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 칼럼] 최석남의 권법교본, 5년 만에 빛을 보다

  


이경명 소장

최석남(崔碩男)은 이 한 권의 ‘권법교본’(1955)이 완성되기 까지 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지휘관으로서 부하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자 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간 나는 이 무술계의 귀재(鬼才)인 엄운규(嚴雲奎)군과 같이 각 전선에서 복무하고 권법보급을 위해 미력을 다해 권법교본을 엮을 것을 그에게 약속했다. 그러던 중 명(命)에 의하여 약 1년간 미국에 수학 차 건너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권법의 열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군과 같은 권법의 위재(偉才·훌륭한 재지)가 계속 다수 배출되어 한다. 그래야 한국청년의 기개를 온 누리에 떨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권법이 이미 삼국시대부터 성행했다. 역사와 더불어 성쇠는 있었을망정 우리 선민(先民·선대의 사람)들에 의해서 무술로서 혹은 호신법으로서 그리고 심신단련법으로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술은 육성해되어져 왔다(自序에서).

이 책에는 세 사람의 서문(序文)이 보인다. 참모총장 육군대장 정일권, 육군교육총본부 총장 육군대령 유재흥 그리고 통신감 육군준장 한당욱 등이다. 그들은 ‘청년들의 기개(氣槪)와 우리 무술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일권은 “강인하고 탄력성 있는 육체는 유사시 백을 대항한 일의 힘이 될 것”임을 강조했고, 유재흥은 “우리 한국 청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관이고 진취성이며 용감성인 것”이라고 또, 한당욱은 “배달민족의 역사와 청년들의 군사 무술에 대한 과학적 체계를 연구하여, 마침내 고구려와 신라의 대표적인 무술이었던 ‘권법’을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 엮어 내놓으니~(생략)” 등이다.

최석남은 책을 낼 무렵 육군대령이었다. 그의 책은 8·15 광복 후 두 번째로 간행된 무예서이다. 권법과 당수 서론에서, 권법이란 개인법이다. 가장 적은 힘을 써서 가장 많은 성과를 얻는 무술을 말한다. 당수(唐手)나 공수(空手)는 다 왜어(倭語)로서 ‘가라데’의 한자표시다.

우리 권법이 처음으로 일본으로 수입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충승인(沖繩人) 후나고시기친(富名腰·1868~1957)이라는 자가 왜도(倭都) 동경에 도항(渡航)하여 처음으로 권법을 주로 동경대학, 경응대학 학생층에게 보급시킨 것이 그 효시이며 연대로 따지면 불과 3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2쪽).

우리나라에서 오늘과 같은 체계적인 권법이 보급된 것은 벌써 삼국시대의 일이다. 고구려의 각저총 벽화와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반부조금강역사탑(半浮彫金剛力士塔)이 그것들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금강역사를 금강권보살(金剛拳菩薩)이라고도 하여, 그가 행사하는 힘의 방법을 금강권이라고 부른다(7쪽).

지은이는 권법의 역사성을 강조하며 화랑도와 권법, 불교와 권법, 고려무사와 권법 등 자료를 인용하며 서술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의 권법계 편에서는 광복 후 초창기 원로들의 이름과 당시의 활동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권법의 가치에 대해 경제적인, 체육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신적 측면에서 권법에는 먼저 손을 댄다는 법은 없다, 모든 품새(形)들이 방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권법은 불교와 깊은 결합성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무(無)의 경지는 권법의 묘기에 통한다고도 했다.

권법은 겨루기(對鍊)에 앞서 품새를 완전히 배우고 단련하면 충분한 것이지만, 겨루기를 실시함으로서 더욱 권법에 대한 흥취를 돕게 하는 것이라 한다. 겨루기를 할 때에는 대담해야 한다. 상대자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불허이기에 언제나 침착하고 기민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그때에는 오늘날 등한시하고 있는 ‘인체의 혈(급소)’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었다. 무릇 권법을 배우는 사람은 혈(穴)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야한다. 권법이란 가능한 최소의 힘을 들여 최대의 성과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혈은 신경의 집중부위이기 때문에 그 타박 여하에 따라서는 생사가 좌우된다.

이같이 우리는 지은이가 한 권의 ‘권법교본’을 내기까지 많은 연구를 하였다는 것을 노력의 흔적을 보며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권법의 기원이 우리 고유의 무예사(武藝史)에 유래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교본에서 보이는 황기의 ‘수박도’나 최석남의 ‘권법’ 등은 이름이 다르긴 하나 그 뿌리는 하나이다. 예부터 뿌리내린 한민족 무예의 정신과 기법이 시대에 따라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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