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반무예경당협회 제9대 '임한필 회장' 취임
발행일자 : 2023-01-11 03:06:43
수정일자 : 2023-01-13 15:59:12
[권석무 기자 / sukmooi@naver.com]
24반 무예 복원 및 계승, 대중화를 위한 구체적 신년 로드맵 제시
'사단법인 24반무예경당협회'는 지난 7일 서울 대방동에 위치한 서울지부 전수관에서 임한필 제9대 회장 취임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임한필 회장은 1992년부터 '민족무예도장 경당'에서 한국의 전통무예인 24반무예를 수련하였으며 △경당 본당 사범 △광주 경당 전수관장 △24반무예경당협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임 회장은 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17년간 전통무예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또한 △경민대 태권도외교과 겸임교수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강사 △국방부 의장대대 전통의장대 무예교관으로 대학과 우리 군에 24반무예를 보급해왔다.
'2013년 중국 닝보국제무예대회'에서 전통무기술 분야 1위를 차지했으며 24반무예 공인 9단이다.
임 회장은 △광주 광산시민연대 수석대표 △1987 작은도서관 관장 △김대중평화캠프조직위원회 사무처장 △광주․전남 6월항쟁 사무처장 △대한궁도협회 용진정 사두 등 시민사회·문화단체 등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27일에는 24반무예경당협회 총회에서 제9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24반무예는 조선의 22대 군주인 정조대왕이 당대 최고의 무인이었던 백동수, 실학자인 이덕무, 박제가에게 명을 내려 당시 조선의 군사들이 사용했던 무기를 총망라해서 정리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24가지를 말한다"면서 "이러한 종합무예서를 편찬하고자 했던 정조대왕은 당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신하들의 당파싸움을 막아내기 위해 <신하의 나라>가 아닌 <백성의 나라>를 만들고자 강력한 왕권의 기반으로 무예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덧붙여 "앞으로도 24반무예경당협회는 이러한 정조대왕의 뜻과 함께 34년 전 1989년에 민족무예도장 경당을 창립하고 당시 혼탁했던 시대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문무를 겸비한 민족간부를 양성>하겠다는 故임동규 총재님의 뜻을 잘 계승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단법인 24반무예경당협회는 지난 7일 회장 취임식과 함께 중앙심사와 공로패 및 임명장 수여식을 가졌다.
이번 중앙심사에서는 ▲임한필 ▲정연근 ▲김광식 8단을 9단으로 추대하여 패를 증정했다. 경당사범 출신이자 동국대 경당동아리를 창립한 ▲이원호 법무법인 함백 대표변호사가 공로패를 받았으며 ▲김갑식 부회장 ▲윤진영 상임이사 ▲김영준 서울지부장 등 20여 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협회는 향후 △24반무예의 문화재등록 △작품공연화 △무예교범제작 △임동규기념사업회 발족 △영문판 무예도보통지 제작 △임동규 평전․자서전․회고록 출판 △24반무예 복원 및 계승을 위한 학술 세미나·대중화 등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사단법인 24반무예경당협회는 1989년 7월 1일에 창립된 민족무예도장 경당(총관장 임동규)을 계승해 조선의 정조대왕이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반무예를 복원 및 계승하면서 현재까지 250여 명의 사범과 10만여 명의 회원을 배출한 비영리민간단체이다.
24반무예를 복원한 故임동규 총재는 1970년대에 활발하게 시민사회활동을 이어오다가 1979년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10년간 복역하며 감옥에서 24반무예를 복원하고 출소 후 24반무예를 대중화시켰다.
[무카스미디어 = 권석무 기자 ㅣ sukmo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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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무 기자 | |
무카스미디어 MMA, 주짓수, 무예 분야 전문기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MMA, 극진공수도, 킥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무예 수련. 사람 몸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치료학을 전공. 무예 고문헌 수집 및 번역 복간본 작가로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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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부전관에서 개최?
저기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해동검도장 같은데 아닌가? 아무튼
음~해동검도가24반무예도가르치는군
조만간 해동검도24반무예협회 생기나?
2023-01-16 18:59:29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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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790년
정조 14년 어명으로 훈련용 병서
무예도보통지가 목판 인쇄본으로 편찬각종 권법과 검술, 창술, 곤봉술 등 18기와 마상6기 등으로 구성된 24기무예(二十四般武藝) 그림과 해석이 들어가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시대1907 구한말 군대 해산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문화말살정책 완전히 끊겼다.
임동규 선생은 이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해 10년간의 긴 투옥 시절 연구을했다.
이후 광주 전수관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여러 제자들을 길러 전수계승했으며 무예연구가 허건식 박사는 “해방 이후 현실에 타협하며 승승장구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무예의 본질과 우리 사회의 근원적 문제 해결을 위해 산 사람들이라기보다는 현실에 파묻혀 살아 온 분이다. 선생님이 살아 온 무예의 삶은 후배들에게 큰 희망을 가져다 준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그는 수형 생활 후유증으로 10년 전부터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다.
전수관마저 경매에 넘어갔다.
기초수급자로 늦둥이 딸을 길렀다.
반독재 투쟁 광주민주동지회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2023-01-14 10:51:05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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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단심사는 누가했노?
궁금하네 요즘에 9단은 누가심사하노
아무튼잘~심사했겠지 24가지 다~하노?
조선시대때는 무관시험아닌가?
임금님이했나 혹시 ㅇㅅ굥님께서했나?
조만간10단심사도 해야지 24단도있나2023-01-14 10:35:28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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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단체 가라타기
여기도 새로운 물가리
굥5년동안 얼마나클까?
빨리커야지 아니면 적자생존
다른 것들한테 잡혀먹는다
이~武세계도 치열하다 물들어올때
노져라~2023-01-14 01:55:02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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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ㅋ 총재~ㅋ
2023-01-13 18:36:46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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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고쳐노 글쟁이가 글좀잘 쓰라
오타수정도 빨리하고2023-01-13 18:33:1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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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규선생님이시다 총재는무슨민족무예에서총재 임동규선생님으로 쓰길
2023-01-13 12:05:11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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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장검찰영장이노~
임명장이겠지 오타~ㅋ
임씨 영장
2023-01-13 11:49:46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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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반무예 임한필 회장 취임식 및 공로패, 임영장 수여식 임-영장 모꼬~ㅋ
영장치나 아니면 새로운 한자뜻
기사가 상업적?2023-01-13 11:44:4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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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9단?~ㅋㅋㅋ
군국주의의 산실인 일본무도가 표본적인 모델로 설정되어 있다. 이와같이 일본 무도와 같음을 지향함으로써 생긴 한국무예의 허구성2023-01-13 11:07:5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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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도사?
2023-01-13 10:52: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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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론
= 다케시마론
= 조선 무능론,
= 조선왕조비하,
= 후쿠자와 탈아론,
= (이영훈의) 식민지근대화론.2023-01-13 10:11:36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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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국제무예아카데미의힘!
지연학연아카데미연!2023-01-13 03:57:34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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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위장한 무술을 구별하는 법
주로 역사를 고대로 올린다.
고구려나 신라, 백제까지 역사를 소급합니다.
맨 나중에 쌓은 장작이 맨위에 올라간다는 말을 기억합시다.고구려나 신라를 언급하면, 이 말은 100%거짓말입니다.
불가(佛家)에서 전해온다고 말 한다.
스님들이 뭐하러 사람 죽이는 기술을 연마해야 겠습니까?
국민체조가 없던 시절에, 몇몇 동작을 건강차원에서 한 적은 있지만, 전문적으로무술 배워야 할 이유가 당연히 없겠지요?우리나라 불교계 무술의 맥은 짬뽕무술 입니다.
일본가라데 유도나 시중에서 배운 중국무술에 근거한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전에 어디서 들은 얘기지만, 달마대사가 조선땅에 와서 무술을 배워다가소림권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현재 불교계에 무술승은 분명히 있습니다.
무술하는 스님들은 꽤 많은데, 그 무술이 속가무술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간
것입니다.
태권도 고단자인 사람이 머리깎은 경우, 당랑권 고단자, 합기도, 검도 고단자...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자 받아서 가르친다고 해서,외부에서는 불무도로 생각하겠지만, 불교무술은 아닙니다.
승병에 관한 논문들도 도서관에 가면 조금 있습니다.
고려시대 승병의 경우는, 대개 승려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의 절에는 수행하는 승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무장하여 절의 재산과 안전을 지켰고,
그들이 항상 승복을 입었을 뿐 아니라, 절의 사람들 이므로 흔히 '승병'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과거에 조선정부도 정부차원에서 승병을 육성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반병사들이 근무하기 어려운 오지에, 절을 짓고, 숙식을 해결해
주면서, 승병을 배치한 겁니다.
승병들은 절이 생기니 좋은 것이고, 보초근무만 서면 되고, 정부는 오지근무 병사들의 인사관리에 신경 안써도 되니 좋고... 그랬던 거지요.가까운 북한산 북한산성에만 가도, 그 유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하면, 다 불무도다... 라고 주장한다면, 저도 할말 없습니다.
역사서를 왜곡하여 해석, 유포한다.
본국검이 중국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라고 쓴 책도 나왔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그런 글이 써져 있는지.....저도 알고 싶습니다.
무비지에 본국검보가 실려 있다고 하지 않나.....무비지에 실린것은 '조선세법'이며, 조선세법24세를 그대로 가져와 실은것이,무예도보통지의 '예도'입니다.
본국검에 관한, 여지승람의 글을 찾아 보아도, 이첨의 고증이 분명히 실려 있습니다.
이첨 자신도 '관창의 이야기가 와전된 듯 하다'고 하며, 전해들은 얘기라고 써놓았는데도,일부 사람들이 그들의 책에서,"여지승람에 보면, 황창랑이 본국검의 시조라고 적혀있다" 라고 주장하는걸
보면, 초등학교 국어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원전 해석할 능력이 없으면, 최소한 '원전 그대로 싣는' 양심은 있어야 합니다.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취사선택 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모독이며, 공해
입니다.학구파 스타일의 사이비무술인들은 실제로 원전을 읽어보고, 공부해 보지 않은사람들이 절대 다수라는걸 악용하여, 원전해석을 왜곡합니다.
얼렁뚱땅 해석하여 슬쩍 넘어가면, 나이어린 초보자들은 그냥 믿게 됩니다.
名山에서 도인에게 배웠다고 한다.
이 것이 가장 흔한 사이비 입니다.
명산에서 도인에게 배웠다는 무술의 특징은, (이것이 정말이 라면) 手가 극히
적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개 자신의 스승을 밝히지 않습니다.3대 위의 대사부는 몰라도, 직계 스승을 모른다는건 분명히 말이 안되는 소리
입니다.스승의 이름을 얼렁뚱땅 지은 'XX도인'등으로 한다면, 대개 거짓말이 많습니다.해방이후의 대한민국땅에는, 호적등록이 안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적
사항이 불분명한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지구상 최고의 반공국가에서, 인적사항이 불분명한채 주민등록번호 없이 산에서살다 죽어간 사람이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관할 지서에는 지리산토굴 속의 사람들의 인적사항 까지도 거의 다 알고 있습
니다. 절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의 인적사항도 관할지서에 보고하게 되어 있어요.이 좁은 땅 안에서 더이상 비밀은 없습니다...물론 숨어도 수도할 데도 없습니다.
무술의 사용언어가 순 한국어이다.
이것도 거의 다 믿기 어렵습니다.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몰라서, 한국어로 했다고 설명하지만, 이것 역시 설득력이 없습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무술일 수록,오히려 한자어로 되어 있는것이 정석입니다.
자세한 것은 제가 냈던 책, '獨行道'에 설명했으니, 생략합니다.
현재의 전통무술들을 보면 그 역사가 6.25이전으로 올라가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순 한국어로 동작명칭이 된 무술로써 전통무술인 것은, 애석하게도 택견밖에
없습니다.
순한국어로 된 무술이 실제로 전통무술인 경우, 유일한 특징이라면, 그 수법이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또한 체계화가 당연히 안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술의 숫자가 매우 많고, 훈련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다면,
전통무예가 아니라, 근대에 창작된 것으로 보면 정확합니다.
택견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은,고 신한승 선생님의 공로가 절대적 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남아있는 동작들, 기술들을 한두개씩 모아다가 조합해서 만든 후에,
전통무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대한 판단은 저도 잘 서지 않습니다.이런 것은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80년대 이후에 나온 무술들 70년대만 해도, 나올만한 전통무술은 이미 다 나온 시기입니다.
1978년 이후에 시중에 나온 전통무술들은 그 역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많습니다.
잘 생각해 보고, 잘 살펴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80년 이후에 나왔어도, 전통무술은 아니지만, 좋은 무술도 많이 있습니다.
요컨대 전통이 아니면, 정통무술이 되면 되는 겁니다.극진가라테의 예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이비무술(정통이 아닌)의 구별법
배워보면 안다고 한다.
무술을 배우려는 사람은 분명히 '소비자' 입니다.
자기가 입을 티셔츠를 하나 고를때도 시장을 다녀보고 사는데, 무술을 배울 때야 당연히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도장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귀찮다는 듯이, 또는 배우려는 자의 자세가 안되었다는 듯이, 더 나아가 싸가지가 없다는 듯이 대하면서,'배워보면 안다'고 대답하는 사범들이 있습니다.이런 사범들은 십중팔구 실력이 없습니다.
실력자는 말을 안하고 그냥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도장에 가게되면, 그냥 나오면 되겠습니다.
견학하는 것을 회피한다.
무술을 선택하기 전에 적어도 일주일쯤은 매일 한시간쯤 가서 견학해 보는 것이좋습니다.
견학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사무실로 불러서 슬슬 말로 꼬시는 사범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역시, 실력이 없습니다...사범의 감언이설에 속지말고, 직접 도장바닥에 좌정하고 앉아서, 일주일쯤 견학합시다.
초보자라도, 이 정도 견학하면, 그 도장사정에 대해서 대강 알게 됩니다.
전통무술이며, 기술의 수가 많다고 자랑한다.
전통무술은 과거에 조직이나 체계가 없었으므로, 手가 많을 수가 없습니다.
기술의 숫자가 많다면, 분명히 요새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저것 가르친다.
합기도, 태권도, 검도,전통무예...한 도장에서 서너개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이런곳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뭐 한가지 제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각종무술 등 별걸 다 가르치지만, 직접 가서보면, 검도 초단도 안 되는 실력으로 지도를 합니다.
비싼 월사금 내고 수련하는 학생들이 불쌍할 뿐이지요.첨 보자마자 반말한다.
사범들이 첨 보자마자, 찾아간 사람에게 반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이 조선시대 같은 도제관계도 아닌데, 매우 불쾌하지요.대개 이런 도장은 사범들이 권위의식을 가지고, 관원들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수양이 덜 되고, 실력없는 사범들이 이렇습니다.
물론 친해지고나서의 반말은 오히려 친근함의 표현이겠지요...도장에 무술동작의 사진이 많이 걸려있다.
영화무술의 동작같은 현란한 동작들을 사진 찍어서 표구해서 액자에 넣고 많이
걸어둔 곳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곳은 정통 무술보다는 영화무술을 하게 됩니다.
저의 경험상, 이런곳은 사이비무술도장이 많았습니다.
관장이나 '공인사범'이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관장은 동네 대소사에 참견하러 다니고,관원중에 똘똘한 애를 하나 뽑아서 사범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범들의 월급이 생계비에 못 미치기 때문에, 이 경우, 그 교육의 質 또한 엉망입니다.
이런 도장의 특징은, 관장님이 대개 동네 구의원이라도 해 볼까 하고,동네의 오만가지 단체에는 다 소속되어 있는 경우지요.이런 도장에 가면, 크게 실패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태권도 도장도 관장들은 정치물을 다 먹었습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 했던 사람부터 별별 사람이 많습니다.
도장은?고2짜리 학생이 사범으로 지도합니다.
단도 초단이고, 수련경력도 2년도 안되지요.관장이 운동하지 않는 도장, 자신이 정해진 시간에 관원들을 가르치지 않는 도장,관장이 스스로 시범 보이지 않는 도장은 가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대개 사이비입니다.
관장과 사범의 경력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있는 관장은 자신의 경력과 대회 입상경력 등등을 아예 붙여 놓습니다.
공인사범자격과 도장업허가증까지 말입니다...물어봐도, 윽박지르거나 대답을 회피하는 관장은 더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말 못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사단법인인 도장에서 배우는 것이 좋다.
사단법인이 중요하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정부가 괜히 사단법인 허가해 주는데에 인색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정부가바보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이지 갖다놓고, 김치라고 주장하면,누가 김치상표 허가를 내 주겠습니까?
김치는 이제 세계인들이 찾는 우리의 자랑스런 음식인데...
사단법인을 못 내줄 만 하니까, 못 내주는 것이며, 못 내주는 데에는 이해할 만한이유들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관광상품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이 중국무술을 상품화 한 배경에는 그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산화 된 중국에서 무술이 발전한 것은 사회주의라는 사회구조가 크게
작용한 것이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순수한 의미의 무술이 발전하기 참 어렵습니다...
생계의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에, 보기좋게 포장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사이비
무술인들이 생겨나게 되지요. 그러나 요새는 사단법인체로 있는 것이 사업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인지,
각종 편법으로 사단법인을 만든 무술단체가 많아졌습니다.
한국에서 안 내주니까, 미국가서 내 온 단체도 있고,
(전통무술 한다면서 왜 미제간판을 붙이는지 알수 없습니다.
이때는 미국사단법인 이라고 간판에 써야 할텐데 말입니다)
사회체육 단체로 법인 내서는, 무술교육 하는 곳도 있습니다.
대련과 시합을 의식적으로 회피한다.
활인검, 활법, 생명존중....다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무술을 하면서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 어려우며, 산 생명을 더 잘 살게하기위해 무술을 배운다면,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의대에 가서 의술을 배우는것이 더 낫겠습니다.
우리 무술은 생명을 존중하므로, 대결을 하지 않는다' 라거나, '타인과의 신체접촉을 피한다' 라고 하거나,도덕성을 강조하는 무술들의 특징은 대개 실전성이 없습니다.
이런 핑계로 대련을 잘 안 시키거나, 못하게 하거나, 시합을 회피하는 도장이나 관장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련없는 무술은 결국 '춤' 입니다.
춤 추고 땀내기는 나이트클럽이나 에어로빅센터 등산 마라톤 사이클 헬스가 더 낫습니다. 도장에서 많이 멍들고, 많이 맞아볼 수록 실력은 느는 것입니다.2023-01-13 03:47:58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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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년전 단돈 100불 들고 낮설은 택사스를 갓습니다. 갈고닥은 무도지식을 외국인들과 나누어갖기위해서엿죠. 44년후에 연구하고 수련한 지시을 갖고 역수입 하고져 고국엘 왓읍니다. 발전햇다고 자부하는 한국, 다좋으나 무도,무예,무술 무어라 불르든 발전은 없고, 무도의 몰인식만 보앗읍니다. 대실망 이엿읍니다. 오직 경기, 우승, 일등 이것이 한국인의 오직 희망인듯 함니다. 도장은 없고 체육관과 코치만 보앗읍니다. 사범이없고 글쟁이사범과 경기 코치 이들만 보앗읍니다. 무도교육이 필요한 시점임니다. 경기 와 시합만 중점을 둔다면 한국을 찾는 선수나 사람들도 3류만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일류, 이류의 수련생 외국인이 한국을 우럴어보고 찿찻아 오길 희망하신다면 무도 교육에 솔선 하여야 함니다, 나이드신 고수가 없는 한국 실정 을 보앗읍니다. 70대 80대 의 고수 사범님이 잇어야 지 , 20대 30대 가 지도 사범이라면 40년 이상 수련한 외국인들이 무얼 배우려고 한국엘 올가 생각 해보아야 함니다. 도장 인지 체육관인 지는 수없이 많으나 무도수련장은 아니고 탁아소 엿읍니다. 수련생은 없고 선수는 잇는듯함니다. 외국인 수련생을 받기위해서는 발차고 주먹지르기 만 가르치는 코치가 필요치않고 육체적 기술과동시 학술적으로 철학적으로 강의지도 할 고수가 필요 합니다. 경기에만 치중하다보면 얼마안가서 한국 무예는 없어질것 이라 봄니다. 머리텅빈 인간들만 관광하러 올거라봄니다.
2023-01-13 02:44:22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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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없는 한국의 무예
일본무술의 성격 침투와 서국적 경기방식 내재
한국 무예의 수련체계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무예가 일본류 무예 내지는 중국이나 서양 격투기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 바탕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전통성을 검증 받은 무예, 즉 택견, 씨름, 활 등은 누구나 한국 무예라는 전통성을 인정 받고 있지만 오늘날 이들 무예 곳곳에는 일본 무술의 성격이 침투해 있으며 서구적 경기 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전래의 자연발생적인 수련 배경을 잃은 채 생활권 밖에서 명맥이 이어져 오다가 무예 수련의 일상화라는 대중 문화권에 재편입되면서 기존의 외래 무술체계를 타당성 검증없이 수용해 온 결과이다.
둘째, 한국무예 기원설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일본무도에서 기원한 무예인 경우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하여 수련되던 일본 무도가 광복 이후에 국내에서 활성화 되면서 자리잡기 시작하였으며 검도나 유도의 경우에는 이미 일제 치하에서 유입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들 무도는 한국 전통 무예로 둔갑 하였다. 수련체계와 복장, 이론적 배경, 사상적 기반 등은 일본의 그것이면서 삼국시대에 한반도에서 전해준 것을 다시 되찾아 왔다는 논리로 일색 하였다. 이러한 논리라면 일본에 대하여 우리것이 아닌게 무엇이며 중국에 대하여 우리의 것은 무엇인가? 무예를 포함한 모든 문화는 그 발생도 중요 하지만 어느나라에서 어떻게 성장하여 살아 남았는가 하는 발달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 문화는 발달 논리에 입각하여 도태되며 적자 생존한다. 따라서 무예에 있어서도 그것의 기원과 실질적인 성장은 엄연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셋째, 대부분 광복이후 한국에서 신흥무예로 탄생하였으면서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 내지는 심지어 고조선 시대를 운운하는 무예들의 등장이다. 전통성을 검증 받은 씨름, 택견, 활과 일본과 중국류 무예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술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중에는 고서에 나오는 무예 지칭 용어를 차용한다든가 무예도보통지를 인용한 무예관련 단체도 있지만 이들 단체 역시 역사적 전통성이 단절되어 있기는 마찬 가지이다. 하지만 떳떳하게 신흥 무예임을 밝히는 한국무예는 극히 드물다.
이와같이 전통무예, 외래무예, 신흥무예를 막론하고 문제가 되는 사실은 다름을 기반으로 전통을 형성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군국주의의 산실인 일본무도가 표본적인 모델로 설정되어 있다. 이와같이 일본 무도와 같음을 지향함으로써 생긴 한국무예의 허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한국에서 무예를 수련하는 일정한 공간을 도장(道場) 혹은 체육관(體育館) 또는 무예단체 특유의 색깔이나 세력권에 따라 OO관(OO館) 이라 명칭 하고 있다. 적어도 조선시대 이후 한반도에서 00정(OO亭)이라고 불리는 활터를 제외하고는 사설 무예 강습 장소는 물론이고 전문 실내 공간이 없었다. 씨름이나 택견 만 하더라도 풀밭이나 노천, 모래사장 등에서 전문적인 지도선생 없이 놀이 문화의 형태로 전습되어 왔다. 그 외에 전문적인 전수 계보가 있었다면 오늘날의 개방된 체육관 형태가 아닌 일정한 공간에서 특정 소수에게만 전수되어 왔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도장(道場)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도장(道場)이라는 말은 원래 스님들이 불법을 수행하는 장소를 일컫는 말에서 기원한 것을 일본에서 무도에 의식적으로 엄격한 윤리와 철학성을 부여하면서 수련장소를 칭할 때 도용한 것이다.
한국에서 최초의 현대식 도장은 광복 두 달전에 이원국이 세운 당수도 청도관이다. 이는 태권도의 원조 도장인셈이지만 이후 황기가 세운 철도국 도장이 전신인 무덕관, 지도관의 전신으로 유도 도장인 연무관에 권법부를 개설하여 공수도 연무관을 설립되었고, 이후 창무관, 송도관 등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관(館)이라는 것은 일본식 도장의 대표적인 분파 양식에 보이는 명칭법으로 한국에서는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등에서 이러한 명칭 제도를 자연스럽게 계승하거나 도입하여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에서 헬스클럽이나 무예교습소 등 유독 신체 관련 장소를 가리켜 체육관이라고 칭하는 것도 일본식 관(館)의 개념이 이입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선시대 이후 한국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된 활터를 제외하고는 애초부터 무예관련 사설 강습소인 관(館)은 없었던 것이다. 엄격한 유교주의와 강력한 중앙집권 제도하에 그나마 조선 초에 보이던 사병 양성은 꿈도 못 꿀 일이 되어 버린 조선 시대였다. 이러한 조선땅에 무협 영화에 보이는 것처럼 일반인이 칼차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산중의 승려들이 마치 중국의 소림승들처럼 무술을 연마하여 온 것처럼 영화화 되어왔고 실제로 오늘날엔 불교무술 단체들이 전래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으며 한권의 제식 병서에 불과한 무예도보통지가 조선 무예의 보고인양 과장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조선시대에 왜란을 맞이하여 승려들이 의병으로 참여한 것은 사실이나 무술 집단으로서의 승병은 아니었다. 그것은 농민 신분의 평민들까지 농기구를 들고 왜란에 맞선 호국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무인 문화와 무사 집단이 마치 국내에도 현존하여 온 것처럼 신비화되고 과장되어 오늘날 한국은 무술 관련 도장이 산재되어 있다.2023-01-13 02:03:5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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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기본존회-24반무예협회-경당협회
경당진흥원-24반경당무예협회
어떤게~진짜야?2023-01-13 01:47: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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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인가?혹시아니겠지 예언 임 영장?
2023-01-13 01:44:5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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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임영장이무슨 말이지?
2023-01-13 01:43:19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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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하고있지안나~
여기도2023-01-13 01:36:06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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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023-01-13 01:08:49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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