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구 마이애미 정착기]⑥1039평-500명 '매머드급'도장

  

4년간 ‘플래리움’서 1,2층 250명에서 500명으로


‘500명’ 수련생이라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마이애미에서 최다 수련생을 보유한 도장이었습니다. 도장의 크기 역시 37,000스퀘어피트(SQ FT), 한국의 평수로 환산하면 1039평입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죠.

시작은 이랬습니다. 1997년 2월. 템브로크파인에 위치한 두 번째 도장에 한창 수련생이 몰려들 때였습니다. 로리라는 한 학생의 부모가 “도장 운영 정말 잘하시네요. 당신의 꿈이 뭡니까?”라고 물어 왔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얘기했죠. “저에게 돈과 땅이 있다면 미국에서 가장 큰 스포츠 센터를 짓고 싶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그녀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그녀 역시 빗 말로 한 얘기 같았죠. 하지만 약 3개월 뒤,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로리가 큰 설계도를 하나 가져와, 제 앞에 쫙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스터 생, 제가 이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는데, 솔직히 운영은 잘 못할 것 같아요. 이곳에 도장을 운영해 보시고, 여러 종목의 스포츠 시설도 지을 예정이니, 전체 운영을 맡아 주실 수 있냐”고 물어 왔습니다. 심각한 고민에 빠졌죠. 잘되는 도장을 애써 옮겨야 할지에 대해서요.

몇 날을 고민한 끝에 저는 2관에 있는 250명의 수련생을 데리고 대규모 이사를 감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시는 1997년 6월 27일. 장소는 마이애미 데이디 카운티였습니다. 건물의 이름도 ‘플래리움’으로 정해졌습니다. 실내에 농구장과 축구(Soccer)장 시설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대규모 캠핑장도 마련돼 있었고요. 어떻게 보면 피트니스센터로 볼 수 있겠지만, 건물 외벽은 온통 이단옆차기 등으로 도배된 있는 태권도 도장이었습니다. 당연히 1층과 2층에는 250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대규모 Sang's Taekwondo가 있었죠.

환상의 조화였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플래리움에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전체적인 운영보다는 태권도장에 더 관심이 가고 애착이 갔습니다. 가뜩이나 더운 마이애미, 그러던 중 1년에 한번 있는 여름 캠프를 맡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말할 수 없이 좋은 기회였죠. 곧장 대대적인 홍보 마케팅을 실시했습니다. 약 300명 정도가 모여들었죠. “기회다. 놓치면 안 된다.” 아이들을 상대로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2001년까지 약 4번의 캠핑을 이끌었습니다.

뭐라구요? 한달에 1만 달러를 내라구요?


결과는요? 하하, 대박이었습니다. 500명 수련생이라는 기록을 세웠죠. 2001년 이후에는 한 달에 25명씩 신규 입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던 그저 그런 평범한 도장이었는데 말이죠.

아 참,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한 것이 하나 기억이 납니다. 두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모든 수업에 직접 참여 한다’ ‘수업 시간에 학부모와 대화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층에 5번, 2층에 5번의 수업 전 과정을 참가했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학부모들과 연신 악수를 하고 껴안고, 대화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어린 수련생이 한명 들어오면,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조카 할 것 없이 친인척 전부를 상대로 전화를 하고 입관을 유도했습니다. 한 명이 열 명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죠. 덕분에 저희 도장은 가족 단위 수련생이 엄청 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얄미웠던 것일까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플래리움의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가 ‘마스터 생에게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으니, 한 달에 1만 달러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이 깜깜했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한 달, 또 한 달을 버텨나갔습니다. 자연스레 어깨에 힘도 쭉 빠지더군요.

2002년 4월.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도장이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작더라도 조금 시설이 후지더라도 내 도장을 갖자.” 그 때 즈음 저에게는 ‘매머드급’ 도장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마이애미 최대 규모 도장을 뒤로하고, 도복을 챙겨 나왔습니다. 지금이니까 말하는 건데요, 제가 나오고 나서 플래리움은 거의 밑바닥으로 추락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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