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기(氣)의 흐름(運), 기운(氣運)
발행일자 : 2015-06-14 21:21:57
<글. 이정규 사범 | 태권도의 과학 저자>



이정규 사범
지금까지 세상에 등장한 모든 무예는 온 인류가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때론 목숨까지 버려가며 발전시킨, 가장 실질적인 실험실습을 통해 개발한 위대한 인류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우리 무예인들에겐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온 인류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귀중한 수련으로서 오늘에 맞게 자리매김 시켜할 책임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예수련이 단순히 몸을 단련시키는 기능뿐 아니라 병든 몸을 치유하거나 육체를 넘어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의 도구로서도 그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수련체계를 다듬어 나가야 한다.무예 수련과 일반 스포츠 수련이 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기(氣)를 다룬다는 점이다. 기란 태권도를 비롯한 모든 무예에서 몸을 보호하고 강화시키는 수련의 핵심 도구로 다루어 왔기에 무예를 익힌 이라면 누구에게나 친근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기를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신비로운 존재로 대하기보다 우리 실생활 속에서 익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실질적인 에너지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우리 수련이 단순히 몸을 강화하는 수단을 넘어 자연과 동화하고 인류와 상생하는 지적인 단계로까지 확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역 도장이 지역사회의 힐링 센터가 되고 명상센터가 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아 심신의 단련과 재충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주제넘지만 미국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비교적 쉽게 설명해보려 했던 바를 모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초보 수련생들을 지도할 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활 속의 기(氣)
기(氣)란 우리 민족에겐 불가분의 관계로 함께 해온 존재였다. 그 예로 우리 말 중에 ‘기가 막힌다. 기가 세다, 기가 꺾였다, 심기가 불편하다. 살기가 느껴진다. 기진맥진하다.’ 등의 표현은 일상에서 수도 없이 사용되어 왔다.
이런 기의 작용은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도 있다. 시골을 여행하다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집을 본다. 서까래가 주저앉고 벽이 무너진 것이 당장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사람이 거주 할 땐 사람의 기운이 집안 가득 차서 집도 생생했지만 살던 사람이 나가면 그 집에서 기가 빠져나가 곧 무너져 내리고 폐가가 되고 만다. 우리 몸도 생기 가득 할 땐 건강하고 살아 움직이지만 생기가 빠져나가고 나면 곧 티끌로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기의 작용이다.
기(氣)란 무엇인가?
세상은 단순히 딱딱하고 고정된 사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을 비롯한 대자연의 모든 사물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역동하는 에너지의 덩어리요, 기운의 뭉친 모습이다. 대자연을 이루는 이런 기(氣)는 항상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려는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매우 규칙적인 운행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 운행 법칙에 맞게 심신을 단련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 몸과 마음에도 맑은 기운이 북돋아 더욱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며 어려워진 생활의 치유도 가능해 질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 몸에 흐르는 기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정기(精氣), 탁기(濁氣)
첫째로 우리 몸에 흐르는 기는 크게 정기(精氣)와 탁기(濁氣)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기란 글자 그대로 맑은 기운을, 탁기란 탁한 기운을 말한다. 맑은 기운은 가벼워 위로 뜨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탁한 기운은 무거워 가라앉는 성질이 있다. 맑은 기운은 가벼워 순환이 잘 되지만 탁한 기운은 무거워 정체된다. 그래서 몸에 정기가 가득하면 건강하지만 탁기가 쌓이고 뭉치면 기혈이 막혀 병을 만든다.
똑같이 땀 흘려 일을 해도 신나는 일을 할 때는 정기가 생성되어 피곤하지 않고 도리어 힘이 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는 탁기가 발생해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렇기 때문에 기분 좋게 몸을 움직이면 정기를 생산하면 몸에 좋은 ‘운동’이 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노동’이 되어 탁기가 발생하고 몸을 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취미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땀 흘려 텃밭을 가꾸면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여가를 즐겨 취미로 운동을 하는 이 역시 몸에 좋은 정기가 생산된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짓거나 직업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프로 선수들에게는 노동이 되니 항상 피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객기(客氣)
객기는 남의 기운이란 뜻으로 몸 안에 쓸데없이 쌓인 탁한 기운을 이르는 말이다. 몸의 어느 부분의 기운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땐 이곳에 기운이 막혀 뭉쳤다가 객기가 되어 몸을 고장 내고 병을 만든다. 우리가 흔히 겪는 객기의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오십견(五十肩)이다. 어깨에 객기가 꽉 차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땐 팔조차 들어 올릴 수 없게 된다. “50살은 50근의 무게를 지고 살고 70살은 70근을 지고 산다.”는 말처럼 어깨에 낀 이 객기를 풀어내지 못하면 나이가 들수록 더 큰 통증과 무게를 지고 살아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라마냥 목을 어깨에 딱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목과 어깨에 객기가 잔뜩 쌓인 것이다. 이러면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머리도 맑지 않고 항상 무거워 성질이 급해지고 조그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낸다. 객기가 몸에 꽉 끼어 스스로 힘들기 때문이다. 탁한 기운을 잔뜩 물고 사는 소위 ‘건달, 어깨’들이 이 모양을 띠고 산다. 이렇듯 객기란 비단 내게만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 남에게도 해를 끼친다.
이런 증상을 고치려면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목과 어깨를 잘 돌리고 풀어주어 유연하게 해주어야 한다. 목과 어깨의 객기가 빠지고 나면 머리에 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이 가볍게 느껴지며 두통이 사라지고 맑아지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성품까지 고와진다. 사슴같이 목이 길고 늘씬한 미녀들을 보라. 목이 유연하니 항상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호감이 간다. 당연 인기가 좋고 대인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다.
객기와 돌연사
고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면 피곤하기는 한데 밤새 뒤척이기만 하고, 잠 못 드는 불면증이 발생한다. ‘잠은 짧은 죽음이요, 죽음은 긴 잠이다.’라는 말처럼 밤엔 모든 것을 잊고 죽은 듯이 자야 한다. 그런데 몸이 불편해 밤새 몸을 뒤척이고 잠을 설치고 나면 오장육부가 쉬질 못해 장이 굳고 그 기능까지 떨어진다.
이러면 온몸이 무겁고 머리가 멍한 상태가 되는데 이런 상태가 계속 지속되면 기혈이 막히고 생체 리듬이 깨져 소화가 안 돼 밥도 먹을 수 없게 된다. 마침내 이 객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위에 이르면 고혈압, 중풍, 뇌졸중 등으로 갑자기 쓰러지거나 어느 순간 몸이 동작을 딱 멈추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돌연사(突然死)다.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은 중년남성들의 돌연사의 원인이 바로 객기로 기혈 순환이 막힌 데서 오는 것이다.
이렇듯 잠만 잘 자면 웬만한 병도 쉽게 낫지만 잠을 자지 못하면 건강했던 몸도 병이 나는 법이다. 그러니 잠이 오지 않을 땐 억지로 자려 하지 말고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객기를 풀어 주고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런데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잠을 청하겠다며 무리한 운동을 하게 되면 혈액 순환이 빨라져 도리어 잠을 쫓게 되니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객기가 쌓인 정도
옛말에 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말이 있다. 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베개가 높아야 잠이 잘 오는 사람은 객기가 몸에 꽉 끼어 몸을 쭉 펴지 못하고 구부리고 자는 것이다. 당연히 기혈 소통이 안 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베고 자는 베개가 낮다면 몸에 낀 객기가 적어 유연하다는 말이고 베개 없이도 잘 잔다면 더욱 객기가 적다는 말이니 장수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듯 자신이 베고 자는 베개의 높이만 봐도 몸에 낀 객기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바닥에 까는 침구의 푹신한 정도 역시 몸에 낀 객기의 정도와 비례한다. 어린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다가도 방바닥이고 어디고 아무데나 푹 퍼져 잠이 든다. 높은 베개도, 푹신한 이부자리도 필요 없다. 그런데도 눈만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뛰어 다닌다. 몸이 부드러워 낀 객기가 적고 온몸의 근육과 오장육부며 관절마다 기운이 잘 소통되어 재충전이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객기가 많이 낀 어른들은 푹신한 침대 위에서도 잠을 잘 못 이룬다. 잘 때는 어린 아이들처럼 큰 대자로 쭉 뻗고 자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몸에 끼는 객기도 많아져 잔뜩 웅크리고 자게 된다. 자면서도 몸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운소통이 잘 될 리가 없고 자고 나도 피곤하다.
인간의 몸은 기운소통만 잘 되면 아프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고 객기가 빠질 때 비로소 몸 안에 숨겨진 놀라운 재생능력과 치유능력도 되살아나는 법이다. 따라서 많은 장수의 비결들이 있으나 몸을 부드럽게 풀어 객기를 빼고 기운 소통을 좋게 만드는 방법이 그 첫 째라 할 것이다.
탈기(脫氣), 실기(失氣)
탈기(脫氣)와 실기(失氣)는 몸에서 기운이 빠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뜻엔 차이가 있다. 실기(失氣)는 말 그대로 몸의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탈기는 스스로 탁한 기운을 털어내어 몸을 가볍게 한다는 뜻이다.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몸의 관절과 근육이 주기(酒氣)에 의해서 탈기된 상태다. 매우 유연하기에 넘어져도 잘 다치지 않는다. 반면에 수련중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성인들이 흔히 당하는 부상들을 보면 몸이 균형을 잃었을 때 안 넘어지려고 억지로 몸을 반대로 틀다가 발목이나 허리가 꺾여 다치곤 한다. 그러니 균형을 잃었을 땐 넘어지는 방향으로 힘을 빼고 그냥 넘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낙법의 원리고 탈기의 응용이다.
가슴에 울화가 치밀어 답답하고 속이 막혔을 때 통곡을 하는 것도 탈기(脫氣)에 좋은 방법이다. 울면서 탁한 기운이 가슴에서 빠져나와 막혔던 기운이 뚫리면서 가슴이 후련해진다. 종교적으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나서 중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또한 가슴에 맺혀 있던 탁기가 눈물로 녹아 빠져 나오면서 오래 묵은 병이 낫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에 병이 들어 기운을 잃거나 무리한 일로 기운을 소진하는 경우는 실기에 해당한다. 탈기는 쓸모없는 탁한 기운을 털어버려 몸에 이롭지만 실기는 좋은 기운을 잃어 몸에 해롭다.
웃음도 우리 몸의 기운을 화하게 해주고 소통을 시켜주는 좋은 탈기 방법이지만 너무 크게 소리 내어 깔깔거리면 도리어 실기(失氣)가 되어 몸에 해로워진다.
사람을 간지럽혀 억지로 웃게 만드는 것이 고문에 해당하는 것도 엄청난 실기 때문이다. 조금만 웃겨도 참지 못하고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게 웃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에너지 손실이 심해 감정의 기복이 크고 큰 기운을 모으기가 어려워 큰일을 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너무 자지러지게 웃는 사람을 보면 보는 사람마저 불편해져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는 웃음은 되도록 삼가 하는 것이 좋다. 실기로 쉽게 병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웃음이 좋은 웃음일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은은하게 표출하는 미소가 좋은 웃음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미소는 보는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맑은 기운을 준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큰 어른들도 보면 얼굴 가득 은은한 미소를 지을 뿐 함부로 소리 내어 웃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 미소 속엔 큰 기운이 담겨 보는 이의 마음마저 맑혀주는 힘이 있다.
토기(吐氣), 흡기(吸氣)
토기(吐氣)란 내쉬는 호흡을 통해 몸 안에 쌓인 탁기를 몸 밖으로 배출 시키는 방법이고 흡기(吸氣)란 들이마시는 숨을 통해 신선한 기운을 몸 안으로 채워 넣는 방법을 말한다.
토기로 오장육부의 탁기를 배출하면 몸이 가볍고 부드러워지는데 이런 토기가 잘 안 되면호흡이 얕아지고 몸의 기운도 잘 안돌게 된다. 그래서 호흡 수련을 할 땐 토기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몸 안에 빈 공간이 생겨 맑은 기운이 그 자리를 채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탁한 기운을 몸 안 가득 쌓아 놓고서는 빈자리가 없어 아무리 맑은 기운도 들어오지 못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람이 임종을 할 때도 그 마지막 호흡을 보면 대부분 들이마셨다가 내쉬지를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토기즉생(吐氣卽生)이요, 흡기즉사(吸氣卽死)다.’라는 말도 있다. 내쉬는 숨은 생명이 되지만 들이쉬는 숨은 죽음이 되니 내쉬는 호흡에 중점을 두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전호흡을 할 때 들이쉬는 호흡으로 기운을 모으는 흡기에 중점을 두는데 사실은 토기를 통해 탁기를 배출하는데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기분(氣分)
잠을 잘 자고 나서 기지개를 쭉 켜면 온 몸 구석구석 시원하게 기운이 뻗어나가 몸이 잘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때 기분(氣分)이란 기(氣)의 분배(分)를 뜻한다. 기분이 좋다는 말은 몸 전체에 기운이 골고루 퍼져 편안하다는 뜻이고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기가 뭉치고 편중되어 불편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피곤할 때 팔다리를 주물러주면 뭉쳤던 기운들이 골고루 분산되면서 몸이 편안해 지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배가 아파 보챌 때도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하며 만져주면 엄마의 따끈따끈한 손의 기운이 아이 배의 차고 뭉친 기운을 풀어 주어 기분(氣分)을 좋게 해주기에 통증이 가시고 스르르 잠이 드는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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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7-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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