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이야기] 국선(國仙) 김유신

  

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17


김유신(595~673) 장군은 15세에 화랑이 되었고, 17살에 홀로 중악(中嶽) 석굴에 들어가 수행하였으며, 18세에 국선(國仙)이 된 인물로서 삼국통일의 위대한 주역이었다.

증조부는 김수로왕의 9대손이자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김구해(金仇亥)였다. 김구해가 신라 법흥왕 19년(532년) 신라에 투항한 이후, 조부 김무력(金武力)과 부친 김서현(金舒玄)은 신라의 장군으로서 크게 활약하였다.

부친 서현공(舒玄公)은 경진일(庚辰日) 밤에 형혹성(熒惑星:南方火星)과 진성(鎭星:中央土星), 두 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모친 만명부인 또한 신축일(辛丑日) 밤에 동자가 황금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기를 배어 낳았는데, 등에 칠성(七星) 무늬가 있었다고 한다.

김유신이 15세에 화랑이 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이 그를 기꺼이 따랐는데, 그의 무리를 일러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17살이 되었을 때는 고구려, 백제, 일본 등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외적을 평정하려는 뜻을 품고 혼자 중악(中嶽) 석굴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고(告)하며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적국이 무도하여 짐승같이 우리의 영역을 소란케 하니,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제가 일개 미약한 신하지만, 나라의 환란을 없애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부디 하늘은 굽어 살펴 저를 도와주소서!”

이렇게 하늘에 소원을 빌고 나흘이 지나자, 거친 베옷을 입은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여기는 독충과 맹수가 많아서 무서운 곳인데, 귀한 소년이 무슨 일로 혼자 머무는가?”
“노인께서는 어디서 오셨으며, 누구시온지요?”
“나는 일정한 주거가 없이 인연 닿는 대로 가고 머무나니, 이름은 난승(難勝)이다.”

김유신은 노인이 범상한 사람이 아님을 간파하고, 거듭 절하며 간청하였다.
“저는 신라인으로서, 나라의 원수를 보니 가슴이 미어지듯 아픕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어르신께서는 저의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부디 비법(秘法)을 가르쳐 주옵소서.”

유신이 눈물을 흘리면서 거듭거듭 간청하자, 노인은 입을 떼었다.
“공자가 어린 나이로 삼국(三國)을 병합하려는 큰 뜻을 품었으니, 장하도다.”
노인은 말을 마치며 유신에게 비결(秘訣)을 알려 주었다.
“부디 함부로 쓰지 말라. 만약 이를 의롭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노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오직 산위에 오색찬란한 빛만 서려 있었다.

김유신은 더욱더 뜻을 깊게 품고 보검을 차고 홀로 인박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향을 피워놓고 하늘에 맹세하며 기도했다. 그러자 천관신이 빛을 비추며 보검에 영기를 쬐어 주었다. 허숙(虛宿)과 각숙(角宿) 두 별자리의 빛이 환하게 내려오며 칼이 흔들렸다. 김유신의 정성이 마침내 감응(感應) 된 것이었다.

진평왕 51년(629년) 가을, 신라는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략하였다. 이때 김유신은 부친 서현(舒玄) 장군을 따라 전쟁에 첫 출전을 하였다. 그런데 공략은 신라가 먼저 했으나, 고구려 군사가 오히려 사기충천한지라 신라군은 곧 패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김유신이 부친 서현 장군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제가 스스로 충효(忠孝)를 다하기로 맹세했으니, 어쩔 수 없이 적진에 들어가 용맹스럽게 싸워야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김유신은 말에 올라타더니, 적진을 향해 칼을 빼어들고 돌진했다. 그리고 이내 적장의 머리를 베어 돌아왔다. 이에 신라군은 사기가 크게 치솟아 분연히 일어나 공격하여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선덕여왕 11년(642년)에는 백제와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는데, 돌아오자마자 백제가 재차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때 김유신의 가족들은 모두 문밖까지 나와 김유신 장군이 잠시라도 집에 들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김유신 장군은 그대로 집을 지나쳐 갔다. 다만 부하를 시켜 자기 집의 물을 한 그릇 떠오게 했을 뿐이었다.
“우리 집의 물맛이 옛 맛 그대로구나. 됐다, 가자!”

이를 본 군사들은 모두 마음을 다잡았다.
“대장군이 이러하신데, 어찌 우리가 집에 못 가는 것을 섭섭하게 여길 것인가!”
이에 신라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충천하였으므로, 백제군은 감히 근접을 못하고 그대로 물러갔다.

660년. 김유신 장군은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백제를 크게 공략하였다. 김유신 장군은 태자 김법민(金法敏)과 함께 육로로 나아가 황산벌판에서 백제의 명장 계백(階伯)장군을 맞아 싸움을 벌였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둘째아들 김인문(金仁問)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함께 수로로 진격하여 백제를 공격하였다.

신라 김유신 장군과 백제 계백장군의 황산벌 싸움은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다.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나온 계백장군의 용맹한 정신은 그대로 전투에 투영 되어서, 신라군은 점점 열세에 몰리고 있었다. 이때 김유신 장군의 동생 김흠춘 장군은 아들 반굴에게 낭장결의해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다.

“지금이 바로 충효를 이룰 기회다!”
반굴의 장렬한 전사를 본 품일장군도 자신의 아들 관창에게 똑같이 낭장결의를 요구했다.

“네 나이 비록 어리지만, 뜻과 기개가 충천하다. 어찌 용맹을 내지 않을쏘냐?”
아버지의 말에 관창은 즉시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적진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렇게 두 화랑의 죽음에 힘입어 김유신 장군은 고전 끝에 어렵게 백제의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계백장군을 전사시켰다.

전투가 끝나고 김유신 장군은 소정방 부대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소정방과 김인문 부대 또한 기벌포(伎伐浦, 금강하구)에서 백제군을 대파하고 이미 김유신 장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렵게 싸움을 이기고, 지친 군사들을 이끌고 도착한 김유신 장군에게 소정방은 기약한 날에 늦었다는 이유로 김유신의 부하인 독군(督軍) 김문영을 목 베려 하였다.

이에 김유신 장군이 대노하여 소리쳤다.
“황산벌 싸움을 보지 못하고 단지 늦었다는 이유로 죄를 삼으려 하니, 나는 죄 없이는 욕을 받을 수 없다. 내 먼저 당나라 군사와 결전을 벌인 후에 백제를 멸하리라!”

김유신 장군이 큰 도끼를 땅에 내리꽂으며 소리치자, 성난 머리털이 위로 치솟고, 허리에 찬 칼은 저절로 뛰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놀란 소정방은 김문영을 풀어주며, 김유신 장군에게 사과하였다. 소정방은 당나라 고조(高祖)로부터 일찍이 ‘백제를 멸하고 나면, 틈을 보아 신라까지 내쳐 뺏으라.’는 밀지를 받은지라, 걸핏하면 트집을 잡고 거들먹거리며 갖가지 횡포를 자행하고 있던 차였다.

삼국(三國)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당나라의 음모를 간파한 김유신 장군은 당나라를 제압하기 위해 선수 칠 계획을 세웠으나,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아무튼 신라는 당나라의 지원을 받아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를 멸하고, 마침내 삼국통일(三國統一)의 대업(大業)을 이루었다.

그러나 신라는 또 당나라와의 전쟁이 남아 있었다. 우리 영토를 집어삼키려고 주저앉는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7년(670~676)에 걸쳐 나·당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672년 나·당 전쟁의 석문(石門) 벌판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온 아들 원술(元述)을, 김유신 장군은 참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왕은 김유신의 많은 공적을 생각하여 차마 참수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원술은 임금에게는 용서를 받았지만, 부모에게는 용서받지 못하였다. 전쟁에서 패한 몸이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이다.

산 속에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던 원술은 결국 당나라 군대가 매소성을 쳐들어왔을 때, 신분을 감추고 무명(無名)으로 참전해서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임금이 벼슬을 내렸지만, 사양하고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신라인의 이런 강건한 의지는 결국 우리 영토를 집어삼키려는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676) 하는데 마침내 성공하였다.

삼국통일(三國統一)의 주역 김유신 장군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 만명부인이 있었다. 유신이 젊어서 천관 기녀와 알고 지낼 때, 만명부인이 이를 알고 호통을 쳤다.

“네가 장차 삼국통일의 큰 꿈을 천하에 펼칠 대장부란 말이냐?”

어머니의 엄한 꾸지람을 들은 유신은 천관 기녀의 집에 발길을 끊었다. 그런데 훈련으로 피곤해 말에서 졸고 있는 사이 어느새 백마가 천관 기녀의 집으로 간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유신은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 그 자리에서 사랑하는 백마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이러한 단호함이 있었기에, 김유신 장군은 마침내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이룩할 수 있었으리라.

만명부인의 위대한 일화는 또 하나 있다. 유신이 아기일 때 만명부인은 아기를 업고 친정집엘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가에서 굶주린 거지가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만명부인은 주저 없이 자기 젖을 물려서 살려냈다.

혹자는 이 거지가 바로 관세음보살이었다고 하는 이도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실화인 모양이다.



* 위 내용은 외부 기고문으로 본지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 = 정현축 원장 ㅣ 국선도 계룡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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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국선도 #정현축 #김수로 #금관가야 #용화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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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당

    내 보기에는 사학자란 자는 분명 패배자(백제)의 후손임(지금의 호남지역민)이 틀림없다. 그 후손들이 지들을 멸망시킨 김유신을 폄하시킬 수 밖에 없지!!! 그 당시 삼국의 상황을 안다면 김춘추/김유신은 신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2012-11-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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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학자

    김유신은 절대 영웅이 아닙니다.
    그저 역사의 승자이고 철저하게 승자의 입장에서 남긴 역사서의 주인공일 뿐입니다.
    대륙까지 진출한 한반도 세력의 최대 전성기를 망친것 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까지 끌여들여서 오늘 날 한반도가 대대손손 지배당하고 사는 땅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2012-09-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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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비움

    사이비님/언젠가는, 아니 기회가 되면 시범보는것 가능할겁니다.지난번 얘기처럼 국선도내부에서 비공개적으로는 다양한 시범을 보일걸요 아마..공개하지 않아서 그렇지.도운도종사도 가끔시범을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시범보려면 직접찾아가서 요청해도 할진 모르겠네요..그냥같이 생활하면서 보여달라면 아마 씽긋 웃으면서 보여줄겁니다

    2011-12-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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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귀여워여,.,. ^^

    2011-12-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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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보여달라면 도인은 그런것 안한다, 못믿겟다면 하근자라 놀리고 , 그럼 도를 본다는 상근자 당신은 뭐할수잇냐? 도는 그런 자랑질 안한다, 그러면서 충주에서 일등햇다고 자랑질, 그강력하다는 국선도가 충주에서는되고, 왜 이종격투기에서는 안돼는가? 안하는거지 우린도인이니까,, 앞뒤가 안맞는것 같기도하고 맞는것 갖기도하고, 기기민가 알송달송 ,,ㅎㅎㅎ 하근자라 빗웃어봅니다 면도칼 처녀도사는 딴나라당 박양입닏

    2011-12-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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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끽도// 그럼 일본분이라고 하면 맘에 들어?? ㅋㅋ.

    2011-12-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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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끽도는 꼭 일본놈같아,.,

    2011-12-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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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끽도// 너나 잘하셔 ~ ~ㅎㄷㄷ

    2011-12-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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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비움

    중국은 도가와 일부불교계열에서호흡수련을필수로하며.일본에서도 불교일부에 호흡수련이전파됏으며 모 승려의경우 수백년간 장수하고잇다는 설이잇습.언론에서 취재하려다 실패햇.사실 기란게 특별한건아니죠.인체모든것이기의운용이고.우리말에ㅡ기차다.기지개.기가믹혀.인기많다등우리민족만큼기와친밀한만족도없죠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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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60~70년도에 국선도는 내공보다도 외공 외주로 보급했다. 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쇼부를 보는 게 빠르니까! 그러나 국선도 무도가 너무 강력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조금만 배워도 힘이 세지고.. 힘을 써보고 싶어지고.. 그래서 힘을 쓰고.. 문제들이 생기니, 외공 보급을 중단했던 것이다. 고로 '가장 강력했기 때문에' 보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보급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1년 충주 세계 무술축제 국선무도 그랑프리 대상 수상 획득!!! 추카추카 ^^*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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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믿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실천해 보시면 아시게 됩니다. ^^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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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하하

    상근자는 道를 들으면 곧 실천하고, 중근자는 道를 들으면 긴가민가 하고, 하근자는 道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그러므로 하근자가 비웃지 않으면, 그것은 도가 아니라. 하하하!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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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도 안먹히는 세상이야.. 하근기 세상이지..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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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자리비움님께 아부까지.. ^^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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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당나라는 단전호흡안햇나보군요, 일본왜군도 단전호흡않해나보내요 , 그럼 이순신부대말고 조선육군은단전호흡안햇나보군요 , 어디까지 믿으란말입니까? 그냥 입닥치고 믿어! 그나마 똘아이집단에 온전한정신이 보이시는 자리비움님,,,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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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만

    니들은 아직도 이러고 있니?????? 갑을론박 전부 소설일 뿐....ㅋ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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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선도

    80년대 그러니까 청산거사 사후 초창기 국선도에는 무술자체가 없었다고 함. 무술은 나중에 누군가가 가져다 붙이고는 이런 엉터리 역사와 연결시킴. 태권도의 역사날조에 영향을 받아 한발 더 나간걸로 보임.

    2011-12-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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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비움

    사이비님/ 맨손수련 수차례해서 차돌격파되는것은 당연하지요.호흡을 통한기수련의 고유한 방법도 있지만 맨손수련하는과정에서 손으로 기가 모아지는 것이니 당연 격파되지요.소림의 일지선,일지권도 수십만회의 반복훈련으로 성취된다 합니다.이것도 자연히 기운이 모아지는 수련의 일종이죠.방법만다를뿐 기운을 운용하는것은같다고할수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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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고구려 조의선인 3만이 당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은 명량 해전(鳴梁海戰, 1597년, 선조 30년, 음력 9월 16일, 양력 10월 25일)에서 조선 수군 13척으로 일본 수군 133척을 물리쳐서 승리하였습니다. ^^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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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거짓말이 많이 늘으셨군요? ^^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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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국선도는 생활의 道, 생명의 道입니다. ^^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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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선도

    우리민족 고유사상으로서 武道무도, 사상, 철학, 문학, 예술, 의학, 종교, 문화 등의 근간입니다.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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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청산선사님께서는 보급 초기, 국선도를 알리기 위해서 시범을 보이셨지요. 국선도를 하면 이렇게 힘이 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달은 안보고 손가락에만 관심이 있으니.. 시행착오로 인정하시고, 시범 보이기를 그만두셨습니다.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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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이런역사기록을 고지곳대로믿는 사람들 군대안간 사람일거고전쟁 전투의 개념도 모르는 그저그런 상상력만풍부한사람이디않을까 육군참모총장정도면 맨손으로 무장공비서넛쯤은식은죽먹기로 알겟지요 김유신처럼 어린 중삐리시절에도 도를통달하는걸 요즘국선도 20년한 면도칼처녀도사는 손가락퓨샵 20개할수잇다고 자랑질이니,도대체 뭘 말하고싶은것인지..뜸그만들이고 그냥국선도 등록좀하라고 광고나하던지...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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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인고?

    싸이트도 여러개 있던데, 단전호흡, 기수련, 화랑도, 심신단련, 명상, 표어가 아주 많이 있던데..? 도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단월드"라고 하는 단체 한국인 교주가 미국 여신도들 성추행 한것 나왔었는데...혹시 비슷한것 아닌가요?
    원래 도(道)인들은 속세와 인연끊고, 개/돼지/소/닭 울움소리 없는 "깊은산속에서, 솔잎과 나물이나 먹으면서, 있어야 되는것 아닌가여?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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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인고?

    근데, "국선도"가 무엇입니까?
    무술입니까? 아님 "기(氣)수련"(단전호흡)입니까?
    뭡니까? 더러, 철학관,무속인들도 이거 하러 다닌다고 하던데..?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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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스승은 하는데 제자들은못한다 그것도 과거에는햇는데 지금은못한다 그건둘중 하나일것이다 스승이 형편없는 사이비선생이거나 제자가 완전똘아이들 이던지.

    2011-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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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호호

    만약 우리 사부님께서 격파시범을 하시겠다고 하면.. 저는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말리겠어여.. 제가 먹여살릴테니까, 그런 품위 없는 일은 하시지 말라고여.. ^^

    2011-1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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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경꾼

    저는 사이비님이 짤렸는줄 알았어여,.,. 알바,.,. ^^

    2011-1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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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하하

    일본 사람들이 어디 똘아이입니까? 돈 들여서 한국 사람 데려다가 소금물에 절인 사암 깨게 하고, 돈 주게,.,. 하하하! 사이비님 똘아이,.,.,. 하하하! 사이비님 똘아이,.,. 하하하,.,.,.

    2011-1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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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끽도님말씀처럼 저점엽기로 흘러가는 댓글때문에 점점 오기가 싫어집니다 정원장님과 통닭에 맥주도 점점김빠지는듯해서 김빠진맥주에 식어버린치킨처럼....

    2011-1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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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똘아이도 어느정도 보편타당성이 잇어야 대화가되는법 아닐까요, 청산선생이 꺠뜨린 돌덩어리는 소금물에절인듯한 사암종류고 권사범이 깨뜨린 작으만한 돌맹이는 묵석 차돌종류죠 단순하게 크면 더욱 어려울거라는 사고때문에 차력이란것이 성립하죠 그래서 이번해 마지막 승급심사때 보기만 어마어마하고 차가운얼음덩어리격파 시범계획중입니다 결렬택견하는젊은사범이 손달련은살아잇는나무로해야 기가흡수되고 자가예법비술로 수련한다는 말을비웃듯 그저 맨벽돌로 하루 약200 회 수도 수련을 시연할겁니다

    2011-1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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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그날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똑같은 태양이지요 ..

    2011-12-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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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올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비록 일시 단절된 것같이 보이더라도, 거시적으로 그것은 또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2011-12-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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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남선

    古來고래로부터 민중의 心奧심오에 침잠한 조선 민족의 전통 정신인.. 밝도는.. 조선에 있어서 사멸한 形骸형해가 아니라, 현재 살아있고, 또한 활동하고 있는 一大일대 현실인 것이다. 민중, 그들 자신에게는 의식되지 않은 채로..

    2011-12-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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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허허님// 그게 그거입니다. ^^ 허허님이 아시든 모르시든 관계없이, 믿으시든 믿지 않으시든 관계없이, 그게 그거입니다. ^^ 그리고 칼럼은 칼럼이고, 논문은 논문입니다. 정원장님은 칼럼을 논문처럼 쓰는 일은 안한답니다.^^

    2011-12-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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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허

    신라시대 화랑인 김유신 그리고 그당시 국선도와 현재 청산거사가 창시한 붉도법 (선도술)과 무슨관계가 있습니까? 김유신당시의 국선도와 청산거사가 창시한 국선도가 같다는 문헌이나 그림 증거를 학자답게 객관적으로 학술적으로 논리정연하게 논문처럼 써주시죠? 이번 택견처럼 인류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도록 추천하려고 합니다.

    2011-12-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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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님

    상상도 참.. ^^ 내가 끽도님 재롱 보는 재미로 산다니까.. ㅎㄷㄷ

    2011-1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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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웡

    원장님이야 말로 진정한 무카스 등반왕이십니다. 이야기가 산으로 가려면 이쯤은 되야죠.

    2011-1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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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님

    청나라 먼 친척은 그래도 .. 태권도 이야기.. 저자 아녀유? ^^

    2011-1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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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님

    오랜만여유 ..^^

    2011-1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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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휴가 가셨나요? ^^

    2011-11-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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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형

    후삼국을 통일 한 고려 태조 왕건의 후예가 全씨 一族이죠.

    2011-11-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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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아마도 .. 나오겠지요.. 국선 문노.. ^^

    2011-11-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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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周亨

    國仙道, 道人,여러분 文奴의 俠氣에 대해서도 써 주세요.

    2011-11-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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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그대로

    뭔 말인지 ... 내 참..

    2011-11-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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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냅둬유

    도장에서 다하는 단전호흡 가지고 참 말많타... 무예도아니고 그냥 숨쉬기하라고 냅도요

    2011-11-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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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형(金周亨)

    화랑(花郞)의 사풍(士風)을 일으킨 별파유군(別派流軍) 가야계 화랑(花郞) 문노(文奴)에 대해서도 글을 써 주십시오.

    2011-11-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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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비움

    김유신,계백,연개소문 등은 각자 자기 처기에서 최선을 다했지요..물론 신라가 고립된 상태에서 외세의 힘을 빌려 도생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칠수밖에 없었지만. 저개인적으로는 자주성이 돋보인 고구려 연개소문에 더 애착이 갑니다.이들이 서로 갈등했지만 모두 우리의 자랑스런 선조임에는 틀림..

    2011-11-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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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형

    그래도 열국시대 말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정립하여 후삼한을 통일할때 신라장군 김유신만한 명장이 없습니다. 가야의 왕 김유신 장군 만세 !!!

    2011-11-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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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周亨

    北京, 太原, 滿州 일대의 만주족 조선족은 단군의 후예로 같은 동포랍니다.

    2011-11-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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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지금

    중국...예나 지금이나 남의 것 욕심내는 데에는 뭐가 있다니까....! 수나라가 고구려 욕심 내다가 망한 것처럼, 혹시 지금의 중국도 우리 땅 욕심내다간...^-^...예나 지금이나 중국을 경계해야 합니다!!!

    2011-11-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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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호호

    거문고 줄을 너무 꽉 조여도 , 너무 느슨해도, 제 음이 안나온대요 .. 김주형 님은 조금 꽉 조여진 느낌.. 끽도님은 조금 느슨한 느낌 .. ㅋㅋ.

    2011-11-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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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호호

    재밌는 댓글놀이.. ㅋㅋ.

    2011-11-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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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형

    댓글 고치지 마세요. 경고합니다.

    2011-11-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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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형

    신라의 화랑도는 정신문화로써 시대적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개창하여 후세에 길이 남지만 왕으로써의 삶이나, 장군으로써의 삶은 지나간 역사로 남는다.

    2011-11-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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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호호

    *^^*

    2011-11-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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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

    1등,.,. 정작가 떡밥투척완료,.

    2011-11-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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