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ITF 이야기] 국제태권도연맹(ITF)의 오해와 진실(下편)


  

국제태권도연맹의 국내 유입과 활동

필자가 운영하는 도장의 어느 30대 남자 수련자가 어느날 "사범님, 재미있는 소릴 들었네요." 하면서 웃었다. 평소 회사에서 종종 ITF 이야기를 했지만, 큰 호응이 없던 중에 한 사람이 "아, 그거 북한태권도 아냐?"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수련자 또한 도장에서 배운대로 "ITF는 북한 태권도가 아니라 북한 또한 회원국 중 하나였다"라고 말하고 태권도를 마저 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덧붙이는 말이 아주 예술이더란다. "그럼 그 도장 사범님도 탈북자겠네? 아니라고? 그럼 그 도장은 정통성이 없는 거구만!"이라고 말이다. '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필자도 재미있다고 생각은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ITF가 국내에 유입되어 열심히 활동한다 한들, 사람들은 아직도 ITF가 북한태권도인 줄 알고 있고, '북한 사람들이 주로 하는 실전 암살 무술' 등으로 오해하는 한계가 그 대화 안에 모두 녹아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필자의 도장에서는 '거기 북한태권도 가르쳐 주는 곳이죠?' 하며 신기한 동네 맛집 확인하듯 문의하는 전화가 간혹 걸려온다. 

 

당연한 얘기 겠지만, 실망 스럽게도(?) 필자는 탈북자가 아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ITF를 수련하지도 않았다.

 

필자의 ITF 경력은 2003년 대전에서 열린 ITF세미나에서부터 시작한다. 필자가 ITF가 입문한 해, 그러니까 2003년 기준으로 그 2~3년 전부터 동호회 형식으로 여러 차례 모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필자가 직접 겪은 사실과 경험만을 글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2003년 이후의 국내 ITF의 현황에 대해 쓰고자 한다. 

 

2003년 필자가 처음 접한 최중화 총재 계열의 ITF 세미나는 정말 내 인생의 모든 면에서 충격을 준 세미나였다. 도복부터, 원리가 다른 기술 체계, 그 역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생소하고 놀라웠다. 특히 ITF를 통해 다시 알게 된 태권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과격하게 말하여 배신감까지 들 정도였다.

 

사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의 체육 교과서나 방송 등을 통해서 '태권도는 삼국시대 수박으로부터 전래되어온 오래 된 전통 무예' 라고 알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한국인으로서 마땅히 자부심을 가지고 WT를 수련해왔던 필자에게 ITF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필자는 그 세미나로 인해 ITF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태권도는 취미삼아 수련하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삶의 방향조차 송두리째 바뀌었다.

 

당시 ITF를 향한 내 열망과 흥미는 이듬해인 2004년 ITF 세계태권도대회가 대전에서 치러질 때, 비록 수련이 부족한 자격 미달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출전했을 정도였다. 물론 오랫동안 수련해온 이들이 없는 당시의 대한민국 ITF에서 국가대표 선발이란 큰 의미는 없었다. 당시 교육을 받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추려졌을 뿐이다.

< 2004년 세계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

필자는 세계대회에 출전한 다른 선수들의 실력을 몸소 겪었고, 종주국인 한국에서 ITF의 위상과 실력, 아니, 그 이전에 ITF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아직 많다는 사실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2005년 즈음에 북한 계열이 한국에 입성하였고, 이후 베트남계 캐나다인 트란 콴 회장이 독립한 트란 콴 계열도 들어오게 되었다. 각 계열은 초기 필자와 함께 했던 동료 및 선배 그리고 당시 지도자 인준을 받았던 회원들로 채워졌다.

 

세계 속의 ITF가 그렇듯, 국내에서도 비록 다시 시작 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세 계열의 ITF가 각자 출범하게 된 셈이다. 세월이 흘러가며 각 계열은 대부분 협회가 재구성 되거나 유명무실해졌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최중화 총재 계열 역시 2011년 협회를 재구성하여 일신하고, 2012년 협회 사무국을 서울로 옮겨 활동하게 되었다. 비록 그 동안 겪은 신산한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십 수 년간 멈춤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유일한 활동 단체라고, 당당하게 자부할 수 있다.

 

그만큼 필자를 비롯한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함께 지금껏 심혈을 기울이고 진정성 있게 지속적으로 활동 해온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필자는 2014년 ITF 중앙연수도장 개관식을 가졌으며 이후 대외로 많은 활동을 해왔다. (대외 활동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도 종종 다루었으나 그 내용을 엄선해도 적지 않아 칼럼의 말미에 첨부하였으니 흥미 있는 독자들께서는 그 약력을 참고 바란다.)

 

또한 연수도장을 운영하며 지도자로서 활동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에 지금껏 소홀히 해 본 적이 없다. 비록 국내외 각종 행사 준비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때가 있지만, 늘 수련자들을 지도하며 모범을 보이고자 했다.

 

어린 학생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남녀노소가 모두가 할 수 있는 무도인 만큼 필자의 도장에는 퇴근이나 주말에도 몸을 쉬지 않고 함께 수련하는 성인 수련자들이 많다. 이들은 지금껏 주중, 주말의 수련 및 심사 이외에도 유단자 수련, 심판 세미나, ITF 토론회 및 원로 사범님들의 강연 등을 함께 해왔다.

< 김종찬 ITF창설멤버 태권도역사 세미나 >

뿐만 아니라 연말에는 여타 다른 지방 도장의 수련생들까지 모두 모여 한 해에 배운 내용들을 다시 점검하고, ITF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심신을 갈고 닦기 위해 천번 찌르기로 마무리하는 연말수련을 거르지 않고 있다.

 

누가 억지로 시키거나 이득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함께 모여 즐겁게 수련하는 과정을 통해 ITF의 의미와 재미를 깨달은 이들이므로 가능한 일이다.

 

일례로 인천에서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했을 때, 전 세계의 ITF인들이 오로지 태권도라는 이름 아래 한 자리에 모인 자리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는데, 자부심과 흥이 넘치던 수련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국제오픈대회에 참가한 일반 수련자들 >

그들 중 대부분은 어엿하게 검은 띠를 받고 유단자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바쁜 일상이 허락하는 대로 꾸준한 유단자 수련과 각종 대회 참여, 지원 등을 통해 ITF 태권도인으로서의 경험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또 후배들은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자극받고, 수련에 더 열중하게 되니, 사범으로서도 뿌듯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지금까지 함께 해온 수련자들에게 ITF는 단순히 취미 생활을 넘어 삶의 한 부분으로 정착되지 않았나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따라서 지금까지 17년간 활동을 해오며 느낀 점 중 한 가지는 어느 계열이냐를 따지기보다 단체의 꾸준한 활동과 그 행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실전 무도를 표방하는 외국의 여러 무도도 살펴보자면 나무가 가지를 치듯이 복잡한 많은 계열이 있다. ITF 정도면 오히려 단촐 하다 말할 정도다. 그러므로 모국이자 종주국 대한민국에서 ITF 보급 자체를 놓고 보자면 계열이 갖는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무게 자체는 크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말하여 일반 수련자들은 대부분 계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무도라 한들 일반 수련자들이 열심히 흥미를 갖고 수련하여 그로부터 폭넓은 보급이 어렵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필자가 감히 부탁드린다면, 각 계열의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해주었으면 한다. 정통 태권도 ITF의 보급은 계열을 떠나 ITF의 공통된 목표가 아니겠는가.

 

덧붙여 말하건대 유명무실한 간판만 달고, 직함만 내세우는 단체가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편승하여 불로소득을 얻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왔던 사람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세상이 힘들고 어지러울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조차 버젓이 일어나는 법이라지만, 적어도 피땀 흘려 수련하는 무도의 영역, 태권도의 세계에서만큼은 더더욱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덧붙여 단 인준을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ITF의 지도자 연수에 대해 문의하시는 분들께도 부디 고민을 더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ITF 역시 상식과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꾸준히 진정성 있게 국내외 활동을 이어가고, 그 영역을 넓혀가는 단체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선택하시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할 것이다. 


수련자들 중에서는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봤다며 지도 사범이나 필자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성인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학생 수련자들보다는 정보의 폭이 넓다보니 종종 잘못된 지식을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ITF전문가를 자처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있다. 흔히 나무위키나 위키백과 등(카페, 블로그)의 사이트를 검색하여 참고하는 분들도 많은 줄로 안다. 듣거나 찾아보면 전부 틀리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잘못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 특히 역사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까지도 왈가왈부가 많다.

 

그러나 역사는 한 사람에게 듣고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 하나를 말할 때도 A가 평하는 내용이 다르고, B가 평하는 내용이 다르니, 하물며 국기 태권도의 역사일까 싶다. 

 

특히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에 대한 평가는 보지도 겪지도 않은 이들이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니 늘 주의해야 한다. 

 

故 최홍희 총재가 생전에 ITF 사범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출처: Jasmine Choi / 故최홍희 장군 손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늘 생각하는 일화가 있다. 어느 사기꾼이 돌아가신 분이 생전 만들어준 양 문서를 위조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 문서는 버젓이 기관에 제출까지 되었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당연할 수도 있고, 놀라울 수도 있지만, 역사는 누구의 입과 붓을 통해 전달되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객관적인 기준과 정확한 내용이 필요하다. 전달자의 신용과 역사관 및 상황 또한 살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비단 태권도뿐만 아니라 역사를 대하는 석학들조차 실록 한 줄에 목숨을 걸고, 먼지 쌓인 유물 하나라도 더 찾고자 방방곡곡을 땀 흘려 뒤지지 않는가. 후세에게 정확한 역사를 전하고자 서슬퍼런 왕의 입김에도 끝끝내 진실을 적고, 실록을 공개하지 않으며, 처형당한 역사가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 기록들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역사가들의 태도를 본받자면 마땅히 우리 역시 인터넷에 무슨 댓글이 있더라, 어떤 사범이 고수라던데 실상은 이렇다더라, 하는 섣부른 말 옮기기는 삼가기를 바란다. 

 

역사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추후 국제태권도연맹 창설 멤버 및 당시 원로 선배님들을 모시고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 듣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만들어 공개적으로 객관적인 역사 정리를 할 것이며 지금까지 그래왔듯 언제나 멈춤없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긍정적이고 자부심있는 우리의 태권도를 알려 나가도록 할 것이다.

 

참고로 필자 역시 소속된 신분이니 모든 내용은 지난 화 말미에 기록했듯 여러 정보의 하나로 봐주고 판단해 주길 바란다.  

태권.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활동 내역

- 2010년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임의단체 등록 – 대전

- 2011년 ITF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 홍콩 (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2년 대한민국협회 서울 이전 

- 2013년 ITF광주 오픈 대회 개최 (주최: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주관: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산하 광주광역시 협회)

- 2013년 ITF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 – 말레이시아 (대한민국선수단 참가)

- 2014년 제17회 I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 – 이탈리아(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4년 ITF서울 오픈 대회 개최(주최: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주관: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산하 서울시협회)

- 2015년 대한민국협회 중앙연수도장 개관(구로동 소재)

- 2015년 ITF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 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6년 제18회 I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영국 브라이튼(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6년 ITF 전 일본 대회 참가 – 일본(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7년 사단법인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서울시 승인 인가

- 2017년 ITF 전 일본 대회 참가 – 일본(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7년 ITF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및 코리아 오픈 국제패스티벌 개최 (인천 남동 체육관-16개국 700여명 참석)

- 2018년 ITF 전 일본 대회 참가 – 일본(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8년 제19회 I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한민국 선수단 참가) 

- 2019년 신한대학교 총장배 ITF코리아 국제 오픈 태권도 대회 개최

- 2019년  TAEKWON-DO ONE(WT&ITF) 챔피언쉽 개최(무주태권도원)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글. ITF코리아 = 유승희 사범 ㅣ pride6554@naver.com]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승희
현) 사단법인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현)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중앙도장 지도사범

2017 ITF코리아오픈국제페스티벌&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2017 ITF일본 도쿄 챔피언쉽 대한민국 선수단 단장
2018 ITF아르헨티나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대한민국 대표단장 및 수석코치
#ITF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대한민국협회 #유승희 #태권도역사

댓글 작성하기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

  • 진실

    누가 뭐래도 최홍희는 매국노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서로 의견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캐나다로 간후 북한으로 가 반한 활동을 했으니 말이다.

    죄씨 입장에서 볼때 같은 혁명 출신인데 후배인 박정희 씨가 대통령이 됬으니 배가 아팟던 것이다. 한편 북한 측에서 볼때 최씨가 장성 출신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걸 알고 이용가치가 있을것 같으니 환영 한것이다.

    즉 태권도 때문에 그를 환영 했다는것은 허구이다. 그가 한국에 있을때 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최대한 대우 해주면서 말레시이 대사로 보냈었지만, 최씨는 그곳에서도 한국인 유학생들을 모아 놓고 반한 활동을 계속 했었다.

    2020-08-04 20:32:44 신고

    답글 0
  • 이창환

    총장님...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셧습니다. 앞으로도 ITF태권도의 전파에 함께 노력하시죠.
    총장님 말씀대로 우리는 계열을 떠나 척박한 한국에서 ITF태권도를 전파하는 메신저들이니까요.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부산에서 이창환이었습니다.

    2020-08-04 11:03:43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