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절대고수도 스승 없인 힘들다
발행일자 : 2008-09-30 15:34:26
<글 = 밝은빛연구소 진영섭 소장>


[진영섭의 태극권 이야기 - 7] 달마역근경과 소림사 그리고 태극권 4편
앞의 글에서 소림사와 소림무술에 관해 언급하였다. 소림권과 태극권이라는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무협소설에서 절정고수가 되는 방법을 잠시 살펴보자.

앞의 글에서도 밝혔거니와 소위 절정고수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무협소설 안에서는”이라는 단서가 붙을 정도로 허망하고 쉽기도 하다. 남의 내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기이한 인연으로 절정고수가 수십년 간 쌓은 내공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입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의 내공을 몰래 혹은 강제로 내 것으로 뺏어오는 방법이다.
천룡팔부의 허죽(虛竹)과 군협지의 서원평이 전자에 해당한다. 주입된 타인의 내공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일체화 될 때까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선물을 받은 셈 쳐도 되겠다. 그러나 타인의 내공을 빨아들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강도행위이다. 아무튼 강제로 받았건 혹은 빼앗아왔건 이렇게 고수가 되는 길은 광명정대해 보이지는 않는다. 주인공을 몇 년씩 산속에 은거시켜가면서 무공을 단련시키는 것보다는 계속 인간세상에서 부대끼면서 무공이 발전하라는 작가선생의 배려라고 생각해두자.
영약을 통해 고수가 되는 길은 김용의 소설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단예가 천룡팔부의 시작 부분에서 금두꺼비를 얼떨결에 삼켜 독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 정도가 아닌가 싶다. 복용하면 수십년의 내공이 정말 생겨나는 영약이 있으면 필자도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다. 가만 있자, 천년삼왕이 좋을라나 아니면 천년설련 혹은 천년영지??? 쩝! 꿈 깨시고…….
김용의 소설 가운데 등장하는 주요 비급을 보면 소오강호에서의 규화보전, 사조영웅전(대막영웅전)에서 처음 나와서 의천도룡기까지 줄곧 등장하는 구음진경, 신조협려에서 언듯 나왔다가 의천도룡기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구양진경, 그리고 천룡팔부에서의 달마역근경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거의 모든 무협소설마다 등장하는 비급은 주인공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데……, 그런데 여기에 큰 허점이 있다. 스승의 지도 없이 무공을 모르는 주인공(예를 들어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혼자 비급 한권에 의지하여 절정고수가 된다는 발상은 물정 모르는 사람의 백일몽일 수밖에 없다. “태극권문답”을 쓴 진미명(陳微明)이 스승인 양징보(楊澄甫)와 대화한 내용 가운데 이런 내용이 전해진다.
“스승님께서 대수롭지 않은 듯이 한마디씩 해주시는 말씀이 제게는 감로수와도 같습니다. 꼭 필요할 때에 꼭 필요한 점을 지적해주시니 참으로 신묘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네가 죽을 때까지 태극권을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스승 된 이의 가르침을 귀하에 여기는 까닭이다.”
옛부터 무술은 구전심수(口傳心授)를 귀하게 여겼다. 비급은 현대의 무술서적과도 같은 것이니, 아무리 상세한 무술서적을 가지고 독학을 한다고 한들 제대로 무술수련이 될 리가 없다. 구전심수란 곧 현장에서 스승이 말로 지도해주고 손으로 잡아주고 제자는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몸으로 체득하여 마음으로 깨친다는 뜻이다. 이 부분이 빠진 상태에서 소위 비급에만 의존한다면 이는 무술 수련이 아닌 그저 체조에 불과할 뿐이다. 최악의 경우 그릇된 자세로 연습한다면 열심히 수련하면 할수록 오히려 몸을 망치는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 스승의 지도 없는 비급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이다. 태극권 서적과 CD 혹은 DVD나 비디오 등에 의존하여 태극권을 독학하려는 분들은 반드시 참고하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천룡팔부에 왕어언이란 아가씨는 머리속에 천하의 무술을 모두 담고 있는 무술백과사전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것 역시 문제가 있다. 무술을 실제로 사용하려면 부단한 수련을 통해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깨쳐야 한다. 또한 실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무술의 초식도 천변만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런 체험이나 깨우침도 없이 그저 서재에서 무술 서적을 탐독하여 문구나 명칭만 외우고 있은들 아무 쓸모도 없는 100% 장식품 혹은 죽어있는 자료에 불과하다. 그리고 서로 겨루고 있는 무술의 초식을 알아보려면 최소한 동등한 실력 이상이어야 가능한 일인데 무술에 관한 서류성 지식뿐인 왕어언이 해당 초식을 파해할 방도까지 내놓는다는 것은 그저 소설가의 희망사항일 뿐 전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왕어언은 그냥 그저 무협소설 속의 허상일 뿐이다.

13 소림승 당태종 이세민 호위도
스승, 즉 모방할 대상이 있고 또 지도까지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정상적인데, 몰래 훔쳐 배운다는 것은 초보적인 외공권의 경우 가능하겠지만 상승의 무술, 특히 내공권의 경우는 전혀 불가능하다. 양징보가 진미명에게 말하였듯이 스승 된 이가 적재적소에서 꼭 필요한 내용을 직접 말해주고 지도해주기 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화공두타(절에서 땔나무를 하고 불을 관리하는 하인 성격의 수련승려)가 훔쳐 배운 것 역시 겉모양의 외공권일 뿐이다. 구무협소설이 유행하던 1930년대에 양로선(楊露禪)을 주인공으로 하여 쓰여진 투권(偸拳:권술을 훔쳐 배운다는 뜻임)에도 벙어리 거지로 위장하여 몰래 숨어 배우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과는 무척 동떨어져 있다. 게다가 이런 설정은 팔괘장 형의권 등 각종 무술의 시조로 말해지는 사람은 신기하게도 벙어리 거지 등으로 위장하여 몰래 숨어배운다는 설정이 너무 똑같다. 해당 권술의 시조을 신격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임이 너무 쉽게 드러나지 않는지?
각설하고, 다시 소림권과 태극권이란 주제로 돌아와보자. 송(宋) 나라 때에는 38식 태조장권(太祖長拳)과 육보후권(六步猴拳)이 유행하였고, 금(金) 원(元) 시대에는 용(龍) 호(虎) 표(豹) 사(蛇) 학(鶴)의 소위 소림오권(少林五拳)이 유행하였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이 오권(五拳)이 소림무술 중에서도 상승의 무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대에까지 전해진 소림권을 대략 살펴보면, 육합권(六合拳) 대홍권(大紅拳) 소홍권(小紅拳) 심의권(心意拳) 통배권(通背拳) 포권(炮拳) 나한권(羅漢拳) 연보권(練步拳) 조양권(朝陽拳) 장권(長拳) 등이 있다. 이런 권법들은 대홍권 소홍권처럼 옛 명칭을 그대로 쓰는 것도 있고 명칭은 바뀌었지만 옛법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연보권은 용권(龍拳)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고 심의권은 호권(虎拳)에서 변화되어 나왔다고 한다.
현존하는 모든 태극권은 진가태극권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진가태극권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내용은 앞의 글들에서 대략 다루었으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자. 진가구의 진씨 일족이 산서성의 홍동현(洪峒縣)에서 이주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 현재 산서성(山西省) 홍동현(洪峒縣)에서 행해지는 홍동통배권(洪峒通背拳)이 그 원류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진가구에 삼삼권보(三三拳譜)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는 심의권(心意拳)의 권보이며 따라서 진가태극권은 심의권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가태극권의 창시자라고 말해지는 진왕정이 정리하였다는 7개의 투로 명목은 다음과 같다.
△권세총가(拳勢總歌) : 장권가결(長拳歌訣), 태극장권보(太極長拳譜), 장권일백단팔세(長拳一百單八勢) 등으로도 부른다. △두투십삼세(頭套十三勢) : 장권십삼세(長拳十三勢), 십삼세(十三勢) 등으로도 부른다. △이투포추(二套砲捶) △삼투(三套) △사투(四套) : 대사투추(大四套錘) △소사투(小四套) : 홍권(紅拳) △오투(五套)
*달마역근경과 소림사 그리고 태극권 5편이 편집 사정으로 한주 연기된 점 양해 바랍니다. 마지막 6편은 10월 7일 연재 예정입니다.
[편집 =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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