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MMA의 인큐베이터-무규칙 격투기 연구모임 '암록'을 돌아보다.

  

암록이거나 암록이 아니거나


초기 한양대 수련모임을 이끌던 멤버들


현재 한국 MMA계에 관련자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 암록이란 두 글자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ARM-LOCK 물론 기술의 명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MMA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체이기도 하다. 부산 HFC(주말 격투클럽)가 한국MMA의 진원지였다면 암록은 인큐베이터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은 큰 역할을 했었다. 현재는 유명무실하다 할만큼 암록이라는 이름으로 직접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MMA계 전반을 이끌어 가고 뒷받침을 하는 이들중 대부분은 암록 출신이거나 아니거나 둘중 하나라고 분류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MMA계의 원년이자 태동기인 2003년 이미 수 차례의 메이저 급 대회들이 열려 이미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고 대중들의 관심도, 매체의 관심도도 시시각각 이종 혼합 격투기에 모이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경로로 그런 움직임들이 시작되었고 초기에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연대 상 암록의 초기 발생배경부터 중, 후반을 넘어서면서 과정일 것이다.

많은 출신자를 배출한 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암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신빙성있는 정론이 필요했고 초기 운영자인 김형광(ID적호)과 박광순(ID절파),고병준(ID특경대),이정호(ID이정호) 총 네분의 인터뷰와 감수를 통해 암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INTERVIEW-

MOOTO: 암록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어떤 동기가 있었기에 오프라인 수련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암록: 초기엔 온라인 카페에서 쉐어 독이나 링크 해놓은 격투기 동영상들을 보며 토론을 하는 정도였다. 그 당시엔 그런 토론을 할 마땅한 장소도 별로 없었고 본 것을 토대로 운동을 해보는 것도 쉽게 시도할 수 없었던 풍토였다. 그러나 온라인 동호회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논쟁이 오가고 탁상공론이 계속되면 서로가 지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몸으로 배워보는 것에 대한 갈증은 심해졌고 결국 뜻이 통하는 몇몇 사람들을 주축으로 오프라인 수련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0년 가을인가 성균관대학교 잔디밭에서 말 그대로 굴렀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임이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됐었다.

MOOTO: 초기엔 어떤 식의 수련을 했었는가? 정해진 커리큘럼이라든지 기술적으로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가?
암록: 대부분이 기존에 다른 운동을 하던 분들이었기에 조금은 나았던 것 같다. 수련 체계를 잡는데도 기존에 운동하던 방식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몸풀고>타격기>그래플링>스파링을 하는 순서로 초기부터 계속 이어져왔다. 다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대부분의 회원들이 입식타격계(태권도,킥복싱,무에타이,복싱,합기도)를 수련했으므로 타격기 수련에 큰 무리는 없었다. 허나 그래플링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수련한 사람이 없었고 그런만큼 더욱 배워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욕구는 컸었다. 그 때 미국에 계신 회원님이 수련 모임에 도움을 주고자 귀국 시에 참가하셨고 그래플링 초보인 우리에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됐었다.

MOOTO: 미국에서 오셨다는 회원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암록: 그 분은 암록을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분이기도 하다. 한국 이름은 조한경 그 당시 브라질 주짓츠 파란띠셨고 그래플링에 목말라 있던 우리는 그분의 도움으로 기본기를 알고 그래플링에 다가설 수 있었다. 그 시절 그분의 기술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로도 암록이 발전하는데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다.

MOOTO: 음.. 점점 체계적인 수련이 가능한 모임이 되어가고 있을 때 장소는 여전히 잔디밭이었나? 그래플링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암록: 잔디밭에서의 수련은 초기 몇 번뿐이었다. 그 후엔 한양대 태권도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암록의 기반을 다진 때는 한양대 정모였던 것 같다. 참가 인원도 점점 늘었고 주말에 한 번뿐이었지만 좀더 집중 할 수 있었다.



MOOTO: 한양대로 옮기면서 적절한 체계를 잡았다면 그 당시 정립된 수련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는가.
암록: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몸풀고>타격기>그래플링>스파링의 틀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비중을 둠에 있어 그래플링과 스파링을 위주로 수련했다. MMA시합에서 그래플링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점도 있고 익숙하지 않은 그래플링에 대한 호기심과 열의가 컷 기에 중점적인 수련을 했다. 스파링 역시 배워본 기술을 익히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자연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MOOTO: 조한경(ID탭 아웃)씨 이후에 암록에 세컨드 임팩트라 불릴 만한 걸출한 테크니션이 합류했다고 알고 있다. 어떤 반응이었는가.
암록: 노은상(ID만화가)님의 합류였다. 그분은 우리(암록)보다 훨씬 이전에 이종혼합격투를 접하시고 운동을 하셨다고 알고 있다. 기술적인 섬세함이나 실력 전반은 두 번 째 충격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분의 합류로 더 많은 기술들을 서로 익히고 숙련도를 높이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

MOOTO: 김형광(ID적호)씨는 초기 운영자로서 암록을 운영하며 겪었던 어려운점들로 무었이 있었는가?
암록(김형광):첫 번째는 회원들 간의 유대, 두번째는 나의 능력, 세번째는 암록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이종혼합격투기라는 것이 격한 운동이라는 것 때문에 걱정거리는 많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오는 회원과 기존회원간의 낯가리기도 문제였다 처음 오는 회원은 정말 말 그대로 큰맘먹고 정모에 참석하는데 운동모임 장소에 오면 왠지 모를 위화감에 스스로 움츠러드는 것을 보면 운영자로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되기도 했다. 개중에 적대감을 가지고 참가하는 이들도 있었기에 회원들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노파심이 가시지 않았다. 다행히 호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큰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다. 위에 말한 세 가지가 별개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회원들 간의 유대를 어우르는 나의 능력, 그 바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암록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다르지 않은 것들일 것이다.


MOOTO:암록이 한양대 정모 체계를 잡아가게 될 때 즈음 다른 단체로 옮겨가는 회원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그것은 서로의 방향 차이인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이 부분은 현재 팀 태클에서 수련하는 이정호씨의 답변을 인용한다)
암록(이정호):그전엔 합기도를 배웠었다. 그러다 암록에 들어와서 초기부터 수련을 했다. 수련기간이 길어지면서 암록 내부에서 스파링을 하면 몇몇 사람 빼놓고는 다 이길 정도가 됐었다. 그 이유인 즉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동호회 특성상 기존에 뜸하게 가끔 나오는 회원들이 생기면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오고,,,,몇 번 나왔다 또 물갈이되어서 꾸준히 나오는 고정회원은 15명 정도였기에 실력 향상이 쉽지 않았다. 초기부터 같이 운동하던 은수 같은 경우도 암록에서 운동할 때는 자기 힘을 다 못쓴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상대회원이 부상이나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되기 때문이다. 실력향상과 안정된 수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보다 먼저 그런 것을 느낀 사람들은 BJJ(브라질리안 주짓츠 아카데미)로 옮겨가게 되었다.

MOOTO: BJJ에서 좀더 체계적인 수련을 하기 위해 옮기신 분은 어떤 분들이 있는가?
암록: 이번 KPW4회에도 출전했던 노영기씨, KPW4회 -65kg우승하신 강병관씨와 초기 고정 맴버는 아니지만 남상웅씨등이 대표적이라 할만하다. 위에 거론한 분들이 BJJ에서 수련하고 암록에 와서 스파링을 하면 그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 당시 개인적으로 막연하게 한계를 느끼고 있었을 때인지라 이래선 안되겠다.하고 결심을 하게 됐었다. 그때 마침 은수가 최무배 코치님께 레슬링을 배우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고 최무배 코치님이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다. 그래서 맨 처음엔 나와 이은수, 이우현 이 세 명이 서울대에서 2002년 7월 시작하게 된 것이다.(당시엔 팀 태클이라는 팀은 없었다.)

MOOTO:암록을 떠나는데 갈등은 없었는가?
암록: 암록은 무규칙 격투기 연구모임이라는 아마추어 동호회로 시작했고 그 성격을 변하지 않고 고수했다. 허나 주축이 되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추어로 기술 몇 가지 탐닉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강한 나를 만들길 원했고 암록에선 그것을 이루기 어려웠기에 전문적인 수련 단체로 옮겨 간 것이다. 그것이 등을 지고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모두들 수긍하는 점이었기에 외부에서 생각하는 이적과는 성격이 틀리다.

MOOTO: 그런 움직임들이 있을 즈음 수련모임은 어떻게 진행되어갔는가?
암록: 크게 변화된 것은 없었다. BJJ쪽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주말엔 암록에 나와서 계속 같이 수련했었다. 그러다가 한양대 수위아저씨들의 강력한(?) 반발로 약 1년 반정도 지속됐던 한양대 정모는 문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새 보금자리를 경희대로 옮기게 됐고 수련 모임도 유지되었다.



MOOTO: 암록의 중,후반기에 이수일.한태윤씨의 가세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암록: 이수일씨는 이전에도 틈틈이 들러 운동하는 우리를 격려해주곤 했다. 선수 출신으로 같은 계열의 운동에 열중하는 암록 회원들이 보기 좋으셨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한양대 정모 시절 즈음에 부산에서 주로 활동하던 한태윤씨를 소개 해주셨고 운동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MOOTO: 외부에선 암록의 연대를 이분해서 분류한다. 초기 순수 아마추어 동호회의 느낌으로 운영하던 때와 이수일, 한태윤이라는 선수출신들의 가세로 대외적인 인지도와 활동 폭을 넓혀갔던 때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암록: 일단 일본에서 직접 활동하신 분들이 암록에서 같이 운동한다고 하니 좋은 반응과 외적으로도 인지도도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것 뿐이다. 이수일, 한태윤씨가 무엇을 바라고 암록에서 운동한 것이 아니듯이 우리도 그분들이 저희와 같이 운동한다고 해서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 시절 서로 뒤엉켜 운동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암록의 운영은 초기부터 후반까지 무규칙 격투기 연구모임이라는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회원들 개개인의 방향은 좀더 전문성을 띈 쪽으로 흘러갔지만 암록 자체는 끝까지 그 색을 가지고 갔다. 이수일, 한태윤씨가 주도했다고 보여지는 이유는 그분들의 운동경력과 연배가 한참 위인 데다 그만한 통솔력이 있었고 경희대 정모를 마감하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던 우리에게 한남동 합기도장을 정모 장소로 쓸수 있게 컨택해주신 점들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인 암록의 운영은 이수일, 한태윤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밝혀두고 싶다.

MOOTO:이수일, 한태윤씨의 가세로 수련에 있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암록: 두분 모두 선수 출신이므로 기술의 활용이나 디테일한 방법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좀더 체계적인 수련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두 분이 도움을 준 것은 다만 장소섭외뿐이 아니라 그 시절 암록의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에겐 고마운 분들이다.

MOOTO: 암록이 정모를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암록: 위에 밝힌 것처럼 다들 방향성을 잡고 그 길을 개척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구심점을 이루던 맴버들 중 이우현씨의 입대도 큰 영향일 것이다. 암록은 그 역할을 다 수행했다고 본다. 아마추어리즘으로 시작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암록의 오프라인 수련모임의 기능은 다 한 것이다. 허나 우린 암록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암록 정신은 그 도전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MOOTO: 당신에게 있어서 암록은 어떤 의미인가?
암록: 지금은 암록이 정말 안 좋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암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직도 인연이 되어온 사람들을 얻었다는 게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현재 MMA선수로 뛰는 암록출신 선수들에게 있어서 암록은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박광순(절파): 만약에 MMA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마이크 멘트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만약에라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난 서슴없이 외치겠다. "암록 포에버!!" 라고...

MOOTO: 지금도 간간히 암록을 부활시키자는 목소리들이 일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암록: 현재 암록이란 단체가 활동하지는 않는다. 허나 어디서나 암록을 만날 수 있다. 암록이 굳이 어떤 목표를 향해 다시 뭉치지 않는다 해도 암록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고 우리는 암록인 임에 자부심을 느낀다.
김형광(적호): 언젠가는 다시 뭉칠 것이다. ^^ 기대해 달라.

무규칙 격투기 연구모임이란 부제로 활동하던 암록이 겪어온 고민들은 현재 한국 MMA계가 겪고 있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좀더 전문적이고 다듬어진 체계에서 선수들의 질적인 향상을 꾀해야만 하고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이끌어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는 것이 암록을 돌아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 무언가라는 것은 재정적인 지원이나 보기 좋게 꾸며진 상품화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암록의 회원들은 국내에 이종혼합격투라는 장르의 대회가 있기 훨씬 전부터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추구하며 순수한 열의로 다가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 열의를 다해서 혼을 불어넣는 모습에 대중들은 공감할 것이고 애착을 갖게 될 것이다.

현재 암록에서 활동하던 선수들 대부분은 여타 단체에서 활약하고 있다. 장소와 입장은 달라졌지만 그들의 공통분모인 암록은 불변의 요소이며 그들 역시 서로를 허물없는 동지로 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한국MMA계는 여전히 초창기이고 앞으로 더욱 해야할 일들 이 많이 남아있다. 그런 움직임들을 주도해나가고 있는 암록 출신들이 지난 시절의 꿈과 열정을 잊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성을 다해 혼을 불어넣어 한국 MMA계를 안정된 반석 위에 올리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으로 취재기간 동안 암록을 대하며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로 맺음을 했으면 한다.

암록 포에버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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