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고수를 찾아서>‘몸이 곧 槍’비호처럼 찌른다

  



고수(高手). 디지털과 인터넷의 시대에 왠 무술? 게다가 고수라니…. 선뜻 믿어지지 않는 게 당연. “뭐, 어디서 몇 개 주워듣고 생색 꽤나 내는 거겠지, 안그래?” 반면 고개를 돌려보니 현재도 무술계가 엄연히 존재하며, 무술인들은 저마다 상승무공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연공중이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 그렇다면 이 시대 고수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늦은 봄날 화창한 오후, 서울 종로구 경희궁터의 잔디밭. 도복을 차려입고 나선 형의권사(形意券士) 정건영(37) 사범. 서글서글한 눈매에 1m68, 60kg의 왜소한 체격이 의외다. 눈치를 알아챘는지, 몸 쓰는 법을 조금이나마 익혀 무술 문외한이 아닌 기자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맘껏 질러보란다. 슈우~욱.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몸이 꼿꼿해 지는가 싶더니 면상을 향해 뻗은 기자의 주먹을 손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틀어 막는 동시에 일보를 전진, 몸을 낮추는 탄력으로 붕권(崩券)을 날린다. 급하게 왼손을 휘둘러 권을 쳐내는데 어느새 그의 다른 손이 몸통을 노렸다.‘반보붕권(半步崩拳), 타편천하(打遍天下)’. "반보만 들어서며 찔러 낸 붕권(정권을 몸 바깥쪽으로 90도를 틀어 쥔 주먹)만으로 천하를 호령한다"는 기세 그대로였다. 형의권 고수가 아니라면 그의 체구에 비춰볼때 도저히 가능하리라 믿지 못할 정도의 파괴력. 잔뜩 낮췄던 몸을 세우는 반탄력과 체중을 실은 보법으로 파도처럼 밀고드는 파워, 어깨밑 팔근육(상박)을 들어올려 뻗는 주먹 힘이 합일된 지르기였다. 무술의 힘쓰는 기본 원리(발경·發勁)가 충실히 깔린 권(拳)이었다. 여기에 신속무비한 빠르기까지 겸비됐으니…. 늑골을 빗겨 흘려 맞았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형의권은 종적인 힘을 자유롭게 운용하는데 그 정수가 있습니다. 몸을 높이는 탄력으로 상대 공격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막고, 주먹을 비틀어 올려 지를 땐 몸을 낮추는 힘을 이용하는 식이예요.” 동작을 반복해 살펴보니, 정 사범의 몸 움직임이 튕겨져나온 용수철 같이 탄력이 엄청났다. “형의권은 단순하지만 강맹함이 특징입니다. 상대 공격을 기다렸다 빈틈을 노려 온몸을 창삼아 비호처럼 찔러 들어가는 거지요.” 그래서 형의권은 창술에서 비롯된 권법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창술 역시 형의권의 독특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상대 병기를 크게 걸어 막아(난·欄), 눌러 잡은(나·拿) 뒤병기를 타고 비틀어 찌르는(찰·擦) 폼이 매끄럽다. 단순한데 반해 강맹함이 돋보였다. 3m에 가까운 창을 사용하는 통에 허리힘 이용이 필수. 이 때문에 형의창술 대가가 창을 허리에 붙여상대를 찌른 뒤 탄력이 뛰어난 창대를 눌러 빼낼 때면 상대 내장이 훑어지는 게 십중팔구요, 몸까지 들어 올려지기도 십상이라고했다. 반면 그의 도법(刀法)은 느리면서도 묵직했다. 칼 끝이 넓어서인지 상대 몸에 도를 대고 잡아 당겨 끊어 베어내는 수법이 살수이기 때문이란게 그의 설명. 앞으로 내디딘 다리를 강하게구르며 역으로 팔을 당겨 끊는 그의 칼 끝에 심후한 공력이 묻어났다.

신기했다. 어떻게 고수가 될 수 있었는지, 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정 사범이 자신의 30년 무술 연공사를 털어놓았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술은 초등학교 때 처음 태권도를 시작했다. 몸이 약해 아버지 강요로 억지로 동네 태권도장에 다니게 된 것. 그런데 몸집이 작다보니 덩치 큰 동년배들에게 두둘겨 맞기가 일쑤였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깊어졌고,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충천했다. 그러던중 그는 당시 붐을 일으켰던 이소룡 주연의 영화 ‘정무문’을 보고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체구도 작은 사람이 혼자 수십명을 상대하다니….”

그래서 중학교 입학과 더불어 중국무술에 입문한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부서져라 5년여 동안 수련했지만 무공에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무술은 중국 선생한테 배워야 하는구나. 자포자기. 무술을 접을 생각을 처음 하게됐다.

그러던 그가 기연(奇緣)을 연이어 만난다. 첫째가 당시 소림권으로 세상을 떠울리던 국내 원로고수 이일형 선생에 사사할 기회를 잡았던 것. 고등학교 졸업후 서울 마포의 한 우슈도장을 찾아갔다가 제자 도장에 잠시 들르러 온 이 선생을 만났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아직 주먹하나 제대로 지르지 못한다”고 울먹이자, 선생이 이례적으로 말학을 앉혀놓고 직접 몸을 움직여 권법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순간 정 사범의 눈이 확 뜨였다. 선생은 그러고는 마음에 든다면 손수 가르쳐 주겠노라고…. 그렇게 5년여를 수련했다. 소림권 북파권중 탄퇴(彈腿) 문파 무술을 주로 익혔다. 몸에 익은 제대로 된 기술로 힘을 쓰자니 세상에 적수가 별로 없어졌다.

주먹이 세지면 써보고 싶은게 남자들의 생리.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희롱하는 불량배를 때려 뉘이는등 작지 않은 사건으로 경찰서를 들락날락했다. 이런 경우가 여러차례 반복된데다 국내 무술계 내부의 이러저런 소음에 혐오를 느낀 정 사범은 다시 무술을 포기했다. 이러다간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없겠구나는 고민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외도가 시작됐다. 군복무. 군제대 후에는 막노동판을 전전, 또 화장품 영업사원으로 일도 했다. 그러다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졌고,회사는 부도가 났다. 또다시 시작된 1년여의 방황. 그러다 98년 겨울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 유통사업에 발을 들여놓는다. “시장조사차 중국에 갔었지요. 그런데 귀국 하는 날 북경대학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형의권을 수련중인 흑의 무리를 봤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수저를 놓고는 바로 쫓아 갔지요.” 그런데 지도선생이 내민 명함을 보니 북경형의권연구회 저국용 회장이라 돼 있었다. 솔깃해져 선생의 시연을 청했다. “선생이 흔쾌히 투로를 보여주시는데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선생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바닥이 땅속부터 ‘웅웅’하고 울려 엄청난 공력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죠.”

이에 감화를 받은 정 사범은 중국을 1달에 1번 꼴로 들러 15여일씩 저 선생 지도를 받기를 3년여. 이렇듯 정 사범이 궁색한 처지임에도 무술수련에 열성을 보이자, 주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무술로 밥벌이를 해보라”는 권유가 잇달았다. 결국 그는 지난 2000년 인터넷 사이트 ‘우슈넷’(www.wushunet.com)을 만들었고, 현재 이 사이트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서울 종로 구민회관에서 형의권 강좌를 하고있다.

“운이 좋았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연달아 만날 수 있었다는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지금은 형의권 매력에 푹 빠져 살죠. 이제 고민 같은 건 안합니다.” 정 사범은 요즘 거의 매일같이 세상이 고요한 밤 11시쯤이면 경기도 일산 집주위의 주차장에서 홀로 수련을 한다고 했다.

“다리로 솟아나는 땅기운을 얻고 팔로는 하늘을 품어 권을 내지르니 우주와 내가 곧 하나라. 천기를 호흡하는 기쁨보다 더 큰 감동이 어디 있겠는가?” 아직도 무술수련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정건영 #형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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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병살인통신


    특히 "열심히 했지만 주먹하나도 내지르지 못한다!"
    에 갑자기 눈물이 나올려고 합니다.
    저도 아직 너무 부족한데...라는 생각이....

    사실 저는 열심히 수련하지도 못하고
    요즘 여러가지 일로 내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처럼 힘든 때 더욱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언제쯤에나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저도 수련할 수 있을지..
    사실 얼마전에도 어떤 곳을 갔는데...
    정말 실망이더군요.
    정말 저대로 해서 제대로 무얼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요즘엔 저절로 고개숙여지는 스승을 만나기 너무 어렵습니다.
    어떤 무술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진정한 스승님 밑에서 그 분을 믿고
    열심히 열정을 불태우고 싶습니다.

    2003-08-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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