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1969년, 수련비 300원, 심사비 200원
발행일자 : 2008-10-06 21:16:09
<무카스미디어 = 정대길 기자>
1969년 6월, 서울 미아리 삼거리에 위치한 청우태권도장
1969년 6월, 서울 미아리 삼거리에 위치한 청우태권도장의 수련비는 300원, 심사비는 200원인이었다. 도복을 살 여유도 없어 위 선배들이 입던 낡은 유도복 상의를 걸쳐 입었고, 맨 바닥에서 맨발로 수련을 했다. 50평 남짓한 넓은 도장 안은 겨울에는 발이 꽁꽁 얼어 붙을 정도로 차가웠고, 여름에는 가만있어도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도장안은 열기로 후끈했다. 10살 어린나이에도 이들은 ‘1품’이 아닌 ‘1단’ 이었고, 유단자들이었다. 1970년 대 초 태극품새가 나오기 시작하며, 이제 막 유품자들이 생겨났고, 현재의 도장별 승급제도의 시작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어려운 수련환경 만큼이나 지도사범의 어려움도 있었으니, 제대로 된 월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해서 심사라도 보는 날이면 도복 양 소매 깃 안으로 학부모들이 밥값을 쥐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몇몇 원로들도 딱히 월급을 받을 상황도 아니라 밥만 먹고 잠을 잘 수 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군 제대 후 1년 남짓 이곳에서 태권도를 지도한 이규현 사범도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얇은 포스터를 만들었죠. 밤이 되면 동내 전신주와 벽에 빙 둘러 붙이곤 했어요. 사진 뒷 편을 보면 작은 포스터가 보이죠?(웃음). 이때는 밤 11시 통금시간이 엄격하던 때예요. 저녁 늦게 돌아다니는 것이 상당히 제한을 받던 시기였죠. 어려웠죠 모든것이. 하지만 그때는 월급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할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게 행복했죠.”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음을 도복 속에 끼어 넣은 채 태권도 지도의 외길인생을 살아 오던 태권도계 원로들. 지금의 젊은 지도자들은 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무얼 찾을 수 있을까.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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