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 칼럼] ‘나’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발행일자 : 2011-03-28 09:22:56
<글 =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 소장>

품새에서 주체로서의 ‘나’
품새선 방향 기호는 ‘가’에서 ‘마’로 오행(五行) 과정이다. 그 중 ‘나’ 방향 기호는 의미가 깊다. 품새를 행하는 자의 시작점을 ‘나’위치(방향)라고 한다. ‘나’는 행하는 본인이 서 있는 곳이므로 ‘나’로 표시하고 ‘나’의 위치에 대해 앞 방향을 ‘가’로 표시한다. ‘나’는 하나는 위치를 뜻하고, 다른 하나는 행하는 자, 즉 주체를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품새선 상의 ‘나’의 함의는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시종(始終·시작과 끝)의 위치지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 즉 자기(self)를 함의하는 것이다. 도대체 ‘나’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 품새를 수련하기 위해 ‘나’위치에 들어서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이 화두를 붙들고 우리는 품새 수련 시 ‘나’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닦음이요, 깨달음을 갈구하는 구도(求道)의 길이다. 하나의 품새를 두고 수백, 수천 번 반복하여 단련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을 듯하다.
품새에서 ‘나’란 화두는 수련자의 마음가짐이 핵심이다. 바로 내가 ‘나’라는 개념의 정체성을 확고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남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철학자들이 이천 년이 훨씬 넘게 ‘자아’를 이야기했고, 보통 사람들도 누구나 자기 스스로를 지칭하는 의미로 ‘나’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는 저항의식을 지녔던 것이다. 그는 ‘나’라는 단어의 사용에 큰 어려움을 느꼈다.
그가 인식하고 있다고 믿는 “나는 일정하게 규정되고 그래서 다른 것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불변적인 단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것은 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연구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시도했으나 ‘나’ 즉 ‘자아’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실패했다. 자아는 실체를 지닌 존재가 아니었고, 상상에 불과하였다. 흄에 의하면 이러한 ‘나’에게 구원이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나’는 ‘모든 감각의 총집합’이라는 생각 정도였다.
심리학자들은 ‘나’라는 개념을 피하고, 그 대신에 ‘자기(self)’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자기’라는 개념에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하고 결단을 내릴 때에 그 중심이 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독자적인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상으로서의 나(me)'와 대립되어 쌍을 이룰 때에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는 행동하는 주체이고, ‘대상으로서의 나’는 평가하는 주체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라는 개념을 선호하고 남과 다르다는 자기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나’란 남과 구분되는 정신성의 차이를 내세울 수 있다. 우주의 도처에는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는 생명의 흐름이 있다. 어디에서 생명이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인가는 인간의 의식에서 영원히 숨겨진 일종의 신비한 영역이다. 생명 그 자체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 무한한 연속이다.
‘나’와 ‘남(他人)’을 아우르는 개념인 ‘인간’은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또 무엇 때문에 태권도를 수련하는가? 태권도 품새 사상은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났으며(태극 품새), 자연은 바로 큰 변화의 흐름이 경계이고, 우리는 자연에서 고갈되지 않는 생명의 기운을 얻어 쓰고 있다.
‘나’란 자기를 말한다. 자기라는 것은 특정한 인간으로서의 나와 동일시되는 속성의 집합체이다. ‘나’자신이란 나의 신체이며, 나의 기억이며, 나의 성격이며, 나의 공포심이며, 나의 자질 등. 남의 눈과 나 자신의 눈에 나의 사람됨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모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인간은 자연과 둘이면서 하나가 되어, 생명 전체는 더욱 서로 융화하고 교섭할 수 있게 된다. 일관된 도(道) 안에서 내재하는 생명과 외재하는 환경은 서로 부드럽게 융화되어 조화를 이룬다. 나아가 인간의 본성은 천지의 창조적인 변화에 근본을 두고 다양한 특성과 중요한 사명을 지닌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인 것이다.
우리는 정신적인 창조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품새를 수련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자신의 모든 잠재적인 정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연에서 얻은 그 생명을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완성해야 한다. 그 과정이 유단자용 태극인 품새를 두고 인간적 세계관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창조적 노력으로 완전한 이상적 경지에 올랐을 때 인간은 이상적인 완전한 인격, 즉 전인(全人)이라 불릴 것이다. 이상적인 인격은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한 옹호이다. 태극인 품새는 인간과 인간 그 자신의 관계이다. 하나의 품새를 수백 번 수천 번 숙달해야 하는 어떠한 고난도 굳게 참고 견디어, 이를 극복하고 더욱 노력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위대함을 이룬다는 것은 곧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좁게는 품새를 고되게 숙달하고자 하는 단련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17단계의 품새는 “자연”이라는 환경 아래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알도록 한다.
노자(老子)는 말한다.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을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고 하며,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화(敎化)라고 한다. 이럴진대 우리는 고귀한 인간성의 이름 아래 생명 이상을 완성하는 정신의 위대한 성취를 위해 ‘나’란 도대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나는 누구인가?”란 선(禪)불교의 “이뭣고”라는 화두와 통하고,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소크라테스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품새 수행 중 “얏‘하고 외치는 기합은 결정적 순간에 “발성(소리)을 통해 호흡을 조절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흐트러진 얼(기)을 바로 잡아 주는 외침인 데 그것은 형이상학적 의미로 불교에서의 ‘할’ 즉 가르침을 위해 꾸짖는 소리와 같다. 그 소리를 통해 기합을 넣는 스스로가 놀라 ‘참나’ ‘깨달음’을 얻는 방법과 같다.
품새에서 위치설정으로서의 ‘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주고, 체험주체로서의 ’나‘는 나의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인상과 나의 내면에서 형성된 감정은 실제로 나에게 고유한 것으로, 남의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주체적이고 통제적인 ’나‘는 나의 사고와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명백하게 해주는 주체가 된다.

[글.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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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의프레임을벗어나지못하면.옵션하라.그것이자기자신과의싸움의열쇠이다..
2011-04-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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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라면.큰행운이다.그것은큰자산인시간을갖고있기때문이다..자기자신을프레임옵션3.하라..
2011-04-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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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을알때.왕따가돼는것은.큰행운이다...디퍼런트속에보이지않는차이를알게됄것이다.밑바닥에있을때.낙담하거나좌절하지말라.자기자신을알면목표와.리딩으로리드하면.실행은답이다..
2011-04-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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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퍼런트는.디퍼런스를갖게돼고.다름을이해할때.자기자신의디퍼런트를알게돼는것이기에..다름을인정할때자기자신을,디퍼런트할수있다.디퍼런트가싫다면결과적으로.자기자신과.상대방의경쟁관계속에서평범을맞이할수밖에없다..디퍼런트할때..이다..
2011-04-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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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퍼런트해야.몇년전.박근혜한나라당의원을티비에서보고.무조건짜증내거나싫어하는사람들이리서치조사는잘모르지만있는듯한뉴스보도.일상흔히처음보는사람보고말한번붙여보지않고.짜증내는표정이나신경질적표정은상대방을우습게보는것이아니라.역으로.이상형미남이거나.미인이기에.수준적이상형한계의눈으로보기에전두엽에전두전야가조절이안돼는행동이다.강박적심리이다.여성의경우만약이상형의상대방을처음보고.호감을갖는행동은고학력자일수록많다.처음보는사람이.이상형이라면짜증내는표정싫어하는표정은이미두뇌가상대에게잡힌결과로.짜증내는표정에서이미이상형의수준의바로밑단계에많은사람을찾는것이심리적현상으로욕구를해소하려는실천경향이클수밖에없다남여모두같은심리적요인이다.과거노정권당시.대통령을보고짜증내고싫어하는사람이있다는표현은다름이아닌국민들의심리적반영의표시로볼수있다.
2011-04-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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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읽고.아니더라도.참지금부터.나이먹어서.아래막기동시에주먹치고발차기겨루기.방식을연습하는깨달음을.이제태권도.6단-7단돼서이제내글을보고알았다면.그냥집워치고.원래하던대로하는프레임이.나을것이다...넛지보일수있기때문에.많은태권도인들에대한,배려의마음으로써.글을쓰고싶다.
2011-04-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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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걸고.주먹치고발차기훈련에서.보다자기자신의프레임을찾는훈련이.자기자신을현재태권도란프레임품세.태권도겨루기에서.프레임의자기자신의모습을.찾을듯하다...물론훈련이꽤까다로울밖에없는것이.아래막고동시에주먹치고발차기훈련이지만..중학교1학년정도부터훈련해서.어른이돼나이40세가돼도깨닫지못하고전국대회에서.1등태권도메달은무의미해진다.아래막기동시주먹치고발차기깨달음을알때진정한.태권도의금메달이라고생각한다면.이미.2가지종목을아는것이돼기에.깨달음은쉽지않을것이다..본연의자기자신의프레임속에서.넛지로이어지는모습에서.배려의한마디로하고싶은이야기다...그럼..
2011-04-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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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겨루기가.발차기에의해득점이.이뤄지는것을.하나의룰이라면.발차기시.아래막기시.주먹을치고발차기를하면안좋은듯이야기하던시대를현재태권도가만들고있다는것이.또하나의프레임이품세이듯.아래막기동시에주먹을치며발차기를하는것자체가국가대표조차도안한다는것이.요즘태권도훈련체계의.프레임으로자리잡힌듯하다.자기자신을볼때보다더.직선적.서양적모습으로보는.모습의한국태권도에서.전체그림을보고.세밀한모습을보아도자기자신의모습이보일듯하다..
2011-04-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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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극강-유-부드러움으로써.강함을제압해야한다.강하고큰집채만한바위를산위로올릴순없지만.바위를강한물결로써.산밑에서바위를힘안들이고.내려보낼수있다.즉부드러움은강함을.이기는요소이자.무형의최고의형이다.보이지않는형이가장최고수의형이다...품세눈에보이는것으로만모든것이있다고보면.최고의형을찾을수없다..즉현실세계에서밝혀진것이50%가진실이다.나머지50%는과학적으로도밝힐수없는진실이숨어있다.보여지는품세도보다.무형의것을알아..유를알수있다.그것이.이유극강이다
2011-03-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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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에서장기적으로성공하고싶다면.남에게배신당하더라도.자기는배신말아야한다.남을배신하는사람이성공하더라도.모든태권도인들99%는성공법칙을우선시한다.한국사회역시.성공법칙을우선시한다.그리고성공법칙에집착하는한국사회다.그래선안됀다고본다.성공법칙보다.절대성공법칙으로한국사회와태권도인들의사고방식은바뀌어야한다고본다.모든요소에서한국사회는변화해야한다.모든일이의미있다고보면세상을보는각도가다르게보게됀다그것이보이지않는퀄리티수준이다.그것이바로나는승리한다.그러나만약이길수없더라도용기를잃지않고도전하는것이.성공법칙과다른절대성공법칙인것이다.-.장민철의전략병법중-
2011-03-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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