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이야기> 삼신산(三神山)

  

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45


중국의《열자(列子)》<탕문(湯問)〉편과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는 삼신산(三神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책들에 의하면 삼신산은 발해(渤海) 동쪽에 있으며, 신선(神仙)이 살고, 불사약(不死藥)이 있으며, 인간세계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속세의 사람이 다가가면 태풍이 불어 접근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도 진시황은 죽지 않는 불사약을 구하려고 방사 한종(韓終)과 서불(徐市) 등 동남동녀 500쌍을 해동 발해의 삼신산으로 보냈다. 한무제와 제나라의 위왕, 선왕, 연나라의 소왕 등도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방사들을 삼신산으로 보낸 왕들이다. 그리고 한무제는 바로 사마천을 거세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손권(孫權) 역시 230년(황룡2년) 장군 위온과 제갈직에게 무장한 군사들을 딸려 단주(檀州)와 이주(夷州)로 보냈다고 하는데, 단주와 이주는 단군조선과 구이(九夷)다.

또한 진시황이 보낸 방사 한종이 삼한(三韓)에 와 머무른 자취가 있으며, 서불 역시 우리나라 남해에 온 증거가 지금까지도 바위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리하여 경상남도에서는 바위에 새겨진 그 글자를 1974년 2월 16일, 경남기념물 6호로 지정하였다.

삼신산(三神山)은 삼신사상 곧 신선사상과 연관된 산으로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말한다.

우리민족은 태고적부터 삼신사상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 삼신하느님, 삼신할머니, 삼층천, 삼태극, 삼족오, 삼신산, 삼신봉, 삼성궁, 삼세번 등등.

고대(古代)의 환인·환웅·단군 또한 삼신(三神)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지감(止感)·조식(調息)· 금촉(禁觸) 삼법(三法) 수행을 하였다.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서,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3위 태백에 내려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 3명의 신하와 함께 신시(神市)를 열었다.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도 3명의 신하를 데리고 북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개국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삼신할머니가 아기를 점지하여 주신다고 믿었으며, 아기가 태어나면 3·7일 동안 금줄을 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였다.

사람 안에는 영·혼·백이 있다고 믿었으며, 초상이 나면 사자밥을 3그릇을 차려 놓았다. 죽은 지 3일이 되면 장사를 지내고, 장사 지낸지 3일 만에 삼우제를 지내며, 3년 상을 치렀다. 제사상에도 나물 3그릇, 탕 3그릇, 전 3접시를 올린다.

일제시대 3·1운동에도 33인이 서명을 하였으며,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삼세번을 하고, 고시레를 해도 3번을 하며, 우리가락도 3박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삼신사상(三神思想)을 내재한 신선사상(神仙思想)은 일찍이 우리 한국에서 발생하였다고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친형이자 자타가 천재라고 인정하는 범부 김정설(金鼎卨) 선생은 그의 저서 《풍류정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선도(神仙道)는 한국에서 발생하였다. 중국 상대(上代)의 문헌에는 신선설이 없다. 십삼경(十三經) 중의 《노자》에도 없으며, 춘추시대까지도 없었다. 《장자》에 비로소 선인, 신인설이 비치고 《금사(楚辭)》에 나왔는데, 이는 전국시대에 해당된다.’

중국 진(秦)나라 사람인 갈홍(葛洪, 283~343) 역시 《포박자(抱朴子)》〈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옛날에 황제(黃帝)가 있었는데, 동(東)으로 청구(靑丘)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 자부선인(紫府仙人)을 만나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

청구(靑丘)는 조선땅이요, 풍산은 바로 백두산이다. 이렇게 중국의 고서(古書)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 역사서인《환단고기(桓檀古記)》《단기고사(檀記古事)》《계원사화(揆園史話)》에서도 동일한 기록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 도가의 시조인 황제 헌원이 우리 고조선 청구에서 ‘선도법(仙道法)’을 가져갔다는 증거이다.

중국사람 서량지가 지은 《중국사전사화》에도 ‘황제족(黃帝族)이 동이(東夷)문화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이’는 예로부터 중국 사람들이 우리민족 한국을 지칭하는 명칭이었다.

그렇다면 삼신산은 어디에 있는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해동(海東) 발해(渤海)에 있다. 신선이 살고 있으며, 불사약이 있다. 그곳의 물건과 짐승들은 모두 희다.

신라 초기 관설당(觀雪堂) 박제상(朴堤上, 363~418)의 《징심록(澄心錄)》〈부도지〉
봉래, 방장, 영주는 불함(不咸) 3역(域)이며, 불사약은 거기서 나는 산삼이다. 불함산은 백두산을 말한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
두보는 그의 시에서 ‘방장산은 바다 건너 삼한에 있네.(有方丈三韓外之句)’라고 노래하였다.
그리고 그 주 및 《통감집람》에 모두 ‘방장산은 대방군 남쪽에 있다.’라고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9.)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123년(인종1) 고려에 다녀가서 기행문 《고려도경(高麗圖經)》을 썼다. 그의 고려 기행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34에.

‘봉래산은 바라보면 심히 먼데, 앞이 높고 뒤가 내려갔다. 뾰족하게 치솟아 있는 것이 사랑스럽다. 그 섬은 아직도 창국(昌國, 정해현)의 봉경(封境)에 속해 있다. 그 위는 극히 넓어 씨를 뿌릴 수 있어서 섬사람들이 산다. 선가(仙家)의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봉래가 있는데, 그곳은 약수(弱水) 3만 리를 넘어가서야 도달할 수 있다. 지금은 바로 앞에서 ‘선가의 봉래’를 보게는 안 될 것이므로, 틀림없이 지금 사람이 이것을 가리켜 그렇게 이름 지었을 것이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는 산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연이은 파도가 솟았다 내렸다 하며 내뿜어 두들기고 들끓어 오르고 하는 것만이 보일 뿐이다. 선박이 뒤흔들려 배안의 사람들이 토하고 현기증이 나서 쓰러지고,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가 십중팔구다.’

북창(北窓) 정렴(鄭磏, 1506~1549) 《溫城世稿》
북창이 중국에 갔을 때 중국인 도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삼신산이 있어서, 백일승천은 일상적인 일이다.”

허균(許筠, 1569~1618) 《성소부부고》
허균은 중국 진시황이 신선과 불사약을 찾으러 방사들을 삼신산에 보낸 것에 일찍이 관심을 갖고 《오악진형도(五嶽眞形圖)》《동명기(洞冥記)》《십주기(十洲記)》등을 깊이 고찰하였다. 결과 말하기를 “우리나라를 빼고는 삼신산이 있을 수 없으며, 영주(瀛洲), 봉래(蓬萊)도 금강산과 묘향산에서 밖으로 벗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의《해동이적(海東異蹟)》
“삼신산이 모두 한국에 있다. 때문에 신선(神仙)들의 행적이 해동(海東)에 많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6) 《택리지(擇里志)》〈명산명찰(名山名刹)〉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고,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하니, 이른바 삼신산이다. 지리지에 ‘지리산은 태을(太乙)이 사는 곳으로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이 밖에도 《지봉유설(芝峯類說)》을 쓴 이수광(李睟光, 1563~1628), 조선시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던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조선도교사》를 쓴 이능화(李能和, 1869~1943) 역시 봉래, 방장, 영주를 우리나라의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삼신산(三神山)이 한국에 있다는 견해 또한 두 가지로 도출된다.
1. 삼신산은 백두산 안에 있다.
2. 삼신산 즉 봉래, 방장, 영주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이다.

어쨌거나 금강산의 또 하나의 이름은 봉래산이다. 우리는 금강산을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고 부른다. 봉래산의 봉(蓬)과 래(萊)는 쑥과 풀을 뜻하는 글자로서, 심산유곡에 약초들이 많다는 뜻이다.
 
지리산에 가면 쌍계사 일주문 현판이 〈삼신산(三神山) 쌍계사〉라고 되어 있으며, 지리산의 또 하나의 이름은 방장산이다. 
제주도의 지명과 유래에 대한 기록을 적고 있는 《탐라지》 또한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삼신산은 삼신사상, 곧 신선사상과 관계된 산이며, 신선사상의 발생지는 우리나라라는 점이다. 그리고 진시황 등 중국의 제왕들이 보낸 방사들의 발자취와 흔적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허균의 주장대로 우리나라를 빼고는 삼신산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은 한국의 전통소리 단가〈만고강산〉의 가사이다.

만고강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1. 봉래(蓬萊) 2. 방장(方丈) 3. 영주(瀛洲)
죽장 집고 풍월(風月) 실어 봉래산을 구경갈제
경포 동령(東嶺)의 명월(明月)을 구경하고
청간정(淸澗停) 낙산사와 총석정을 구경하고
단발령을 얼른 넘어 봉래산을 올라서니
천봉만학(千峰萬壑) 부용(芙蓉)들은 하늘 위에 솟아있고
백절폭포(百折瀑布) 급한 물은 은하수를 기울인 듯
잠든 구름 깨우려고 맑은 안개 잠겼으니
선경(仙境) 일시가 분명하구나.
때마침 모춘(暮春)이라 붉은 꽃 푸른 잎과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춘색을 자랑한다.
봉래산 좋은 경치 지척에 두고 못 본 지가 몇 날인가...
- 이하 생략 -



[글 = 정현축 원장 ㅣ 국선도 계룡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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