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호랑이와 같고 진실함은 해를 뚫는다

  

[허인욱의 무인이야기] 김여준 편


성암집의 김수사 춘추전

김여준(金汝峻, 1616~1660)은 ‘김해김씨 사군파보(金海金氏 四君派譜)’를 보면, 광해군 8년(1616)에 수군절도사를 지낸 김우(金宇, 1590~1658)의 8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현종 원년(1660)에 45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옥천(沃川) 육씨(陸氏)와의 사이에서 9남 3녀를 두었다. 조선 말기 의병인 조우식의 시문집인 ‘성암집(省菴集), 김수사춘추전(金水使春秋傳)’을 보면, 김여준의 집안은 대대로 낭주(朗州) 화소(華巢) 즉, 전남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에 거주했다고 한다.

김여준에 관해서 앞서 언급한 족보와 성암집, 조선 건국초부터 1720년(숙종 46)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사서로 영정조대에 편찬된 것으로 짐작되는 ‘소대기년(昭代紀年)’, 박치복(朴致襲)이 지은 ‘대동속악부(大東讀樂府)’의 ‘김장사가(金壯士歌)’를 바탕으로 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김여준은 7~8살에 이미 체구가 장대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 인조 2년(1624)에 백부인 김완(金完, 1577~1635)을 따라 이괄(李适, 1587~1624)의 반란군과의 싸움이 벌어진 안현(鞍峴) 전투에 참전해 무공을 세웠다. 안현 전투 이후에 집에 돌아와서는 벽 위에 “하늘과 임금과 아버지는 한 몸이며, 공경하고 충성하고 효도하는 것은 같은 도리(天君父一體 敬忠孝同道)이다”라고 글을 크게 썼다. 자라서는 “장부 일생에 ‘춘추(春秋)’ 한 부로 만족한다”라고 하면서 춘추시대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B.C. 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에 이르는 242년 동안의 일들을 기록한 편년체 역사서인 ‘춘추’ 읽기를 즐거워했다. 또 그가 의리를 헤아릴 때는 반드시 ‘춘추’를 근본으로 삼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춘추’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고, 힘이 천근을 들었기 때문에 ‘김장사'라고도 불렀다. 아직 임금이 되기 전 봉림대군 시절의 효종이 김여준의 충성스러움과 용맹함에 대해 듣고 그를 불러 가인으로 삼았다. 김여준의 나이 12~13세였다. 김여준은 16살 때인 인조 10년(1632)에는 무과에 등과했다.


김윤겸의 호병도

21살 때인 인조 15년(1637)에는 여진족이 세운 청(淸)이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이 발생하였고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을 했다. 이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인평대군이 심양에 볼모로 가게 되었는데, 17장사와 함께 봉림대군을 호종하여 심양에 가게 되었다. 심양에 있던 어느 날, 옥하관(玉河關)에 이르러 ‘달은 밝고 기러기는 나니’라는 월명비안가(月明飛雁歌)를 읊자, 모두 울었다고 한다(‘성암집’에는 ‘월명비안가’를 효종이 부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심양에서 청나라 장수 우거(禹巨)와 대결을 하게 된다. 우거는 이름이 ‘대동속악부’에는 우직거(禹直巨)로, 성암집에는 우직거(于直巨)로 기재되어 있다. 우거는 만주어 ‘우커치(Ukeci)'가 아닐까 하는 생각 든다. 우커치는 검은 개와 닮은 동물로 꼬리가 없으며, 나무 구멍 속에 서식하는 동물을 말한다. 당시 청의 우두머리인 ‘한(汗)’이 김여준의 명성을 듣고 무예와 용맹으로 이름이 난 우거와의 각저(角抵) 대결을 추진한 것이다. 아마도 ‘한’은 청의 2대 황제가 된 홍타이지(皇太極,1592~1643)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거는 영악하고 몸통이 매우 크며, 힘이 두드러지게 뛰어난 인물이었다. 김여준은 홍타이지에게 “겨루다 불행히도 누군가 죽게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홍타이지는 “군법에 의해 싸우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은 어떤 책임을 묻겠는가”라며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였다. 약속을 받고 나서야 김여준은 우거와 대결을 승낙했다.

대결이 시작되자, 약점을 살피던 김여준은 주먹으로 우거의 큰 코를 주먹으로 쳤다. 주먹이 코에 부딪치려고 하는 찰나 우거가 얼굴과 몸을 돌려 피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김여준은 그의 품을 파고들어 허리를 껴안아 거꾸로 섬돌 모서리에 메쳐버렸다. 섬돌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우거는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다. 홍타이지는 우거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자신이 김여준에게 약속한 말이 있어서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를 못했다.

며칠 후에 홍타이지는 여러 신료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김여준은 본래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심양에 들어온 이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이때 홍타이지가 억지로 권하여 술을 먹이려고 했다. 김여준은 “성격이 주장함이 없어 음주를 하면 번번이 술이 시키는 대로 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말을 했다. 주사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홍타이지는 “지금 사해가 함께 잔치를 하는데, 어찌 술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싫어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김여준은 여러 말의 술을 마셨다. 말술을 다 마시고 난 김여준은 술잔을 땅에 던지고 표범처럼 웅크리더니 주먹 하나를 떨치고 두 눈동자를 치켜뜨며 크게 꾸짖어 말했다. “‘오랑캐 너희는 개나 양의 종자로 감히 우리 기자의 나라인 예의지국을 욕보이느냐. 조선은 예의지방으로 우리나라가 너희에게 질 일이 없는데, 오랑캐가 감히 능멸을 하니, 내가 너의 고기를 씹지 못함을 한탄한다. 너의 늘어뜨린 3촌의 머리는 내 한 주먹을 받으면, 이 주먹이 비록 작으나 너 황제의 머리는 새알처럼 깨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주먹을 떨쳐 매가 날아오르려는 듯 하자, 좌우가 놀라 일어나 죽이려 하였다.

하지만, 홍타이지 또한 사람 중의 뛰어난 호걸이어서 웃으면서 말하기를, “정말로 크게 취했구나. 일반인도 헛소리를 하지 않는데, 하물며 천자가 하겠는가!”라며 손을 휘둘러 주위를 그만두게 하였다. 그 덕택에 김여준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청의 관리들의 입장에서는 오만방자한 김여준의 행동거지에 분노를 일으켰다. 하지만, 홍타이지가 그의 행동을 기개있게 봐서인지 이후 불이익을 주는 더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이 소리를 들은 멀리 혹은 가까이 사람들, 비록 말을 못하거나 귀가 들리지 않고, 앉은뱅이도 통쾌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9년 만인 인조 23년(1645)에 귀국하여서는 군사를 일으켜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자, 청의 연호를 쓰지 않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것처럼 노래하거나 웃으며 폐인으로 자처했다.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전라남도 영암에서 일생을 마쳤다. 효종이 말년에 대궐에서 가을 기러기 소리를 듣고서 감흥이 생겨 김여준을 불렀으나 세상을 떠난 지 이미 3일이 지난 뒤였다. 효종이 애도하는 마음을 그칠 수 없어 “금원(禁院)에서 가을 기러기 소리를 듣고서 김장사를 기억하네(禁院聞秋雁聲憶金壯士)”라는 10자의 시험문제를 선비들에게 내어 그를 위로하고자 하였다. 박치복의 ‘대동속악부’에는 효종이 지은 ‘김장사가(金壯士歌)’가 전하고 있다.

운호사

옥하관(玉河關)의 머리 위에 뜬 달은 서리 마냥 차고,
청석령(靑石嶺) 바깥은 기러기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이국 만릿길 봇짐 진 나그네 임금 위한 마음 끝이 없다.
힘은 호랑이와 같고 진실함은 해를 뚫는 듯하니,
임금의 마음은 그대에게 의지하니 산에 의지하는 듯 하다.

김여준과 우거의 목숨 건 대결을 각저(角抵)로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씨름과는 다른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김여준이 사용하는 기술은 현재의 씨름 같이 상대의 허리춤을 잡고 넘어뜨리는 기술이 아니었다. 치는 동작으로 빈틈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상대를 잡아 메치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각저 경기에서도 역시 타격 기술이 허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저가 매우 격렬한, 그러면서도 상대를 잡아 메치거나 넘기는 기술 뿐 아니라 가격하는 기술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각저가 군사적인 훈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을 경우 단순히 유희적인 씨름과는 달랐을 것임을 암시한다.

‘김해김씨 사군파보’에는 전남 영암 서호면 몽해에 있는 운호사(雲湖祠)와 화송리에 위치한 구고사(九皐祠)에 김여준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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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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