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 2 - 이연걸의 무술세계
김승모

이연걸이 스크린에서 보여 주었던 그의 액션은 바로 중국 무술인 우슈다. 이소룡 사후 대부분의 영화배우들이 영화를 위해 이것 저것 흉내내는 정도로 무술을 배운 것과는 달리 이연걸은 실제 무술가로부터 체계적인 무술 교육을 받았다.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정통 무술 액션 배우 라는 수식어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이연걸은 8살 때 북경체육학교(Beijing Athletic School)에서 무술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고, 1974년부터 1979년까지 5년동안 중국 무술 챔피언을 지냈다.
영화배우가 되기 전 그는 어떻게 우슈를 시작했고, 어떻게 무술가로 성장했을까? 숨겨져 있던 그의 무술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슈와의 만남

이연걸이 우슈를 시작한 것은 1971년 여름으로 이연걸이 8살이 되던 해였다. 약 한 달간의 여름방학을 맞은 북경의 각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당국의 지시에 의해 북경체육학교로 보내졌다.
북경체육학교는 무작위로 학생들을 나누어 운동과목을 배정하였다. 이연걸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름방학 동안 북경체육학교에서 운동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이연걸이 속한 반은 우슈를 배우는 반이었다.
이연걸은 우슈가 뭔지도 몰랐다. 이연걸 뿐만이 아니었다. 이연걸의 같은 반 친구들 중 우슈를 아는 학생은 없었다. 다만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우슈를 배우는 것이었다.
방학이 끝나자 이연걸은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북경체육학교로 훈련을 하러 가야만 했다. 한마디로 무술에 재능을 보인 이연걸은 국가 당국에 의해 특별히 차출이 되어 무술을 배우게 된 것이다.
어린 이연걸에게 이 훈련은 결코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연걸은 다시 무술학교로 발길을 옮겨 하루에 2시간씩 또 다른 학교 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수록 훈련은 점점 더 엄격해졌고, 그것은 불과 8살의 어린 이연걸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겨울이 찾아왔을 때 실내 설비가 미비했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수련을 해야만 했다.
이연걸은 "북경의 겨울은 매우 추웠고 그래서 내 손은 항상 아팠다. 손바닥 치기(handslaps)는 별로 좋은 방법이 못 되었다.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치지 않으면 야단을 맞았다. 소리를 내려고 하면 미칠 것처럼 아팠다." 고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인생의 전환점, 우슈 시범
그리고 1년 후, 1960년대 문화혁명 이후 중국에서 최초로 열린 전국 우슈 시합에서 이연걸은 우수상을 받았다. 추운 겨울에도 쉬지 않고 연습한 결과였다.
이후 이연걸의 신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산동에서의 우슈 시합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간 이연걸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하루의 반만 학교에 나와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신 이연걸은 무술 훈련을 해야만 했다. 이연걸은 이 사실에 매우 신났었다고 하는데, 후일 이연걸은 "어떤 학생이 학교를 반만 나와도 된다는데 좋아하지 않겠는가?" 라며 당시를 회상했다고 한다.
이연걸에게 이런 특별대우가 주어진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중국은 외교적으로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였다. 중국이 수십년 동안 외국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 행사는 규모는 그리 크리 않았지만 전세계의 선수들을 초대한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였다.
중국은 이 행사를 통해 중국을 전세계에알리기 위해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를 개회식에서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문화중의 하나로 우슈가 선택되었다. 이연걸이 학교에 가지 않고 무술을 수련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우슈 시범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연걸에게 이 우슈 시범은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저 시켜서 무술을 시작했지만, 그 무술로 인해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뽑히고, 자신의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겨우 9살의 어린 소년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가슴 벅찬 영광으로 자리 잡았다.
최연소 우슈 챔피언
세계 탁구 대회에서의 시범 이후 우슈는 이연걸에게 그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활이 되었다. 이연걸이 날마다 하는 일이라고는 우슈를 연마하는 것이었다. 우슈 학교가 그에겐 정규교육이었고, 기숙사가 그의 집이 되어 버렸다.

1975년 이연걸은 자신의 무술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중국 전국 체전에서였다.
이 대회에서 이연걸은 우승을 차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국 체전 3일전 이연걸은 머리에 칼로 상처를 입고, 머리를 꿰멘 상태였다. 의사는 실밥도 풀지 않은 이연걸을 만류했지만, 나이에 비해 성숙해버린 그의 의지를 꺽지는 못했다.
이연걸의 우승은 이연걸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중국 내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불과 12살의 소년이 20대 중·후반의 무술가들과 겨루어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시상대 맨 꼭대기에 이연걸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3등보다 더 키가 작았다. 그건 정말 볼만한 사건이었다.
이후 이연걸은 1979년까지 5년 연속으로 중국 무술계를 휩쓸고 다녔다. 마지막 1979년 우승할 당시 이연걸은 불과 16세의 소년이었다.
우슈란?
우슈(WU-SHU)는 무술의 중국식 발음이며 현대화된 경기 종목을 말한다. 1950년대부터 새롭게 제정된 신편 무술을 우슈라고 하며,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승 계보가 유지되고 있는 실전 위주의 권법을 전통권이라 명명하여 우슈와 구분한다.
우슈는 체조 경기와 거의 같은 채점방식을 도입하여 지정 시간 동안 정해진 규율에 맞춰 1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경기 종목의 하나다.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의 경기 종목으로 지정되어 전세계적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우슈는 특정한 문파로 구분할 수 없으며 일정 종목으로 구분한다.
우슈의 종목은 크게 권법술과 무기술로 나눌 수 있다. 권법술로는 장권(長拳), 남권(南拳), 태극권(太極拳)등이 있으며, 무기술은 도(刀), 곤(棍), 검(劍), 창(槍) 등을 사용하고 있다.
장권(長拳)은 동작이 크고, 유연한 신체와 높은 균형 감각을 요구하여 청소년층의 건강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남권(南拳)은 그 기세가 웅장하며 활달하여 남성층의 호응을 받고 있으나 여자 선수가 수련하는 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태극권(太極拳)은 전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중국 무술의 대문파이며, 세계인의 건강 체조로 자리를 굳혔다. 태극권은 조용하고 느린 동작을 매우 유연하게 반복하여 신체의 리듬을 안정시키며,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갖추게 해준다.
우슈는 어려운 종목이 아니며 누구나 수련할 수 있도록 구성한 보급형 중국무술이므로 몇 개월의 수련으로도 그 흐름을 충분히 알 수 있다.권법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기를 수련하면 호흡력과 속도감이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이 아프거나 피로감을 심하게 느낀다.따라서 충분한 권법 수련으로 체질을 강화한 뒤에 순차적으로 수련 종목을 선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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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걸의 태극권 본 적 있는데 다 까 먹었어요. 그런대 등록 해두돼
요2005-12-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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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걸의 태극권 본 적 있는데 다 까 먹었어요. 그런대 등록 해두돼
요2005-12-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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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걸의 태극권 본 적 있는데 다 까 먹었어요. 그런대 등록 해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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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걸의 태극권 본 적 있는데 다 까 먹었어요. 그런대 등록 해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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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만 기다리셔요..^^
세계우슈대회 1위를 거머쥐던 한국 박찬대 선수가,
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답니다,
박찬대선수는, 빼어난 용모와 우수한 무술실력으루
몇 차례의 영화섭외를 받았으나,
세계대회때문에 미뤄왔었는데요,
조만간..^^ 우리나라의 이연걸이 뜨게 될 것입니다..
2001-10-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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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나라에는 우수한 무술배우가 없는가 !
멋진 스턴트들도 많은데 그들은 뜰수 없는가
맨날 중국 사람들만 영웅처럼 얘기들 하느데 실물이 난다.
물론 그들이 잘한다는걸 인정 안하는것은 아니다.동양에 무술종주국이 중국뿐인가!우리 무술로 세계영화계에 이름있는 배우하나 못만드나
안타깝다. 하지만 나도 견자단 이영걸 좋아한다.
우리것을 지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모든 문화는 소중한것이여
2000-12-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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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태권도유단자 얄지라...
그중 학창시절 좀 더 일찍 마니 접한 이들은 좀 더 무예에
애착이가리라...
대중속에 살아가는 무도가 있었으면한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언제든지 부담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정신수양 까지 할수있는
도의 방향으로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 발마추어
스포츠 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그런 무도가
있었으면한다
2000-10-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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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슈를 처음 접하게 된건 이연걸때문이었죠.
그때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줄을 매달고 한다는건 몰랐어요.
그래서 날아다니는 이연걸이 동경의 대상이였답니다.
어머니께선 그렇게 되려면 다리부터 째야 된대요.
그래서 다리를 째고 그러다 보니 남보다 발차기가 잘되고
태권도는 그런 나에게 딱 맞는 무술이었어요.
지금은 이연걸의 무술이 우슈라는걸 알고 있고, 우슈를 배워 지금은
장권을 거의 다 마스터 했답니다. 친구들을 가르치고 있죠.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우슈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발차기는 태권도가 더 뛰어나고 종류도 많지만 우슈는 손기술이 매우 발달해 있거든요. 또 초식이 매우 화려해요. 우슈에서도 배울점이 많다는 얘기죠.^^2000-08-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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