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태권도 겨루기 기술이 퇴보하고 있는 이유

  


지난 13일. 종주국을 대표할 태권도 국가대표 16명이 최종 선발됐다. 예년과 달리 국제대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림픽 파견 선발전 수준으로 선발방식을 대폭 강화됐다. 체급별 최우수선수 3명이 리그전방식으로 치러졌다.

기자는 태권도 전문기자 이전에 10년 넘게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적어도 경기의 흐름과 기술, 득점 변별력 정도는 누구의 조언 없이도 이해와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이번 대회를 취재한 결과 부분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더욱이 2년 넘게 외국생활을 한 터라 그동안 태권도 경기규칙과 기타 환경이 많이 바뀌어 이번 대회에 큰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

‘별들의 전쟁’이 될 것으로 크게 기대했으나, 경기내용은 실망스러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선수들의 기량이 기대 이하였고, 둘째는 전자호구로 인한 선수들이 기술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오는 경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지난 아시아선수권대회와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최근 국제대회에서 저조한 실적으로 구겨진 종주국의 체면을 만회할지 의문이다.

우열을 가려 최종 국가대표가 선발됐지만, 종주국을 대표하는 최상급 선수라고 자부할 만한 인물이 몇 명 안 됐다. 다시 말해 국제대회에 출전해 경쟁력이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지, 기자 개인의 생각만이 아니라 대회 관계자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번 평가전만 놓고 보면, 여자부는 국내 최정상급 선수들이 맞느냐고 할 정도로 실력이 떨어졌다. 본격적인 대회기간이 아니어서 몸이 굳었다고 보더라도 실력이 기대 이하였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기술과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적시에 결정타가 부족했다. 일부 선수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들도 고민에 빠졌다. 이번 선발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으로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기장 곳곳에서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문제도 발견됐다. 경기기술이 퇴보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전자호구 때문이다. 심판판정의 공정성을 위해 도입된 전자호구가 태권도 기술의 정체성까지 뒤흔드는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후려차기, 반달차기, 옆차기, 밀어차기 보통 태권도 경기에서 볼 수 없었던 발기술이 이번 경기에 자주 등장했다. 재미와 흥미, 박진감은커녕 태권도 경기가 난잡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나같이 지도자는 선수에게 이 난잡한 기술을 주문하고, 선수는 곧장 실행에 옮기는 것이 반복됐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 한 가지.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선수들도 더욱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발기술을 사용하고 싶지만, 그러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전략은 전자호구가 가장 득점을 잘 인정하는 기술로 세워졌다.

여자부 경기는 아예 몸통득점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대다수 선수가 얼굴을 공략했다. 심지어 상대와 붙을 때 몸통 방어를 포기하고 얼굴만 방어하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다. 공격하는 선수가 양손을 엇갈려 얼굴을 가리는 웃지 못할 방어도 눈에 띄었다.

태권도 경기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차지하는 몸통 득점도 사라졌다. 여자부 1차(체급별 A-B 경기) 경기의 8경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몸통 득점은 총 4회에 불과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뒤차기 기술도 2점이 부여되는데도 득점 인정률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대부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몸통보다 얼굴기술에 초점을 맞춰 훈련과 전략을 세웠다는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하였듯 몸통 기술은 잘 맞아도 운이 좋아야만 득점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경기가 끝날 무렵 한 태권도 지도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태권도 경기가 기술과 파워, 스피드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얼굴 기술을 잘 활용하는 선수가 승리하는 유연성 게임이 되고 말았다”며 “이 모든 게 전자호구 때문이다. 심판판정도 중요하지만, 태권도 경기기술을 퇴보시킬 뿐만 아니라 기술발전을 저해시키는 주범이다”고 전자호구에 불만을 토로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2연패의 한국 태권도의 간판스타 황경선의 주특기는 몸통 돌려차기다. 찼다 하면 정확하게 상대 복부에 적중되면서 득점으로 인정됐다. 이에 반해 얼굴 기술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전자호구를 대비해 얼굴기술을 다양하게 연습했다. 예상과 결과가 적중했다. 강력한 경쟁자인 박혜미(삼성에스원)를 얼굴기술 승부를 결정지었다.

황경선은 국가대표 선발 직후 인터뷰에서 “국가대표에 선발됐지만, 만족할 만한 경기는 뛰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화려한 기술을 많이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먼저 이겨야 하기 때문에 전자호구가 득점으로 잘 인정해주는 기술만 사용했다”고 경기내용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가뜩이나 태권도 경기는 “재미없다”, “박진감이 떨어진다”라는 대중들의 따가운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기술 난이도에 따라 최고 4점을 주는 득점 차등화가 도입됐다. 다양하고 화려한 기술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전자호구 경기에서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태권도 경기기술이 퇴보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걱정이다.


[한혜진 기자 =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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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

    스포츠화된 겨루기
    정말 답답 ㅠ_ㅠ 전통방식의 겨루기가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약간의 룰을 변경해서 그리고 그 방식을 국내에서 리그전으로
    한다면 충분히 재미도 있고 인기도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데..ㅠ_ㅠ

    2011-03-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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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희

    경기률과 불량전자호구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에는 발등에 닫기만해도 점수를 주었고 지금은 잡고 내려차기도 아니고 무슨 발차기인지 모르는 기술로 얼굴만 스쳐도 점수를 주기 때문이고 또한 선수들이 충분한 힘과 기술로 뒷차기나 턴을 차도 전자호구의 문제 때문에 점수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요즘 그런 이상한 기술들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전자호구 누구나 믿고 기술상의 문제가 없는 제품으로 하루 빨리 선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얼굴이지만 내려차기는 차등점수가 아닌 1점으로 해야 잡고 차기등 이상한 기술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2011-03-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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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

    예견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파워도 없고 그냥 얼굴에 갖다 대는 태권도 발차기 기술을 보면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해외사범으로써 저역시 참 답답합니다.
    저역시 해외에서 선수를 가르치면서 한국선수들이 참 잘한다 싶었는데 사실 제 눈으로 보면서 저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준이하 ... 앞으로 한국 태권도 추락만 남았다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선수들 겁내지 않을것 같습니다..전자호구 덕에.. 한국체형에는 전자호구 는 한국태권도는 희망이 없다고 봐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일찍감치 실전태권도를 가르치려합니다.

    2011-03-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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