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철의山山水水] 최홍만을 위한 변명

  

열세 번째 이야기 - 장신(長身)의 미학


“팬들이 보기에는 가드나 슈터가 화려하죠? 하지만 감독들 입장에서는 센터를 선호합니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키는 잡아 늘릴 수 없잖아요? 간단하게 말해서 한국인 체형으로 2m가 넘는데 뛰어다닐 수 있다’고 하면 무조건 그 자체로 의미가 대단한 겁니다.” 최근 한 유명한 농구감독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농구는 배구와 함께 신체조건에서 키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종목이다.

태권도 등 무술에서도 신장은 무시하기 힘든 요소다. 태권도 남자 헤비급을 주름 잡았던 프랑스의 파스칼은 2m에 육박할 정도로 장신이었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헤비급 금메달을 딴 다바 모디보 케이타(말리)는 무려 210cm였다(케이타는 말리의 농구대표선수를 지내기도 했다). 또 구약성서에서 다윗의 돌에 맞아 죽은 골리앗은 290cm였다고 한다.

그런데 신(어쩌면 물리학)은 참 공평하다. 크면 클수록 스피드, 순발력 등 운동신경이 떨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걸어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226cm)처럼 큰 키에 어느 정도 스피드도 갖추고 있으면 좋은 선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거꾸로 말하면 큰 선수에 대해 “스피드가 느린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한다면 하나마나한 소리인 것이다(참고로 덩치가 큰 사람이 우둔할 것이라는 인식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서장훈 하승진 이명훈 김영현 그리고 최홍만까지 직접 만나본 우리의 거인들은 아주 똑똑했다. 김용옥 교수가 자신의 TV프로그램에 서장훈을 데리고 나와 공자도 이만큼 키가 컸다라고 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당연한 얘기를 거창하게 하면 우스운 노릇이다. 요즘 격투기팬들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조차도 이렇게 뻔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최홍만은 스피드가 떨어져서 파이터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최홍만이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데뷔한지 만 4년이 다 됐는데 지금까지 이를 몰랐단 말인가?

더 웃긴 것은 최홍만의 스피드 비교 상대가 표도르, 바다 하리, 크로캅(31일 다이너마이트에서 격돌) 등 세계 톱랭커들이라는 점이다. 쉽게 생각해도 많이 불공평하다. 그리고 K-1 데뷔 초반 최홍만이 승승장구를 할 때는 왜 이런 치명적인 ‘스피드 결함’ 대신 '초특급 울트라 파워‘만 돋보이게 표현했는가?

최홍만은 뛰어난 파이터


최홍만과 표도르의 대결

결론적으로 최홍만은 뛰어난 선수다. 218cm의 키에 이 정도의 스피드나, 운동신경을 가진 운동선수는 한민족 역사상 처음이다. 물론 한창 후배인 하승진은 NBA 스카우트들의 실수로 잠깐 미국에 다녀올 정도로 최홍만 보다 더 큰 키(223cm)를 갖고도 뛰어다닌다. 하지만 아직 운동능력이 최홍만보다 낫다고 단언하기에는 힘들다.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로 유명해던 북한의 이명훈(236cm)이 최홍만보다 선배지만 운동능력은 확연하게 뒤처졌다. 최홍만은 링뿐만 아니라 랩은 물론이고 신세대 댄스까지 척척 소화해내는 정말 ‘거인답지 않은’ 운동신경을 지녔다(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욕을 먹지만).

최홍만의 문제는 자신의 특장점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종목을 택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난 9월29일 <산산수수>는 “최홍만은 종합격투기를 해야 한다”고 감히 주장했다. 바다 하리에게 기권패한 직후였다. 그리고 12월초 최홍만이 레이 세포에게도 패하자 국내 유수의 언론들은 물론이고, K-1 주최사의 대표까지 최홍만의 종합격투기 전향을 언급했다. 너무도 당연한 내용이 너무도 뒤늦게, 마치 몰랐던 진실이었다는 것처럼 화제가 되니 다소 당혹스럽다.

일본의 음흉함, 한국의 멍청함


최홍만과 아케보노의 대결

잠깐 한 가지 따져 보자. 최홍만이 K-1과 같은 입식타격기보다는 MMA에서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최홍만이 K-1 초창기에 잘 나갔던 이유는 대체로 약자를 상대했거나, 아니면 이렇다할 접전 없이 적당히 한국에서 판정승(슐트 전)을 거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특급파이터를 만나니 상대의 치고 빠지기에 맥없이 판정패하거나, 재수가 심하게 없으면 한방에 그냥 나가 떨어졌던 것(마이티 모에게 KO패)이다. 그럼 K-1 주최사인 FEG와 최홍만 본인, 그리고 에이전트는 지금까지 입식타격기를 고집하다가 온갖 욕에, 망신까지 다 당한 후에 종합격투기 전향을 고민하는 것일까. 바보들 아닌가?

맞다. 한쪽은 바보이고, 한쪽은 음흉하다고 판단된다. 먼저 음흉한 쪽을 먼저 보자. 최홍만이 쉽게 이긴 아케보노라는 선수가 아주 좋은 실례이다. 아케보노는 일본의 국민스포츠인 스모에서 전설적인 선수다. 최고지위인 요코즈나에 올랐고,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그런데 아케보노는 순수일본혈통이 아니다. 하와이 출신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스포츠자존심이 많이 구겨졌다. 한국으로 치면 외국인이 와서 천하장사가 된 것이다. FEG는 거액을 들여 이 아케보노를 K-1으로 데려왔다. 원래 이것 자체가 문제다. 어떤 종목에서 영웅 자리에 있던 선수는 좀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2004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은 올림픽 직후 뭉칫돈을 줄테니 K-1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만약 문대성이 K-1으로 넘어갔다면 한번도 지지않고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혹시 한 번이라도 처참하게 진다면 태권도의 자존심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IOC선수위원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케보노는 K-1으로 와서 아주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부분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판정패했고, 재수가 없으면 그 큰 덩치가 속절없이 링바닥에 쓰러지면 KO패했다(이럴때 시청률이 더 높고, 동영상은 난리가 난다). 2005년 3월 월드그랑프리 서울 대회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아케보노에게 물었다. “왜 K-1을 하느냐? MMA가 더 낫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나도 그러고 싶다. 지금은 계약 때문에 안 된다”는 답이 나왔다. 이 대회에서 최홍만에게 패한 아케보노를 경기장 뒤편에서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지고도 실실 웃고 다니길래 통역에게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별로 안 맞고 져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기가 찼다. FEG가 일본 스모의 탐탁치 않은 영웅을 K-1으로 데려와 완전히 망가뜨린 것이다. 왜 다카노하라 같은 일본인 요코즈나는 K-1으로 데려오지 않는가?

신기하게도 일본격투단체는 아케보노에게 '강한 고리'인 MMA를 권하지 않은 반면 유도영웅 요시다 히데히코에게는 '약한 고리'인 입식타격기 경기를 주문하지 않는다. 유도를 기반으로 하는 요시다가 K-1에서 입식타격기로 싸우는 것을 생각해보라. 과연 승산이 높겠는가?

최홍만은 시작이 잘못된 것이다. 요시다나 추성훈의 뒤를 따라야 하는데 아케보노의 전철을 밟은 셈이다. 그래서 최홍만 본인과 한국측 에이전트 등이 바보라는 것이다. 한국 씨름의 천하장사는 K-1에서 고국팬들에게도 욕만 얻어먹는 ‘느림보 판정패 전문가’로 전락했다. 기본적으로 2000년대 초반 일본 격투기에서 선발주자인 입식타격기(K-1)는 MMA(프라이드)에 크게 밀렸다. 흥행에서 도저히 싸움이 안 된 것이다. 그래서 시선을 잡아 끌 흥행요소가 필요했고, 그를 통해 K-1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여기에 걸린 것이 아케보노, 최홍만 등이었다.

아케보노에 비하면 최홍만이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체형에 적합한 경기가 아니었지만 최홍만은 초반 잘 나갔다.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그만큼 최홍만이 뛰어났기에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돌풍은 쉽게 가라앉는다. 이제야 비로소 냉정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뛰어난 파이터’인 최홍만이 제 자리를 찾아 크로캅과 MMA룰로 맞붙게 돼 정말 기쁘다.

[유병철 선임기자 /einer@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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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직 기자

    내가 이번에는 병철이형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최홍만에게 MMA가 신세계일 수 없다. 전례가 없다.
    K-1에선 거인이 성공한 사례가 있어도, MMA에선 없다. 슐트가 그나마 유일.
    둔한 몸은 전방위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종합에서 더욱 불리한 조건이라고 본다.
    홍만이가 MMA 가서 누구랑 싸우나?
    싸워서 만만한 놈 하나도 없다.
    병철이형은 존경하지만 이번 칼럼은 동의하지 않는다.

    2009-01-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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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보고 얘기해라

    일반인이 최홍만하고 왜 싸우냐? 글구 럭키펀치로 바디하리 다운시킨거 가지고 호들갑 떨기는.그렇다고 해서 바디하리가 홍만이의 꿀밤세레에 무슨 데미지라고 입었냐?

    2009-01-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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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yryh

    피터아츠 개박살 내고 레이세포 개박살내고 글라우베페이토자 개박살 낸

    바다하리를 다운까지 가게한 최홍만이다

    안 놀랍냐? 이런건 생각도 안하지? 꿀밤펀치? 강하면 된거잖아 그거한방이면 일반인은 병원실려가 색갸...왜 눈에 거슬려? 괜히 너희들이 일주일 3번가는 도장에서 배운거랑 틀리니깐
    배척감드냐? 우리나라 좃같은 지원은 생각안해?

    좀 생각좀 하고살어 이 개병신들아 국민성이 쓰레기인거냐? 아님 니들 생활고가 이렇게 만든거냐?

    2009-01-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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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lqkf

    아나 씨1발 그만좀해 홍만이가 스트레스로 22키로인가 감량했다네요...

    씨발 맨날 이렇게 악플이나 처하니까 성적이 부진되지 대가리가 있냐

    2009-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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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기

    기자님 홍만이랑 친하신거 같은데.종합을 하던, 입식타격을 하는건 둘째 문제고, 발레킥 하고 꿀밤펀치나 어떻게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중요한건.. 에휴, 말을 말아야지, 그만합시다

    2009-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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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

    이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좋은 글이였어요~~

    2008-12-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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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그럼 이태현은? 운동을 직접 해보고 판단 해주길 부탁 합니다. 최홍만이 종합으로 가도 승산 없다에 만원 겁니다. 느림보 보단 맞는거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야 하는데 제생각은 정신적 트레이닝을 추천 합니다. 그래야 먼저 들어 가는 투지를 가질 수 있다 봅니다. 또 이천수 선수 뉴스를 보면 알다시피 그런 치열한 무대에서 모든것을 걸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믿으면 무너집니다. 이걸 명심하고 예능 및 엔터테이너 진출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봅니다.

    2008-12-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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