔꾀의 몇 수에 놀아난 것은 소위 외교에 능수 능난 했다던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시조(始祖) 김춘추는 결국 남에게 그 넓은 땅까지 주면서 빼앗기면서
    예속이 된 것이 였으니까 말이다. 이 때 유명한 장군은 사대주의의 시조 화랑도 출신 이였
    던 김유신(595-673)은 김춘추(태종 무열왕=604-661)와 동서지간이다. 그 외 부하들 화랑도는
    그 들의 명령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을 무지막지하게 살상한 자들이다.

    바로 그때 그 므렵 민간 청년 단체 화랑도는 관에서 운영 총 지도자에 국선(國仙, 源花, 花
    主) 그 밑에 화랑이 있었다. 이 화랑이 지켜야할 도리는 유, 불, 선(儒, 佛, 仙) 3교(敎)의 정
    신인데. 그것은 석가의, 공자의, 노자의, 가르침이였고, 화랑의 지도와 고문을 담당한 원광법
    사(圓光法師)가 귀산(貴山) 추항( 項)하여 두 화랑에게 가르킨 세속오계(世俗五戒) 1, 사군
    이충(事君以忠), 2, 사친이효(事親以孝), 3, 교우이신(交友以信), 4, 임전무퇴(臨戰無退), 5, 살
    생유택(殺生有擇) 이것만 보아도 완벽히 세뇌되여 인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
    는 자비(慈悲)였는가 ?
    말하자면 화랑의 정신은 유가덕목(儒家德目)인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을 철저
    히 가르쳤지만 그것이 모순이고 위선이였다. 그 모순은 완벽히 삼천포로 빠지는 어긋난 살
    인을 밥먹듯이 했던 위선의 행각을 했었다. 즉 화랑정신은 인(仁), 도(道), 예(禮), 덕(德), 의
    (義)가 전혀 없었던 정치 깡패 살인 집단 이였다.
    왜냐하면 !
    물론 이 때의 시절을 너무도 욕심이 많게 요구하는 지는 몰라도 화랑도에서 인(仁)이란 글
    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인(仁)이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것이 인(仁)인데,
    즉 사랑인데 화랑에서는 남을 위해 인(仁)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사용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또 충(忠)과 효(孝)와, 신(信)과, 용(勇)만 있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올
    바르게 하는 것인 예(禮)도 없고. 또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의(義)데 이
    의(義)도 없다. 특히 지혜로움(智)은 공경을 통해 남을 용서하고 관용을 배프는 자비 같은
    것도 없다.
    특히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불의(不義)는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한다. 그것
    이 사람과 그 사회를 나라를 공경하는 도(道)인데 이것도 없고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옳
    은 것과 그릇된 것을 확실히 분별하여 사람들을 살게 해주고 사람들의 생활 윤택과 의식수
    준을 높여주게 해주려고 힘쓰는 도(道)가 없다. 더더욱 생명의 근원인 덕(德)이 없는 단체가
    화랑도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37년(576)이나 그 보다 전인 진흥왕 23년 (562)에 이미 화랑은 가야
    정벌에 종군하여 대야성을 공격하여 큰공을 세웠다. 그러니까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체를 후
    에 국가적으로 편제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진평왕 19년(597) 백제와 싸움에 나
    아가 적진 돌진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200여명의 훌륭한 업적, 말하자면 신라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함은 그 만큼
    살인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정치 깡패 집단 이였다, 즉 특수 게리라 부대
    였던 것이다.
    화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지 모르겠지만 당 나라 소정방을 끌어 드리지
    말고 고구려 장군이나 백제 장군을 끌어드려 김춘추와 김유신의 그 특유한 간교(奸巧)한 머
    리로 백 번 이용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나라 땅덩이가 작은 나라가 아니 되었을 것이
    다.(그 나마도 잘려 있지만).

    동대 사회학 강정구 박사는 이렇게 글을 쓰며 억울해 했다.

    통일신라의 민족통일국가 수립은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통한(痛恨)의 족 적을 남긴 치욕(恥
    辱)이였다. 왜냐하면 동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외
    세를 업고 같은 민족을 멸망시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이 조국을 등지게 하는 반민족적. 외
    세 의존적 통일이었고, 민족통일국가를 좁은 반도의 한 귀퉁이로 움츠러들게 하여 만주벌판
    에서 웅비하던 우리 민족의 위상을 위축시킨 "역사갈림길" 이였다 라고 말하면서 신라에 의
    한 민족통일은 첫째,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어 동족을 멸망시킨 반민족공동체적이고 반
    자주적인 통일 이였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3국 통일이 아니라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 아래
    에 놓아 민족을 분단시킨 2국 통일 이였다. 일부 학계에서는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사전 합
    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와 유사한 구
    도가 형성 되였고 또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외세를 끌어들
    여 동족을 멸하는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통일이였다.

    셋째, 민족구성원을 끌어안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섭하기보다는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내부 식민지화하여 수많은 백제 유민이 신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일본으로 이주하게 한 지
    배 종속의 통일 이였다.
    넷째, 이렇게 영토 적 통일과 민족적 반 통일성은 그후 조선 초기까지 무려 800백년 이상
    민족적 질곡과 멍에를 남긴 통일 이였다. (통일시대의 북한 학-강정구, 210-211쪽=당대)

    소설가(45-50여권의 책을 씀) 국문학자 정비석(1911-1991)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비통해 했
    다. 자고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라고 하시면서-.

    고구려와 신라는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오는 동족 국가들이다. 그런데 집안 싸움에서 승리
    하기 위해 피가 다른 당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처사였다고
    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세나라가 통합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혈통이 다른 당나라의 도움
    만은 받지 않았어야 옳을 일 이였다. 신라는 이민족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했다가, 그로 인
    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인가.

    고구려는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이민족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오고 있는데다
    가, 남쪽에서는 동족 국가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 급급하여 이 민족인 당나라와 연합
    군을 형성하여 남과 북으로 고구려를 협공해 왔기 때문이다. 신라가 만약 이민족인 당나라
    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치지 아니하고 동족 국가인 고구려와 힘을 모아 당나라로 쳐들어갔
    드라면, 오늘날 광범한 만주 전역은 우리네의 국가가 되어 버렸을 것이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신라는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
    를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결론적으로 약소민족의 비운을 초래하
    게 된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이 민족인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 무열왕(김춘추)과 화랑도 김유신이 있을 때다.

    일반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을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의 위대한 업적이였다고
    찬양해 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족사적 견지에서 볼 때, 그러한 견해는 과연 올바른 비
    평이였을까 !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 통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민족인 당나라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버림으로써 고구려가 이미 점령하고 있던 광대
    무변한 만주 대륙을 이민족에게 도로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뿐이랴.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으로 전락됨으로써, 당나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원(元) 명
    (明) 등의 이민족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했던 것인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이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라는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상잔의 불상사를 일으켰기 때문이였다. 옛 글에서 보면 형제끼리는 비록 담 안에
    서는 싸울망정, 외부에서 덤벼올 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는 비롯 싸우기는 하드라도, 형제간의 싸움에 이민족을 불러들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수시로 반복 되여도, 피가 같고 말이 같은 동족은 언제나 공동 운명체인 것
    이다. 무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그와 같은 영원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목전의 소
    (小)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민족적인 대의(大義)를 그르쳐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천여
    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도 우리 겨레는 약소 민족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
    닌가.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영토가 귀한 줄만 알고 피가 귀한 줄은 모른 까닭에 소탐대실(小
    貪大失)이라고 큰 우(愚)를 범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사대주의 사상이라는 천년화근(千年禍根)까지 심어 놓았다. 신라
    는 남의 힘을 빌려 삼국을 억지로 통일했기 때문에, 힘을 빌려준 나라에 대해 머리를 굽신
    거려야 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신라는 당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겨 왔었다.

    그 후에 당나라가 원나라와 청나라로 바뀌고, 신라가 고려로 변했다가 조선 왕조로 바뀐 뒤
    에도 그들은 우리 나라를 항상 종속국 취급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5백년 동안 매년 7
    백만 양씩 상납하고 사람도 금은 보화도 빼앗기고 주어 가면서 살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
    대주의자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 두 동서의 생각 빈곤으로 백성들은 가난하여 허덕이며 엄
    청 죽어야 했다.
    그와 같은 사대주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기를 위촉시키는 데 커다란 작용을 해왔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영
    웅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원한 죄인이며 역적이다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1982.1.-6월초까지 평양에서 이북 제2기생 국제 사범들을 가르킬 때 그 학생들에게
    의암과 고당을 또 화랑과 유신 틀을 가르킬 때, 나에게 배우던 학생들 모두는 질문하는 시
    간에 위 4개의 틀에 대해서 본인에게 공격 특히 고당, 화랑, 유신 틀에 대해서 나쁜 사람들
    입니다 라고 항의를 할 때 나의 궁색한 대답은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있어 비교가 되
    지 않겠는가고 답을 했지만, 그렇게 답 한지 18년이 지난 오늘도 난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
    고 있다. 언젠 내가 죽지 아니하고 만약 만나게 된다면 난 진심으로 질문한 그들에게 사과
    를 하려고 한다.

    9. 정치의식
    의암 손병희 선생님은 3.1운동 때 33인의 대표(33인 거이다 배신)였다. 갑오 봉기 후 북접
    (호서지방), 남접(호남지방) 즉 일본으로 망명하고 뒤돌아와 신파, 구파의 갈등으로 해서 완
    전 종교화 시켜 버린 것과 고당 조만식 선생은 조선 민주당 반 소련 기독교(쾌이켜)인으로
    미군정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보아서 우리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 두 분이 틀에 들러갈 정도
    로 큰 인물이 될 수 있는가에서 최홍희씨는 식민지 지배의식으로 그 시절의 정치, 역사의식
    은 오늘에 정치, 역사의식을 따라가기에는 퍽 바쁘다.
    물은 흐를 수록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10. 월간 말지 9월호 133쪽 맨 위 "영국을 방문해 한 영국 유단자에게 시범을 보이며 교육
    중인 최홍희씨를 보면 도복을 입은 자에게 사복을 입고 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사복을 입
    고 있을 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방어를 해야한다. 그러나 쎄미나에서 사복 입고(가죽
    구두를 신지 아니하고 했으리라 믿는다.) 태권도 교육하는 사람은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뿐
    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11. 태권도는 자기방어 운동 코리아 국기인가 ?
    언젠가 어떤 신문에서 나온 기사를 보고 본인은 매우 분노한 적이 있다. 그 신문을 오려 놓
    지 아니하여 오늘도 후회를 하고 있다. 내용이란, 서울특별시 지하철에서 미군 몇 명이서 한
    국 여자에게 희롱을 몹시 심하게 하여 한 의로운 남자가 저지를 하니 미군들이 그 의로운
    남자에게 집단 폭행을 하는데, 어느 누구 한 사람 그 곳에 참여하는 자는 아무도 없고 오히
    려 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아 - 우리 대한의 국기 태권도는 죽었구나 한 적이 있
    다.
    ㄱ, 국기원(WTF)과 ITF 태권도가 공산주의에 자본주의에 동조를 했는가? 막은 적이 있는
    가 ?
    ㄴ, 노근리 외 여기 저기 많은 양민학살에 대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태권도 인이 말
    하는 자가 있는가 ?
    ㄷ, 한미 행정협정(SOFA)이 완전 예속이 된 규정인데,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느 누가 말하
    는 자가 있는가 ?
    ㄹ, 매향리에서 미 공군 사격장의 소음으로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어
    느 누가 말한 적이 있는가 ?
    ㅁ, 서울 시민의 생명수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는데 국기원에서 ITF에서 말하는 자
    는 과연 있는가 ?
    ㅂ, 오늘에 민족 통일을 위해서 국기원에서 ITF에서 말하며 일어서는 자가 있는가 ?
    ㅅ, 이북 우리 동포가 자연재해로 굶주려 허덕이는 것을 보고 들으며 대한 민국 국기 태권
    도는 ITF 태권도는 무엇을 하는가 ?

    12. 두 태권도가 통합 통일되는 것을 본인은 반대한다.
    왜?
    예 본인이 베트남에 태권도 교관으로 배타고 1966년도 갈 때 갑판에 나가 있는데 누가 림
    원섭하고 불어서 가보았더니 너도 림원섭이야? 하고 말하며 처다 보는 그 어색한 인상이 꼭
    땡감 먹을 때의 인상 이였다. (내가 림 자를 썼더니 반공 이데오르기에 푹 빠져 노예가 된 어떤 놈
    이 나보고 이북 놈이라고 하드라고 그래서 야, 말본 공부했어! 임자는 한문으로 任자로 쓰고 림는 한
    문으로 林자로 쓴다고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이름이 같다고 합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 ITF 틀과 국기원(WTF) 품새를 두 개를 모두 99% 터득한 사범으로서 볼 때 도복도 다
    르고 틀과 품새의 이름도 다르고 동작도 다르다. 물론 조직도, 규정도, 역사도, 용어도 다르
    다. 같은 것이 있다면 태권도라는 이름과 많은 막기 동작에서 왼손으로 막았다면 다른 손은
    반대 허리에 오는 것만이 같다.

    막기의 기본인 ITF 틀에서 낮은데 막기를 할 때 팔굽이 약간 구부리인다.
    WTF 품새 아래 막기를 할 대 팔굽이 펴졌다.
    그리고 ITF 서기 동작에서 품새에서 있는 앞(짧은)서기가 없다.
    WTF 서기 동작에서는 틀에서 있는 걷는 서기가 없다.

    또 ITF의 첫 틀 천지틀을 시작할 때 가 방향을 보고 시작을 하여 끝날 때도 가 방향을
    보고 끝난다. 이때 가운데 찌르기로 끝이 나는데 어깨 높이다.

    그런데 WTF의 첫 품새 태극1장은 시작할 때 가 방향을 보고 시작을 하여 끝 날 때는 가
    의 반대 방향인 나 방향을 보고 끝난다. 이 때 몸통 찌르기로 끝이 나는데 어깨 높이 보다
    약간 낮춘다.

    그리고 틀 총 706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품새, 팔괘까지 합하여 600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틀과 품새에서 없는 차기
    동작이 더러 몇 개 맛 서기(ITF)와 겨루기(WTF)에 있다.

    특히 ITF 태권도 역사는 틀을 만든 자 최홍희에 의해서 만들어 졌고,
    WTF 태권도 역사는 품새를 만든 자 이종우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이 두 사람은 생각도, 꿈도, 생김새도 다르다.

    그리고 한 개보다. 두 개가 많고 좋다고 생각하며. 풍부하게 서로 지혜에 의해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두 태권도에서 사용하는 용품들도 각각 다르니 국가 경제적으로도 이익
    이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13. 태권도 공원

    모가지에 핏대를 세우고

    이 이야기를 한지
    이 말은 한지
    훨씬 넘어
    어-연 강산이 두 세 번은 변하였나 -

    아 -
    네 것,

    2000-10-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태궈도마스터

    김운용씨 물러 나야 할때도 됐지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지 지위적인 자리에서 의 인사를 세워놓고 있다는 것은 사치이고 태권인들에게는 짐입니다....
    그가 잘하는 것이 뭐가 있다고요....
    국기 라는 말을 태권도 앞에 부치려면 물러 나는것이옳죠...

    2000-10-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스웨덴, 림원섭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나라 코리아가 외세에 의해서 두개가 되였다. 그 외세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였다.

    이 두 주의는 좋게 볼 수도 있는 이론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특히 본인의 견해란! 이 두개는 윤리 도덕이 전혀 없이 아주 무식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사상이라고 본인은 당당히 말한다.

    왜! 우리 민족을 엄청 죽게 했다. 아니 죽였다. 4백만 넘게 죽었고 외국인 생명 약 2백만을 합하면 6백만이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죽었다. 이 육백만에는 4백만이 넘는 아무 죄없는 우리 양민들이다.

    그 죽인 방법은 불에 태워 죽이고, 찢어죽이고, 찔어죽이고, 쏘아죽이고, 떼려 죽이고, 밟아죽이고, 생매장해서 죽이고, 수장해서 죽이고, 이렇게 죽였다. 물론 배 속에 있는 생명들까지 합한다면 살상인구가 훨씬 많아 지리라.
    이 때 살인 무기는 쏘련제, 중국제, 미국제 즉 외국제 였다. 지금도 미국제 지뢰로 우리 대한의 백성들은 병신되고 죽고 있다.

    그래서 이 두사상은 아무리 좋은 철학을 가졌다 한단들 살인의 사상들이다. 그래서 내 시집 "흐르는 물 함께 가는데"에도 쓰여 있다.

    사대의 시조 화랑도 김유신, 김춘추가 외세를 업고 지 민족 살상한 것을 합하고 또 몽고, 지금의 중국, 불란서, 러시아, 쏘련, 일본, 미국 이런 외세들이 와서 우리 민족을 죽인 것을 합하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긴 우리 배달 민족은 살아서 큰 숨을 쉬고 있다. 그 전전은 깡그리 빼고 근세대 백년 동안 팔, 다리, 허리가 잘려도 우리 양심있는 선조는 선배들은 천도교를, 단군교를, 태권도(2개지만)를, 통일교를, 주체 사상을 만들었다. 이 made in korean 5개가 좀 부족한 이론과 철학을 가졌다 한단들 우리 나라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것이다.

    이 5개는 남의 것인 아직도 우리 것이 완전히 않된 불교, 유교, 모스램교, 기독교, 자본주의, 공산주의 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쭈그러지고 깨진 형편없이 쓸모 없는 한 양재기가 있다고 가정 할 지라도 내 것의 가치관은 앞선 것이라고 본다. 그 곳에는 우리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피와 땀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가 훔퍽 베여 있는 위 5가지가 어디에서 왔으며 얼마마한 용어와 이론과 철학과 역사가 있는가를 상세하고 매우 꼼꼼히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또 창시냐 ? 준 창시냐? 도용과 표절이냐? 옮겼냐, 꾸몄냐, 비숫하게 만들었냐? 이다.

    본인은 4가지는 지면과 시간 관계상 확 주리고 단 1개인 태권도를 거이 44년동안 중간 중간 수련을 쉬였다고 할 지라도 내 머리에는 항상 1956년 부터 당수도, 공수도 다음은 1963년 부터 태권도를 하였고,

    1966년에는 또 주월군 태권도 교관단으로 출국하여 월남 여러 지역과, 1975년5월부터는 스웨덴, 노르웨이, 1982년1월에는 이북 태권도 국제 사범 교육 제2기생(제1기생도 다시 제교육을 일부는 받았다.)을 보급하고 가르켰고 또 본인의 이름으로 오지리 빈엔나에다 ITF 본부를 차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1985년 해에 ITF 총회의에서 혹은 ITF와 WTF 통합 문제로 ITF에서 제명을 당하고 1986년 부터 오늘까지 국기원(WTF) 소속으로 있으면서 1996년도에 "전(all) 무도 윤리 학회"를 창립했고 1997년에는 "물흙길"이란 것을 창시한 사람으로서 지금 부터 간단히 말 하고져 한다.

    본인은 1986년에 서울에 가서 품새를 8단인 내가 4단인 후배 한테 열심히 배웠다. 그러면서 많은 문제 점을 느끼면서도 한편 잘 배워서 내가 태권도 백과사전을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유달리 팔자가 쎄서 인지는 몰라도 거이 다 이치와 동작의 틀과 품새를 터득하게 된 태권도 개척 사범으로서 쓰는 것이다.

    그뒤 스웨덴에 돌아와서 태권도 백과사전을 만들여고 각종 무도 소위 자기방어 비데오들을 소집하여 분석하게 되였다. 오늘에 자기방어 무도(무술)등등은 약 120여개가 넘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난 무릎은 치면서 통곡을 하게 되였다. 근 1주일은 식음을 전패하고 술만 마시며 원 없이 통곡했다. 마침 1987년에 부터 이혼하고 혼자 살때다.
    왜! 통곡을 했는가.
    각종 비데오를 보면서 왜, 어찌 그 동안 형을 배웠던 기억이 이제사 떠오르는가 였다. 그러니까 난 태권도에 완전히 미친 놈이였던 것이다.

    아직까지 고집스럽게도 그 흔한 일제 바테리 한개도 사지 않은 놈이 그 동안 난 왜놈들의 것인 당수도(가라데)를 한 것에 너무도 억울해서 였다.

    태권도 틀과 품새 동작들 -
    ITF 틀 천지에서 통일까지 706가지 동작이다. 물론 계속 중복된 동작도 포함 되여 있다.
    WTF 품새 태극 1장에서 일여까지 403가지 동작이 있다. 팔괘 197동작을 합하면 600여 동작이 있다. 물론 계속 중복된 동작들도 포함이 되여 있다.

    총 태권도 동작 1306개(겨루기 동작 빼고)다.

    각 동작을 하나 하나 빼보니 1백개도 되지 않은 동작으로 백과 사전 만들 필요도 없고 또 이름 만 다른 가라데 동작등을 가지고 만들 필요도 느끼지 아니했다. 그래서 통곡만하고 그 아까운 2년여 동안의 시간을 소모하게 되였었다.
    20세기 태권도 두 총재님. 개인 단점을 말하라하면 낫 부끄럽고 그 중 가장 큰 단점은 후배에게 제자에게 매우 무식한 언사와 행동일 것이다. 즉 언행일치지 물론 언행일치 처럼 어려운 것이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최총재 34년 독재와 김총재 29년 독재를 하는 동안을 말한다. 물론 34년과 29년째 단점들을 말하며 두 총재의 사상과 능력과 교육, 역사의식, 정치의식 등등을 구태여 끄집어 낸다면 김 총재보다, 최총재가 훨씬 많다. 그 중 김 총재는 한단체의 지도자며 행정 외교관이다.

    그런데 최 총재는 태권도란 글자만을 창시한 자다.(동작은 창시 한 것이 아니다.) 특히 미군정 때 미군이 달아준 장군 별을 가지고 지금도 장군이라고 한다는 것과 또 ITF 24틀중 화랑, 고당, 유신틀을 사용한 역사의식이다. 또 고당을 빼고 주체를 집어 넣 것을 말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주체라는 것을 고 김일성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그 주체(identity)라는 글자 뜻을 말하면서 그 주체 틀의 동작들은 일본 당수도(가라데) 동작이다. 김장점이 또한 많다.

    ITF.
    물론 최홍희 총재는 태권도란 3글자를 창시했고 또 국제 태권도 연맹이란 단체를 창립했다. 이 ITF는 1966년에 창립했다. 2000년-1966년 = 34년 동안 총재를 하고 있다.


    이 두개를 위해서 55년 동안 오늘까지 많은 위선자(사대자)들은 변명하고, 정당화시키고, 자기 사리 사욕을 위해서 각가지 눈에 보이는 말들을 했다.
    또 그 위선자들은 부끄러움도 챙(창)피도 모른다. 즉 얼굴이 매우 두텁다.

    그런 것들이 그 것이 어쩔수 없어서 - 처 자식들 하고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리고 자기는
    우수하니까, 장군이였고, 또 외교관 이였고, 영어(식민지어 혹은 살인자들의 어)도 잘하니까 등등.
    물론 이 세상에는 100%가 없다. 싫수를 주려가며 살여고 노력하는자야 만이 최선을 다 했다, 잘 살았다 한다.
    내 고향이라는 즉 내 민족이라는 것은 돈주고 살 수도 없고 또 바꿀 수도 없다. 오직 영원한 것이다.

    2000-10-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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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나

    국기원 매점 하나만 보아도 국기원 운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승급,승품심사를 오후5시까지하는 미국을 보고 부끄럽다 .
    졸속운영을 지양하고 더 정직해지고 진지해져야겟다.

    2000-09-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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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ttias virolainen

    Hello, my friend....
    I hope you kick real as i the olympics...kick the americans as of!

    2000-09-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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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정의

    세계에 태권도를 배우는 인구가 5000천만 이나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태권도 인구가 어떻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세계 각국에서 태권도 보급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 때문이리라. 정 우진씨의 글을 읽으면서 태권도계 내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대한 태권도 연맹이라고 하는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1인이 30년간 그 수장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 깡패 조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뭔가 대단한 이권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나도 승급심사를 하면서 심사비를 내었다. 국내 태권도 인구를 생각할 때 그 돈이 모아지면 엄청난 액수이리라. 그런데 우리의 태권도의 본산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국기원의 모습을 보라. 뭔가 잘못되어있다. 아무래도 그 돈이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사용된 것 같지를 않다. 내가 하고싶은 얘기를 대신 해준 정 우진 그랜드 매스터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어른들이 이런 얘기를 해주어야 밑에서도 할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다.
    엊그제는 이 승완부회장이 또한 수뢰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예전 민주화 운동이 한창 꽃피던 89년 당시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정치계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깡패의 수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 태권도 연맹의 (상임)부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뭔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전세계에 있는 태권도인들이 종주국으로 인정하는 한국, 이 한국의 이러한 이미지가 올림픽 개최 5년 후에 메달개수로 무너지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올림픽에 태권도가 나가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려해야 한다는 정우진씨의 주장은 옳다.
    세계 태권도 연맹이니 국제 태권도연맹이니 하는 조직의 틀을 벗어나 태권도 발전에 지극한 공을 세운 세계인들이 만나 태권도를 하루 빨리 민족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도록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때인 것 같다. 이는 부패한 태권도인을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정 우진씨의 활약을 기대한다.

    2000-09-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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