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태권도 국제경기 새판도의 주역… 中 손덕군 회장
발행일자 : 2022-12-01 10:00:08
수정일자 : 2022-12-02 10:45:36
[한혜진 / press@mookas.com]
2017 우시 그랜드슬램 창설, 태권도 역대 최고 우승자 7만불 상금 내걸어
그랜드슬램 랭킹 1위에 도쿄 올림픽 자동출전권 부여, 태권도 경기 새판도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212개국과 난민이 참여하는 글로벌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다른 올림픽 종목과 다르게 빈민국 메달 가능성과 기회가 있는 종목으로 각광 받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그리고 메이저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해도 소수 국가를 제외하고는 ‘명예’에 그치고 있다. 이런 태권도의 무한한 잠재력을 본 중국의 한 사업가가 태권도 대회의 새로운 장을 마련했다.
화려한 무대에서 선수로서 가장 빛날 수 있고, 대회를 통한 선수의 명성은 물론 그게 걸맞은 상금을 주는 대회를 만든 이다. 바로 세계태권도연맹 중국 우시태권도센터 손덕군 회장(孫德君, De Jun, Sun)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 산동성 연태시 출신으로 명문대 인민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중국 전국지 신문사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약 8년여 기자 생활 후 연예 기획자로 직업을 전향해 뮤직비디오 제작과 여러 스타를 발굴해 키웠다. 이후 스포츠 매니지먼트로 분야를 확대해 부동산 개발 및 투자회사 설립 등으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다 태권도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태권도 스타 발굴을 위한 ‘그랜드슬램’ 창설이다. 이 대회 탄생 배경에는 중국 장쑤성 우시(無錫, Wuxi) 정부의 미래 도시 개발 정책에 일환으로 인연이 시작됐다.
우시 정부가 지역의 새로운 도시개발 정책에 국제 스포츠 도시를 기획하고자 손 회장을 찾은 것. 손 회장은 올림픽 스포츠 종목 중 무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태권도를 통해 지역 발전과 융합에 나섰다.
그는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태권도의 다양한 가치 발전을 위해 세계태권도연맹을 방문해 새로운 태권도 경기방식을 위한 신선한 제안을 했다. 태권도 최고의 선수와 신인들이 함께 겨루는 태권도 왕중왕을 뽑는 ‘그랜드슬램’을 제안한 것. 그러면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손덕군 회장은 “원래 난 신문기자 출신이다. 이후에 연예 기획자로 다양한 스타를 발굴했다. 2000년대 초반 중국에서 우슈 최초로 산타(겨루기 방식) 경기를 프로 방식으로 바꿨다. 당시 ‘산타왕 시리즈’를 처음 도입해 판도를 바꿨다. 그때부터 태권도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라며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태권도가 더 멋진 스포츠로 발전이 가능할 같다는 자신이 생겨 WT에 문을 두드렸다”고 회고했다.
이어 “2016년 리우 올림픽이 끝난 후 여러 사람의 소개로 WT에 방문했다. 우리가 준비한 태권도 그램드슬램 계획안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조정원 총재께서도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후 양진방 당시 사무국장과 실무 토론을 통해 그랜드슬램이 더욱 구체화 됐다. 이듬해 2017년 예선전을 시작으로 그해 말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태권도계 최초의 우승상금 7만불 시대… 당시 도입한 경기룰은 2024 파리 올림픽에
손 회장은 태권도 국제대회를 통틀어 최고의 상금과 WT가 재정적인 이유로 선보이지 못한 실시간 4D 비디오 촬영과 새로운 환경을 모두 구현하기로 약속했다. 동시에 파격적인 경기규칙까지 제안하면서 당시 국제 태권도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WT 입장에서는 마다할 수 없는 매우 구체적인 파격 조건을 제시했다. WT는 2017년 6월 22일 무주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월드 태권도 그랜드슬램 챔피언스 시리즈(WTF World Taekwondo Grand Slam Champions Series)’ 개최하기로 의결했다.
그랜드슬램은 태권도 최고의 스타를 가리는 왕중왕전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그랑프리시리즈 우승자 등 올림픽 상위랭킹의 세계 최고의 선수와 와일드카드 등 체급별 12명을 초청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하는게 주요 골자이다.
신인 스타 발굴을 위한 제도 장치도 마련했다. 소수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기 위해 그랜드슬램 세계예선전을 통해 상위 입상자에게는 그랜드슬램 본선 무대 와일드카드로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체급은 올림픽체급(남녀 각 4체급)으로 체급별 12명이 본선에서 왕중왕을 가리는 방식이다. 우승자에게는 7만불(한화 약 9천3백만원), 2위 2만불, 3위 5천불 등 총상금만 80만불(약 10억원)을 내걸었다.
대회에 초청된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 심판까지 항공료와 숙식비 일체를 모두 조직위원회에서 제공했다. 태권도계에는 이전에도 현재도 없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2017년 12월 30일 첫 개막전을 시작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그랜드슬램 개최에 대해 “나는 자신 있었다. 오로지 태권도 발전을 위해서만 생각했다. 우시 정부와 함께 태권도가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기 위한 목표 하나뿐이었다”라며 “세계 각국에 우수한 선수들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상금이 매우 낮았다. 그래서 태권도 경기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큰 금액을 상금으로 내걸었다”고 말했다.
파격적인 상금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잊지 못한 장면이 하나 있다. 2018년 12월에 열린 두 번째 대회에서 당시 여자부 최고의 스타였던 영국 비앙카 웍던이 2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우승 후 점프하면서 이제 집을 사게 됐다며 너무 기뻐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보고 마치 내가 집을 산 것처럼 흥분되고 기뻤다”라고 술회했다.
이어 “나는 많은 우수한 선수들이 태권도를 위한 전용 경기장에서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미디어 노출로 글로벌 스타가 탄생되었으면 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상금보다 더 많은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권도계에서 시도 못했던 많은 것을 다 선보였다”고 덧붙였다.
그랜드슬램이 당시 상금만큼 주목받은 것은 새 경기규칙 적용이다. 당시 몸통 득점이 1점이던 것을 2점으로 상향했고, 회전공격에는 테크니컬 점수를 점을 몸통 회전은 4점, 머리 회전 기술은 5점을 부여했다. 강력한 머리 공격으로 주심이 계수(카운터)를 셀 경우에는 5점을 추가해 최대 10점까지 주는 점수체계에 큰 변화를 줬다.
기존 2분 3회전 경기방식을 라운드 점수제로 처음 시도했다. 8강까지는 2분 3회전 2선승제 라운드 방식을 준결승과 결승은 2분 5회전 라운드 3회전 선승제 방식으로 적용했다. 당시 WT는 그랜드슬램 호응도에 따라 WT 경기규칙 변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5년여 후 WT는 올해부터 재개된 그랑프리시리즈부터 최근 막을 내린 2022 과달라하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그랜드슬램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차등 점수제뿐만 아니라 라운드 점수제 방식 등을 대거 적용했다.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시험무대였다. 대부분 이때 선보인 룰은 2024 파리 올림픽에 적용될 전망이다.
손덕군 회장은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인터뷰에서 “WT는 국제경기 단체로 경기룰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에 우리 그랜드슬램이 먼저 적용해보고 긍정적인 반응과 보완할 점을 찾아 추후 WT에서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 룰의 일부분이 이미 도쿄 올림픽에 사용되었고, 나머지 대부분도 아마 2024 파리 올림픽에 적용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나로서는 큰 보람이다”고 밝혔다.
그랜드슬램을 통해 올림픽 자동출전권 부여 역시도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다. 손 회장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개최하는 조건으로 시리즈 체급별 1위에게 자동출전권 부여를 제안한 것. 기존까지 체급별 6위까지 자동출전권 중 한 장을 그랜드슬램에 양보했다.
손 회장은 “이미 그랜드슬램에 올 정도 선수의 실력이라면 자동출전권을 획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높은 상금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선수로서는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 본선 티켓을 걸면 더 권위기 높아지기 때문에 조건으로 제시했다. 또한 예선전을 통해서도 충분히 스타가 배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남녀 8체급 중 여자 -57kg급에서 그랜드슬램 2연패와 은메달을 딴 중국 리준 조우가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고 설명했다.
그랜드슬램을 계기로 태권도 도시가 된 중국 우시
손 회장이 등장하기 전 태권도 관계자들 사이에 중국 ‘우시’는 생소한 도시였다. 중국의 드넓은 면적과 여러 도시 중 우시는 그중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 태권도인 상당수가 우시를 하면 중국 태권도 대표적인 도시로 떠오르게 할 정도이다.
우시 정부는 그랜드슬램을 계기로 WT 국제태권도센터를 설립했다. 태권도 경기와 교육, 연수, 마케팅 등을 목적으로 운영 중이다. 짧은 보급 역사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중국 내 태권도 교육과 연수를 체계화하는 기틀을 이곳에서 만들어 가는 중이다.
태권도의 역사와 기술적 체계를 담은 교본을 만들어 중국 전역에 보급해 올바른 태권도 교육서를 제공 중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많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연수를 진행했다.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전 세계에 강타해 마스크 대란이 일었을 때, 손 회장은 우시 정부와 함께 WT에 마스크 10만장을 기증했다. WT 회원국 중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심한 국가협회에 보내달라고 제안했다. 이 중 한국에는 5만장을 전달하도록 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년여 동안 우시 정부와 손 회장이 태권도를 위해 투입한 비용만 약 2천7백만불(한화 약 360억원)이다. 이 예산은 우시 시정부 예산과 손 회장이 대표로 있는 법인 투자회사와 사재 등이 투입됐다. 현재 코로나로 여러 사업이 멈췄지만, 투자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뿐만 아니라, 애초 2021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지는 ‘우시’었다. 2018년 WT 집행위원회에서 세계선수권과 세계장애인선수권을 동시 개최하는데 성공했다. 태권도 전용 경기장 구축과 태권도 뉴미디어 전략, 빈민 국가 선수 무상 초청 등 역대 최다 국가와 선수단이 참여하는 대회를 목표로 준비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코로나19로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19 여파 이후 중국 내 모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연기 개최하기로 했지만, 정상 개최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선수단들의 피해가 없도록 올해 초 개최 포기를 결정해 대체 장소 변경을 하도록 했다.
손 회장은 “우리는 우시 정부와 최고 환경의 경기장 시절과 조명, 미디어 환경을 준비했다. 이미 500만불 이상(약 67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WT와 협의를 통해 어려운 나라 선수들의 참가를 돕기 위한 예산까지 모두 준비했다”라면서 “갑자기 코로나가 생겨 대회가 연기돼 당황의 연속이었다.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이번 멕시코에서 상당히 수준 높은 대회를 개최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추후 재유치 의사에 대해서는 “당연히 있다. WT에 장기적으로 2025년이나 2027년에 꼭 다시 우리가 준비했던 대회를 개최할 의사를 전달했다”고 강한 유치 의사를 밝혔다.
코로나19로 멈춘 그랜드슬램, 2023년 2월부터 반드시 재개할 것!
그랜드슬램대회는 코로나19 신종 감염증이 시작한 2020년 이전까지 2019년까지 3회 연속 흥행 개최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이후로 2년여 동안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연말에 개최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개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세계 각국 선수단이 그랜드슬램 재개 여부를 물을 정도이다.
이에 대해 손 회장은 “너무 아쉽게 생각한다. 당장 올해 연말에 해야 할 그랜드슬램을 내년 2월 중에라도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며 “중국 정부에서 앞으로 국제경기를 해도 된다고 지침이 떨어졌다. 다만,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처럼 제한적인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우리와 WT뿐만 아니라 여러 선수단이 그랜드슬램 재개를 원하는 만큼 꼭 내년 2월과 연말에 개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우연한 계기로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손 회장은 이미 태권도 사랑에 푹 빠져있다. 올 한해 전 세계적으로 열린 태권도의 크고 작은 대회와 이벤트를 모두 찾을 정도이다. 많은 이들에게 진심이 통해 가는 곳마다 환영받고 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그는 “나는 살면서 누구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다. 특히 스타를 만들고, 시장성 있는 마케팅을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특별한 내 능력과 경험을 앞으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발전하고, 또 다른 글로벌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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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