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에 빼앗긴 '무예도보통지'… 아직 후반전 남아있다!


  

<무예도보통지>는 남한에서는 국가 문화재로 지정 안 된 상태 '유네스코 신청' 자격도 없어!

 

무예도보통지 [사진=태권도용어집]

지난달 북한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지역 유네스코 총회에서 등재를 승인한데 이어 세계기록유산으로의 등재에 성공한 것이다. 우선 세계가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무예도보통지>의 가치를 인정한 것은 기쁜 소식이지만 왠지 선수를 빼앗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예도보통지>는 1790년(정조 14년)에 국왕인 정조의 명령에 따라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이 힘을 합쳐 완성한 조선시대 무예의 완결판이다.

 

당시 군사들이 익혀야 했던 무예(武藝)를 그림과 글[도보(圖譜)]로 자세히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각 무예와 무기의 역사를 통찰하여 정리한 책[통지(通志)]이다. (그래서 <무예/도보/통지>로 끊어 읽어야 한다)

 

<무예도보통지>는 우리민족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쟁을 겪으며 반드시 필요한 무예를 정리한 무예서로서 1) 실전에서 효과가 증명된 무예만을 엄선하여 수록하였고 2) 중국과 일본의 무예도 필요하다면 첩자를 보내서라도 입수하였으며 3) 왕명에 의해 문인과 무인이 힘을 합쳐 완성한 ‘문무합작’의 서적이다.

 

임진왜란은 조선군과 일본군, 명군이 성곽과 들판 및 바다에서 뒤엉켜 싸운 치열한 국제전쟁이었다. 그리고 이를 틈타 세력을 키운 기마민족이 세운 청(淸)나라는 전쟁으로 지친 조선을 침략하였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이러한 피비린내 나는 실전을 겪으며 그 효과가 검증된 무예만을 수록된 것이다.

 

이러한 무예들에는 중국 전역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각종 창술과 맨손무예인 권법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본군의 장기였던 긴 칼 쓰는 법을 첩자를 보내 알아내어 왜검이라는 명칭으로 수록하였다.

 

또한 우리 고유의 검술인 조선세법과 예도, 본국검 등이 포함되어 명실상부한 동양무예의 완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마치 중국의 방대한 의학서적의 내용을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춰 확실한 효험을 본 것만을 정리한 <동의보감>과 비슷하여 ‘무예의 <동의보감>으로도 평가하기도 한다.

 

중국의 <기효신서> 등 다른 나라의 유명한 무예서적들이 대부분 특출한 개인의 저작물인데 반해 <무예도보통지>는 국가기구인 장용영과 규장각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적이다. 장용영에서는 무관 백동수가, 규장각에서서는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가 차출되어 TF를 구성하고 수많은 토론과 검증 끝에 만들어진 서적이다. 백동수는 당시 조선의 최고 무사로 정평이 나있었고 이덕무는 고전에 통달한 문인이었으며 박제가는 문인이면서 무과에도 급제한 무인이기도 했다.

 

이들이 작업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아마도 이덕무는 145여종의 무예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일일이 확인하며 문서작업을 하고 있고, 백동수는 뜰에서 무사 및 화원들과 동작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 것이 좋은지 상의하고, 박제가는 이들 사이에서 전체적인 총괄작업을 맡았을 것이다. 이들이 힘을 합했기에 정확하고 자세한 훈련법에서부터 각 무예의 기원에서 발전 역사까지 모두 종합한 동양무예의 백과사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정도 되니 유네스코에서도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점은 남한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여러 무예단체에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전승 및 복원하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보급해왔고, 일부 학자들이 <무예도보통지>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번역서도 여러 권이 출간된 반면에, 북한에서는 <무예도보통지> 관련 연구결과나 실기복원 내용이 알려진 바가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북한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무예도보통지>는 남한에서는 국가 문화재로 전혀 지정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때문에 유네스코에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소장기관에서의 신청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무예에 관한 총체적인 무관심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지켜온 ‘무(武)’에 대해 정부와 학계 모두 이렇게까지 무관심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무예관련 유산들은 소홀히 다뤄져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매우 아쉽기는 하지만 오히려 조선시대 무예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에서는 반갑기도 하다.

 

사실 <무예도보통지>는 민족의 공동자산이기에 북한이 전혀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족의 무예유산에 대한 남북 간의 선의의 경쟁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최근 우리 역사 상 알려진 최초의 무예서이자 <무예도보통지>가 계승한 <무예제보(武藝諸譜)>의 원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간 <무예제보>는 프랑스 동양어학당에서 소장한 것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왔고, 국내에는 마이크로필름으로만 전해져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무예도보통지>와 관련된 <병학통兵學通>이라는 병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한다. 이 책은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로 훈련을 받은 군사들을 조직하여 전투를 수행하는 방식을 다룬 진법훈련서이다. 이 또한 정조에 의해 편찬된 책으로서 <무예도보통지>와 <병학통>을 ‘이통(二通)’으로 부른다. 이들 서적에 대한 문화재 지정이 서둘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전승 및 복원하고 보급해온 무예단체들이 힘을 합쳐 세계무형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이를 정부에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보탰지만 정작 그 무예는 지방문화재 지정도 받지 못한 실정이다. 성곽 복원에 사용된 예산의 수십 분의 일만이라도 쓰인다면 <무예도보통지>의 국가무형유산으로서의 공식적 복원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무예도보통지>는 한중일 삼국 간 치열한 싸움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와 화합으로 나갈 수 있는 상징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다. 또한 민족의 공동자산으로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트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글 = 박금수 박사 | 십팔기보존회 사무국장 / 서울대 체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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