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술 인물 탐구] 사이고 시로 ①편 : "출생과 성장"


  

강도관 유도 최강의 사나이, 사이고 시로의 생애를 알아본다.

필자는 최근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역사와 과거 사실 관계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들어보았을 마에다 미츠요(콘데 코마)와 그레이시 가문에 대한 사실 관계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이전의 일본 유술(柔術; 주즈츠)의 역사부터 마에다 미츠요 이외의 일본인들에 의한 유술 해외 전파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옛날 옛적 전래기부터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로 전 세계에 뻗어나간 유술과 유도의 전파 과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지금의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근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브라질리언 주짓수와 일본의 고류 유술, 그리고 강도관 유도의 연결고리이자, 핵심적인 인물 중에 소개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 고민했다.무나 당연하겠지만, 열 명에게 물어보았을 때, 열 명이 동시에 고를 인물은 가노 지고로, 즉 강도관 유도의 창시자일 것이다.

 

하지만 가노 지고로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외에서 너무나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를 소개하는 대중적인 관련 자료들과 기사들이 무수히 쏟아져나왔다. 그래서 필자는 국내에서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는, 그러나 결코 모르고 지나쳐서는 안되는 인물을 꼽아보았다.

 

젊은 시절의 사이고 시로(西郷四郎) [출처 : 강도관 사이트]

 

‘사이고 시로’(西郷四郎)는 ‘아이즈 번사’(会津藩士)였던 ‘시다 테이지로’(志田貞二郎)의 셋째 아들로서 게이오(慶応) 2년; 1866년 2월 4일, 아이즈와카마츠(会津若松)에서 출생했다. 가문이 세습하여 물려받는 녹봉(祿俸)을 뜻하는 가록(家禄)은 150석이었다. 게이오 4년; 1868년, 보신전쟁(戊辰戦争)에서 신정부군이 토호쿠(東北) 지방으로 쳐들어왔는데, 당시 34세였던 그의 아버지 시다 테이지로는 아이즈 번의 주력 부대였던 주작대(朱雀隊)에 편입되어있었다.

 

아이즈 번은 게이오 3년(1867년)에 군제를 개편하여 연령별로 중국의 사신(四神)에서 이름을 따온 4개의 부대,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동쪽의 청룡(青竜), 북쪽의 현무(玄武)로 편성하였다.

 

테이지로는 주작대의 무사로서 에치고(越後)의 ‘나가오카 번사’(長岡藩士)와 함께 나가오카 성(城) 공방전에 참천했고, 그 후에도 에치고 방면의 각지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메이지(明治) 원년; 1868년에 아이즈 번이 항복했기 때문에 에치고의 시오카와(塩川)에서 무장 해제되어 시오카와, 그리고 타카다(高田)에서 유배되어 근신 생활을 지냈다.

 

메이지 3년; 1870년 1월에 근신이 해제되고, 테이지로는 가족이 피난하고 있었던 과거 아이즈 번령의 에치고쿠니(越後国) 칸바라군(蒲原郡) 가쿠시마무라(角嶋村)로 돌아왔다.

 

가쿠시마무라는 메이지 22년; 1989년의 ‘마치무라 제도’(町村制)에 의해 니가타 현(新潟県) 히가시칸바라 군(東蒲原郡)・츠카와 초(津川町)가 되었으며, 헤이세이(平成) 17년; 2005년에 ‘마치무라 합병’(町村合併) 제도로 인해 ‘아가 초’(阿賀町)가 되었다.

 

많은 아이즈 번사들과 그 가족들이 메이지 3년; 1870년에 옛 남부번령(南部藩領)이었던 혼슈(本州) 북단의 불모지, 토난 번(斗南藩)으로 이주했지만, 시다 가문은 메이지 4년; 1871년에 토난 번으로 가지 않고, 가쿠시마무라에 정착하였다. 시다 가문은 본디 츠가와 지역의 자시다헤이(字志田平)의 호족 출신으로 보신전쟁이 발발하자 테이지로는 일가를 츠가와로 피난시킨 것이라고 한다.

 

사이고 시로에게는 사실상 이곳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시다 일가가 츠가와에 정착한 바로 그 해, 메이지 5년; 1872년에 사이고 시로의 아버지 시다 테이지로는 3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사이고 시로가 7세였다.

 

(편에서 계속...)


[무카스미디어 = 권석무 객원기자 ㅣ sukmo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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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무 기자
무카스미디어 MMA, 주짓수, 무예 분야 전문기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MMA, 극진공수도, 킥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무예 수련.
사람 몸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치료학을 전공. 
무예 고문헌 수집 및 번역 복간본 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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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예계변화 직선제제도이유

    ※무예계 분파 요인※

    합기도 단체들은 무려 50여개로 분파로 나뉘어 사단법인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서로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1959년에 태권도의 경우 최홍희에 의해 무술단체가 통합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무덕관을 비롯한 몇 개 단체가 통합에 문제가 있었고, 아직도 대한태권도협회와 다른 노선을 걷는 태권도단체도 있는 것을 보면 무술단체들의 분파성은 뿌리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첫째, 무술단체의 분파 형태는 몇 가지의 내, 외부적인 요인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무술단체분파적인 현상이 무술내용의 기술적 체계에 의한 분파라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면도 있고 무술의 속성상 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무술의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보다 더 나은 기술체계로 무술이 재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기 단체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하고 자기 단체의 기술적 체계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행위는 경쟁이 있는 경우에 보다 발전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다. 택견단체와 해동검도단체의 경우에 기술적인 체계를 가지고 서로 다름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일부 있기는 하다. 택견의 경우 문화재 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택견단체들의 조직이 비대해지고 있고, 해동검도의 경우는 규모가 확대되면서 분파되기 시작해 지금은 합기도와 유사한 분파형태를 보이며 해외에도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분파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류에 대한 법적논쟁이 있어 해당무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기술상의 분열과 분파이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둘째, 이권과 관련된 갈등으로 나타나는 내부적인 요인이다 .

    무술단체의 이권은 대부분 하위단체나 하위도장의 장악과 관련하여 승급 및 승단 시의 심사비 횡령과 각종 자격증 남발로 나타난다. 이권과 관련한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때의 갈등이 보편적인 상도덕행위를 넘어서서 윤리적인 문제로 나타날 경우에는 대단히 치명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윤리도덕을 강조하는 무술계에서 서로 도덕성 시비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단체들은 대부분 협회와 연맹이라는 단체운영이 아닌 도장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운영한데 문제가 있다. 가장 많은 분파를 보이고 있는 합기도류와 해동검도류의 경우는 각 지역별로 법인화를 추구해 전국단체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시도 총관장의 성격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법인화를 통한 분파의 특성은 대부분 승급과 승단에 대한 이권문제가 지배적이며 기술체계는 유사한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법인의 단체형태지만 운영은 총관장과 다를 바 없는 관(館)중심으로 운영으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축제가 증가하면서 무예단체의 도장교육에서 벗어나 시연단이나 예술단형태로 운영되는 단체들이 많아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셋째, 정치권과의 밀착에서 학습된 외부적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무술단체는 정치권과 대단히 밀착되어 있고, 2008년 3월 전통무예진흥법 제정이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이는 무술의 특성상 일정부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술관계자들이 과거 권력의 하수인 노릇한 경우는 일제시대에도 상당히 많이 있었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제1공화국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무술경관들이 국회에서 야당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 좋지 않은 일을 하여 정치깡패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근래에는 총선이나 대선에서 특정후보들의 보디가드로서 인원동원과 요인보호라는 임무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행태를 학습하여 정치적 분파주의가 나타나면서 무술계를 정치판으로 만든 면이 너무도 많이 있다. 또한 지역정치인들이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이나 사범들의 힘을 빌어 지역민과 접근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고, 이런 관계는 당선이후에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거나, 선거이후 신생단체를 만들어 각종 기금을 받는 특혜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더욱 큰 문제는 무술단체에 ‘총재’나 ‘명예총재’라는 직위로 참여하는 정치인들의 경우 무술단체의 실제적 등기임원이 아닌 얼굴마담의 역할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무술단체에서 정치권의 유력인사를 영입하는 경우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에 가장 많이 있으며, 여당의 정치인을 선호하고 그들을 유입해 정치계와 다를 바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의도를 가지면서 정치인들의 파당행태를 학습하여 정치권 이상으로 정치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넷째, 정부의 정책의 변화에 따른 외부적 요인이다.

    1989년 사회체육지도자(현, 생활체육지도자) 제도를 실시하면서 무술종목을 채택하고 1990년대 후반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의 행정규제 완화, 그리고 2008년 전통무예진흥법 제정과 같은 외부적인 정책변화에 따라 무술단체들의 이합집산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무술단체들의 분파주의는 무술 그 자체를 위해서도 대단히 좋지 않은 현상이다.

    단체운영과 관련된 협회장과 관련 보직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단체가 분열되는 모습은 영문도 모르는 무술수련자들에게 크나 큰 피해를 주고 있고 특히 스승과 선배를 존중하는 무술의 특성과 자기 무술의 권위와 무술의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자기 무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자기 부정이라는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게 하기도 되면서 무술의 본질과 무술계의 권위와 질서를 파괴시킨다. 또한 무술단체들 간의 법정다툼은 무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 분파주의를 일으키는 협회장들의 면면을 보면 과거 타무술이나 타단체에서 주요보직자로서 사무총장 혹은 사무국장 등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협회를 운영하고 조직을 장악하는데 있어서 정치인들의 행태이상으로 과격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무술인들이 정치인을 답습하고 정치인의 무술계 개입이 무술이 지닌 본래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등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2020-10-14 10:57:32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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