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운의 무술만화편력 (6) “파이팅 소림사”

  


나의 지인 가운데 전통 가라테를 오랜 기간 수련하신 분이 있다. 전통 가라테 특유의 카타(형) 수련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틈나는대로 일본을 오가기도 하며 수련을 하다가 몇 년 전에는 아예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전통 가라테 도장을 내기도 했던 분이다.

아직 그 분이 직장에 다니던 시절, 나에게 전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아니 어제 우리 아들 놈이 갑자기 ‘아빠, 아빠가 하는 무술이 뭐야?’라고 물어보잖아요. 그래서 가라테라고 했더니, ‘에이~ 시시해. 아빠, 가라테는 소림사 권법한테 지잖아. 소림사 권법이 최고야.’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참 내.”

일본 소림사 권법?


일본에는 쇼린지 켐포, 우리 말로 소림사 권법이라고 하는 무술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의 소림사와 같은 한자를 쓰고 그 소림사와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무술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일본 소림사 권법의 개조는 종도신이라는 인물인데, 팔광류 합기유술의 개조인 오산영봉(일본식 발음을 모르겠다 -_-)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팔광류 합기유술은 대동류에서 갈려나온 몇 안 되는 합기 계열 무술 중 하나로 대동류 못지않게 뛰어난 기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반 수련인은 가라테 도복과 유사한 도복을,
범사급은 일본 전통 무승의 복장을 한다.



쇼린지 켐포는 그런 합기계 무도의 특성(그러나 합기라는 개념은 사용하지 않는다)을 이어받아 입식관절투기가 수련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각종 타격기 및 무기술도 함께 수련하며(이와 같은 타격기나 무기술, 예를 들어 석장을 이용한 봉술 등에서 소림사 무술과 유사한 색채를 조금 풍기기도 한다) 그 여러 기술들이 매우 합리적이고 자연스럽게 연계한다. 어쨌거나 그와 같은 성격 때문에 쇼린지 켐포의 수련 체계나 기술은 역시 타격기와 무기술 등을 적극 도입한 우리나라 합기도와 유사해 보이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합기도 수련인 가운데에서도 쇼린지 켐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고, 그들 중 일부는 쇼린지 켐포가 우리 합기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팔극권이라는 무술이 그러했듯, 이 쇼린지 켐포라는 무술이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게 된 가장 큰 계기도 만화였다. 지인의 아들도 바로 그 만화 『파이팅 소림사』를 보고 소림사 권법이 최고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새삼 대중매체의 파워를 실감했던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역애불이(力愛不二)


『파이팅 소림사』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중학교 시절 펑크 밴드 활동을 하며 제멋대로 살아가던 철부지 주인공이 고등학교 입학식 날의 악연에 의해 쇼린지 켐포부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면서 인간사의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무에타이 선수 출신 깡패와 싸우기도 하고, 타 학교 가라테 부와 대립하는가 하면 일종의 이종격투기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면서, 주인공의 그 친구들은 자신의 컴플렉스나 비뚤어진 성격 등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강한 인간’이 된다.

쇼린지 켐포는 종권(세운 주먹)을 쓴다.

이는 종도신이 2차 대전 종전 후 무질서한 일본 사회에서 젊은이들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쇼린지 켐포를 보급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그는 뒷골목 등을 배회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못된 짓을 일삼던 부랑아나 깡패, 건달들을 선도하며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으로서 쇼린지 켐포를,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법으로서 불교 사상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많은 제자들이 쇼린지 켐포를 통해 교화되었고,차차 쇼린지 켐포 지도자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와 같은 무술에 의한 선도 갱생 활동을 펼치면서 종도신이 주장한 것이 ‘역애불이(힘과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사상이다. 즉 비록 지금 당장은 무력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사랑의 마음을 무력의 형태로 나타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힘이 없으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지도 못한다는 것 역시 역애불이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수주공종(受主攻從)


그러나 싸우는 법을 익히고 힘을 기른다고 해서 그 힘을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쇼린지 켐포는 역애불이 못지 않게, ‘수주공종(수비가 주가 되고 공격이 따라간다)’을 강조한다. 즉, 자신이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혹은 어떤 것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야할 때,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단지 방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악을 타파하는 것이 쇼린지 켐포이다.

이 때문에 쇼린지 켐포는 다른 무술들과 마찬가지로 남을 먼저 공격하거나 해하는 것을 삼가하도록 가르치고,타류 시합에 나서는 것은 단지 이기기 위한 행위라 하여 금지하고 있다. 만화에서도 주인공은 격투기 대회 출전을 통해 단지 이기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하지만, 일단 싸운다면 적극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도록 가르친다. 즉, 단순히 꺾거나 굳히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급소 지르기, 타격기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데, 수비와 공격이 언제나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약속 대련 형태의 수련을 주로 하면서도 완전자유대련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어 내부적으로는 페이스 가드와 몸통 호구를 착용한 자유대련 경기도 실시하며 실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쇼린지 켐포의 논리는 어찌보면 약간 억지스러운 구석도 있어보이지만 전후 불안한 사회에서 자신을 지킬 수단, 그리고 사회적 선도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을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쇼린지 켐포는 현재까지도 어린이나 여성, 노인들까지 쉽게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호신용 무술로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판크라스의 대표 선수인 스즈키 미노루 역시 청소년 시절 쇼린지 켐포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쇼린지켐포의 기본 대적 자세

이 만화는 이와 같은 쇼린지 켐포의 이론과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들이 상대하게 되는 무술들과의 기술적 비교도 꽤 잘 설명되어 있고, 캐릭터들이 성장해가는 과정도 설득력이 있다. 특히 주인공들 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 역시 여러가지 고민을 안고 있는 청소년들이고, 싸움은 그들에게 하나의 구도 과정으로 다가선다.

그러나 이 같은 작가의 접근법은 아무래도 가벼운 소년지 연재물로서는 재미가 없었나 보다. 단행본 7권 분량에서 흐지부지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만화 이미지를 구하지 못하여 이번 회에는 쇼린지 켐포 연무 사진으로 대신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작년 타계한 모리 대범사라는 분으로, 개조 종도신의 기법을 그대로 재현하며 ‘삼각기법’이라는 기술 이론을 정립한 달인이다.)


#류운 #만화 #소림사 #소림사 권법 #쇼린지 켐포 #종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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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주인

    다시 확인해 보았습니다.
    팔광류의 처음 한두가지 기술만 배우고 그후로 아프다는 핑계등으로 "통신교육"을 통해
    배웠다고 합니다.
    2단수준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아마 제가 한두가지 기술이란 부분을 2단정도로 잘못
    기억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죄송합니다)
    통신교육이란게 무술에서도 가능한 것인지 조금 의문스럽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2003-11-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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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주인님의 보충 설명에도 감사드립니다.
    아마 제가 읽었던 글이 카페주인님의 글이었던 것 같네요.

    저도 다음 기사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03-11-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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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운

    쇼린지 켐포는 우리 합기도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상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쇼린지 켐포에 대한 기사를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3-11-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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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주인

    그렇군요. 그런면을 간혹 제가 잊을 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것대로
    또 존중해줄 필요가 있을 때도 있겠지요. 특히 기자의 입장에서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
    되네요.

    시시비비의 장이 아니라 국내에 잘 소개되지도 않은 쇼린지 켐포 자체에 대해 일반적인
    것을 중심으로 알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왕 국내에 늦게 소개되는 무
    술에 대해 과거에 알려졌던 것과 함께 새로운 정보 새로운 평가도 함께 올렸으면 했습니
    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2003-11-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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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운

    오산영봉이 아니라 용봉이었군요.
    기억에 의지해 쓰다보니 정확하지 못했습니다.
    독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종도신의 무술 이력과 쇼린지 켐포의 근본 기술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파고드는 내용이 아니기에,
    일반적으로 알려진대로 기술하였습니다.

    2003-11-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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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주인

    류운기자님 안녕하십니까

    쇼린지 켐포의 근원이 팔광류에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조금의 이론(異論)이 있어 말씀드
    리고자 합니다. 아이키도저널에 팔광류2대종가의 인터뷰내용에 보면 종도신은 오산용봉
    (오큐야마 류호)1대종가에게 아마도 2단정도를 받은 정도에 불과하였고 그나마도 아프다
    는 핑계등으로 눈으로 배운 것이 많아 실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또한 종도신이 자신이 중국에서 소림사 권법을 배웠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쇼린지켐포에
    중국무술적 영향은 별로 없고 일본의 전형적 유술형태이며 종도신은 스님이었던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어린시절부터 유술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중국소림사 권법도 팔광류유술도 소림사 권법의 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실
    제 합기라는 기법명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쇼린지켐포의 움직임은 대동류와 차이점이 많
    습니다. 즉 개별적인 기법을 어느정도 배웠을지언정 기본이 대동류에서 분파된 팔광류가
    아니란 것 입니다.

    종도신은 기존의 자신이 배운 유술적 전통에 여타 무술을 조금 가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
    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3-11-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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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운

    틀림없이 술기 면에서 합기도와 유사해보이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동류라는 근본 뿌리가 같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칼넣기라는 기법의 유무에 대해서는
    쇼린지 켐포의 기법 중에 칼넣기와 같은 형태로 마무리 되는 기술을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 들어가는 법이나 움직임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더더군다나 합기도 기법도 각 협회나 관마다 다 다르니까... 단정하기는 곤란하군요.

    또, 대동류에도 칼넣기와 같은 형태의 기법이 있다고 합니다.
    저역시 한 연무 동영상에서 칼넣기와 유사한 형태로 시전되는 기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역시 완벽히 동일하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기본 흐름이 같았고요.
    또 그렇게 따지면 아이키도의 2교도 같은 원리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_-;;;
    하여간 뭐라고 꼭 집어서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결국 어디까지를 같다고 보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이니까요.


    삼각 기법은 합기라는 개념을 쓰지 않는 쇼린지 켐포의 입장에서
    인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원리를 나름대로 정리한 개념입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지렛대의 원리나 일반적인 기울이기 원리와 비슷합니다.

    인체의 말단(손목 등)을 기울임으로써 몸의 중심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고
    흔들어 무너뜨리면 쉽게 힘을 들이지 않고 던질 수 있다... 는 것이죠.
    삼각기법의 원리란 그 힘점과 작용점, 중심점의 각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정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2003-11-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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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명 부탁드립니다.

    2003-11-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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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기도의 대표적인 기법인 칼넣기가 대동류에는 없는 기술인데,
    일본 소림사 권법에서는 보인다고 하여
    합기도가 대동류보다는 소림사 권법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대동류나 소림사 권법 두 가지를 모두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만화는 저도 봤습니다만, 확실히 합기도랑 성격이 비슷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만화에 표현된 기법은 합기도와는 좀 달라보이더군요.


    2003-11-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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