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술 인물 탐구] 사이고 시로 ⑤ : "나가사키에서의 결혼."


  

나가사키가 제2의 고향이 되었던 진짜 이유?

메이지 23년(1890년) 6월, 24세의 사이고 시로는 러시아가 조선을 병탄하고자 하는 야욕을 가진 것에 근심하여 중국과 조선에서 낭인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일본 측 자료에서는 서양 열강으로부터 중국과 조선, 즉 아시아를 지키겠다는 명분의 활동을 벌였다는 해석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을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이고 시로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대륙 낭인 활동을 시작하기 위하여 8년간 몸 담았던 강도관을 떠나 대륙으로의 이동에 편리했던 나가사키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다음해인 메이지 24년(1891년) 12월에 자신의 호적지를 양아버지의 호적지였던 아오모리(青森)에서 나가사키(長崎)로 변경하였다.

 

중국 대륙에서만 활동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호적을 나가사키로 옮길 필요가 있었을까 의구심이 드는데, 그가 거처를 완전히 대륙으로 옮기고자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나가사키에서 정주하며 활동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사이고 시로는 나가사키에서만 장기간 머물지 않고, 일본 후쿠시마(福島), 센다이(仙台), 쿠루메(久留米)를 다니거나, 대만과 중국의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등에도 방문했다. 나가사키에서 본격적으로 장기간 머물게 된 것은 메이지 33년(1900년)에 이르러서인 것 같다.

 

사이고 시로는 다이쇼 3년(1914년) 3월에 이마카고마치(今籠町), 7월에 모토후루카와(本古川町)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전까지는 히가시카미마치(東上町)에서 약 23년간 머물렀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긴야마치(銀屋町)에서 거주했던 적도 있었다.

사이고 시로의 나가사키 거주 당시 거처가 있었던 장소. [출처 : 나가사키를 방문한 아이즈 사람들 홈페이지]

나가사키에는 예로부터 시안바시(思案橋)에서 가까운 요로즈야마치(万屋町)에 ‘요네하루’(米春)라는 요정(料亭)이 있었다. 메이지 23년(1890년)에 사이고 시로가 나가사키에 도착했을 당시 그곳에는 ‘마네키’(まねき)라는 유명한 요정이 있었다.

 

요정의 안주인은 ‘나카가와 킨’(中川キン)이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이었던 ‘토키 사부로’(時三郎)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치카’(チカ)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젊은 사이고 시로는 이 요정에 방문하여 3살 연하였던 나카가와 치카를 좋아하게 됐고,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시기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호적을 아오모리에서 나가사키로 옮긴 메이지 24년(1891년) 12월 전후였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치카와 혼인신고를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뒤인 1944년 3월이었지만, 사실상 부부로써 일찍이 결혼생활을 했다고 한다.

 

메이지 33년(1900년) 11월, 34세의 사이고 시로는 당시 생후 3개월이었던 ‘진보 타카유키’(神保孝之)를 양자로 삼았다. 진보 타카유키의 친아버지는 ‘진보 쿠라노스케’(神保巌之助)였는데, 옛 아이즈 번사이자 초대 나가사키 시장이었던 키타하라 마치나가의 남동생이었다. 맏형은 아이즈 번의 명령을 받고 나가사키에서 유학했던 ‘진보 슈리’(神保修理)였다.

 

진보 쿠라노스케는 고향 아이즈를 떠나서 나가사키에서 살고 있었는데, 메이지 35년(1902년) 4월 5일자 동양일출신문 기사에 따르면, 토마치무라(戸町村)에서 촌장을 했다고 한다. 토마치(戸町) 출신이었던 아내, ‘키에’(幾ヱ)와 사이에서 이미 3남 2녀를 두고 있었는데, 사이고 시로는 새로 출생한 6번째 아이를 양자로 받았다.

 

사이고 시로와 나카가와 치카 사이에는 친자녀가 없었고, ‘사이고 사치코’(西郷幸子)라는 양녀가 있었다. 덧붙여, 사이고 시로의 장모인 나카가와 킨에게는 ‘미네’(ミネ)라는 양녀가 있었는데, 고토(五島) 토미에(富江) 출신의 ‘하마구치 카시로’(浜口嘉四郎)와 미네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토키하루’(時春)가 나카가와 가문을 상속했다. 그러나 토키하루는 17세에 나가사키 원자폭탄에 폭사했다.

 

사이고 시로는 말년에 지병 요양을 위해 하마구치 카시로 일가가 거주하고 있던 히로시마 현(広島県) 오노미치 시(尾道市)로 거처를 옮겼고, 그 곳에서 사망했다.

 

[무카스미디어 = 권석무 객원기자 ㅣ sukmo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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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무 기자
무카스미디어 MMA, 주짓수, 무예 분야 전문기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MMA, 극진공수도, 킥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무예 수련.
사람 몸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치료학을 전공. 
무예 고문헌 수집 및 번역 복간본 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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