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국가대표]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개구쟁이’ 김준태
발행일자 : 2009-09-18 23:29:41
<무카스미디어 = 김성량 기자>


중학교 노메달의 설움 국가대표의 원동력

먼저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된 축하인사부터 전했다. 김준태는 또 다시 감사 인사로 답한 뒤 말을 이어갔다. “모두 노현구 (성남시청)감독님 덕분입니다. 처음 성남시청으로 옮긴 이후 많이 힘들었어요. ‘최고의 신체조건을 가지고도 활용을 못하냐’며 많은 질타를 하셨거든요. 이후 감독님이 전술훈련은 물론 체력훈련에 이르기까지 모든 운동프로그램을 새롭게 짜주셨습니다. 대학 때와는 완전히 다른 패턴이었습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견뎠고, 결국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국가대표에 선발된 김준태는 모든 것이 노현구 성남시청 감독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가정교육을 잘 받았나. 싹싹한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모범생’, ‘새 나라의 어린이’ 그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어린 시절이다. 착각은 자유.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에서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김준태는 어린 시절 상당한 ‘개구쟁이’였다. 대부분의 개구쟁이가 그렇듯 공부와는 진작 담을 쌓았다. 그러던 중 이종사촌인 김종민(현 조선대학교, 2009 국가대표 2진)이 태권도장에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남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한다. 그 날로 어머니에게 태권도를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보내줄 리 만무했다. 속셈, 웅변 등 다닌 학원 중에서 1년을 넘긴 곳이 없었다. 무엇 하나 지긋이 한 적 없다는 것을 아는 어머니로서는 태권도라고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전국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다. “엄마 팔아라.”였다. 하지만 김준태는 막무가내다. 어머니의 바지를 잡기도 하고,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조르고 조르다보니 태권도면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결국 태권도장에 입관했다. 8개월 뒤, 빨간 띠를 허리에 맨 김준태는 초등학교 태권도선수단으로 둥지를 옮겼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정도는 컸던 신체조건이 스카우트의 가장 큰 이유였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까지 7년 동안 선수생활에 전념했다. 하지만 언제나 ‘허당’, ‘멀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매번 참가하는 대회마다 순위에 들지 못했고, 중학교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없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노메달 선수에게 그 어떤 손을 내미는 고등학교에서는 없었다. 그렇게 반대하시던 어머니도 그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태권도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 연고도 없던 풍생고등학교의 입학을 결정한다.
풍생고에서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

지난 5월 열린 2009 국가대표선수선발최종대회에서 김준태가 송지훈과 경기를 펼치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풍생고에 입학한 김준태는 말 그대로 발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했다. 스스로 '착실해야한다. 흔들리지 말자.' 항상 다짐했다. 결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통령기에 참가한 그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꿈에도 그리던 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첫 메달 이후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표선발예선전에서 당당히 1위를 기록한 것. 이후 한국체대에 입학했고, 매년 1, 2개의 메달을 획득했지만 금메달이 아쉬웠다. 한체대 시절 김준태는 ‘랭킹사냥꾼’으로 불렸다. 매번 예선전에서 우승후보자를 만나면 꼭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8강, 4강, 결승. 마지막 고개를 넘지 못했다.
4학년에 오른 김준태는 성남시청의 입단을 확정지었다. 이로 인해 페더급에서 라이트급으로 체급을 변경하게 됐고, 더 이상 감량의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다. 라이트급 첫 대회인 전국체전. 체급을 올리고 참가한 첫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것도 전국체전에서…. 이후 대통령기, 국가대표예선전에서도 모든 선수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성남시청에 입단했고, 새로운 전술을 익히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해 슬퍼한 아들을 기억하던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
“국가대표가 되고 나니까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어머니가 우실 때는 같이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과묵하시던,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인 아버지가 ‘잘했다’라고 한 마디 하시며 돌아서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 한마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많이 걱정하시고 계셨구나.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하는구나.”
1시간 동안의 대화가 끝날 때 즈음 그는 노현구 감독에게 꼭 전할 말이 있다고 했다. “감독님, 팀에 받아주시고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이 99년 세계선수권에서 땄던 금메달과 똑같은 메달을 따서 감독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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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화이팅 풍생고 파이팅
2009-11-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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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화이팅 한국체대 화이팅 성남시청 화이팅 ㅋㅋㅋㅋ
2009-09-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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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화이팅 풍생고 파이팅
2009-09-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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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화이팅 풍생고 파이팅
2009-09-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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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결실로 얻은 대표네요.. 꼭 좋은 결과있기를 바랍니다.
2009-09-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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