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복되는 품새 판정 논란, 이제는 제도 개선을 논의할 때!

  

심판·선수·지도자 모두 불만… 구조적 제도 개선 시급

 

이봉한 부위원장 | KTA 품새심판위원회

태권도 품새대회가 끝난 뒤 경기장 곳곳에서는 어김없이 판정 논란이 반복된다. 승패가 갈리는 순간 환호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것은 스포츠의 숙명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승복보다 판정에 대한 불신이 먼저 나오는 현실은 분명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품새 경기에서 승패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선수에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흘린 땀의 결실이며 국가대표 선발과 진학, 나아가 선수 인생의 방향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결과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공정성과 신뢰가 담보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품새 판정 시스템은 선수와 지도자, 심판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안기고 있다. 선수와 지도자는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심판은 판정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서 경기를 운영한다.

 

심판들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대회가 열리면 하루 8시간 이상 경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맞교대 방식이라 하더라도 4시간 가까이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수많은 선수들의 동작을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과정에서 눈의 피로와 정신적 부담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국내 품새 경기가 토너먼트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나 아시안게임처럼 단독 수행 후 채점하는 컷오프 방식이 아니라,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경기를 펼치다 보니 심판은 제한된 시간 안에 두 선수의 수행을 비교·판단해야 한다. 선수마다 속도와 동작 타이밍,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순간적인 시선 차이와 판단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품새 채점은 정확도와 표현력을 기준으로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뒤 평균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선수 간 기량 차이가 분명해 보이는데도 정확도 0.1점, 표현력 0.1점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관중이나 지도자가 보기에는 큰 실수로 보이지만 규정상 0.3점 감점 사항에 해당하지 않아 작은 실수와 동일하게 0.1점 감점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지도자들은 "명백한 차이가 있는데 왜 점수 차이가 크지 않느냐", "큰 실수를 했는데 왜 정확도가 동점이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심판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품새는 수십 개의 동작으로 구성돼 있으며 심판은 이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면서 규정에 따라 즉시 채점해야 한다. 두 명의 선수를 동시에 비교하는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한두 개의 실수보다 전체 수행 과정에서 나타난 정확도와 표현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수행 수준이 전반적으로 비슷하다면 정확도 점수가 동일하게 부여되는 사례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결과가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충분히 설명되거나 설득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히 현재 정확도는 4점, 표현력은 6점으로 구성돼 있음에도 경기장에서는 정확도 판정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품새 경기의 본질적인 경쟁 요소인 속도와 힘, 조화, 기의 표현 등 표현력 평가가 보다 중요한 승부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상급 선수들 간 대결에서는 정확도보다 표현력에서 경기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문제는 1품새와 2품새 점수를 단순 합산하는 현재의 경기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1품새에서 벌어진 점수 차이가 2품새 결과를 사실상 결정해 버리는 상황도 나타난다. 심지어 2품새에서 더 우수한 경기력을 보여도 초반 점수 차를 극복하지 못해 탈락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선수와 지도자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도 승부를 뒤집기 어렵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현행 품새 판정 제도는 선수와 지도자, 심판 누구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선수는 결과에 의문을 품고, 지도자는 판정에 항의하며, 심판은 억울함과 부담을 떠안는다. 이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한계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품새는 태권도의 기술과 예술성이 집약된 종목이다. 그만큼 결과에 대한 신뢰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는 단순히 "규정이 그렇다"는 설명을 넘어 선수와 지도자, 심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경기 운영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반복되는 판정 논란을 줄이고 품새 경기의 공정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다음 글에서는 그 대안으로 필자가 제안하는 '라운드 승제' 도입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이 글은 외부 필자의 의견으로 무카스미디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이봉한 품새심판 = KTA 품새심판위원회 부위원장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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