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이야기] 홍유손, 정희량, 윤군평

  

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42


홍유손, 정희량, 윤군평은 청한자 김시습에게 선도(仙道)를 전수받은 인물들이다. 그중에서도 홍유손과 정희량은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기도 하다.

1. 광진자(狂眞子) 홍유손

홍유손(洪裕孫, 1431~1529)의 자는 여경(餘慶)이고, 호는 소총(篠叢) 또는 광진자(狂眞子)이다. 광진자라는 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청한자 김시습처럼 방외인(方外人)으로 살며 미친 사람 행세를 하였다.

홍유손은 문벌을 중시 여기는 조선시대에 미천한 아전 집안 출신으로 태어나 김종직의 문인(門人)이 되었으니, 그 문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는 능한 문장(文章) 덕분에 부역도 면제받았으며, 5세 신동이었던 김시습이 그의 시(詩)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깊고 깊은 산속에 주인 없는 꽃이 피었네.
벌 나비도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가지도 않는구나.
꽃 피우는 봄바람도 종일 불다 이제 그치려는데
녹음이 곱게 이루어지니, 이 일을 어찌 할거나 어찌할거나. - 무주화(無主花)


이처럼 탁월한 문장력을 가진 뛰어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홍유손은 김시습과 마찬가지로 세조의 왕위찬탈 이후 벼슬길에 나가기를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불의(不義)를 미워하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세속적 영화를 버리고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세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질(氣質)이 청한자 김시습과 비슷하였다. 그리하여 죽림칠현을 자처하며 시와 술로서 풍류의 세월을 보낸 청담파(淸談派)의 한 사람이었다.

연산군 때는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관노로 유배되었다. 그러다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76세에 처음 장가를 들어 아들도 하나 낳고, 명산(名山)을 두루두루 편력하다가 99세에 선화(仙化)하였다. 우계 성혼의 《묵암잡기》에는 그가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고 전한다.

저서로 《소총유고(篠叢遺稿)》가 있는데, 국화에 비유하여 선도(仙道)의 양생법(養生法)을 잘 설명하였다.

‘병(病)을 다스리는 방법은 혈기(血氣)를 잘 조절하고 보호하는 데에 있다. 온 몸에 가득한 혈기를 잘 조절하고 보호하면 5장 6부가 튼튼해지고 5장 6부가 튼튼해지면 객풍(客風)이 내부에 엉기지 못해 혈기가 차갑거나 부족한 폐해가 없어진다. 의가(醫家)의 모든 처방과 선가(仙家)의 온갖 비결들이 모두 양생술(養生術)인데, 음식의 절제를 먼저 말하고 정신의 보호를 뒤에 말하였다. 그러므로 음식을 절제하지 않고 정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혈기(血氣)가 들뜨고 허해 객풍을 불러들이며, 몸이 위태한 지경에 빠지고 만다.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모든 꽃 위에 우뚝한 것은, 일찍 이루어져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릇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재앙이니,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氣運)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이다. 서서히 천지(天地)의 기운(氣運)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억지로 정기(精氣)를 강하게 조장하지 않으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성취된다. 국화는 이른 봄에 싹이 돋고 초여름에 자라고 초가을에 무성하고 늦가을에 울창하므로 이렇게 되는 것이다. 대저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 또한 어찌 이와 다르지 않으니, 옛사람들이 일찍 벼슬길에 올라 영달하는 것을 경계했던 까닭도 이 때문이다. 대저 수명(壽命)의 길고 짧음은 모두 자기 스스로 취하는 것이지 남이 그렇게 되도록 시키는 것이 아니며, 하늘이 주고 빼앗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와 같이 오래 사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거역하지 않고 순응했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이 나에게 내려 준 일신(一身)의 원기(元氣)가 본래 그다지 강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러 이와 같이 늙고 말았다. 그러나 만약 이런 방법을 버리고 급급히 다른 데서 장수(長壽)의 방법을 찾았다면 이렇게 늙은 나이까지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칠순인데도 머리털이 검고 가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있으니, 나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2. 허암(虛庵) 정희량

허암 정희량(鄭希良, 1469~?) 또한 홍유손과 마찬가지로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었으며, 청한자 김시습으로부터 선도를 전수받았다.

일찍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한림학사를 지내다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김종직의 제자로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나던 해에 모친상을 당했는데, 정성스럽게 시묘살이를 하던 중 돌연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총민박학(聰敏博學)하고 주역(周易)과 음양학(陰陽學)에 통달했던 그는 평소에 늘 이렇게 걱정하였다고 한다.
“갑자년(甲子年)에 있을 화(禍)는 무오사화보다 더 무섭다.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실제 연산군 10년에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 이미 사망한 김종직과 남효온, 정여창 등은 부관참시까지 당하였으니, 과연 그의 예언은 맞아떨어진 셈이다.

갑자사화(甲子士禍)란 연산군 10년에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복위문제와 얽혀 일어난 사건이다. 이 때 윤씨의 폐위에 찬성했거나, 복위를 반대한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있었다.

그 후 얼마 뒤 이천년(李千年)이라는 중이 산수(山水)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한번은 가천원의 벽에 이런 시를 지어 붙였다.

비바람 치던 전날 놀라 달아났고
문명(文明)한 이때에도 저버렸네.
외로운 지팡이로 우주간(宇宙間)에 노닐으니
이제는 시끄러움 싫어져 시(詩) 마저도 짓지 않으련다.


이즈음 김륜이라는 사람이 이천년을 좋아하여 따라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양 판서 신경광을 방문하였는데, 신경광은 점치는 것을 좋아하여 고관 선비들의 사주를 벽에 써 붙여두고 점치기를 즐기었다. 거기에 정희량의 사주도 있었는데, 김륜이 보고는 깜짝 놀라 말하였다. “이것은 나의 스승 이천년의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정희량과 이천년을 동일 인물로 여겼다. 아무튼 오늘날 고급 음식에 속하는 신선로(神仙爐)는 바로 정희량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수(山水)를 노닐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정희량은 주역의 63번째 괘인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이치로 화로를 만들어, 매끼마다 오직 이 화로 하나로 각종 채소를 익혀 먹었다고 한다.

수화기제란 수승화강(水昇火降)으로서 머리는 차고 아랫배는 따뜻한 것이니, 몸으로는 아주 건강한 상태요, 음식으로 치자면 밑에서 불을 지피고 위에서는 물이 끓는 것이니,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정희량이 가지고 다니던 화로를 신선(神仙)이 만든 화로, 또는 신선이 가지고 다니는 화로라 하여 신선로(神仙爐)라 하였다고 《대동기문(大東奇聞)》《해동죽지(海東竹枝)》《조선요리학》등은 밝히고 있다.

또 내단(內丹) 수련가이자 다인(茶人)이기도 했던 정희량은 〈야좌전다(夜坐煎茶)〉라는 시에서, 차를 끓이는 과정과 내단(內丹)의 문무화력(文武火力)을 동시에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상머리 이끼 말끔히 닦아내고
차디찬 물 부어 화력의 강약을 맞추니
벽 위에 달 비치고 맑은 연기 피어나네.
솔바람처럼 끓는 소리 온 골짜기 울리고
세차게 끓어올라 긴 시내에 다 울리네.
우레 번개 세찬 기세 끝나기도 전에
급히 달리는 수레가 험한 산꼭대기를 넘더니
잠깐 사이 다시 구름이 걷히고 바람 멀어
파도 일지 않고 맑은 물결 지네.
표주박 기울이니 빙설처럼 희어서
마음이 확 트여 신선과 통한다네.


단학(丹學)에 통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정희량은 자신의 저서에서 일체의 문명(文明)과 제도(制度)를 부정하고 개인의 절대적 자유(自由)를 추구하였다.

3. 윤군평
윤군평(尹君平)은 한양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무예를 배웠다. 그러다가 군관(軍官)이 되어 연경(燕京, 현재의 베이찡)으로 부임해 가는 도중에, 청한자 김시습을 만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윤군평은 당시에도 이인(異人)으로 불리었는데, 항상 몸이 뜨거워서 늘 차가운 철편(鐵片) 4개를 가지고 다니며 번갈아 양쪽 겨드랑이에 갈아 끼었다고 한다. 그러면 잠깐 사이에 철편이 화로쇠 같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내 또 차가운 철편으로 갈아 끼워야 했다.

그는 의선(醫仙)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반 대중에게 구체적인 양생법(養生法)을 제시하였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과음 과식에 있음을 주장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과식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또한 고열치료법으로 냉수마찰을 권유하였으며, 그 자신 엄동설한에도 냉수마찰로 심신(心身)을 단련하였다고 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은 윤군평이 전우치와 동시대인으로서 도술이 높았으며,일생을 병 없이 수(壽)를 누리다가, 80여 세에 묘향산에서 시해(尸解) 되어 종적을 감추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림(霖) 또한 선도(仙道)를 배워 나이 9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 위 내용은 외부 기고문으로 본지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 = 정현축 원장 ㅣ 국선도 계룡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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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홍유손 #정희량 #윤군평 #정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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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대전, 광주, 부산 MBC ‘공간다큐 그곳’ 프로그램에 국선도 방송 ,,, 본방송: 6월 24일 월요일밤 11시15분부터 50분간/ 재방송: 6월 25일 화요일 낮 12시20분부터 50분간/ 대전, 광주, 부산 MBC 방송

    2013-06-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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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채도사

    아님 말고 ! ^^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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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증말 ?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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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채도사

    국선도 = 나그네 = 체험자 ㅋㅋ ㅎㄷㄷ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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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다

    분신술은 본래 있었구요,,, 체험자 = 지나다 = 진리 는 틀렸슴돠 .. ^^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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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선도

    체험자 = 지나다 = 진리
    요즘 국선도는 분신술도 배우나 보네요.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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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다

    동감임다 ..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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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험자

    ...

    구구절절 말한 들 무슨 소용 있으랴.... 인간의 오감을 넘어선 다차원의 존재계가 있음을... 왜 도인들께서 이 물질세상을 티끌세상이라 부르시는지. 그래 어떤 문외한은 나를 사이비라 한다. 그래도 내 말은 똑 같다. 체험해 봐야 안다.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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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환단고기는 위서라고 판명났고 선도의 도인에게서 갑작스리 유출된 게 아닙니다. 체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는 것도 사이비들의 흔한 변명이죠. 진리는 간단한 겁니다.

    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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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다

    완전 감동임다 ...

    2013-06-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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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험자

    체험없이는 참 알수없는 세계가 있다.
    말로는 통 전해질 수 없으니, 문외한에겐 소설이 되는 건 양반이고,
    미친 놈 소리 듣는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한단고기는 본래 선도의 도인에게서 갑작스리 유출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세상의 학자들 눈에는 후세의 창작이라 한다.

    그러나 이 칼럼의 소총유고 소개 대목처럼, 선도에 전문가를 넘어서 비결이 군데 군데 숨어 있는데,
    문외한의 눈에는 그것이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다...
    몸소 체험해 보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2013-06-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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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국선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3-06-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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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선도

    석박사 논문? 논문 어디에 저 인물들과 국선도와의 관계를 표현하거나 암시하는 구절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논문은 모르겠지만 칼럼은 거저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2013-06-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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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선도 석사 박사 논문들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글은 어디 거저 쓰나요? ^^*

    2013-06-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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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선도

    국선도 소설은 이제 그만 씁시다.

    2013-06-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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