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운의 무술만화편력(5) - 수라의 문

  


무술 만화의 대표작이라 하면 독자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권아(拳兒)』를 가장 많이 꼽지 않을까 싶다. 이 만화는 마츠다 류이치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만화로, 일본과 우리나라에 팔극권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수라의 문』 ⓒ카와하라 마사토시

『권아』는 팔극권이라는 무술을 세간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형의권, 태극권, 팔괘장과 같은 내가권에서부터 시작해 홍가권, 당랑권, 벽괘장, 심의육합권, 통배권, 장권 등 각종 중국 무술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마츠다 류이치가 실제로 중국무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작가 후지와라 요시히데 역시 매우 사실적으로 대상에 접근하고 있어, 중국무술에 대한 실천적인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 꽤 많은 사람들이 『권아』에서 보여주는 중국무술 이미지를 실제라고 믿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렇다면 일본 무술, 특히 격투기를 가장 잘 소개하고 있는 만화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수라의 문』을 꼽겠다. 솔직히 말해서 이 만화는 어떤 무술이나 격투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속된 말로 ‘뻥’이 상당히 심하다. 그러나 일본 격투기계가 가지고 있는 ‘최강’에 대한 시각 변화를 아주 잘 대변하고 있다.

주인공 무츠 츠쿠모는 무츠엔메이류라는 고대 살인 무술의 전수자로 할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무술을 배웠고, 대련 중 자신의 형을 죽인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식상하기까지한 설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일본 무술-격투기계가 고류와 비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이에 대해서는 나츠키 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을 대변하는 가장 전형적인 예시인 것이다.

극진가라테에서 그레이시유술까지


왜 싸우냐건 웃지요. 이 만화의 주제(?)를 대변해주는 장면.



무츠 츠쿠모가 첫 도전을 시작하는 곳은 신무관이라는 가라테 도장이다. 물론 실존하는 곳은 아니지만(공교롭게도 현재 우리나라에도 들어와있는 진무관[shinbukan] 가라테과 발음은 같다) 싸움 공수, 사도라 불리며 추구해온 실전공수도, 그러나 현재는 안면 정권 가격 금지라는 룰을 채용하고 있다는 설정에서 이 곳이 극진 가라테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당연히 최영의를 모델로 한 무시무시한 괴물 총관장도 등장하고, 사대천왕도 등장한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 만화를 처음 해적판으로 본 것이 88년, 89년 무렵이다. 확실히 그 때까지 일본에서 최강 무술로 인정받는 것은 극진가라테였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당시는 막 일본에 서브미션과 이종격투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던 시기. 이야기는 자연히 이종격투전으로 흘러간다. 여기서는 특히 초대 타이거 마스크 사야마 사토루의 슈퍼타이거짐을 모델로 한 라이거짐이 등장하고 그가 창시한 슈트 복싱(슈팅: 현 슈토의 전신)이라는 종목 명칭을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UWF를 모델로 한 RWF라는 단체가 등장하고, 마에다 아키라에다가 다카다 노부히코를 슬쩍 섞어놓은 듯한 인물도 등장한다.이밖에도 당시 일본 격투기계에서 주목받던 종목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그 각각의 기술과 드라마가 절묘하게 재연출된다. 일본 격투계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 속의 사실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차례 이종격투전이 마무리되고, 작가는 또 다른 ‘최강’을 고심하다가(이 때까지는 아직 그레이시유술의 존재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이다) 복싱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츠쿠모를 복싱 왕국 미국으로 보내고, 3대 복싱 헤비급 통합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라는 어마어마한 과제를 안겨줘버린다. 여기서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파이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기서 츠쿠모는 엔메이류의 손기술만을 사용해 헤비급 복서들을 모두 꺾어버린다. 정말 만화다.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이 만화, 그리고 무츠엔메이류인 것이다.
그리고 최종 목표가 등장한다. 1993년을 전후하여 일본에는 브라질 출신의 두 괴물이 등장했다. 입식타격의 이상을 실현한 것처럼 보였던 극진 가라테의 프란시스코 휘리오, 그리고 실제로 무패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던 그레이시유술의 호이시 그레이시과 힉슨 그레이시. 츠쿠모는 당연히 이들(을 모델로 한 캐릭터들)과도 싸워야 했다.
그리고 이제 츠쿠모의 이야기는 끝이 난 듯 하다. 현재 일본에는, 아니 세계에는 이제 이렇다 할 무술 혹은 격투기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츠쿠모는, 그리고 무츠엔메이류는 어딘가에서 최강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원명류 라는 환상을 쫓는다


무츠엔메이류는 어떤 무술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완벽한’ 무술이다. 공중 발기술과 묘한 관절기(고류의 특징이다)이 주특기이지만, 치고 차고 던지고 꺾고 조르는데(외전 격인 『수라의 각』에서는 무기도 사용한다)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 없고, 심지어 그 기술들이 하나 같이 실전 기술이자 필살기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발경 비스무리한(라고 하면 그보다 못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엄청난) 기술까지 사용한다.

엔메이류의 기술은 주로 일본 고류유술다운 기술로 나름대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는데
허무맹랑한 기술과 근성 일색이던 당시 격투만화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주인공 집안은 대대로 그 기술들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다가 성격도 유난스러워 꼭 상대의 특기로 정면 대결을 벌여 이겨야만 직성이 풀린다. 상대가 복서라면 손기술만으로 킥복서라면 킥으로 유술가라면 관절기로 승리를 얻어낸다는 얘기다. 심지어 상대의 특기 기술이 있으면 꼭 그것을 받아주고 자기도 그에 대응하는 기술을 쓴다(이는 일본인들의 프로레슬링적인 사고 방식에 기인하지만, 작가는 특히나 프로레슬링의 골수 팬인 듯 하다). 이같은 무츠(유파도 사람도)의 성격은 이후 많은 작품에도 그대로 전승된다(그래서 나는 이후에 나온 이종격투 만화 - 바키나, 터프 등의 - 는 대부분 ‘수라의 문’의 아류작 같아서 재미가 없다. 특히 터프는 확실히 아류작이다).

이로써 생겨난 이래 천년 간 패배를 모르는 무적의 무술, 그야말로 환상이다.

현실 속에서도 엔메이류를 꿈꾸는 무술은 많고 또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일본을 예로 들자면 총합무술이라 불리는 일본권법을 비롯하여 골법, 소림사권법 등이 그러하고, 한국의 국술, 특공무술, 용무도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 무술들은 모든 무술들의 장점과 특기 기술들만을 모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확실히 형태상으로 엔메이류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들 무술의 효용성도 틀림없이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실 속에서 이들 무술이 최강이지는 못하다. 왜일까? 여러가지를 다 잘 하는 것은 한 가지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러나 현재 무술 격투계의 흐름은 확실히 총합 쪽으로 가고 있다. 문득 어쩌면 만화 속 대사가 그 해답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엔메이류가 진정으로 최강인 것은 엔메이류의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엔메이류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드는 그 무언가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만화 #무술만화 #류운 #수라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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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파열

    기술의 디테일이 좀 떨어진다는 것은 알고있었습니다만 만화로 그려지기엔 충분하다고 생
    각합니다.

    저도 언제 이 만화가 칼럼에 쓰여질까 기대하고 있었네요...

    2003-11-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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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혈

    주인공이 거의 다 비슷한 컨셉이죠. ^^
    요즘 나오는 해황기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수가 없나? ㅋㅋ
    하긴 워낙 천재성이 워낙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어서...
    자기 재능에 자신 없는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근데 대부분 이런 류 만화 주인공은 다 그렇지 않나...

    그림체도 간결하지만 근육이나 인체 묘사, 동작 같은 것이
    만화스럽게 과장되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그려져 있고...

    나는 아주 좋아해요. 이 만화 소개될 거라고 생각했었음.

    2003-11-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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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랏상

    제목이 멋있어서 보다가 엉성한 그림체와 재수없는 주인공의 대사에 질려버린 만화.

    그림체는 순정만화에나 어울릴 듯.

    2003-1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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