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이야기] 윤병인의 일본 유학과 서울 정착 과정

  

일본 유학시절 수련


YMCA 앞에서 윤병인


1938년 윤병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의 니혼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니혼대에서 1939년부터 1941년까지 농학(colonial agriculture)을 전공했다. 그 때 가라테의 명인 도야마 간켄을 만났다.

윤병인이 만주에서 배운 권법시연을 보고, 도야마 간켄은 무예 교류를 희망하였다. 도야마 간켄도 1924년에 타이완에 건너가 타이베이의 쪈포지[陳仏濟]와 타이중의 린시엔탕[林獻堂] 7년간 권법을 수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동질감이 작용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교류가 가능했던 것은 도야마 간켄의 대인배와 같은 마음 씀씀이가 큰 탓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윤병인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윤병인은 니혼대 가라데테부 ‘사범’이 되었다. 이에 대해 가라테부 ‘주장’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권법부 출신으로 강덕원 창설자인 박철희는 학생들 간의 리더격인 주장과 선생격인 사범인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사범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윤병인은 도야마 간켄으로부터 가라데 4단을 받았는데, 당시 도야마 간켄은 가라데 5단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63년에 간행된 도야마 간켄의 '공수도대보감(空手道大宝鑑)'에는 5단 이상 사범 명단에 윤병인의 이름이 보인다. 아마도 후에 조선으로 돌아오기 전에 5단으로 승단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당시 일본에는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유학을 했었는데, 도야마 간켄에게 배운 조선인 제자로는 김기황(1921~1993)과 윤쾌병(尹快炳, 1923~2005) 등이 있다. 김기황은 대학교 후배로 윤병인을 형님으로 모시면서 그로부터 무예를 전수받기도 했다.

김기황은 윤병인과 토조산 형을 많이 연무했던 것으로 중앙기독교청년회(YMCA)권법부 출신의 박철희는 기억하고 있다. 대구연무관을 운영하기도 했던 김기황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무예를 보급하기도 하였다.

주오[中央]대학에서 병리학을 전공한 윤쾌병은 원래 이름이 윤희병(尹曦炳)으로, 1945년 일본에서 한무관(韓武館)을 창설하였다. 한무관은 현재 사단법인 전일본공수도연맹 렌부카이[鍊武會]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 돌아온 윤쾌병은 조선연무관권법부의 파생관인 지도관의 관장으로 취임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1950년부터 서울대 수의대, 건국대 축산대에서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태권도협회가 설립된 후 1969년부터는 일본에서 야쿠르트를 들여와 한국야쿠르트사를 경영했다.

윤병인은 동경YMCA에서도 무예를 수련했는데, 이 당시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였던 최홍희(1918~2002)도 이곳에서 가라테를 배웠다. 시중에 나도는 글 중에는 윤병인과 최홍희가 같이 수련을 했다고 하여 동료처럼 서술한 글이 있기도 한데, 당시 최홍희 총재의 가라테 수련이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윤병인으로부터 배우는 입장이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1959년에 최홍희가 펴낸 󰡔태권도교본󰡕을 보면,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전진후퇴를 하면서, 수도와 수도, 안손목과 안손목, 바깥손목과 바깥손목을 부딪치는 훈련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데, YMCA권법부에서 가르치던 칠보대타와 관련 있어 보이는 기법들이다. 박철희는 최홍희가 윤병인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증언을 했는데, 아마도 무예 수련과 관련해 정착된 서열로 여겨진다.

해방 후 서울에 정착하다


1946년 난지도에서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해 항복을 선언한 후, 윤병인도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형인 윤병두를 제외한 모든 가족은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다. 윤병두는 1946년부터 1950년 사이에 북한 의용군에 입대하였다.

청량리에 정착한 윤병인은 경성농업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으며, 이후 경동중학교로 옮겨 가르쳤는데, 경동중학교에 재직할 때는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지낸 김운용이 수업의 일환으로 권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후에는 건국대학교 학생과장으로, 다시 성균관대학교 학생부 처장으로 교직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윤병인은 1949년 임승덕과 결혼해, 1949년 12월 5일 딸 윤영숙을 낳았다.

교직원 생활 중에도 윤병인은 조선연무관권법부에서 사범으로 6개월 정도 가르쳤다. 조선연무관에 권법부를 창설한 전상섭이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윤병인은 연무시범을 보이기도 했는데, 박철희의 기억에 의하면, 지금의 동대문운동장인 서울운동장에서 장권과 팔기권 등을 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경농 18기’라는 별명으로 소문이 났었는데, ‘경농’은 경성농업학교를 줄인 말로, ‘18기’는 가라테보다는 만주에서 배운 무술의 비중이 높았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1946년 9월 1일 YMCA에 권법부가 설립되면서 사범을 맡아서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수련은 오후 4시 30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수련생이 5백 명 정도 되었지만, 강도 있게 가르치다보니, 3개월이 지난 후에는 1백 80명으로 줄었다.

윤병인은 직업이 교사였기 때문에 수업 끝난 후에 청량리에서 종로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려 종종 지각을 하곤 했다. 윤병인은 동작에 대한 설명을 거의 하지 않고 가르쳤는데, 이 때문에 제자들도 동작의 정확한 명칭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기황도 당시 YMCA에 교범으로 있으면서 발차기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제자들은 윤병인과 대련을 하면, 상대방이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구석에 몰려 있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였다.

윤병인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경호원이 되어 줄 것을 요청받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절했는데,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오른손을 들어 경례해야하는 것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입은 화상으로 오른손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없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한번은 당시 육군 참령(소령)이었던 최홍희가 윤병인에게 “형님 국방경비대에 와서 좀 지도 좀 해주십시오”라고 하니 윤병인은 “안 해, 자네가 참령(지금의 소령)인데, 내가 어찌 참위(지금의 소위)달고 가르칠 수 있어”라고 하며 거절하기도 했다.

[글. 허인욱 전문위원 / heoinu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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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의 모체는 가라데

    부정 할수 없는 진정한 역사적 사실

    2011-05-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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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붕어빵 모지리

    똥 ..개가 겨..개나무란다더니 일본놈들 욕할때는 절라 하면서 이런건 절때 인정안하지 ㅎㅎ 그러니 인간은 다 똑..은 인간이지 누구 하나 잘난인간 따로있는 줄아남 붕어빵하고 붕어빵하고 싸우면 누가이기게?????????????????모지리 ㅍ ㅎㅎㅎ

    2011-05-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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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님

    이 멍충아라고요? 그거참 사람에 인격을 무시하면서 너도 대접받길 바라냐???
    너나 코찔찔이 찌질이 마냥 초딩처럼 글쓰는 인격을 보니 알만한 놈이네

    2011-05-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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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뚜

    끽도님 사범교육할때 인정하고 교육하는데 도장에서 가르칠때는 왜 거짓으로 가르치나요? 그건 사기 공정거래법 위반아닌가요? 우리정통 무술이라고 거짓 과장광고요...합기도는 일본 아이키도라고 하면서....외국에서 보면 현다이 끼야 자동차 일본 회사인줄 압니다 두회사 자존심 그런것 없습니다 고객들이 한국보다 일본이라는 브랜드로 알기 바라는것 같습니다...

    2011-05-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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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

    itf는 인정함... 이 멍충아.. 국기원에서 사범교육할때 다 인정하고 교육한다 .. 코 찔찔질 흘리지 말고,.,.

    2011-05-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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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f는 인정함

    태권도를 작명한 최홍희쪽은 이미 태권도가 가라데에 기반하여 어쩌구하여 만들어졌다고
    가라테 기원내지 유입을 밝혔고 인정했지 wTF, 국기원, 대태협만이 이를 부인 2000천년 역사 어쩌구 하며 대충 넘어감 암튼 지금은 태권도 정신도 ITF, 국기원(WTF)쪽 이 서로 상이하다

    2011-05-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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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인

    대한민국, 대만, 일본, 필리핀, 미국은 모두 태평양 해양 세력에 포함된답니다. 시야를 세계적으로 넓게 가지고 글을 읽으세요. 윤병인 선생님께서 만주에서도 무도를 수련하셨다고도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까 ?

    2011-05-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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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뚜

    원로 무술가들은 전부 엘리뚜 들인데 요즘 무술가들은 전부 운전기사라 참 존경스럽습니다 원로 무술가님들 나도 엘리뚜가 되고싶다

    2011-05-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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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r

    태권도기원은 가라데가 맞네..뭐...

    2011-05-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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