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이야기] 화랑도의 선비정신

  

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22


화랑(花郞) 검군(儉君)은 선비정신의 대표자로서 선비의 꼿꼿한 기개를 보여주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화랑이다.

검군(儉君)이 사량궁의 사인(舍人)으로 있었을 때, 나라에 기근이 들어 자식까지 팔아먹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자 모든 사인들이 공모하여 궁전 창고의 곡식을 훔쳐 나누어 갖은 일이 있었는데, 검군은 홀로 받지 않았다.

다른 사인들이 이를 탓하자, 검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스스로 화랑의 무리로서 풍월(風月)의 마당에서 수행하였기 때문에, 진실로 의(義)로운 일이 아니면 비록 천금(千金)을 준다 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른 사인들은 비밀이 누설될까 두려워 검군을 죽이기로 하였다. 그러자 이를 눈치 챈 검군이 근랑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고, 근랑이 물었다.

“왜 관가에 고발하지 않는가?”
“내가 죽는 것이 두려워 여러 사람들을 죄에 걸리게 하는 것이,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바라.”
“그러면 왜 도망이라도 가지 않는가?”
“저들이 잘못하고 내가 바른데, 내가 도망간다면 장부가 아니라.”

검군(儉君)은 결국 사인들에게로 가서 떳떳하게 죽었다고 한다.
풍류(風流)의 마당에서 수행한 검군(儉君)의 맑고 깨끗한 품격은 도의(道義)로 연마된 화랑의 절조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의(義)롭게 행동하고 장부답게 죽어, 화랑의 숭고하고도 현묘한 선비정신을 빛내고 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악(惡)을 고치고 선(善)을 행하였으며,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순케 하니, 오상(五常) 육예(六藝)와 삼사(三師) 육정(六正)이 널리 세상에 행하여졌다고 한다.

‘선비정신’은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특별하고도 고유한 정신이다. 화랑 검군(儉君)처럼 ‘의(義)’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 않는 선비정신은 바로 우리 민족의 넋이며 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비정신은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선비’의 어원(語源)은 이두문자(吏讀文字) ‘선인(仙人, 先人)’에서 왔으며, 상고(上古) 소도제단(蘇塗祭壇)의 무사(武士)를 ‘선비’라 칭하였다.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이 바로 선인(仙人)이며 국선(國仙)이요, 그 정신을 계승한 것이 바로 신라의 화랑(花郞)으로서, 다같이 고신도(古神道)를 숭상하는 민족정신의 고유한 주체 세력이다. 그 도(道)를 ‘선비도’라고 했으며 후에 풍류도(風流道)라고 하였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 또한 ‘古者學道之人 名之曰士. 도(道)를 배운 사람이 선비다.’ 하였으니, 바로 도사(道士)를 말함이다.

선비의 보편적 관심은 개인적인 욕망을 떠나 자신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다함께 이로운 삶을 사는 공의(公義)를 실현하는 데 있으니, 널리 삼라만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념으로 세워진 고조선 시대야말로 선비정신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고구려 고국천왕 때의 재상이었던 을파소 선인(仙人)은 밭갈이를 하다가 추천받아 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은거하고,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것은 선비의 떳떳한 일이다.’는 명언을 남기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렇게 우리민족 고유사상(古有思想)에서 사용하던 ‘선비’의 명칭을 유교도(儒敎道)에게 빼앗겼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마치 기독교의 여호와가 우리민족 대대로 섬기던 ‘하나님’의 이름을 차지하고 들어앉은 것과 같다.

기독교가 수입되기 이전부터 우리민족은 고대(古代)로부터 ‘하늘을 섬기는 사상’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은 일상생활이나 일상 언어에서도 늘 하늘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늘이 안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에 맡기자, 하늘이 도와야 할 텐데... 하늘이 도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아이구 하느님,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 등등.

우리민족은 하늘로부터 온 ‘천손(天孫)’이기 때문에 항상 하늘을 우러러 그 뜻을 받들고, 하늘과 하나 되어 상통하려는 민족 고유의 경천사상(敬天思想)이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수입되면서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번역하여 사용하니, 우리의 하느님이 기독교의 하느님처럼 되어 버렸다. 기독교의 신(神)을 칭하는 용어는 하느님이 아니고 ‘야훼’ ‘여호와’였다.

이와 같은 일로 많은 이들이 ‘선비정신’을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신라, 고구려, 상고(上古) 시대의 소도무사(蘇塗武士)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조선시대에 와서는 무풍(武風)을 천시하여 결국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한일합방까지 겪는 수치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선비정신은 계승하였으니,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기개,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많은 선비들이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을 통하여 선비정신을 발휘하였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도올 논문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석봉천자문(石峰千字文)><신증유합(新增類合)>에는 ‘션배 士’가 있다. 여기서 ‘배’는 輩(『千字文』물배) 이며, ‘션'은 남자를 가리키는 ‘배’과 동일한 낱말로 풀이된다. 12세기 한국어를 나타내는 자료<계림유사(鷄林類事)>에 ‘士’의 한국어음 표기가 ‘進’이며, 그 밑에 첨부되어 있는 反切은 ‘寺儘切’로 이 反切의 中古音價는 ‘sjen'이다. 그 음이 한국어 ‘션’과 신기할 정도로 부합하는 예는 ‘士’의 한국어가 ‘션'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조선시대에 이 ‘션’에 ‘배(輩)’가 붙어 ‘션배’가 되고 다시 ‘선비’로 변하여 소위 ‘선비 士’가 된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선비의 특질(特質)을 이렇게 말하였다.
- 선비의 길은 선비의 도(道)가 있고, 기(氣)가 있으며, 절(節)이 있다. 선비는 오만한 자리에 서지 않으며, 죄악의 길에 들지 않으며, 신의심(信義心)이 강하며, 염치를 생명처럼 여기며, 맡은 책임은 신명(身命)을 다하여 완수하며, 남에게 절대로 손가락질 받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선비는 사언행(思言行)이 뭇 사람의 본보기가 되기를 힘쓴다. 선비는 기(氣)가 높아 매사를 자율적으로 하며, 절(節)이 굳어 한번 먹은 뜻은 굽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비는 항상 송죽(松竹)처럼 푸르고 곧으며 늠름하다.

선비는 겉은 부드럽고 예의를 다하지만, 속은 강하고 심지가 깊은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이다. 또 남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을 체질화하여 청빈하고 검약한 생활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이 세상에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고 남는 여유란 있을 수 없으므로, 자신을 위해서는 아끼고 절약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청렴정신이 청백리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선비는 궁해도 의(義)를 잃지 아니하고, 영달하더라도 도(道)를 떠나지 않는다. 궁해도 의(義)를 잃지 아니하기 때문에 선비는 스스로를 잃지 아니하고, 영달해도 도(道)를 떠나지 아니하기 때문에 백성이 실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 속담에 ‘선비가 논 곳에 용(龍)이 나고, 학(鶴)이 논 곳에 깃털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면, 선비는 자연인으로서 늘 고매한 인격과 높은 이상을 추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 위 내용은 외부 기고문으로 본지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 = 정현축 원장 ㅣ 국선도 계룡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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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정신

    우리의 도 국선도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2012-03-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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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좋은 글에

    댓글이 활발하면 무카스도 좋고, 국선도도 좋고, 작가도 좋고, 독자도 좋다. // 댓글이 고요하면 무카스도 안좋고, 국선도도 안좋고, 작가도 안좋고, 독자도 안좋다. //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작가를 강제로 원고료도 없는 글을 쓰게 만들어 놓고.. 모두에게 안좋은 것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2012-03-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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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

    도청과 몰카와 해킹만 난무하는 시대 ..

    2012-03-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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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비

    道가 사라져.. 인의(仁義)가 필요하게 되었고, 지혜를 잃어.. 큰 거짓이 생기게 되었다. 부모자식 간에 서로 멀어지니.. 효도와 자애가 필요하게 되었고, 나라가 혼란해지자 .. 충신이 필요해졌다. 시대가 허망해지자.. 선비정신이 필요해졌다..

    2012-03-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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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안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거물이 ... 타오르는 불길에 물을 뿌렸다는 것을 ... 불씨를 켜기도 하고, 물을 뿌리기도 하고 ...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 나무 위에 올려 놓고, 흔들고 ...

    2012-03-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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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랑도가 왠 선비?

    이렇게 좋은 글에 댓글이 쓸쓸하니.....

    이렇게나 훌륭해 보이는 화랑도의 선비정신조차도

    삼국이전에 있었던 배달겨레 고유의 현묘지도가 퇴락하고 남은 흐릿한 그림자 정도 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2012-03-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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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감사합니다, 자리비움님. *^^*

    2012-03-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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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비움

    선비와 선도의 관계를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03-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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