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섭의 무술 돋보기-7]동북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운동법

  

대표적 도인술 - 화타오금희(華?五禽戱)


(1) 화타와 오금희

초기의 도인은 대부분 동물의 모습과 생태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동물의 동작은 가장 자연을 위배하지 않는 상징으로 인식되어 모방되었을 것이다. 각기의 동물은 사람의 신체능력으로 따라갈 수 없는 장점들을 지니고 있고, 사람들은 그 동작을 모방함으로써 초인적 능력이나 치병 등의 효과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초기의 이러한 간단하고 상형적인 도인이 환골탈태 하게 된 것이 바로 의성(醫聖) 화타(華佗)의 오금희(五禽戱)이다. 화타는 후한 말기의 의사이다. 패국초현(沛國譙縣,현 안휘성 박주)사람으로 자는 원화(元化)이며 동시대의 동봉(董奉)과 장중경(張仲景)과 더불어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라고 불리어진다. 화타는 매우 뛰어난 의술로 각종 치병방법에 능했으며, 이미 당시에 외과 수술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후한서’ㆍ‘화타전’ 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인체는 활동해야 하나, 다만 지나치면 안 된다. 움직이면 소화가 잘 되고 혈맥이 유통하며 병이 생기지 않는다. 문지도리가 녹슬지 않는 이치가 이것이다. 옛 신선이 하는 도인인 웅경치고(熊經鴟顧)란 허리와 몸을 구부리고 당겨 모든 관절을 움직여 쉽게 늙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나에게 오금희라는 술(術)이 있다. 하나는 범, 둘은 사슴, 셋은 곰, 넷은 원숭이 다섯은 새인데, 여러 질환을 없애고 다리를 튼튼하게 하는 도인이다. 몸이 불쾌할 때, 일금(一禽)의 희(戱)를 행하면 땀이 나고 피부가 좋아지면서 신체는 가벼워지고 식욕이 생긴다. 화타의 오금희는 동물 다섯 종의 움직임을 통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요소를 운동법에 적용한 것으로 본격적인 도인체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오금희가 우주의 오행(五行)이치를 관찰하여 만들어진 운동법임을 알 수 있다. ‘삼국지’ ㆍ‘화타전’에는 오금희의 효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의성화타와 초기 오금희 中 호희 복원도


화타는 "운동을 하면 몸속의 나쁜 기운을 발산시켜 혈의 흐름과 맥박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병을 예방할 수가 있다"라고 하며 몸을 단련하는 법인 오금희를 지도했다. 화타의 제자 오보는 이것으로 몸을 단련하여 언제나 가벼운 몸을 유지하였으며, 90세가 지나서도 귀, 눈, 치아가 쇠약해지지 않고 장수를 누렸다고 전한다. 화타오금희가 이미 1800여년 이전에 생겨난 것이기에, 현재 전해지고 있는 오금희들은 동작상의 차이가 매우 많다. 따라서 어느 한 종류가 원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록상 남아있는 가장 오래 된 오금희는 위진남북조(魏晉男北朝), 도홍경(陶弘景)의 양생연명록(養生延命錄)에 있다. 이는 매우 직접적인 동물의 움직임에 가깝다.

송 및 명, 청대에도 오금희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많은 오금희가 발표되었다. 2002년 이후 중국에서는 많은 오금희를 통합 및 편집하여 10개 동작의 ‘건신기공 오금희’를 보급중이며, 대만계통의 오금희도 독특한 자기색깔을 가지고 있다.


장경영 노사(1899~1980)

(2) 장경영(張鏡影) 선생의 고식화타오금희(古式華佗五禽戱)

현재 전해지고 있는 오금희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가장 체계적이고 또한 화타의 원의(原意)、고의(古意)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것으로는 장경영(張鏡影) 노사에 의해 전해진 오금희를 꼽을 수 있다. 장경영 노사가 항일전쟁(抗日戰爭)에 참전시 소속된 부대의 부대장이 일본군의 공습으로 다리에 심한 총상을 입고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았다. 백방으로 다른 치료방법을 찾던 중 사천성(四川省) 청성산(靑城山)의 도사(道士)를 초빙하여 49일 동안 밀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소위 '비방(秘方)'에 의한 치료를 받고 거짓말처럼 완쾌된 것을 목격하였다. 옆에서 이를 신기하게 여긴 장경영 노사는 도사에게 간청하여 고식 화타오금희를 전수받고 꾸준히 수련하였다. 이것이 후일 대만(臺灣)에 고식 화타오금희가 전해지게 된 인연이다. 장경영 노사는 1949년 대만으로 건너오게 되었으며, 1956년에 처음으로 고식 화타오금희를 전수하였으나 극소수만이 고식을 배울 수 있었다.


초기 학생의 오금희 동작 필기노트

장경영 노사는 1956년에 대만의 입법원(立法院) 예당(禮堂,강당)에서 처음 화타오금희를 전수하였다. 그런데, 처음 시작한 사람은 80여명이 넘었지만 남은 사람은 오직 두 사람으로 이후 60년대에도 장경영 노사에게 지속적으로 고식화타오금희를 지도받으며 교류하였다. 1980년 수명이 때가지 장경영 노사는 오금희를 지도했지만 배운 사람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다른 형식으로 전승되고 있기도 하다. 한 자리에서 배운 사람이라도 각기 공부가 달라짐은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는 오금희를 포함한 모든 수련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장경영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의 나이, 신체 능력, 공부의 깊이 등 수준에 따라 다르게 지도하셨다.

따라서 이후 보급된 오금희는 장경영 노사가 전한 고식오금희에서 변동이 생기게 되었다. 본래 120여 동작을 3분의 1이상 줄이거나, 좌우의 반복중 한쪽만 남긴다거나, 각 동작의 복잡한 부분을 간략화시키거나, 호흡토납(呼吸吐納) 작용과 도기(導氣)에 관한 부분을 생략한 등의 간화식(簡化式) 형태가 생겨났다. 이는 오금희의 보급에 일정부분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진영섭 밝은빛연구소 소장 약력

고려대학교 중국어문학과 졸업
대만대학교 중문연구소 석사과정 졸업
대만문화대학교 중문연구소 박사과정 수료경력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찬위원
전 사단법인 한국현대중국연구소 연구원
전 원광대학교 동서보완의학대학원 건강증진학과 겸임교수
현 밝은빛연구소 소장
현 대한우슈태극권연맹 실무 및 학술 상임이사
현 도서출판 밝은빛 대표 태극권 수련경력
웅위태극도인, 진소왕 노사 배사 입문 제자
양가, 진가 등 태극권 수련경력 20년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영섭 #밝음빛수련원 #타이치 #태극권 #화타 #오금희 #도인 #환골탈퇴 #김현길

댓글 작성하기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