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우의 품새 고찰] 품새대회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태권도 품새대회의 어제와 오늘 - 상


전민우 코치

태권도는 전 세계 192개국에서 수련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술이다. 태권도의 수련체계 중 하나인 겨루기는 경기종목으로서 2016년 리오 올림픽까지 정식종목을 유지하고 있으며, 품새분야는 2006년 제1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고, 2009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또 2010년에는 월드마스터게임에 정식종목이 되어 국제종목으로 진입을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오늘의 품새대회가 있기까지 품새대회는 많은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국제대회로 발돋움하였다. 그렇다면 품새대회의 현 주소를 살펴보기 위해 품새대회의 변천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기고자 주]

품새대회의 태동기(~1997)


전국 규모 최초의 품새대회는 제11회 어린이태권왕겨루기 전국 초등학교태권도대회에서 겨루기부문과 구분하여 실시하였다(김기홍, 2009). 이후 대한 태권도협회에서는 기존에 실시되던 겨루기대회에서 탈피하고 태권도의 무도화를 통해 생활체육종목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시도로서 시범경연대회를 신설한다고 밝혔다(대한태권도협회, 1992).

기존의 겨루기대회는 젊은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신설되는 대회는 일선도장과 각 급 학교, 독자적으로 품새를 익히거나 수련해온 수련생과 지도자 등 저 연령층에서 장년층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1992년 개최된 '태권도 한마당'이었다.

연령을 소년부(초,중), 청년부(고, 대, 35세미만 일반), 장년부(35세이상), 여성부(고교이상)등 4개부로 나누고 품새 경연은 일반, 창작, 건강품새 부문으로 구분하고 격파는 위력과 기술로 나누어 실시하였다.

주먹, 손날, 앞차기, 옆차기 등을 이용한 위력격파와 높이뛰어차기, 멀리뛰어차기, 고난도 기술 격파 등으로 나눠진 격파부문은 태권도의 진수를 선보인다는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창작품새와 건강품새에서 발표된 작품 중 우수한 작품은 일선도장에 보급할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대한태권도협회, 1992).

12월 9일~11일까지 3일간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열린 92태권도 한마당은 총 392팀, 1346명의 인원이 참가하였으며 매일 평균 3천여 명의 관중과 각 언론기관의 취재경쟁이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국민일보 체육부 서완석 기자는 92태권도 한마당의 문제점에 대해 <월간 태권도>에 "품새와 격파 경연시 좀 더 명확한 평가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품새 채점은 고수(高手)들의 오랜 경험을 바탕에 둔 「感,감」으로 이뤄져 대과 없이 진행되긴 했지만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채점이 아쉬웠다"고 기고하였다.

이는 태권도한마당을 위한 경기규정이 마련되었지만 명확한 기준에 의한 채점보다는 심사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였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격파물의 규격화와 경연대회의 경기화라는 긍정적 가능성을 높이 평가 하고 있었다.

이후 태권도 한마당은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하며 태권도의 무도성을 통해 생활체육 측면의 발전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태권도 한마당을 통해 고수회, 무사회 등 태권도 기술에 대한 연구와 무도의 이상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의 모임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품새대회의 형성기(~2000)


1998년 제8회 용인대총장기 전국 남녀고등학교 태권도대회에서 협회공인대회 최초로 품새부문이 신설되었다. 태권도 한마당은 98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주관으로 개최되었고 99년부터는 국기원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1998년 4월 22일~24일까지 용인대 실내체육관에서 남녀구분 없이 개인전으로 진행된 제1회 용인대총장기 품새대회는 42개교 110명이 참가하였고, 품새대회의 개최에 대한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당시 품새대회를 참관한 한체대 문원재 교수는 태권도誌와의 인터뷰에서 "품새대회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것은 태권도 무도 발전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겨루기 일변도의 경기에 비경기인들의 참여기회를 확대함으로서 태권도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대한태권도협회, 1998).

품새부문 도입을 기획한 양진방 교수는 태권도誌(1998)와 인터뷰에서 "품새종목이 공식종목에 채택되었다는 것은 겨루기 입상자들과 마찬가지로 품새대회 입상자들이 대학진학에 있어 특혜를 받기 때문에 도장에서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하는 측면에서 앞으로 도장이 초등학교 어린이들만 수련하는 곳이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대학진학을 위해 태권도를 수련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태권도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대회의 경기방식은 선수가 자유롭게 선택한 품새를 시연하고 5명의 심판들이 표출한 점수에서 최고점과 최하점을 뺀 나머지 평균 점수를 산출하는 방식이었다. 기록원이 일일이 집계를 하고 평균점수를 계산해야 했기에 점수 표출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품새 경기규칙이 구체적으로 제정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품새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가 채점에 작용을 하였다. 당시 첫 우승을 차지했던 H씨는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구체적인 판정기준이 없었다. 단순히 지도자가 가르쳐준 데로 연습했고 시합에 출전하였다. 똑같은 품새를 하더라도 스타일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선수들 간의 실력의 격차는 매우 컸고 그 때문에 심판들이 승패를 가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이야기 했다.

1998년에 용인대학교총장기 품새대회 이후 각 대학 별로 품새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대학별로 경기방식에서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었다. 1999년 개최된 제2회 용인대총장기 전국고교품새대회에서는 첫 대회에서 나타난 단조로운 방식을 보완하여 토너먼트를 실시하여 청홍의 깃발을 활용하여 승패를 표출하였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토너먼트에서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실시하는 방식을 처음 실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0년 제12회 경희대총장기 전국남여고등학교 태권도 대회에서도 품새부문이 도입되어 예선전, 본선, 결선 별로 각기 다른 품새를 지정하여 용인대총장기 품새대회의 자유선택 방식과 다른 방식을 도입하였다.

그 후 제1회 코리아오픈 춘천국제 태권도대회, 제1회 교육부장관배 전국 고교 태권도품새대회가 개최되었고 품새대회의 개최는 확산되어 갔다.

<연재 - 태권도 품새대회의 현황과 창작품새 종목의 발전방향>

1 - 태권도 품새대회의 어제와 오늘 - 상
2 - 태권도 품새대회의 어제와 오늘 - 하
3 - 공수도, 우슈와 경기규정 비교분석
4 - 공수도, 우슈와 이미지 비교분석
5 - 전문가 조언

[글. 전민우 사범 / 경희대 품새팀 코치, 남창도장 수석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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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은총

    품새대회에 대해 다시 알게되었고 궁금했던 점을 좀 푼 것 같습니다.

    2011-01-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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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종

    짧은기간 동안 많은 품새대회 발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2011-01-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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