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철 칼럼]태권도장 인성교육,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라!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건강한 사람이 된다.

아침부터 동네가 시끄럽다. 부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상황인즉 아파트 벤치에 중학생 몇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어린 자녀들을 등원시키기 위해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로서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집에서 내려다보니 상황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말이 들려왔다.

 

“왜 반말하세요?”

 

상황은 경찰 출동으로 일단락 되었다. 필자는 마시던 커피를 계속 마셨다. 존댓말과 반말로 인하여 예의 있음과 없음이 구별되고 더 깊게는 신분의 서열화도 생겨났다. 내가 만약 중학생으로부터 저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너는 아직 어리잖아!

너는 예의가 없잖아!

부모한테도 그러니?

 

'여기서 한 가지라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을까? '

'그리고 저 질문 앞에서 화내지 않을 어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

 

수많은 분노가 가득한 이 도시생활에서 평정심을 갖고 저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할 어른들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표정은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고, 국가의 통치권력으로 사용되는 법과 제도에 부합하지 않으면 절대 불문율인냥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핏대 세우는 게 이 시대 어른들의 모습이다. 대학교 교수는,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외치고,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매일 싸우고, 인성 최후의 보루라 말하는 청OO 서당은 돈벌이로 전락되었고, 태권도장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인성의 본질적 탐구에 기인하지 않고, 유교적 관습에서 파생된 생활의 가벼운 행동양식에 대한 학습에 지나치지 않는다.

 

협회에서 앞다투어 인성교육 자격증, 혹은 프로그램들을 내세우지만, 결국 돈벌이거나, 행동양식에 지나치지 않는다.

 

“왜 반말하세요?”

 

담배피는 중학생을 훈계했던 이유로 그 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너는 담배를 피고, 어리고, 예의가 없으니깐 나는 반말을 하는거야”

 

유교적 관습과 자본주의시장에 토착화된 인성교육의 폐해다. 인성은, 행동양식을 통해 예의 있음이라는 이념의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닌  창의성과 독립성을 최대치로 끝어내는 것이다. 인성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해석이, 인성교육을 돈벌이로 전락되게 만든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내 주변에 온화한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기권리 앞에서 손해를 감수하는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인성교육이라 말하는 것들을 그들이 더 많이 학습 했으면 했지 덜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다른 방식으로 방법을 바꿔야 함이 옳지 않을까?

 

여전히 인사 잘하는 아이가 인성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여러 아젠다를 계속해서 쏟아내는 것이 결국은 통치 목적이라는 사실과 궤를 같이 한다.

 

2년 전 쓴글을 옮겨본다.

 

이금룡 박사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중 대부분 인용으로 할애된 부분이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이었다. 대학생때 읽었던지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읽기는 시간이 없고 대략적인 챕터의 제목으로만 유추하였다. 이금룡 박사 강연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직감하고 그에 따른 빠른 준비를 통해 성공을 하자는 흐름으로 귀결하고 있었다.

 

그것은 물결이라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형태이고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형태라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은가? 변화의 흐름을 직감하여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은 무속신앙에서 나올법한 이야기지 그것이 학문적 텍스트에서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제 5의 물결까지 거론되었는데, 그것은 이금룡박사의 독자적인 견해이지만 나름 일리는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인간관계 즉, 인간의 감성을 만지는 것이 제 5의 물결의 핵심이 되는 것인데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골자로 본다면 인공지능이라는 인간과 상반되는 문명 즉, 인공지능의 문명과 인간의 문명은 대치되기에 인간은 인간애로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태도가 앞으로 성공할 수 있는 직업의 기준이 될 거라는 것은 인간애를 팔아먹어 돈을 벌겠다는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가 된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장 먼저 염려되는 것은 앞으로의 직업군이다. 사라질 직업군과 새로 생길 직업군에 대해서 우리는 예측하려 하고 있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하물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모이게 될 거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그 감성을 팔아먹는 직업이야 말로 앞으로 살아남을 거라 생각을 한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는 인간애가 아닌 어떻게 하면 내가 남보다 더 잘 벌고 잘 살것인가에 대한 담론만 담겨져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인성산업이 뜨고 있다.

 

'그곳에 인성이 존재하고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한 수단만 있는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 발전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를 진짜 위협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계속 변화해야한다는 그 불안감과 초조함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인공지능에 먹히고 말 것이라고, 아주 강하게 우리를 목 조르고 있는데, 그래서 그 대안들이 결국 인간끼리 피를 빨아먹고 사는 지금의 형태와 무엇이 다를까? .....중략

 

우리는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에 행동양식에 대한 학습은 필요하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부모들의 교육이 부재된 상태에서 24시간 중 고작 1시간 노출되어 태권도장에서 행동양식을 학습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누구의 생각인지 우스운 노릇이다. 과연 태권도장에서는 어떤 인성교육을 실천해야 할까? 상당히 난해한 질문이지만 다르게 보면 어려울 것도 없다.

유년시절, 어떤 교육보다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장 13절).

 

태권도장만의 인성교육이 아니라 모든 어른들이 실천할 교육이자 사명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잘못 했을 때 안아주고, 가슴을 쓰다듬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인성교육이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이 아이들의 가슴속에 씨앗이 되어 스스로가 생각하고 고민해서 창의적인 인격체로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어른들의 무분별한 간섭이야 말로 인성을 해치는 고질적인 문제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인성자격증 100개를 갖는 것 보다 어려운 자질이다. 긍휼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는 것! 어른과 아이의 관계 속에서 그런 인성적 정의가 실현되면 세상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나조차도 아름다운 어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종종 인상을 쓰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지도자의 내면에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게 되면 태권도장이야 말로 최고의 인성교육의 산실이 될 것이다.

 

[글 = 정준철 관장| bambe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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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철
긍휼태권도장 관장

브랜드발전소'등불'대표
대한태권도협회 강사
TMP격파팀 소속
<도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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