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 미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플로리다 에드워드 셀

  


미국 플로리다의 에드워드 셀 관장

일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맨 손날로 차돌을 두동강 냈다.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치고는 과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잠시, 성에 차지 않았는지 취재진 앞에 대리석 10장을 쌓아 올리더니만 “이얍!”하는 기합을 내질렀다. 단 한 방에 격파물을 산산 조각내고는 자신을 ‘미국 내 미국인 최초로 청도관 태권도장을 개관한 사범’이라고 소개한다. 미국 플로리다의 에드워드 셀(69세,9단)과 미국 특별취재팀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미국인 출신으로는 척 세립 다음으로 태권도장을 개관한 정통 태권도인, 에드워드 셀.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태권도에 미친 파란 눈의 사나이.’ 그와의 데이트는 시종 유쾌했다.

- 태권도와의 인연

“군인 신분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1961년도에 경기도 오산의 공군기지에서 근무를 했죠. 그때 부대 내에서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이듬해인 1962년에 1단을 땄죠. 왜 그리도 차고 때리는 것이 좋았는지 당시에는 태권도가 아니라 태수도였습니다. 여러 관이 존재하던 시절이었죠. 그때 저는 청도관 명의의 단증을 받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17개의 관이 존재했던 것으로 압니다. 군대가 맺어준 태권도와의 인연이었죠.”

당시 셀이 기억하는 태권도 수련의 기억, “호랑이 사범님이었습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죠.” 이후 청도관의 박해만, 엄운규 관장은 셀의 무도 스승이자 정신적인 멘토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 미국인 최초의 청도관 태권도장 개관이다.

“1963년 미시건 트랜튼에 개관했습니다. 당시 돈으로 250달러를 투자했죠. 큰 금액이었습니다. 세탁소 자리를 얻어 개보수 공사를 했죠. 돈이 없던 까닭에 직접 나무를 구해 못질을 하고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어렵사리 도장을 열었는데 이건 당최 수련생이 오지 않는 겁니다. 들어오는 사람들이라고는 ‘여기 중국음식 파는 곳이냐?’는 물음 뿐이었죠. 태권도장은 당시의 시각에서는 중화요리 집이었습니다.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먹고는 살아야 가르칠 수 있는데, 이건 기본 생활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죠.”

그의 첫 도장 간판은 ‘코리언 가라테.’ 생계유지를 위한 가라테 간판의 선택이었지만, 한국에서 배운 자신의 정체성까지 포기하고 싶지않아 '코리언'을 떼지 않았던 그다.


- 도장 개관 이후 정착 과정에서 어려웠던 기억은?

“1970년대 중반 수련생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던 중 저의 오른 무릎에서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당시 저의 주치의가 무릎 연골이 거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졌다면서 보통사람처럼 걷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죠. 정말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죠. 고통스러운 재활치료를 시작했습니다. 5년이 넘는 시간이었죠.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제가 가끔은 안 믿겨집니다(웃음).”

- 당신이 주로 활동하던 1970년대 미국 내 태권도의 모습은 어땠나요?

“쉽게 표현하면 가라테는 태권도보다 유명했지만, 발차기 기술에서는 태권도가 가라테를 압도했죠. 저 역시 1973년 전미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대회장에 가보면 무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죠. 발차기로 가라테를 이겼던 시절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겁니다.”

차츰 도장 수를 확대하던 그는 1979년에 미국 내 청도관태권도협회를 조직했다. 이때부터 도장 수를 점차 확대해 나가기 시작한 그는 현재, 자신이 조직한 청도관태권도협회의 총재로 있다.


에드워드 셀 사범이 시연을 하고 있다

- 성격이 불같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당시 깡패들의 괴롭힘이 심했습니다. 뭐 신고를 받은 경찰도 그들을 보고 도망치는 상황이었죠. 미국에 오기 전 얘기인데요. 군 복무 시절 젊은 여성을 살해하고 칼을 들고 나오는 강도를 현장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자리를 피했을 겁니다. 저는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그 와중에 빈틈을 보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죠. 칼로 저의 복부를 노리고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오른 주먹을 내뻗으며 맞받아 쳤습니다. 칼 보다 제 주먹이 빨랐습니다. 쓰러진 그를 향해 한국 경찰 네 명이 달려들어 해결했습니다. 이런 저의 강인한 성격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다고 생각됩니다.”

셀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그의 마지막 남은 꿈이 하나 있는데 그것 역시 종교와 관련이 깊다. “태권도와 하나님을 세계 곳곳에 전하고 싶습니다. 태권도를 통한 신체의 강건함과 하나님을 통한 마음의 안정, 두 마리 토끼를 많은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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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에

    당시에 그런일은 흔한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넘쳐나는 유단자의 홍수지만 모 그때는 파란띠만 차도 무서웠죠.

    2010-09-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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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참...

    61년도에 처음 태권도에 입문해서 1년만에 1단따고.......뭐 여기까진 괜찮다쳐되.......
    바로 그 1년후에 도장을 개관??? ...................ㅎㅎㅎㅎㅎ오타라고 생각할게요

    2010-09-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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