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의 태권도 산책] 한국 태권도, 마지막 1초까지 싸우고 있는가
발행일자 : 2026-09-01 14:11:51
[한혜진 / press@mookas.com]

아시안게임 한 달 앞두고 타이위안서 확인한 한국 겨루기의 불편한 현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한국 태권도가 이번 대회에서 얼마나 많은 메달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희망적인 기대보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경기 종료 '마지막 1초'까지 이기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
한국 태권도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시안게임 태권도 정식종목에서도 품새는 여전히 세계 정상급 선수층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직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강완진과 차예은이 남녀 개인전을 모두 석권했다. 따라서 지금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할 곳은 ‘겨루기’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태권도는 품새를 포함해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겨루기에서는 장준과 박우혁, 박혜진이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부 2개, 여자부 1개의 금메달을 챙겼다.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겨루기 개인전이 올림픽 체급을 중심으로 남녀 각 4체급씩 열린다. 출전 체급과 메달 기회가 줄어든 만큼 한 경기의 무게는 더 커졌다. 전통적인 ‘효자종목’ 태권도가 한국 선수단의 메달밭 역할을 이어가기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그런데 지금 한국 겨루기의 상황을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 이란과 중국은 이미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갖췄고, 우즈베키스탄과 요르단,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도 한국을 위협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 ‘아시아 무대니까 한국이 강하다’는 공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 현실을 중국 타이위안에서 다시 확인했다.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중국 타이위안에서 열린 ‘2026 세계태권도여자오픈챔피언십’은 아시안게임을 앞둔 여자대표팀의 중요한 실전 점검 무대였다.
한국은 마지막 날 김유진(-57kg)과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홍효림(-67kg)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결과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경기를 풀어가는 과정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기술력이 크게 뒤처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본기는 여전히 좋고, 세계 정상급 선수와 맞붙어 승부를 뒤집을 능력도 충분히 있다.
김유진이 8강에서 파리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키미아 알리자데를 꺾은 과정이 이를 보여준다. 마지막 3회전 종료 8초를 남기고 상대 공격을 받아쳐 결정적인 득점을 만들었다. 끝까지 기회를 만들면 승부는 바뀐다. 바로 그래서 다른 경기들이 더욱 아쉬웠다.
이번 대회 일부 한국 선수들의 경기에서는 점수 차가 벌어지자 공격의 강도까지 함께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남았는데도 한 번 더 붙고, 한 번 더 차고, 어떻게든 상대를 흔들려는 절박함이 부족했다.
타이위안 여자부만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최근 여러 국제대회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한국 선수들이 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비슷한 장면이 적지 않았다. 흐름을 빼앗긴 뒤 공격이 단조로워지거나, 마지막까지 승부수를 던지지 못한 채 종료 버저를 듣는 경우가 반복됐다.
패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상대가 더 강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 밀릴 수도 있다. 세계 태권도의 수준이 평준화된 지금 한국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패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시대도 지났다.
문제는 ‘어떻게 지느냐’다.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패하는 것과 시간이 남았는데도 승부가 끝난 것처럼 경기를 마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최근 한국 겨루기에서 가장 우려스럽게 바라봐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지금의 태권도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몸통 공격은 2점, 머리 공격은 3점이고 회전 기술이 성공하면 몸통은 4점, 머리는 최대 6점까지 얻을 수 있다. 종료 10초를 남기고 점수를 지키기 위한 고의적인 한계선 이탈이나 넘어짐에는 상대에게 2점이 주어진다.
머리 공격 하나, 회전 기술 하나에 감점까지 겹치면 불과 몇 초 사이에도 승부가 완전히 뒤집힌다. 그렇다면 10초는 결코 짧지 않다. 5초도 마찬가지고, 마지막 1초까지 상대가 편하게 경기를 끝내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타이위안에서 만난 경쟁국 선수들에게서는 오히려 그런 집요함이 더 많이 보였다. 중국의 젊은 선수들은 앞서든 뒤지든 계속 몸통을 두드리고 머리를 노렸다. 상대가 물러나면 따라붙었고, 결국 8체급 가운데 3체급을 석권했다.
중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과거 한국이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국가들의 선수들은 이제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기술과 체력이 좋아졌고 세계무대 경험까지 쌓이면서 한국 선수와 맞붙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요르단의 18세 파디아 키르판이 상징적이다. 지난해 우시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김유진에게 0-2로 졌지만, 불과 10개월 뒤 타이위안에서 다시 만난 키르판은 1회전을 0-4로 내주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2회전부터 김유진의 빈 몸통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마지막 3회전에서는 오히려 공격 강도를 더욱 높였다. 결국 파리 올림픽 챔피언에게 2-1로 역전승을 거뒀고, 결승까지 이겨 정상에 올랐다.
이제 ‘태권도 종주국’이라는 이름은 경기장에서 단 1점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경쟁국들은 한국을 두려워하기보다 철저하게 분석한다. 주력 기술과 공격 습관은 물론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과 승부처에서의 경기 운영까지 파고든다.
이 문제를 여자대표팀만의 문제로 한정해서도 안 된다. 타이위안이 여자대회였기에 이번에는 여자 선수들에게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남자대표팀 역시 국제무대에서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마지막 승부처에서 무엇을 보여주는지 같은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력’과 ‘근성’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과거처럼 아파도 참고 뛰고, 무조건 악으로 버티라는 낡은 스포츠 정신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부를 대하는 자세’다.
점수가 벌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체력이 떨어졌을 때 한 발을 더 낼 수 있는가. 남은 20초, 10초, 5초에 어떤 선택을 하고 준비한 공격을 끝까지 실행할 수 있는가. 이것이 현대 태권도 경기에서 말하는 정신력이어야 한다.
따라서 지도자들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신 차려”, “끝까지 해”라고 외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20초, 10초, 5초를 어떻게 싸울 것인지 평소 훈련부터 반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3점이 필요한 상황과 5점이 필요한 상황은 다르다. 머리를 노릴 것인지, 회전 기술로 승부수를 던질 것인지, 강하게 압박해 상대의 감점을 끌어낼 것인지도 훈련돼 있어야 한다. 이제 ‘끝까지 싸우는 것’도 정신론이 아니라 전술이고 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전술을 준비해도 경기장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선수다. 코치는 기술을 가르치고 전략을 짤 수 있으며 체력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상대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승부욕까지 대신 가져줄 수는 없다.
한국 태권도가 모두 위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품새는 여전히 강하고, 겨루기에도 세계 정상과 경쟁할 선수들이 있다. 불과 2년 전 파리 올림픽에서도 박태준과 김유진이 나란히 정상에 오르며 한국 태권도의 힘을 증명했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가진 실력을 종료 순간까지 얼마나 집요하게 쏟아내느냐가 결국 메달 색깔을 가른다. 특히 메달 기회가 줄어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한 번의 방심과 한 번의 포기가 더욱 치명적이다.
아시안게임까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한 달 만에 새로운 기술을 완성하기는 어렵고 체력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승부처를 대하는 자세와 마지막 순간의 집중력은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품새의 강세는 이어가야 한다. 겨루기는 다시 싸워야 한다. 남녀 대표팀 모두 불리할수록 한 발 더 내고, 상대가 물러나면 따라붙고, 종료 '버저'가 울리는 순간까지 마지막 한 번의 역전을 노리는 한국 태권도 특유의 집요함을 되찾아야 한다.
잘 싸우고 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기 전에 먼저 포기하는 모습에는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마지막 10초를 포기하는 선수에게 역전은 오지 않는다. 아이치·나고야에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한국 겨루기가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 하나가 아니라 ‘승부를 대하는 자세’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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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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