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본부라는 국기원에… 왜 ‘사범’이 없을까?

  

[한혜진의 태권도 산책] 국기원의 모순


고단자 심사장 연단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임원이 아닌 도복을 입은 사범이 있어야 할 자리다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인의 중앙도장이자 본산이다. 소싯적 지방에서 태권도를 수련하던 아이들은 도장 걸려있는 국기원 사진을 보며 상상했다. 그곳에서 도복을 입고 수련하는 모습을 말이다. 생각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국내에서도 그랬는데 외국 수련생에게는 얼마나 대단했을까.

그러나 막상 국기원에 가보면 대부분 실망한다. 사진 속에 국기원은 존재하나 기대했던, 상상했던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태권도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기념관은 규모도 작거니와 허름하고 볼품없는 가건물로 되어 실망하기 충분하다. 내국인 수련생도 그러는데 바다를 건너 온 외국인들은 어쩌겠는가.

열악한 시설은 실은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세계 태권도 중앙도장에 가르침을 줄 ‘사범’이 없다는 점이다. 태권도 기술 및 수련체계 확립, 지도자 양성 및 교육을 주 업무로 하는 국기원에 사범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달 국기원에서는 올 한해 각종 지도자연수 등을 지도할 강사 임명식과 더불어 이론 및 실습 강습회가 실시됐다. 그동안은 연례행사로 여기고 누가 임명됐는지 정도만 확인할 정도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계태권도본부라고 자임하는 국기원의 태권도 역사와 철학, 기본동작, 품새, 겨루기 등을 지도하는 전임강사와 전임사범이 단 한명도 없었다. 외부 강사로 구성됐다. 그러다보니 강사가 강사를 교육하는 우스운 꼴이 연출됐다. 굳이 외래에서 초빙한 강사라 할지라도 태권도 기술을 가르치는 사범을 ‘강사’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이종관 전 연수처장이 지난 2011년 7월 퇴직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기원을 대표하는 대사범의 역할을 했다. 연중 수많은 국내외 지도자들의 실기연수를 책임지고 세계 각국을 돌며 기술을 지도해 대사범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퇴임하면서부터 국기원에는 사범이 없어졌다.

이런 칼럼을 쓰게 된 이유도 지난 연말 외국에서 온 한 친구의 의문 때문이다. 국기원에 방문하면 ‘진짜 태권도 사범’에게 ‘진짜 태권도’를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도장의 느낌보다는 썰렁한 경기장만 덩그러니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외국인 지도자연수가 아니면 안 된다. 설사 배우고 싶으면 외부에서 사범을 불러와서 일당을 주고 배울 수밖에. 이 역시 ‘빽’이 없으면 힘들다.

수년째 국기원 실기강사로 활동하는 사범들도 겉으로 내색을 안 하지만 자부심이 예전만 못하다. 표준화된 기술체계와 이론을 이수 받고 그 다음 연수생과 수련생에게 전파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이 시스템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모두가 아웃소싱 개념에 가깝다.

한 실기강사는 “태권도의 원소스를 가지고 다양한 기술체계를 연구하고 개발해 전 세계 태권도인에게 보급해야할 국기원에 그것을 시연하고 전파할 사범이 없다. 외부강사가 외부강사에게 가르치는 모순이 어디 있느냐. 부끄러운 일이다. 국기원에 가장 필요한 것은 존경받고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사범이다. 그래야 앞으로 태권도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쯤해서 유도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유도의 종주국 일본에는 ‘강도관(講道館)’이 있다. 창시자 가노 지고로가 만든 유도장으로 태권도의 국기원과 같은 곳이다. 이곳은 세계 각국에서 유학 온 유도 인이 구슬땀을 흘리며 수련을 한다. 유도의 중앙도장에서 수련을 원하면 사전 예약으로 통해 전임사범에게 정통 유도를 배울 수 있다.

간혹 국기원을 로마에 있는 바티칸 교황청처럼 태권도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못할 뿐이지. 그렇다면 국기원는 반드시 추기경과 같은 전 세계 태권도인에게 존경받는 사범이 존재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인사에 의해 단행되는 사범이 아닌 수십 년 거슬러 올라와야 할 것이다.

태권도 중앙도장에서 사범이 사범을 “사범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강사님”이라고 부르는 현실, 수련하다 막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국기원이 될 수는 없을까.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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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사범

    개인적으로 이종관 사범님의 은퇴가 매우 이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기사를 나왔군요.
    이 글을 읽고 계실 지 모르겠지만 이종관 사범님께서 따로 도장을 개원하셔서 자유로이 사범들을 지도해주셨으면 합니다.감히 무거운 책임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제대로 사범 교육 받고 싶습니다 ㅠ.ㅜ 아니면 무카스에서 이종관 사범님의 대해 특강을 열어주시는 건 어떤가요?

    2013-02-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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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사범님

    국기원 임직원들 정신들 차리시구요
    국기원장님도 뭔가 달라진 국기원 위상 재정립하세요 해외사범들에게 단증팔아먹는 집단으로 보이지않게요.억대의 연봉을 받으시며 솔직히 국기원에서 하는일이뭐가있나요
    해외에서 땀흘리는 사범들에게 개개인에게 연하장 한장 보내신적 있나요 그저 측근들에게만 아는척하고, 해외에서 뭐하나 문의하러 전화하면 직원들 목소리하고 드럽게 불친절하고,누구덕에 국기원과.WTF가 존재나 하는지 아시고나 계시는지,각나라별로 이젠 지들 나름대로 태권도 협회만들어서 자체적으로 단증발행하며 한국에 국기원배제 시키는것 알고들 있으신가요. 이번 올림픽에서 뺑당하지 않은것 천운으로아세요,해외에서 몸사리지않고 열심히 땀흘리는 한국사범들 덕인줄 이나 알고계시요. 철가방 한방에 찌그러지는 수가 있습니다.

    2013-02-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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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기원이라...

    국기원이 그냥 사업체 같네요.. 국기원은 곧 태권도에 성지도장아닙니까??? 마치 사업체에서임원은 양복입고 직원은 직원복입고 교육하는 모습같네요. 태권도 성지에서는 모두 도복만 착용하도록 제도를 만드십시요... 군대에서도 사병은 군복입고 장군은 양복 착용하고 전투 지휘하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솔직히 보기 별로에요.

    2013-02-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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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인

    오랜만에 정독한 기사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013-0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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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 Soo

    한혜진 기자님의 정성어린 올바른 기사를 보니 수십년된 체증이 싹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엇읍니다. 현제 한국의 태권도 실황을 제데로 쓴 진실된 기사입니다.
    진지한 수련생들은 한국에 낵타이맨 그누구와 사진 찍기을 목적으로 가질않읍니다. 종이한장과 사진을 찍는 목적으로 가는 가짜 외국 사범들이 많이 잇는것 압니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 수련생들은 고령의 사범님 으로부터 그의 정신적 가르침을 받고져 갑니다. 그런데 막상가서 도장도 이닌 새 강당과 써커스만 보고 가도록 한다면 태권도의 장래는 암울 할뿐입니다. 무엇이 진실한 태권도 인지? 무도인지? 하루속히 현실을 직시 해야 할것입니다.

    2013-01-3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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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부터라도....

    국기원 원장 이하 임직원들 모두 양복 집어 던지고 도복 입고 운동 하세요!! 양복입고 체면 차 릴 때가 아닙니다!! 공무원 보다 더 강한 철통 밥그릇 누구 덕에 앉아 있는지 반성하세요!! 일선 도장들 다 무너지면 국기원이나 국기원 단증이 있더한들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당신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바다 위에 떠있는 배 바닥을 갈가 먹는 쥐새끼들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2013-0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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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이 함께 태권도원로사범에 태권도를 수련하는 모습. 멋질겁니다. 이런 계획을 왜 못하는지 국기원의 게으름을 탓해야 합니까? 국기원의 무지를 탓해야 합니까? 말로만 국기원이 아니지요.

    2013-0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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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대로 이야기하셨네요

    정말 우리 국기원은 뭐하는데입니까? 태권도중앙도장이 걸맞습니다. 세계태권도본부하며 행정과 정치적 색깔보다는 세계중앙도장인셈이죠. 이곳이 전임사범이 없다는 것은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 제대로 된 게 하나 없는 평가를 받습니다.이제 태권도역사도 60년이 되었으면 원로들도 많습니다. 원로들은 뭘하고 있나요? 한국유도원은 유도원로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원로사범과 함께 운동합니다. 국기원을 썰렁하게 만들지 말고 원로들과 수련생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세요. 태권도수련프로그램을 짜서 한번 해 보세요. 국기원이 바로서야 태권도가 바로섭니다.

    2013-0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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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왕

    좋은 기사네요. 하루 빨리 국기원에 전임 사범이 정해지면 좋겠습니다.

    2013-01-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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