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트 세계] 자동차에 목숨을 싣고… 스턴트맨의 사명

  

양길영의 스턴트 세계 - 세 번째 이야기


양길영 감독

나는 뭉실뭉실하지만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스턴트맨이다. 내 이미지와 잘 맞게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액션은 자동차 액션이다.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고난도 액션을 자랑한다. 남이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존경하는 스승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자동차 액션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칭찬을 들었을 때이다. <세상 끝까지>라는 작품을 하고 있을 당시. 정두홍 감독은 국내에 없었다. 그런데 어떤 장면을 촬영하는데 그 제의가 내게 왔다.

그 장면은 차를 타고 물속으로 빠지는 신이었다. 사실 제작진에게는 내가 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촬영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에 빠져 있었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액션이기 때문이다.

촬영을 며칠 앞두고 핸드폰이 내 허벅지를 흔들었다. 진동이었다. 왠지 모를 걱정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방송국 제작 책임자였다. 그가 말하기를 “감독이 물에 빠지는 신을 촬영 하자고 해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라”는 전화였다.

방송 제작자가 보기에도 위험한 신이라고 보고 있었다. 특히 두 분의 스턴트맨 선배가 차를 타고 물에 빠지는 장면을 촬영하다 유명을 달리한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고위험률이 크다. 순간 움찔했지만 난 "저는 자신 있습니다"라고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렇지만 전화기를 쥐고 있는 내 손은 땀으로 흥건했다.

걱정되기에 나름대로 물에 빠졌을 때의 상황을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어느 정도 깊이에서 자동차 문이 잘 열릴까? 자동차의 전기장치는 몇 분 동안 작동할까? 또한 자동차 안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지? 하는 등 별의별 생각들로 머릿속이 깜깜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린 촬영 당일.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꾼 시간에야 촬영이 시작되었다. 새까만 물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 조명 빛을 비추어도 물속의 어둠은 그대로였다. 두렵고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98년 그 당시에 공포를 소재로 한 <이야기 속으로>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꼭 그 프로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물속에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촬영 바로 전, 심장이 쿵쾅쿵쾅 급하게 뛰기 시작했고 담배를 반 갑이나 피울 정도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물속에서 차 문이 열리지 않을 때를 대비해 유리창을 깰 망치까지 준비해 두었지만 무섭긴 마찬가지. 하지만 “못하겠다”는 소린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꼭 해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준비해달라는 제작진의 목소리에 숨을 크게 한 번 ‘휴~’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큐!” 소리와 동시에 나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무사히 탈출…. 성공. 두려움 뒤의 쾌감. 그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저 심장이 수류탄처럼 ‘쾅!’ 하고 터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촬영 후 정두홍 감독을 만났다. 다짜고짜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라고 꾸짖었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 뒤에 “그래 그러면서 배우고 크는 거야”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며 정 감독을 바라보았다. 이게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칭찬이었다. 그 뒤에도 몇 번 더 물에 뛰어든 장면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장면은 내가 국내에서 최다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한 참이 지나 같은 장소에서 영화 <하면된다>를 촬영하게 되었다. 원래는 후배가 하기로 되어있는 것이었지만, 경험이 없는 후배여서 내가 하겠다고 했다. 이날은 낮에 촬영하기로 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문제의 자동차 액션장면


카니발을 타고 물속으로 점프하는 신이었는데, 자동차 액션 경험을 많이 가진 나는 자동차를 보자마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왠지 차 앞 유리가 깨질 것 같았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나는 눈을 감고 그 상황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큐~” 사인이 떨어지고 물속에 점프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차가 물에 닿자마자 앞유리가 깨지면서 물이 들어오고 뒤집혀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순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는 방향 감각을 잃고, 미리 준비해 놓은 호흡기마저 찾지 못했다.

그 긴박했던 순간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정신 차리자!”라며 나를 깨웠다. 촬영 전 해본 이미지 트레이닝을 떠올렸다. 다행히 물 한 바가지 정도 마시고 공기통을 찾아 호흡기를 물고 차가 바닥에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차가 바닥에 닿는 게 느껴질 무렵 나는 차 문을 열고 안전요원으로 대기하고 있던 잠수부와 물 밖으로 나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그 뒤에 잠수부도 “죽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는 가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을 해본다. 스턴트맨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장면을 성공해 낸 뒤의 쾌감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멋진 배우들의 가려져 있는 스턴트맨이지만 나는 내 직업에 만족한다. 우리가 없으면 명장면은 탄생할 수 없다.



[정리 = 조세희 무카스 대학생기자 / sehee1113@nate.com]

* 무토 액션스튜디오 양길영 무술감독의 스턴트 세상은 격주 화요일에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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