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공부] 태권도와 유도… 더 이상 한일 무도 스포츠 아냐

  

정길수의 무예 전문기자가 되기 위한 무예공부 - 탈국가 무도 스포츠의 가치


# 태권도와 유도의 역사

한‧일 양 나라를 대표하는 무도가 있다. 태권도와 유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언제나 우리나라와 라이벌이 돼 왔다. 역사적인 측면에서나 지리적인 측면에서나 필연적인 관계임이 틀림없다. 두 무도는 나란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유도가 태권도보다 그 인지도 면에서 전 세계인들에 단연 앞섰다. 태권도 보다 약 40년 빠른 올림픽 종목 채택도 한 몫 했지만, 세계사에서 일본이 갖는 위치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와는 반대로 당시 우리나라 태권도는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1964년 도쿄올림픽 유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그해 우리나라 태권도는 해방 후 흩어진 태권도 관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현대 태권도 모체가 될 틀을 막 형성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태권도가 유도에 경쟁이 될 리 만무했다.

# 유도, 일본의 대표 무술

유도는 1882년 가노 지고로(嘉納 治五郎)가 창설한 강도관 유술이 기원이라고 한다. 지금은 메치기 위주의 그래플링 무술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에는 치기와 차기 모두 허용했다고 한다. 가노 지고로는 이길 수 있다면 다 받아들인다는 기조아래 각종 형태의 유술을 모두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살상무술로 천대받았던 가라테 전수자를 직접 도장에 데려와 세미나를 열정도였으니 그 의도를 알 만하다. 그러나 그 결과 유도는 유술계의 최강이 됐다.

현대화 된 유도는 크게 유도 경기 단체인 국제유도협회(International Judo Federation)를 필두로 설명할 수 있다. 현재 200여 개국의 회원국을 보유한 국제유도협회는 매년 전 세계 수많은 토너먼트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속적인 유도인들의 참여와 그 관심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는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의 홍보‧보급계획과 상당부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 태권도, 우리나라 순수전통 무술?

유도나 가라테가 일본의 순수전통 무술임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유술에서 비롯됐다는 유도의 탄생 개연성이나 배경이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권도는 그 뿌리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태권도가 수박, 택견과 같은 우리나라 전통 무예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가라테가 유입된 이후 우리나라의 환경과 철학에 맞게 변형된 무술이라는 설도 영향력을 얻고 있다.

태권도는 1930년대 이미 우리나라에 등장해 전수가 이뤄지던 가라테를 배경으로 주류 관이었던 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창무관, 윤무관, 오도관이 모태가 되어 해방 즈음 만들어졌다. 설립자들은 중국 무술을 포함한 여러 무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태권도의 정체성?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국기(國技) 태권도 뿌리를 두고 의견공방을 펼쳐왔다. 사실 아직까지 명확하게 태권도의 뿌리가 어떻다고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우리나라 전통 무예(수박, 택견 등)에서 유래됐다고 하는 설이 태권도 발전 진행초기 두드러졌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했다기보다 편향적 애국심에 기댄 ‘믿고 싶은 사실’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한편 이후 태권도가 일본 가라테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중국 전통무예나 여타 다른 무술들의 영향도 함께 받았다는 설이 점차 사실화되면서 ‘우리 민족과 같이한 태권도’라는 순수 이미지는 퇴색됐다. 그리고 이것이 태권도 정체성 문제로 두드러지면서 태권도가 뻗어나가야 할 방향성과 태권도를 믿고 신봉했던 국내 수련자들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 태권도의 전신은 가라테?

사실 일본에서 공수된 가라테는 ‘오키나와 가라테’라고 불렸는데 오키나와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만 했다. ‘후나고시 기친’은 일본 가라테의 아버지라고 불리곤 했는데, 그는 독립 국가였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점령당하면서 국가의 모습은 일본에 귀속될지라도 정신만은 귀속될 수 없다는 의미로 가라테를 알리고 가라테를 통해 오키나와 정신이 수련자로 하여금 전해지길 바랐다고 한다.

이러한 면을 볼 때, 태권도가 단순히 일본 무도를 베꼈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정확한 취지와 그 뜻을 살펴보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조사해보면 의도치 않은 이해요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

# 태권도와 유도, 걸었던 길을 되돌아보다

우리나라는 1950년 한국전쟁 후 분단의 아픔을 채 느끼기도 전에 반세기동안 고속 성장을 했다. 일본이 100여년에 걸쳐 해온 것을 우리가 50년 만에 했다고 하면 맞을까. 비록 아직까지 일본이 축적해온 것을 완전히 따라 잡진 못했지만 이대로라면 분명이 빠른 시일 내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도라는 무술은 형성된 시기부터 올림픽 종목으로 정식 채택되고 전 세계로 퍼지기까지 긴 시간을 거쳐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태권도 또한 같은 모토(정신과 육체의 단련)로 형성됐으니 비슷한 루트를 밟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밟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 ‘현 유도는 진정 일본 것인가? 태권도는?’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 유도는 진정 일본 것인가? 태권도는?’

필자의 답변은.

아니다. 어쩌면 한 세기가 될 지도 모르는 발전과정을 겪어오며 비록 일본에서 시작됐지만 유도는 이제 전 세계인의 무술이 됐다. 유도가 일본에서 시작됐으니 일본 것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뒤떨어진 논리이기도 할뿐더러 전 세계 어느 누구도 이제는 그 말에 중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유도라는 훌륭한 무술은 태어났을 것이다. 다만 일본이 그 행운을 갖게 됐고 이제 필연적으로 전 세계인들이 공유하는 무술이 됐다. 시작은 일본이 했지만 전 세계 유도인들이 없었다면 유도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도는 이제 유도를 즐기는 그 ‘어느 누구’의 것이다.

따라서 유도와 연관된 많은 이미지가 수정돼야 한다. 아울러 태권도와 유도를 비교한 근본적인 질문의 질 또한 변경돼야 한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나라 태권도도 이러한 권리를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종주국이라는 명예와 태권도 뿌리에 연관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손에서 우리의 국기(國技)가 떠날 것이라는 착오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우리의 권리를 평등한 기준에 부합시키고 이를 통해 태권도가 전 세계에서 더욱 각광 받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실은 더 부각될 뿐이다.

자못 국수주의에 빠져 다른 문화를 배척해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 돼버린 사례가 종종 있다. 물론 자부심은 필요하나 그것이 지나치면 거부감을 가지게 한다. 스포츠에 있어서도 그렇다. 태권도와 유도의 가치를 국가중심으로 오판 태권도는 한국, 유도는 일본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해 맹목적 경쟁을 부추긴다면 무술 본연의 가치 퇴색은 물론 이미 확보된 수련인들 또한 잃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 2015년의 태권도와 유도

2015년 국제유도연맹과 세계태권도연맹은 각각의 위치에서 여러 선수권대회, 그랑프리, 그랜드슬램 등과 같은 다양한 대회를 주최한다. 특히나 세계태권도연맹 같은 경우 2020 도쿄장애인올림픽에 태권도를 정식 종목으로 올해 최종채택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더 많은 태권도인을 유치하고 투자해 결과적으로 전 세계 태권도를 더욱 부흥시키려는 이유에서다. 국제유도연맹 또한 독일 뒤셀도르프를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전 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2015 월드유도투어를 개최한다.

혹자는 국제유도연맹과 세계태권도연맹의 이러한 일정을 두고 아직까지 한국과 일본의 자국 무술 경쟁력 싸움이라고 할 지 모른다. 태권도가 올해 이만큼 개최하는데 유도가 이만큼 개최한다는 앞뒤로 팽팽한 신경전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태권도와 유도 모두 이제 각각 대한민국과 일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야한다. 동시에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태권도와 유도를 이제 놓아 주어야 한다.

# 추성훈이 만난 유도, 이를 통해 태권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

말하자면 ‘사랑’이 아빠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추성훈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추성훈은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다지만 정작 본인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전형적 재일교포다. ‘아키야마 요시히로’ 라는 일본이름까지 있는 그에게 국내 팬들은 왜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에게 유도는 단순한 일본 무술이 아니었다. 한국 국적을 줄곧 유지해오던 그는 친할아버지 바람대로 한국에 건너가 부산광역시청 유도 선수단에 입단했다. 이후 여러 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파벌과 같은 국내 고질적 병폐들과 씨름하다가 2001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가대표로 2002년 아시안게임 81kg급 금메달을 따냈다.

유도는 그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해 주는 수단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가 한국 유도 국가대표에 뽑혔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가대표로 활동해 금메달까지 딴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유도가 어느 나라 무술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유도라는 무술 안에서 자신이 속해야만 하는 나라를 대표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스포츠 정신과 결부된다고 필자는 느낀다.

그래서 더욱이 스포츠를 이용한 맹목적 국가중심주의가 지양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 스포츠 정신으로 더욱 진화된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유도를 비롯한 각종 무술, 특히나 우리 태권도가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편집장의 기획


세상에 여러 기자(記者)가 있습니다. 그 중에 태권도와 무예를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무예 전문기자’가 있지요. <무카스>는 이 무예전문 기자들이 무술계의 다양한 면을 심도 있게 다루고자 노력합니다. 요즘은 태권도에 편중된 게 사실입니다. 2015년도 <무카스미디어> 신입 공채로 입사한 정길수 기자는 무예전문 기자를 꿈꿉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습니다. 태권도를 좋아한답니다. 그렇다고 태권도를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10년차가 넘는 저 역시도 아직 태권도를 다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이를 위해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무예인을 만나야 하겠지요. 이제 막 첫걸음마를 뗀 정길수 기자가 무예전문 기자라는 직함이 어색하지 않도록 무술계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무예공부를 기사로 풀게 될 것입니다. 독자들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받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편집부에서는 가능한 정 기자의 무예공부에 대해서만큼은 편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대로 된 평가를 댓글과 이메일(press01@mooaks.com)로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무카스미디어 = 정길수 수습기자 ㅣ press01@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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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수 #무예공부 #오키나와 #가라테 #공수도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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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달곰

    좋은 글이네요. 안목이 대단합니다.

    2015-03-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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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태

    좋은 기사 입니다.

    2015-03-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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