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다이어리] 온통 영어뿐… 운전면허시험 도전하다

  

미국 마이애미 운전면허 시험 도전기


더 이상 미국 버스를 탈 수 없었습니다. 견디기 힘들었죠. 미국에 올 때부터 강상구 관장이 자동차를 가장 먼저 준비하자고 했었기에, 더 이상 운전면허 취득을 미룰 수 없었죠. 버스 생활 두 달여 만에 운전면허 예상 문제집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FLORIDA DRIVER LICENSE’라고 쓰인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영어였습니다. 그간 영어와는 동떨어져 있던 제게 이 책은 ‘심각한 도전(challenge)’이었죠. 어떻게 하나, 고민하면서 멍 하니 방 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아누나(박정아, 강 관장의 아내)와 강 관장이 했던 말이 떠오르더군요.

“4년 전에 제가 시험을 봤을 때 나왔던 문제들로 정리해 봤어요. 그리고 체크해 놨어요. 대길 씨한테는 쉬울 거예요.(정아 누나)”. “정아야,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이런 거야 뭐 얘들 장난이지 빨리 시험 봐서 따(강 관장)”. 하늘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압박 정도가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죠. 너무 머리가 아파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강 관장의 일 처리는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저희 TNT FEDERATION의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스티븐 존(Steven John)이 저의 운전면허 시험 접수를 완료했다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마스터 DJ(저를 부르는 미국식 이름). 시험 준비 되면 얘기해요. 보러 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저는 당당히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아무 때나 가능합니다.” 제 실수였죠. 태권도 마스터는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괜한 자기 자랑이었습니다.

스티븐이 대답하기를 “그럼 이번 주 금요일에 보러가죠”라고 하더군요. 본의 아니게 등 떠밀리듯 저의 운전면허 시험 ‘D-day’가 정해졌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LA나 뉴욕, 워싱턴, 애틀란타 등지에서는 한국어로 운전면허 시험을 본다고 했기에 “스티븐, 혹시 한국어로 시험 볼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그의 대답은 “스패니쉬, 영어, 프렌치는 있습니다”였죠. 이건 빼지도 그렇다고 박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집으로 오자마자 미친 듯이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랍어처럼 느껴지던 단어들이 점점 영어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운전면허 시험 영어 용어라는 것이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루 꼬박 예상 문제집을 독파했습니다. 대학교 수학능력시험 이후로 이렇게 집중해 보기는 오랜만이었습니다.

미국 운전면허 시험장

드디어 시험 당일 아침. 스티븐의 차를 타고 비스케인(Biscayne)에 위치한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았습니다. 흑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그 동네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다는 스티븐의 분석 때문이었죠. 마이애미 경찰로 정년퇴임한 그는 제 미국 적응에 큰 도움을 주는 존재였죠.

온통 흑인들 뿐 이었습니다. 백인은 없었고, 동양인이라고는 저 뿐이었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몇몇 검은 무리들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서는 문을 박차고 나오더군요. 반대쪽 문 앞에서는 경비들과 흑인 몇몇이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들 모두는 시험에서 떨어져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었죠. 떨어지면 20달러(2만원)를 주고 다시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찌됐건 현장 신분 확인을 마치고 필기시험을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나오는 문제를 읽고 스크린 터치를 통해 정답을 기입하는 방식이었죠. 제 옆에는 30대, 40대로 보이는 헤이시언(HAITIAN, 아이티 출신 흑인) 여인 두 명이 시험을 보고 있었죠. 이미 그들은 몇 번의 떨어져 본 경험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일종의 '컨닝'이었죠. 불법 시험이었습니다(웃음). 영어도 아닌 그들만의 괴상한 언어로 말이죠.

그런데 저에게, 이건 무슨 일이랍니까. 두 번째, 세 번째, 문제를 연속으로 틀려버렸습니다. 총 20문제 중에 15문제 이상을 맞추어야 합격 이었습니다. 세 문제를 틀렸으니, 이제 두 문제만 더 틀리면 탈락이었습니다. 남은 문제는 15문제 정도 되었습니다.

긴장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스티븐이 보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저를 보면서 반갑게 손을 흔들더군요. 빨리 끝내고 밥먹으러가자고 자기 배고프다고 수신호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상상이되시죠? 그 광경이.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떨어지기 직전인 상황인 줄도 모른 채 말이죠. 간신히 10번째, 13번째, 17번째 문제를 맞추면서 합격의 기쁨에 다가섰습니다. 이제 한 문제만 더 맞추면 나머지 문제를 틀려도 자동 합격이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냉큼 달콤한 사탕을 입속에 넣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8번째 문제가 실패로 끝이 났죠. 이제 한 문제만 더 틀리면 탈락이었습니다. 19번째 문제를 앞두고 기도했습니다. 망신당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바로 그때 제 컴퓨터 앞 창문 틈으로 스티븐이 얼굴을 바짝 댄 채로 중얼거렸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말이죠. “DJ. 합격했어요?” 1시간 여 가량을 기다렸던 그였기에 힘들었을 겁니다. 사우스비치(South beach) 태권도 수업 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떨어진다면 다음 주에 또 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작용했죠.

19번째 문제는 두 개 중 하나가 정답이었습니다. 인생은 참 비슷한 어려움만 매번 줍니다. 운전면허 시험에서도 비슷한 두 가지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그런 입장이었죠.

"에이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평소 좋아하는 2번을 터치했습니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습니다. 너무 기뻤기 때문이죠. 제 양 옆의 헤이시언 두 명은 불합격했더군요. 물어 보니 이번이 세 번째 필기시험이었다고 했습니다.

합격 통지를 받고 시험장을 나섰습니다. 스티븐을 보자마자 감격의 포옹을 했죠.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얼싸 안고 한참 동안 축하를 나누었습니다. 미국인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저에겐 어찌나 행복한 일이었던 지요.

하지만 필기시험 이후, 또 하나의 과정이 남아있었습니다. 주행 시험이었습니다. 스티븐과 저는 잠시 기쁨을 뒤로한 채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감독관이 제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죠. 약 한 시간을 기다렸을까요. 어디선가 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대길 정!” 자세한 주행 시험의 과정은 다음 시간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MOOKAS GLOBAL = 정대길 글로벌 리포터 ㅣ press02@mookas.com]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구 #TNT #마이애미 #정대길 #USA #다이어리

댓글 작성하기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
  • 도인

    웃기네요정말 고생하셨네요힘내세여

    2011-06-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