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12]프로모팅의 개혁이 절실하다 Ⅱ
발행일자 : 2009-09-23 19:10:45
<글 = 황현철 前 한국권투위원회 총무부장>


일본 프로복싱의 흥행

일본 복싱의 메카라고 불리는 동경 고라쿠엔홀의 좌석은 총 1,665석인데 일본타이틀매치가 벌어질 경우 통상 2,000명 정도가 입장한다. 또한 일반 경기도 1,000석 이상은 채워진다. 세계타이틀매치가 주로 열리는 동경의 양국국기관(스모아레나), 무도관, 아리아케콜리세움, 사이타마의 사이타마아레나, 오사카의 부립체육관, 요코하마의 문화체육관 등에서는 적게는 5,000명에서 많게는 1만 명이 넘는 유료관객이 복싱을 관람한다.
일본의 복싱 중계방송은 공중파의 경우 심야 시간대에 고정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당일 있었던 경기가 심야 시간대에 녹화로 방영된다. 니혼TV는 월간 2회, 후지와 아사히, TBS에서는 월 1회 복싱을 편성하고, 동경 TV에서는 부정기적으로 프로복싱을 중계한다. 물론 이와 별도로 세계타이틀매치는 각 공중파에서 생중계를 해주며, 케이블 채널에서는 당일의 모든 경기를 생중계하는 곳도 있다. WOWOW 같은 유료 케이블 채널에서는 해외복싱을 편성하여 매주 방영한지 벌써 19년이 되었다. 중계료 액수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일반 경기는 중계료가 책정되지 않고 세계타이틀매치 같은 빅매치는 상당한 액수가 프로모터에게 주어진다.
때문에 일본에서 프로복싱 경기를 개최할 경우 시합 스폰서가 따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원자들은 시합에 대한 후원, 즉 프로모터에게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는 선수에게 후원을 하게 된다. 전 일본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가와바다 마사키는 8라운드 선수 시절 본인의 개런티 12만엔(약 156만원) 중 6만엔은 현금으로, 6만엔은 티켓으로 받았지만 후원자들에게 받은 후원금만 20만엔(약 260만원) 이상이었다고 한다. 인기와 지명도, 장래성에 따라 선수마다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선수들은 본인의 개런티 이상 가는 후원금을 손에 쥐게 된다. 프로모터는 경기를 주최할 때 선수들의 매치업과 관중 동원, 홍보에만 주력할 뿐 스폰서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일본 프로복싱의 위기와 극복

9차 방어전을 치르는 WBC 밴텀급 챔피언이었던 일본의 하세가와 호주미(왼쪽)
1960년대와 70년대에 중흥을 맞았던 일본 복싱은 80년대에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1987년 5월 무구루마 다쿠야가 박찬영에게 11회 TKO패로 WBA 밴텀급 타이틀을 빼앗기고 7월에는 하마다 쓰요시(일본)가 레네 아레돈도(멕시코)와의 재전에서 6회 TKO패 당하면서 WBC 슈퍼라이트급 타이틀을 상실, 일본 복싱은 무관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해 10월 이오카 히로키가 WBC에 신설된 체급인 스트로급의 초대챔피언 결정전에서 무명의 태국복서 마이 돈부리팜에게 판정승했지만 이후 일본 복서들은 2년 4개월 동안 세계타이틀 도전 20연패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세계챔피언을 동시에 6명이나 보유하던 1989년에는 세계타이틀전 10전 전패로 일본 복싱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당연히 언론에서는 연일 프로복싱을 질타하고 복싱팬들의 관심도 멀어졌다. 그러나 일본 복싱계는 홍보를 멈추지 않았다. 세계도전 연패를 끊을 수 있는 유망 선수들의 육성을 가치로 내걸고 발길을 돌리는 팬들을 잡았다. 일본 최초의 세계챔피언 시라이 요시오를 필두로 과거의 챔피언들이 모여 매스컴에 단체로 마케팅을 펼쳤고, 어떤 경기든 솔선수범해 티켓을 직접 사고, 지인들에게 팔아주면서 후배 복서들을 응원했다. 일본 복싱의 티켓 흥행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도 이 시기다.
팬들의 관심이 예전보다 떨어지고 관중이 줄어들자 프로모터와 매니저들은 우선 선수 위주의 후원자를 모집하는데 집중했다. 훈련이 끝나면 직접 후원자를 찾아가서 티켓을 판매하고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발품을 팔았다. 대부분의 프로모터와 매니저,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경기를 홍보하고, 관중을 끌어 모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관중 없이는 선수가 존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그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매 경기 처절한 승부는 필수였다. 맥없이 지게 되면 후원이 끊기기 때문에 선수들은 링 위에서 무서운 투혼을 발휘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시 끊어졌던 방송사도 관중이 있는 복싱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았다. 단합과 노력으로 힘겨운 시기를 넘긴 일본은 꾸준히 스타를 발굴해냈고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용병 육성, 외국과의 적극적 교류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현재 일본에 5명의 WBA, WBC 세계챔피언, 13명의 OPBF(동양태평양) 챔피언, 20여명의 양대 기구(WBA, WBC) 세계랭커가 포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권투인들부터 앞장서야 한다

지난 6월 조희재가 OPBF 타이틀을 치렀던 일본 고가시경기장에 줄을 서서 입장하는 관중들
일본에서는 반드시 티켓을 구매하여 경기장에 입장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다. 장정구에 의해 깨어지기 전까지 13차 방어로 아시아에서 세계타이틀 최다 연속방어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의 복싱영웅 구시켄 요코(전 WBA Jr.플라이급 챔피언)는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시라이 구시켄복싱짐 소속의 선수가 경기를 치를 때 이외에는 반드시 티켓을 구매해서 입장한다. JBC(일본권투위원회)에서 발급한 체육관 오너 라이센스를 소지하고 있고, 명성만으로도 얼마든지 무료로 시합장에 출입할 수 있지만 그는 결코 공짜로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비단 구시켄 만이 아니다. 티켓을 구매하다 보면 심심찮게 전, 현직 챔피언들을 만날 수 있다. 함께 줄을 서서 사인도 받고 이야기도 나누며 티켓을 살 수 있는 일본 복싱팬들의 또 다른 재미는 현재 세계챔피언을 다섯 명이나 거느린 일본 복싱의 저력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제가 무료로 입장하면 관중 1명분의 수입이 줄지 않습니까? 저도 선수생활을 하면서 팬들 덕분으로 챔피언까지 될 수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후배들에게 환원을 해야지요." 일본에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구시켄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프로복싱을 움직이는 큰 손은 프로모터다. 대형 프로모터 없이 대형 선수가 나오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언제까지 스폰서 확보에만 주력해서는 좋은 선수발굴이나 복싱팬들을 끌어들이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좋은 카드를 만들어 대중과 언론에 홍보하고 관중 동원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프로모터는 매니저와의 친분에 의한 넣어주기 식의 경기가 아닌 4회전 경기 하나하나도 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관중을 위한 매치업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유료화는 물론 지정좌석제 도입도 시급하다. 복싱 관전에서 가장 좋은 링 사이드의 좌석은 무엇보다 복싱팬들의 차지가 되어야 함에도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돈을 내고 들어가도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지 막막할 경우가 많다. 프로복싱의 젖줄은 복싱팬들이고, 유료 관중의 모객에 가장 앞장서야 할 사람들은 바로 권투인이다.
*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는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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