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태국과 캄보디아, 무에타이와 쿤 크메르


  

2023 SEA 게임을 앞두고 주최국 캄보디아가 내던진 무리수, 그리고 태국의 보이콧

'2023 동남아시안(SEA) 게임' 정식종목으로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된 '쿤 크메르(Kun Khmer)'와 '쿤 보카토(Kun Bokator)'의 마스코트 이미지 [출처= 2023 SEA Games 공식 홈페이지]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긴장감이 심상치 않다. 최근 자국의 전통무예 명칭과 역사 진위를 놓고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양상이다.

 

태국의 '무에타이'가 '쿤 크메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것도 국제종합경기대회인 '2023 동남아시안(SEA) 게임'의 정식종목인 무에타이의 종목명이 일방적으로 변경된 사건이 지난 1월에 일어났다.

 

'2023 제32회 동남아시안(SEA) 게임'은 오는 5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SEA 게임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캄보디아는 처음으로 자국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 덕분에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 탓이었을까? 캄보디아의 대회 조직위원회 측 설명에 따르면 '무에타이(Muaythai)'는 오늘날 캄보디아 지역에 위치했던 과거 크메르 제국의 문화에서 유래됐다면서 무에타이 종목명을 <크메르의 무예>라는 뜻의 '쿤 크메르(Kun Khmer)'로 일방적으로 바꿨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목록에 등재된 캄보디아의 전통무예 '쿤 라 보카토'(Kun LBokator)

현재 '2023 SEA 게임' 정식종목으로 등록된 캄보디아의 전통무예는 '쿤 보카토(Kun Bokator)'다. 쿤 보카토는 종합격투기(MMA)와 러시아의 전통무예 삼보(Sambo)와 같은 복장과 규정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보카토는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목록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대회 조직위원회는 기존의 '쿤 보카토' 이외에 SEA 게임 정식종목으로 등록되어있는 태국의 무에타이 경기 종목을 일방적으로 '쿤 크메르'라는 명칭으로 변경한 것이다.

 

무에타이의 종주국인 태국은 민·관 차원에서 강력한 반발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태국올림픽위원회(OCT)와 국제아마추어무에타이연맹(IFMA)에서는 캄보디아의 이러한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하면서 SEA 게임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가 지난 1일 '무에타이의 날(MuayThai’s Day)'을 기념하는 정부 공식 행사를 총리관저에서 개최했다. [출처= 방콕 포스트]

전 태국군 총사령관이었던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지난 1일 '무에타이의 날(MuayThai’s Day)'을 기념하는 공식 행사를 총리관저에서 개최하며 양국 국민 사이에 거세지는 논쟁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일축했다.

 

총리가 직접 나서서 언급할 만큼 민간 차원에서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단순히 무에타이와 쿤 크메르의 원조 논란 시비뿐만 아니라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 사이의 오랜 감정이 폭발했다고 보인다.

 

■ 누가 진짜? 끝없는 원조 논란!

 

유·무형의 유산을 놓고 누가 원조이고 무엇이 진짜인지를 논하는 일만큼 비생산적이고 실체가 없는 일도 없다. 제삼자의 눈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의 대상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향유하는 문화의 소산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의 김치가 그렇고 한복·태권도·한글이 그렇다. 유·무형과는 관계없이 주변 국가와 해당 유산의 원조 시비 논란을 우리도 여러 차례 겪어왔다.

 

태국과 캄보디아도 당사자나 제삼자 모두 명백히 판가름하기에 어려운 역사적 요소와 현실적 요소들이 뒤섞여있다.

 

과거 크메르 제국은 기원후 802년부터 1431년까지 오늘날 캄보디아 지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지역 일대를 지배했던 인도차이나의 패권국이었다. 당연히 당시에는 태국을 비롯한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일부 지역까지 크메르 제국의 지배 아래 놓였다.

캄보디아 씨엠립 지역의 앙코르 유적군 벽화 조각에 남겨진 크메르 제국의 전통무예 부조.

이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앙코르 와트(Angkor Wat)'다. 그 외에도 '앙코르 톰(Angkor Thom)', '따 프롬(Ta Prohm)' 등의 당대 건축물들이 과거 크메르 제국의 수도이자 오늘날 캄보디아의 씨엠립에 남아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석재건축물의 벽면은 당시 생활상을 담은 조각으로 가득하다. 여기에는 크메르 제국의 무예를 표현한 조각들도 가득하다. 캄보디아 정부에 따르면 이러한 조각들은 '보카토(Bokator)', '쿤 크메르(Kun Khmer)', '프라달 세레이(Pradal Serey)'의 원형을 표현한 것들이라고 한다.

 

조각으로 흔적이 남은 크메르 제국의 무예는 기원후 9~15세기 당시 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던 태국,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각지에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 △무에타이(태국) △렛훼(미얀마) △무에이라오(라오스) △보비남(베트남) 등의 기술 형성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으리라 무예학계에서도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태국의 주장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일각에서는 크메르 제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앙코르 와트는 근대에 만들어진 가짜 유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주류 사학계의 학술적 논의에서 과도하게 벗어난 논제이므로 차지하겠다. 그러나 쿤 크메르와 무에타이의 연관성에 대해선 납득가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태국 무에타이계는 약 1,000년 전의 역사가 지금의 국제화된 각국의 스포츠 종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태국의 무에타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무예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그 강인함과 매력으로 많은 수련생과 팬층을 확보한 무예다.

 

그렇다면 쿤 크메르는 어떨까? 사실 오늘날 캄보디아의 전통무예 '보카토', '쿤 크메르', '프라달 세레이'는 무에타이보다 그 역사가 짧은 현대 창작 무예다.

과거 크메르 제국 시절부터 전승되어온 캄보디아의 '압사라(Apsara)' 무용은 과거 폴포트 정권의 크메르루주의 암흑기 속에서도 명맥이 끊기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캄보디아는 과거 60~70년대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의 가슴 아픈 역사를 지나면서 유·무형의 전통문화가 대부분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크메르루주의 핏빛 서린 시절에서도 계승이 끊기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캄보디아의 전통 무형유산은 압사라 무용과 그 전통 음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보카토와 쿤 크메르는 계승이 단절되고 말았다. 이처럼 단절된 캄보디아의 전통무예를 복원한 인물이 바로 '산킴션(San Kim Sean)' 사범이다.

산킴션 사범을 5년간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 'Surviving Bokator'

한국 합기도 9단이기도 한 산킴션 사범은 조국의 소실된 전통무예를 부활시키 위해 앙코르와트와 같은 유적지의 조각들에 표현된 동작들과 현대 창작된 무예, 격투기 종목들의 기술을 종합해 보카토를 복원하기에 이른다.

 

산킴션 사범은 보카토의 전통성뿐만 아니라 현대 스포츠 경기화에도 힘써오면서 보카토의 보급에 힘써왔다. 그러한 그의 지난 20여 년간의 노력에 힘입어 캄보디아의 전통무예 보카토는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ICH)에 공식 등재되었다.

 

이는 태국의 무에타이도 이루지 못한 국제 전통무예계의 쾌거였다.

 

하지만 태국을 비롯한 미얀마, 라오스 등 주변국들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주된 이유는 '산킴션 사범의 보카토가 과연 앙코르와트 벽화로 조각된 크메르 제국의 무예와 과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였다.

 

설령 그의 복원을 위한 노력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써 긴급보호 타당성이 유네스코를 통해 인정받았다고 할지라도 이번 SEA 게임에서의 캄보디아 정부의 행보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태국 측의 주장이다.

 

태국의 무에타이를 비롯한 미얀마의 렛훼, 라오스의 무에이 라오, 베트남의 보비남, 말레이시아의 실랏 등의 주변국 전통무예가 모두 보카토를 원조로 한다는 주장이 정당한 것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 국제 스포츠 관행을 무시한 '무리수'… 캄보디아 총리의 여론몰이?

지난 1월 23일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수도 프놈펜의 한 행사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프놈펜 포스트]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1985년부터 현재까지 약 38년간 집권하고 있는 장기 독재의 대명사다. 그런 그가 오랜 집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민의 관심 돌리기로 '쿤 크메르'를 선택했다는 것이 스포츠 외교가의 중론이다.

 

실제로 캄보디아 왓 첨러운 사무총장은 '쿤 크메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캄보디아에게 영광이라면서 우리는 캄보디아 국민을 만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당국의 이러한 무리수는 되려 국제 스포츠계에서 캄보디아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제아마추어무에타이연맹(IFMA) 사무총장, 스포츠어코드(SportAccord) 부회장, 독립스포츠경기연맹(AIMS)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테판 팍스(Stephan Fox) 회장이 지난 5일 미국 뉴욕 UN 본부를 방문해 발언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장 토마스 바흐, IOC)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스포츠계에서 태국의 무에타이를 대표하는 단체는 국제아마추어무에타이연맹(IFMA)이다.

 

IFMA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테판 팍스 회장은 IOC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체인 스포츠어코드(회장 이보 페리아니)의 부회장이자, 독립스포츠경기연맹(AIMS)의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유도가 가라테가 아닌 것처럼 무에타이는 쿤 크메르가 아니다."라면서 "IFMA는 회원국들에게 캄보디아 SEA 게임 경기 불참을 권유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이와 같은 관계자의 반응을 비추어보았을 때 이번 SEA 게임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카토와 쿤 크메르 종목 외에도 캄보디아의 국제 스포츠 외교 활동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해석된다.

 

■ 캄보디아의 과도한 자신감, 그리고 오판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시범단의 캄보디아 보카토 시범

캄보디아 당국의 일방적인 SEA 게임 종목 명칭 변경 사건은 과도한 자신감에서도 비롯된 오판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쿤 라 보카토(Kun LBokator)'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ICH)에 등재되면서 캄보디아 당국의 자신감이 넘쳐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인다.

 

하지만 유네스코 등재와 IOC를 위시하는 국제 스포츠 외교 활동은 그 성격부터 관례까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분야임에도 캄보디아 당국은 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태국과 캄보디아 국민 사이 여론 감정은 더 이상 SEA 게임 그리고 무에타이와 쿤 크메르 논쟁에서만 머물지 않고 국가, 민족 차원의 악감정이 폭발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003년에도 앙코르와트의 소유권을 두고 양국 간의 분쟁이 발생했다. 그러나 발전 환경이 열악한 캄보디아는 태국으로부터 전기를 송전받는 입장이기에 대등한 위치에서 분쟁은 불가능했다.

 

무에타이와 쿤 크메르로 촉발된 이번 사건 또한 더욱 큰 규모에서 국가 간의 분쟁으로 번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무카스미디어 = 권석무 기자 ㅣ sukmo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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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무 기자
무카스미디어 MMA, 주짓수, 무예 분야 전문기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MMA, 극진공수도, 킥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무예 수련.
사람 몸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치료학을 전공. 
무예 고문헌 수집 및 번역 복간본 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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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유도-주짓수-가라데-검도-켄도-쿰도
    합기도-야이키도

    2023-02-03 18:38:01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ㅇㅇ

    최근 일본-한국 자국의 전통무예 명칭과 역사 진위를 놓고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중국-한국 자국의 전통무예 명칭과 역사 진위를 놓고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양상이다.

    아마도 우리나라도 이런일이

    2023-02-03 18:35:4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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