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올림픽 메달 꿈꾸는 모로코에 구세주로 등장한 이동완 감독
발행일자 : 2026-09-07 20:29:59
[한혜진 / press@mookas.com]

〈한혜진의 人사이드〉 EP.4 부임 4개월 만에 월드컵 단체전, 세계여자오픈 첫 우승 일궈…목표는 2028 LA 올림픽 첫 메달

안경이 부러져 경기장 전광판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남은 시간과 점수를 확인하기도 어려웠지만 선수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휘한 결승에서 모로코 태권도 역사상 첫 세계무대 개인전 금메달이 탄생했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사상 첫 태권도 메달을 꿈꾸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 7월 춘천에서 열린 ‘2026 세계태권도월드컵 국가대항전’ 여자 3인조 단체전에서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린 데 이어, 지난달 이탈리아 지중해게임은 물론 중국 타이위안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여자오픈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전 첫 금메달까지 획득했다.
변화의 중심에는 올해 모로코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한국인 이동완 감독이 있다.
모로코는 그동안 국가대표팀 지도자로 주로 유럽 출신을 선임해왔다. 한때 청소년대표팀을 故 김진영 감독이 잠시 맡은게 전부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튀니지 등과 경쟁하며 정상권 경기력을 갖췄지만 세계무대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부터 2024 파리 올림픽까지 꾸준하게 본선에 출전했지만 아직 메달은 없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모로코는 한국과 대만, 중국 등에서 풍부한 선수 및 지도자 경험을 쌓은 이동완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겼다.
이 감독은 서울체육중·고등학교와 한국체육대학교, 춘천시청을 거친 정통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한국체대 재학 시절인 1995년 필리핀 마닐라와 1997년 홍콩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미들급에서 2회 연속 우승하며 1990년대 한국 중량급을 대표했다. 1996년 아시아선수권과 1997년 월드컵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지도자 경력은 더욱 화려하다. 2002년 브루나이 국가대표팀에서 처음 해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대만 대표팀을 지도했다. 대만은 이 기간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중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했다. 중국이 2009 코펜하겐 세계선수권 여자부 종합우승과 2011 경주 세계선수권 여자부 종합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우징위의 올림픽 2연패를 이끈 일등공신으로 인정받았다.
2014년 대만 주니어대표팀을 맡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모교인 서울체고에서 후배들을 지도했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정상급 선수로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데 이어 여러 국가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경험한 국제형 지도자다.
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모로코의 변화는 빠르게 나타났다.
지난 6월 제3국인 이탈리아 로마 그랑프리 대회장에서 선수단과 처음 만났다. 이후 부임 약 두 달 만인 지난 7월 세계태권도월드컵 국가대항전에서 여자 3인조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이 주최하는 국제대회에서 모로코 대표팀이 정상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개인전에서도 곧바로 새로운 역사가 나왔다. 지난달 중국 타이위안에서 열린 ‘2026 세계태권도여자오픈선수권대회’ 여자 -46㎏급에서 신예 파라 투자니(Farah TOUZANI)가 결승에서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왕스이(Shiyi WANG·중국)를 2-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투자니는 1회전을 먼저 내주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2회전에서는 날카로운 머리 공격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마지막 3회전에서는 초반 열세를 딛고 막판 뒤집기에 성공해 역전승을 완성했다.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에서도 모로코 태권도 사상 첫 세계무대 금메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동완 감독 부임 이후 국제무대에서 이전에 없던 성과를 내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모로코가 또 한 명의 새로운 스타를 배출했다.
하지만 정작 투자니의 역사적인 우승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휘한 이 감독은 경기장 전광판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의 훈련을 돕기 위해 직접 샌드백을 잡아주던 중 선수가 강하게 찬 샌드백에 얼굴을 맞아 안경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해외 체류 중이라 곧바로 새 안경을 맞추지 못한 이 감독은 원거리 시야가 흐릿한 상태에서 대회를 치러야 했다.
세부 점수와 남은 시간을 전광판으로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선수에게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작전을 지휘했다. 대회를 마친 이 감독은 “다음 주 한국 대회에 가자마자 가장 먼저 안경부터 맞춰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열악한 훈련 환경뿐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이겨내고 만들어낸 모로코 태권도의 역사적인 첫 개인전 금메달이었다.
‘무주 태권도원 2026 세계태권도 그랑프리’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이 감독은 최근 모로코의 상승세에 대해 “모로코올림픽위원회와 태권도협회가 선수 선발과 대표팀 운영에 많은 권한을 줬다. 모로코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대회와 국가대표 선발전을 직접 돌아보며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고 선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모로코에 갔을 때 협회와 국가대표 선수단 사이에 다소 간극이 있었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부족했다. 내가 책임질 테니 전적으로 믿어달라고 했다”며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회에는 대표팀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첫 금메달이 연이어 나오면서 선수단의 결속력과 협회와의 신뢰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국가 중 비교적 높은 국가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체육 분야의 지원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태권도 대표선수들을 위한 전용 경기장과 훈련장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고, 10여 명의 선수가 미트 한두 개를 돌려쓰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훈련용품이 부족하다.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훈련에만 전념하기도 어렵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선수가 적지 않고, 일부는 모로코가 아닌 스페인 등 유럽에 머물면서 짧은 소집훈련과 국제대회 일정만 소화하고 있다.
이 감독은 “다른 선진국처럼 충분한 강화훈련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래서 현지 대회를 직접 돌아다니며 신체조건과 유연성, 기본기가 좋은 선수를 발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에게는 왜 기본기와 체력, 근력을 키워야 하는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지금은 훈련체계와 대표팀 운영 시스템을 기초부터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능성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이 감독 부임 이후 가장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는 여자 -57㎏급 아미나 데하위(Amina DEHHAOUI)다.
데하위는 지난 6월 열린 ‘로마 2026 세계태권도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이번 무주 그랑프리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했다. LA 올림픽을 향한 초반 랭킹 경쟁에서 이 체급 올림픽랭킹 5위까지 올라섰다.
이 감독은 “데하위 외에도 여자 -49㎏급과 남자 -80㎏급, +80㎏급을 LA 올림픽을 향한 주요 전략 체급으로 보고 있다”며 “투자니도 세계여자오픈 우승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남자 중량급에도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무주 그랑프리 이후 독일과 콩고 등에서 열리는 오픈대회에 계속 출전할 계획이다. 지금은 여러 국제대회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로코태권도협회는 이 감독과 2028 LA 올림픽 이후인 2028년 9월까지 계약했다. 단기적인 성적에 그치지 않고 올림픽까지 대표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이 감독은 경기력 못지않게 국가대표로서의 태도와 책임감, 선수단의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전권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과 부담도 크다는 뜻이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선수들의 기초부터 하나씩 잡아가고 있다”며 “체력과 근력,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국가대표로서 갖춰야 할 태도와 절제, 팀 구성원 간의 단결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기력 이외에도 행동과 기본예절을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팀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에는 강하게 책임을 묻겠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대표팀의 화합을 무너뜨린다면 과감하게 제외할 것”이라고 강한 리더십을 드러냈다.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세계 정상권 국가들과 비교하면 훈련시설과 용품, 상시 합숙체계 등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모로코는 이동완 감독 부임 이후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잇달아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이전과 확연히 다른 흐름을 만들고 있다.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선수 경험과 대만·중국·한국 대표팀에서 쌓은 국제적인 지도 경험, 여기에 대표팀의 기초부터 바꾸려는 강한 리더십까지 더해졌다.
안경이 부러져 전광판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이동완 감독은 선수의 역사적인 금메달을 끝까지 지휘했다. 이제 이동완 감독과 모로코 태권도가 바라보는 곳은 하나다. 2028 LA 올림픽에서 모로코 태권도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2028 LA 올림픽 시상대에 모로코 국기가 게양 될지 기대된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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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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