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최초의 UFC대회와 그레이시 일가
발행일자 : 2009-02-12 19:05:32
<무카스미디어 = 김성량 수습기자>
어떤 제한도 없는 룰, 주짓수로 평정한 옥타곤
1993년 호리온 그레이시는 미국인 친구 2명과 함께 UFC를 출범시켰다. UFC의 첫 경기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 주에서 열렸다. 대회는 사각의 링이 아닌 8각의 철조망 경기장(지금의 옥타곤)에서 치러졌다. 경기방식은 두 사람이 들어가 한 사람만 나온다는 간단하고 무서운 룰이었다. 레프리 스톱, 시간 제한, 방어구, 글러브, 타격 범위 등의 제한도 없었다. 심지어 낭심가격, 머리채를 잡기, 후두부 공격, 글러브 착용 등도 자율이었다. 말 그대로 길거리 싸움을 철조망 안으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호리온 그레이시가 5만 달러라는 우승상금을 내걸고 UFC를 개최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회와 방송을 통해 엘리오 그레이시가 창시한 그레이시 유술(브라질리언 주짓수)을 알리겠다는 의도였다.
그레이시 일가는 경기에 참가시킬 선수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첫 번째 후보는 힉슨 그레이시다. 힉슨은 그레이시 일가 중 가장 높은 발리투도(Vale tudo : 일정한 규칙없이 벌이는 브라질격투기)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450전 무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의 소유자였다. UFC에서 확실한 성적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힉슨의 큰 체격이 문제였다. 그레이시 유술이 힉슨의 체격에 희석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두 번째 후보는 호일러 그레이시였다. 호일러는 몸체가 작고 이미지가 상당히 약해 보였던 것이다. 그레이시 일가는 65kg이었던 호일러의 출전은 지나친 모험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레이시 일가의 선택은 호이스 그레이시였다. 호이스는 185cm에 80kg의 몸무게로 다소 빈약한 편이였다. 얼굴도 외국인근로자처럼 평범했다. 하지만 형인 호리온과 함께 미국에 건너와 미국인과의 실전경험도 쌓았다. 거기에 어눌한 이미지와는 달리 호이스는 그레이시 유술의 기술과 경험을 충분히 익힌 실력자였다. 그레이시 가는 그가 UFC에서 거구의 미국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믿었다.
UFC1의 출전선수는 길거리 파이터부터 킥복서, 프로레슬러, 가라데, 복서 등 다양했다. 총 8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레이시 가의 예상대로 호이스는 상대선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덩치로 계속 이겨나갔다. 1회전에서는 2분11초 만에 마운트에 의한 기권승을 거뒀다. 2회전은 켄 샴록과의 경기였다. 호이스는 샴록을 상대로 57초 만에 기 초크로 눌렀고, 3회전에서는 1분44초 만에 리얼네이키드초크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레이시 일가는 쾌재를 불렀다. 호이스의 UFC 우승으로 그레이시 유술은 모든 무술단체의 목표가 되었다. 이후 호이스는 UFC2, 4 대회에서 서브미션 8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호이스를 앞세운 그레이시 일가는 UFC를 통해 주짓수를 최고의 무술 중 하나로 만들었다.
[김성량 수습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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