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태권도 거장 박수남 전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 별세… 향년 77세

  

75년 독일 태권도 감독으로 이민... 유럽과 세계 오가며 태권도 세계화에 크게 기여

고 박수남 대사범

 

독일을 기반으로 유럽과 세계를 넘나들며 태권도 보급과 진흥을 위해 헌신해온 박수남 대사범이 별세했다. 향년 77세.

 

올해 초까지 건장하게 한국과 유럽 등지를 오가며 활동해 온 故 박수남 사범은 올해 갑작스런 지병을 앓은 후 최근에 병세가 급격히 나빠져 치료에 집중해 왔다. 6월 14일 오후 자택이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세계 태권도인과 태권도 변화와 개혁, 발전방향에 대한 토론과 소통을 좋아했던 고인의 갑작스런 부고에 많은 태권도인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며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1947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故 박수남 사범은 유년시절부터 태권도를 수련했다. 경남고와 건국대를 졸업한 후 서울 남산 인근 외국인 대상 태권도장을 운영했다. 일찍이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해외 진출을 꿈꿨다.

 

1975년 독일 태권도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주도인 슈투트가르트에 정착했다. 1985년까지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격년제로 열리는 유럽선수권 5연패를 달성하며 태권도 국제 명장의 대열에 서게 된다.

 

1986년 오스트리아와 인연을 맺으면서 대표팀 감독을 역임할 뿐만 아니라 영국,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등 가라테와 ITF가 주를 이루는 태권도 불모지로 활동의 폭을 넓히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태권도 지도자와 제도권 행정가로 독일과 유럽 등지에 태권도 보급에 앞장서며 태권도 세계화와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크게 기여했다.

 

1975년 독일국가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영국태권도협회와 독일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와 유럽태권도연맹 종신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태권도 발전에 기여했다.  

 

故 박수남 사범은 매년 2월 첫 째주 박수남컵 세계어린이대회를 개최하면서 미래 태권도 주역이 될 어린이 태권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나아가 태권도가 세계 어린이들이 건전한 시민으로서 커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2011년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을 창설해 초대 총재를 맡아왔다.

 

2005년 4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7차 세계태권도연맹 정기총회에서 부총재 선거에 출마해 선출직 부총재에 당선됐다. 이후 품새 개발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전자호구개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세계품새선수권대회 창설과 전자호구 도입에 일조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개인 도장과 태권도 잡지사를 운영하면서도 37년간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2012년 외국인 신분으로 독일태권도협회 선거에서 회장 당선 후 독일 체육성 권유로 2013년 뒤늦게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박수남 사범이 생전인 2008년 영산대 석좌교수 취임사를 전하고 있다. 

2008년 경남 양산에 있는 영산대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된 이후 고국의 태권도 후배들의 각별한 애정을 갖으며 한국을 오가며 후학양성에 집중했다. 그 결과 여러 학생이 각국 대표팀 지도자로 배출하고, 유럽 명문 체육대학교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을 밟고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럽과 세계 태권도의 주요 기록과 유능한 태권도인을 소개하기 위한 태권도 잡지사 ‘태권도 악투엘(Taekwondo Aktuell)’를 41년째 유지해 오고 있다.

 

故 박수남 사범은 지난 1988년 독일 정부로부터 철십자상 훈장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인이 독일 철십자상을 받은 것은 저명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에 이어 두 번째이며,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첫 번째다.

 

2013년에는 해외 태권도 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로 ‘제7회 세계한인의 날’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재외동포 유공자에게 수여한 시상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고국 한국과 반평생 이상을 지낸 독일 양국에서 훈장을 받았다.

 

세계태권도연맹(총재 조정원, WT)은 태권도 세계화에 기여한 박수남 전 부총재의 별세를 애도 한다고 밝히며, 17일부터 사흘간 서울 본부에 고인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 태권도인과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편집자 주 -

 

박수남 사범은 누구?

태권도복을 입은 박수남 사범

박수남 사범은 1947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 누님 권유로 부산에서 태권도를 처음 시작했다. 강덕원 계열의 태권도장이다. 타고난 신체조건이 좋아 태권도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1969년 최우수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영남권 최고 명문 경남고를 졸업하고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건국대 축산대 학장은 지도관장을 역임한 윤쾌병 관장 이었다.

 

박수남 사범은 전공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산 태권도와 산을 좋아 했다. 1971년부터 5년간 서울 남산에 있는 외인아파트 근처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태권도 사범을 했다. 이때부터 외국 진출을 꿈꿨다.

 

1975년 12월 더 큰 꿈을 꾸고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독일로 떠났다. 당시 독일협회장이던 하인츠 막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계약 기간은 1년. 그러나 명색이 국가대표팀 감독이간 했지만, 협회 지원이 넉넉하지 않아 대표팀 감독에게 주어지는 월급이 200불(400마르크)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듬해인 1976년 5월 ‘제1회 유럽선수권대회’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바로 이때, 유럽태권도연맹이 창설되는 등 유럽태권도의 공식적인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이 대회다.

1982 세계선수권에서의 독일대표팀을 이끈 박수남 사범(왼쪽 위)의 모습

이 대회에서 독일대표팀은 전체 8개 체급에서 5개 체급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이 후 박 사범이 대표팀을 맡은 10년간 독일 팀은 격년으로 열리는 유럽선수권에서 5연속 종합우승의 위엄을 달성한다. 이에 독일연방공화국 공훈훈장(Verdienstkreuz am Bande)을 받았다.

 

1985년 독일대표팀에서 물러난 후 박 사범은 1986년부터 87년까지 2년 간 오스트리아 대표팀을 맡는다.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박 사범은 오스트리아 태권도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공로로 결국 2006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박수남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에 이른다.

 

 1988년에 다시 독일대표팀으로 복귀한 박 사범은 독일대표팀을 이끌고 서울올림픽에 참가했다. 1989년까지 독일팀을 맡은 후 박 사범은 영국태권도의 발전에도 일조 했다. 그런 인연으로 1990년에는 영국태권도협회(British Taekwondo Control Board) 회장으로 취임한다.

 

영국은 세계태권도연맹(WT)보다 국제태권도연맹(ITF) 수련 동호인이 더 많이 있는 곳이다. 처음 시작도 ITF 스타일로 시작했으며, WT가 인정하는 BTCB 외에도 많은 군소 단체가 많으다. 그 단체들의 대부분은 ITF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사범은 2010년까지 무보수 명예직으로서 영국태권도협회장을 맡으며 영국 내에서 WTF 스타일 태권도의 영향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박 사범이 유럽태권도계에 미친 영향은 독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유럽태권도연맹 부회장을 맡았고, 2001년에는 WTF 집행위원에 선출된 후, 2005년에는 선출직 부총재에 당선되며 전 세계 태권도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독일 훈장을 받은 고 박수남 사범

그러나 이러한 박 사범의 주류 태권도계에서의 승승장구는 2009년 박 사범이 WTF 총재선거에서 출마하면서 조정원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변하게 된다. 박 사범은 선거 과정에서 또 다른 후보였던 낫 인드라파나 IOC 위원을 지지하면서 후보를 사퇴했으나 선거의 승리는 조정원 총재에게 돌아갔다.

 

이후 박 사범은 WTF 주류에서 잠시 물러난 듯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박 사범의 활동이 덜 활발해진 것은 아니었다. 17년간 세계어린이태권도대회를 개회하면서 미래 태권도 주역이 될 어린이 태권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박수남 사범이 생각하는 어린이태권도는 부모와 함께 격파를 하고, 품새를 하는 모델이다.

 

 오랫동안 어린이태권도협회를 만들려고 생각을 정리 했고, 실제로 세계어린이태권도협회(CTU)를 만드는데 3년 정도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룩했다고 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CTU를 운영하면서 점차적으로 세계화시키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독일태권도협회장까지 맡은 상태에서 앞으로 많은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1996년부터 이어오던 국제어린이태권도대회, 박 사범을 기려 만들어진 국제 박스컵(International Park’s Cup)태권도대회 등 큰 행사는 물론이고, 그의 독일에서의 고향인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태권도장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됐던 것이다.

 

박수남 사범의 태권도장은 슈투트가르트 시내에 있다. 건물 전체가 박 사범의 태권도 본부나 다름이 없다. 1층은 태권도장이고 3층은 사무실로 쓰인다. 특히 그가 199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독일어로 발간되는 유일한 태권도전문잡지인 ‘태권도 악투엘(Taekwondo Aktuell)’의 사무실이 바로 이곳에 있다. 1층 태권도장은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태권도장이자 가장 유명한 태권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사범은 이 태권도장을 자식 중 누군가가 이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사범은 딸만 셋을 뒀다. 가장 태권도를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셋째가 태권도를 맡아서 실질적인 도장 관리를 하고 있다.

 잠시 세계태권도계 주류에서 멀어져있는 듯 했던 박수남 사범이 2012년 10월 태권도계 주류에 화려하게 돌아왔다. 독일태권도협회장 선거에서 하인츠 그루버 당시 회장을 꺾고 당선된 것이다. “화려했던 독일 태권도의 영광을 되찾아오겠다.” 회장에 당선된 후 밝힌 박 사범의 각오다. 2012년 현재, 만 65세인 박수남 사범의 태권도계에서의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 태권도진흥재단 : 태권도 해외 진출 역사(유럽,아프리카지역) - 2012년 12월 기준.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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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필환

    태권도세계화와 올림픽정식종목지정 등 태권도 진흥과 발전에 크게 헌신해온신 박수남 대사범님의 비보에 깊은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4-06-17 17:21:27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송승복

    여러 경로로 선배님의 소식을 듣고도 직접 조문하지 못해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영면의 편안함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06-17 14:28:39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박영춘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4-06-16 14:37:40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배인숙

    제게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셨던 교수님을 존경 했습니다. 많이 감사 했습니다.!
    열정이 많으셨던 교수님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편히 쉬세요..

    2024-06-15 13:57:17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정순천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박수남 대사범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십시요...

    2024-06-15 11:20:0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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