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무성(武聖), 치우천황(蚩尤天皇)
발행일자 : 2011-05-13 14:44:09
<글. 정현축 정현축 ㅣ 국선도 계룡수련원장>
조선시대 중기 조여적의 《청학집》에서 도인 김선자(金蟬子)는 변지(卞沚)가 지은 《기수사문록, 記壽四聞錄》이라는 책을 거론하면서 한국선도의 도맥이 한얼(환얼, 한인, 환인) - 환웅(桓雄) - 단군(檀君)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기수사문록記壽四聞錄》은 한국선도의 계보를 기록한 총서이다. 이는 현재 티벳의 달라이라마처럼 우리나라의 상고시대가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였기 때문이다.
상고 배달국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인 치우천황(BC2707∼BC2598)은 황제 헌원과 탁록(涿鹿)의 전투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일설에는 황제 헌원이 치우천황의 배다른 형제라는 말도 있다.
중국의 고서 《산해경》과《사기》, 우리나라의 《환단고기》에는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이 자웅을 겨뤘던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치우천황을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진 ‘동두철액(銅頭鐵額)’의 괴물로 표현했는데, 이는 치우천황께서 당시 최초로 금속무기를 사용한 청동기 문화의 개창자였기 때문이었다.
관자(管子)는 ‘치우가 노산(盧山)에서 금을 얻어 5가지 병기(兵器)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 사마천의 《사기史記》
구려국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 九黎之君號曰蚩尤 - 《書經》
치우는 고대의 천자이다. 蚩尤古天子 - 《書經》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은 무려 10여 년 간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항상 치우천황의 73전 73승이었다. 치우천황은 제정일치 시대의 군왕이었으므로 도력(道力)과 기무(氣武)에 뛰어났으며, 우뢰와 비를 자유자재로 부렸다.
큰 안개를 일으켜 적으로 하여금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고, 물과 불을 부리며, 호풍환우하는 치우천황을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외경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치우천황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치우천황은
신(神)처럼 용맹하였고
구리로 된 머리와 쇠 이마를 가졌다.
눈빛은 선하면서도 강렬했으며
그의 마음은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꿰뚫었다.
그의 머리는 지혜로 빛났으며
가슴은 뜨겁고 온 몸은 힘이 넘쳤다.
그가 말을 타고 대륙을 달릴 때
그의 갑옷과 어깨에 맨 외날 칼(儉)은
태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양손에는 모(矛)와 극(戟)을 쥐고
탁록의 전투에서 천도(天道)를 지켜냈다.
그는 4천년 전 중국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의 주인이었으며,
동이족의 제왕이었다.
신(神)처럼 용맹한 치우천황을 도저히 당할 장사가 없자, 황제 헌원은 산에 올라 치성으로 제를 지내며 신에게 봉선(封禪)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 전투에서 신의 조력을 받아 치우천황과 싸웠다고 한다.
전쟁의 신(神) 치우천황은 동쪽으로는 회대(淮垈)의 땅을 진격하여 성읍으로 삼았으며, 지금의 산동성과 안휘, 강서성까지 영토를 확장시켰으니, 실로 얼마만큼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경영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도 중국 산동성에는 치우천황의 능이 남아 있으며, 그때 팠던 우물이라든지, 진을 쳤던 자리들이 역사적인 유물로 남아있다. 그리고 현지인들 간에는 치우천황의 무용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치우천황의 능과 유적들이 중국 산동성에 있다는 것은 배달겨레 청구국의 중심지가 산동성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리하여 우리의 역사학계, 지리학계, 수행계통, 주역학계들이 다들 치우천황능과 탁록의 전투 현장을 답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중국은 관광수입을 대거 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공식적인 학술발표회를 열면서 우리의 14대 환웅이신 치우천황을 자기네 조상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필자는 2003년 티벳 여행을 갔을 때, 카일라스(수미산, 6,714m) 아래 마나사로바 호수 근처에 치우 곰파(사원)가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귀국해서 우연히 서경보(1914∼1996) 스님의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스님 생전에 티벳을 여러 번 답사하면서 치우천황 영역이 티벳까지 뻗어있다고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신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용맹의 화신이자 태양의 아들이었던 치우천황은 동방의 무성(武聖)이자 군신(軍神)으로 자리잡았다. 한고조 유방은 전투에 출전하기 앞서 항상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강태공 역시 제나라의 왕으로 봉분된 뒤 치우천황을 자신의 병주(兵主)로 모셨다.
불멸의 전승을 남긴 우리의 이순신 장군도 치우천황 사당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전하고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사람들은 치우천황의 무덤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무덤에서 붉은 기운이 뻗쳐오르며 단풍나무(楓木)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 붉은 기운을 ‘치우기(蚩尤旗)’라고 하며, 한국 선도(仙道)에서는 단풍나무가 물드는 10월을 ‘치우천황의 계절’로 기리고 있다.
그리고 이 ‘치우기(蚩尤旗)’는 동양 천문에서 하나의 별자리 이름으로까지 붙여지게 되었으니, 실로 태양의 아들 치우천황의 영향력은 장대하다 하겠다.
치우천황의 붉은 기운은 삿된 기운을 물리친다하여 단오 부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궁과 왕릉의 귀면와와 온갖 무기에도 형상을 새겨 보호신으로 삼아왔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어땠는가! 치우천황의 모습을 형상화한 붉은악마가 경기장과 거리마다 열광의 도가니를 만들었고, 배달겨레 한민족 투혼의 상징인 치우천황의 붉은 투혼은 역시 ‘오늘날의 전쟁 스포츠’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한편, 치우천황과 패권을 다퉜던 황제 헌원의 기록을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진(秦)나라 사람인 갈홍(283〜343)은 그의 저서《포박자》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옛날에 황제가 있었는데, 동(東)으로 청구(靑丘) 땅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서 자부선생을 만나《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
청구는 바로 조선 땅이요, 풍산은 백두산이다. 또 중국사람 서량지가 지은《중국사전사화》에도 ‘황제족이 동이문화를 받았다.’ ‘은(殷)은 곧 요동의 동이 땅인 조선에서 일어났다.’고 나온다. 요동이 동이 땅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황제 헌원은 청구(靑丘)의 자부선생에게 동이족의 현묘지도(玄妙之道)를 받아감으로서, 비로소 중국 도교의 시조가 되었던 것이다.
맹자님 말씀 중에 우리민족을 잘 표현하신 말씀이 있다.
한 마을 뒷산에 울창한 숲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마을의 도적들이 울창한 숲의 나무들을 베어다가 자기들의 집도 짓고 창고도 짓고 공장도 짓는데 썼다. 그래서 숲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자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트고 나무가 자랐으나, 그때마다 또 염소가 싹을 뜯어 먹고, 마을 사람들도 땔감으로 베어갔다.
숲은 새싹이 자랄 틈이 없어, 다시 벌거숭이가 되었다.
몇 대가 그렇게 지나자, 후대 사람들은 그 산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산은 원래부터 나무가 없었던 산이야.”
우리 민족에게는 고대로부터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훌륭한 고유사상 현묘지도가 있었다. 이웃나라들이 우리 것을 탐해 계속 도적질해가고 불태우기를 거듭하였다. 그러자 이제는 많은 백성들이 우리민족에게는 ‘고유사상’이 없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분들은 유·불·도 3교가 우리의 전통문화와 사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다.
그러나 아니다. 유·불·도 3교는 삼국시대 말기에 들어온 것이다.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수입되었고, 같은 해 유교도 수입되어 태학(太學)이 설립되었다. 도교는 그로부터 252년 뒤인 고구려 영유왕 7년(624년, 당고조 7년)에 조의선인 연개소문의 주청에 의해서 수입되었다.
유·불·도 3교가 수입되어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민족 고유의 사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현묘지도 풍류도, 국선도였다.
우리의 것들을 적들이 다 훔쳐가고 불태우고 하였지만, 다행히 그들이 훔쳐간 것들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자료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앞으로 그러한 것들을 기회가 닿는 대로 독자들과 공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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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다시 강대해지겠지요. ^^
2011-07-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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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한민족은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리어 대치하고 있습니다. 소모적으로 민족간 대립을 하고 있지요. 그 옛날의 역사가 위대한들 현재가 왜소한데 역사를 끄적여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
2011-06-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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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1-06-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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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 까지 비행기로 3시간 자동차로 안쉬고 달려도 이틀 걸립니다..서울에서 도코, 베이징 보다 멀리떨어진곳입니다..캐나다의 광활함이란,,,,,마무튼 기회된다면 배워보고 싶네요..
2011-06-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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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님..국선도홈페이지에 가시면 뱅쿠버에 국선도수련장(1-604-525-1130)이있네요.거기가셔서 내공수련이 가능합니다.외공수련 30년이면 내공의기초가 돼있고, 님의 열려진 마음이 합쳐지면 단시간에 진보가 있을겁니다. 수련장가셔서 그냥 등록하고 시키는대로 하시면 정말 일취열장하실겁니다. 본인도 소시적부터 수많은무술분야를 거쳤습니다.국선도는 나름 의미가 있는 수련입니다
2011-06-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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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제 수련이 중요하겠죠..괸심은 있지만 지금 제가 사는곳이 캐나다입니다 외공족 무술을 한 30년 하고있습니다 기공쪽은 딱히 배울때가 없어서 기공책보고 제자들 간단한 단전호흡정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실때 배를 오목하게 모으고 내쉴때 배를 부플리고 항문쪼이고 이걸 맞는 수련이라 해야 하나 모르겟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배워보고 싶습니다만..
2011-05-3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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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님 격려가 필자에게 큰힘이되겠군요.근데 무엇이던 직접 실행해본후에 판단하는것이좋지않을까요.국선도는 적어도 2~3년 수련후 판단을 내리면좋을듯합니다.사람을 만나는것도좋지만수련과 관련없는 만남은 글쎄요..관념의 유희 아닐까요..도는 실제로 무척 가까이있지만 그걸실천하기는어려운것같습니다.본인경험에서..
2011-05-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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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을 동이라고 했다면 중국의 동쪽이라는 뜻이니 결국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인중화사상에 근거하는 거 아닌가요?
2011-05-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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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치우천황 관련 자료 수집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겠습니다.
치우천황 능을 답사했었지만 원장님 덕분에 더 많이 알게 됐네요.
감사합니다.2011-05-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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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종합하면 국선도는 청산직계파로 속세에 물들지 않고 전통수련을 고수한다..
속세에 물든 월드단 학 센터는 사이비다..근데 세계단학이란 협회가 양적으로 승부수를 걸고 있어서 자칫하다 사이비가 진짜로 오해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속세 무술계에 많이 있죠..해동검도가 일본 검도를 가르치고 나 해동하고 김해동이 서로 원조라 욱이고. 쥬도의 아류인 주치즈는 쥬도를 모르는 사람은 원조로 보고.아무튼 사이비가 판을 못치게 어떡게 좀 해보세요 국선도 화이팅~!결론 내가 만나본 선도 유명인은 그저 유명일 일뿐이였다 그레서 거기서 거기로 생각하게됨 청산거사를 만나봡스면2011-05-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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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차력은 남의힘을 빌리는겁니다.대표적으로는 신장(귀신)의 초능력을 차용하는.그러나 이는 결국 차용이기때문에 신장의 노예로 전락하고 본인 수련진도는 나가지않는등 약점이 있다고합니다. 주문수련이 대표적 사례지요.님께서 말하신 차력은 아마 내공의 힘을 말한것같네요.요가도 좋은운동입니다.무슨 운동이던 열심히만 하면 도가 통하지 않을까요?
2011-05-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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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해서 병고친사례는 많지요.그러나그것은 부차적사안입니다.물론 일상생활에서 심신건강을 목적으로 한 수련은 당연하고요.국선도보급초기 외부시술등이 병행됐는데 그러다 보니 오는분들이 수련을 게을리하고 치료만받으려해서 이후 치료행위등은 정통국선도에서는 의도적으로 배제하고있습니다. 사범교육과정에서도 크게 취급하지않을정도로 철저합니다.그래서불만이지만^^그러나 그것이 옳은 도리지요
2011-05-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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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님.돈이 안된다는것은 돈보다는 수련을 우선한다는의미입니다.님이밝혔다시피 이미 국선도의 내용을 일부도용해 국내외서 다양한 돈벌이를 벌이는단체도 물론있지요.저자가 문화상품이라한것은 결코 돈만을 목적으로한것은 아닐겁니다.제눈엔 그렇게보이지않는데요?목적보다 수단이 우선하면 무엇이던 실패하게돼 있다는것은 상식이지요.도는수련이우선입니다.
2011-05-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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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가 돈이 안된다는 말은 믿기 어렵군요? 저자도 잘하면 세계적 문화상품이 될수있다고 했는데..타 선도 협회는 돈에 환장했던데요...미국 에도 어마어마한 기센타 선립하고..댓글릉ㄹ 보면 다분히 국선도 홍보성 대글이 있더군요..국선도 해서 병고쳤다...외공이 미국에 오면 현실적으로 해부됩니다 그리고 가장 체계적으로 탈바꿈합니다 그것이 미국의 힘입니다.침술도 해부중입니다 ..국선도도 해부하세요 그저인연이 아니군요 당신에게는 안맞는가보네요 하지 마시고..
2011-05-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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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ㄱㄱ님, 역사학회요? 일본연구자의 한국사누적논문이 국내학자논문보다 많은것으로 압니다.무예관련 역사서적,논문 찾기가 어렵죠.위글의 필자처럼 박사과정밟으면서 연구하는분이 있으니그나마 다행이죠.이글은아마 박사과정의 연구결과일겁니다.수련에 조예있는 분들은 대부분 국선도를 인정합니다.국선도는 태권도등과 달리 돈이 안됩니다.당사자들도 돈만들생각을 않고요^^
2011-05-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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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떠나서 수련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국선도는 암만 봐도 요가와 차력을 뼈대로 ++알파들인데........반면 요가를 뼈대로 해서 국선도가 좋은 수행인 것도 사실이고... 민족 운운하는건 그냥 돈벌려고 그러는것 아닙니까? 정말 자신있으면 역사학회랑 직접 붙어야죠. 이런 비전문가들이 보는 사이트에 글 올리는건 의미없네요.
2011-05-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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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인의 유전자는 북방계 약 2/3 - [ 바이칼리안 (밝할인)], 남방계 약 1/3 - [ 한반도-만주 원주민 + 동남아 등 남방계] 로 분석되고 있다.즉 한국인의 뿌리는 대강 (유전자 분석상)1. 바이칼리안 (밝할인), 2. 한반도-만주 원주민, 3. 동남아 등 남방계, 4. 약간의 유럽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비추어 국내 유전학자들은 한국인의 원류가 된 북 아시아인이 마지막 빙기인 5만년 전부터 1만2000년 전까지 시베리아 지역에서 살면서 추위에 적응된 체질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관점에서 통일신라는그리중요한 요인도 아니지요
2011-05-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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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님, 권위자의논문에 기대어 과장하려는의도는추호도없슴다.다만 사실을 적시하려는 인용이지요.다시언급하지만 역사를조금이라도 안다는 사람이면 이조 유학자들(왕권포함에 의한 고대사의 말살행위는 인정합니다.글고 한단고기가아니더라도 우리고대사를 입증하는 중국측사료도많지요.위의원고도 사기를 인용합니다.그러면 공인된자료니 받아들입니까?극우적배타성은 불순한의도가 있지만 적어도국선도는 그런경지는 넘어서야합니다
2011-05-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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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통일신라의후예라는단정?지난10여세기의역사가왜곡됐으며 앞으로는 바뀔수도있는데 일제가심어놓은사관을고수하겠다고요?글고 이를부정하는것을 극우사관이라니..뿌리를찾아보자는겁니다.나를우월하게내세워누굴배척하자는의도는없지요.국선도의시원을찾고,국선도가좋다면이를 세계만방에전파할수도 있지요
2011-05-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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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2011-05-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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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적인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의 후예지 고구려의 후예가 아닙니다. 고구려의 유민들은 통일신라로도 흡수됬지만 당나라나 현재의 러시아쪽으로도 흡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통일신라로 흡수된 고구려의 후예만 정통이고 나머지는 다 사이비입니까? 치우천황이라는 엄밀히 말해 만주쪽 신화의 인물이 대한민국의 조상이라도 되는양 말하는 것은 역사적 열등감의 표출일 뿐입니다. 이것은 중국이 한족의 나라와 만주족, 몽고족의 나라...심지어 티벳까지 모두 다 하나로 뭉쳐서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는것과 마찬가지인 극우사관일 뿐이죠.
2011-05-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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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드 나온 어떤 교수가 말했다고 정설이 될수는 없죠..전세계 학회에서 인정해야 하는거죠..태권도가 우리 전통 무술이다 말들하죠 정작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태권도는 전통무술이 아닌 창작무술로 분류하고 있습니다.한단고기 대학때 읽을때 통쾌했죠 흥분되고 하지만 우리정부에서도 사서로 불류하고 있습니다. 한단고기 정설을 부정하는 책들은 더욱많습니다 일반화의 오류로 끌고 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1만년이 아니여도 단 10년만되도 기술적으로 우위면 성공합니다.. 중국기공무술처럼 가지말기 바랍니다..
2011-05-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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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드에서 국제정치학을전공한 헌팅턴 커리어 칼리지의 이홍범 학장이 평생의 연구결과를 정리해 영문으로 출간하는 ‘아시아 이상주의(Asian Millenarianism)’란 400쪽 분량의 저서는
한민족의 역사는 5000년이 아니라 1만년이며, 4대 문명이 존재하기 전 이미 한민족의 고대문화가 있었다고 입증했다. 방사선 동위원소 추적결과, 9000여년 전 한민족 일부가 베링해를 건너 오레곤주 일대의 미국에 정착했으며, 오늘날에도 ‘아파치’(아버지), ‘가시내’(처녀), ‘지풍’(지붕) 등의 인디언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2011-05-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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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초기 배화사상이 극에 달하면서 극단적 유학자를 중심으로 우리고대 역사서를 모아서 불태우는 작업이 한차례있었으며 일제초에 이런 행위가 있었지요.이로써 우리 고대사는 사실상 불모지로 변했는데.환단고기나 삼성기등을 단순한 쇼비니즘으로 치부하기전에 우리민족은 과연 어디서 와서 이 한반도에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지요. 18세기까지 만주어도 있었습니다. 중국이 공개를 꺼리는북경인근의 유적은 우리선조의 유적으로 보입니다.과거사를 조명한다고 결코 타인을 배척하자는 의도는 아닙니다.이것은 당연 경계해야지요
2011-05-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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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도님, ㅡ,.ㅡ,잡신님- 치우천황얘기는 각종고증(중국측의문헌)에서도 밝혀지며,산중 수련중인 무술가들사이에서도 거론됩니다. 스스로를 지킴이라고 부르는 산중무술인들은 치우를 무신으로말합니다.30여년전 환단고기가 시중에 널리 유포되기전에도 실제로 이들이(한학을모르는) 치우얘기를 하는것을 봤습니다. 오랜기간 산중에서도 구전됐다는 얘기죠.천하제일의 무술은 결국 내공없인 불가능하며 우리선조들은 선도를 통해 내공을 익힌겁니다.
2011-05-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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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치우천황도 알게돼 기쁩니다.
2011-05-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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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방대한 자료 수집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그 수고로움 감사합니다.~
2011-05-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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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시한번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느끼고....
반면에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2011-05-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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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네요.
소설같기도하고 진실한 역사적사실 같기도하고 계속 기대됩니다.2011-05-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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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악마가 치우천황 이었다고요.
2011-05-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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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황의 눈빛은 선하고 강렬했다.
어느정도일까 상상이 안되네요.2011-05-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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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때 그 얼굴이 치우천황 얼굴이였네요.
새로운 사실하나 알고 가요. 글이 너무 재미있어요. ~~2011-05-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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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제대로 알고 현재를 멋지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11-05-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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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장으로 치 닫는 구나.. 치우에다가 환단고기 까지 나왔네..
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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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관점이 새롭군요. 즐독했습니다.
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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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우리가 얼마나 사대주의 길들어 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갑니다.
아직도 곳곳에는 친일잔재, 대국(중국)잔재, 미국잔재, 등이 판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국수주의는 잘못 된 것이지만 간쓸개 다 빼놓고 외세 허겁지겁 하는것은 반성해야 겠지요.
사실 역사공부를 별로 안한 저로서는 가슴은 시원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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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뻥~뚫리는군요...역사에 대해 무관심했었던 자신이 부끄럽네요..
감사합니다!!!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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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는 참 흥미있는 내용입니다...
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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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가 우리민족의 정신을 잊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우리민족의 정신과 사상이 국선도 정신과 일맥상통하고 선인들의 수련법이 국선도에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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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수자, 수사로 불리웠던 것으로 아는데요.
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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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는 단군의 정신과 불교사상과는 일맥 상통한다고 믿습니다.
2011-05-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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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국선도하고 치우천황하고는 도데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거죠? 설마 치우천황이 국선도수련했다는 건 아닐테고...2011-05-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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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조의선인의 선배, 신라는 화랑도이면 그러면 백제는 무엇이 있었죠 ?
2011-05-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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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잡신이던 야회가 로마황제 한명 잘만나서 유일신 대접받아서 전세계를 호령하고 있죠...우리 치우천황도 잘만하면 사막잡신 야회쯥은 그냥 한칼에 보내버리고 저멀리 아프피카 깜둥이부터 북극에 이뉴이까지 전부 우리 치우천왕을 믿게 만들어버릴수도 있는 상품이군요...가능합니다...노력하면...문선명이도 있고.조용기도 있고..jms난봉꾼도 있는데 할수있죠..사막잡신 인도왕자따위가 감히 우리 천황에게...
2011-05-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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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장대하고 강성했던 역사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외래에서 들어온 사상에 앞서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이 있었음을 알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사상이 현대에도 우리민족의 정신문명의 근간이자 이를 바탕으로 세계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2011-05-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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