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이야기] 원화(源花)

  

정현축의 국선도 이야기 19


<삼국사기, 三國史記>와 <삼국유사, 三國遺事>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 24대 진흥왕(540〜576)은 본디 천성이 멋이 있어 신선(神仙)을 크게 숭상하였으며, 나라를 흥케 하려면 풍월도(風月道)를 먼저 일으켜야 된다고 생각하여, 양가(良家) 출신의 덕행(德行) 있는 젊은이들을 뽑아 그 이름을 ‘화랑(花郞)’이라고 하였다.

법흥왕 때의 위화랑(魏花郞)은 진흥왕 원년(540)에 제1세 풍월주(風月主)가 되었다. 진흥왕 원년이면 진흥왕의 나이 불과 7세였다.

그러므로 법흥왕의 딸이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只召太后)가 섭정을 하게 되어 국정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진흥왕대 화랑도의 대소사들은 대부분 지소태후의 작품이었으며, 화랑들을 손에 쥐고 쥐락펴락 한 사람도 바로 지소태후였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을 맡은 사람들은 남성들이었고,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의 역할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지라, 지소태후가 한 일들은 모두 진흥왕이 한 일들로 돌아갔다.

그것은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건국하였고, 두 아들을 이끌어 백제를 건국한 소서노가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지소태후는 진흥왕 원년(540) 모든 화랑들의 우두머리인 원화(源花) 제도를 폐지하고, 위화랑(魏花郞)으로 하여금 제1세 풍월주(風月主)로 삼아 화랑들의 우두머리로 삼은 장본인이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원래는 ‘하나님 엄마’였으나, 이것이 권력화 되면서 ‘하나님 아버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이 세상에서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존재는 오직 ‘태양’과 ‘엄마’ 뿐이기 때문이다.

근래 만주 요하 우하량 유역에서 발굴된 홍산문명에서 출토된 가부좌한 여신상(女神象) 또한 모든 화랑들의 우두머리가 왜 ‘원화(源花)’였는지를 뒷받침하고 있는 유물이다.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2천년이나 앞선 6천년 전의 문명으로서, 세계 정신문명의 시원문명(始原文明)인 우리민족의 현묘지도 국선도의 문화가 찬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가부좌한 여신상(女神象)은 바로 하늘과 소통했던 국선도의 여성 수행자였던 것이다.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 慵齋叢話>에서도 ‘태일전(太一殿)에서 칠성(七星)의 여러 별에 제사하였는데, 그 칠성 신상(神像)들이 모두 머리[髮]를 늘어뜨려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로서 우리는 고대(古代) 뿐만이 아니라, 중세까지도 모계(母系)로서 계통(系通)이 이어지던 시대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듯 모든 화랑들의 우두머리로 ‘원화(源花)’가 받들어지다가 폐지된 데는, 궁궐 내 권력의 암투가 크게 작용하였다.

지소태후(只召太后)는 신라 제23대 법흥왕과 보도태후 사이에 출생한 공주로서, 삼촌인 입종공(立宗公)에게 시집보내져서 진흥왕을 낳았다. 이는 왕을 중심으로 운용되던 신라 사회의 골품제도가 강하게 작용하였다.

이때까지 법흥왕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지소공주를 동생 입종공(立宗公)에게 시집보내서 입종공을 다음 왕위 계승자로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입종공은 진흥왕을 낳고 바로 죽었다.

보도태후에게서 나온 자식은 지소공주 뿐이었으며, 모계(母系)로서 계통이 이어지므로 지소공주가 적통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지소공주의 아들인 진흥이 왕이 되었는데, 이 일은 어렵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법흥왕은 옥진궁주를 총애하였는데, 옥진은 왕의 혼인 대상을 배출하고 왕에게 색공을 바치는 대원신통(大元神統) 출신이었다.

신라사회는 왕비나 후궁을 배출하는 계통으로 진골정통(眞骨正統)과 대원신통(大元神統)이 있었다. 진골정통은 왕가(王家) 계통이며, 대원신통은 성(性)으로서 제왕(帝王)이 건강하게 대(代)를 잇도록 돕는 것을 도(道)로 삼는 계통이었다. 그러므로 대원신통은 어려서부터 교태를 부리는 방법[媚道]과 가무(歌舞)를 철저하게 가르쳤으며, 역시 모계(母系)로서 그 계통(系統)이 전하여졌다.

그러므로 지소태후는 진골정통의 대표자였고, 옥진궁주는 대원신통의 대표자였다. 그리고 이 진골정통과 대원신통 간에는 끊임없는 알력이 오고갔다.

아무튼 법흥왕은 옥진궁주를 총애하였으므로, 옥진의 남편 영실(英失)을 부군(副君)이라는 높은 위(位)에 있게 하려고, 원화를 폐위시켰다. 그 당시 원화(源花)는 삼산공(三山公)의 딸 준정(俊貞)이었는데, 많은 낭도들을 두고 있었다.

537년, 법흥왕은 또다시 옥진의 남편 영실에게 왕위를 넘겨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총신(寵臣)들 중에 옳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 옥진이 법흥왕의 아들 비대공(比臺公)을 낳았으므로, 법흥왕은 또다시 옥진이 낳은 비대공을 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신하들이 옳게 여기지 않아 실패하였다. 특히 위화랑(魏花郞)의 간언이 컸는데, 위화랑은 바로 옥진의 아버지였다.

위화랑(魏花郞)은 딸 옥진에게 대의(大義)로써 깨닫게 하고, 법흥왕에게는 이렇게 간하였다.
“신(臣)의 딸은 골품이 없고, 또 영실과 더불어서 함께 살았으니,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위화랑을 비롯하여 삼엽공주 부부, 그리고 여러 대신(大臣)들이 합세하여 비로소 진흥이 태자가 되었다.

법흥왕에게 비대공은 아들이 되고 진흥은 외손자였지만, 모친(母親)의 혈통에 따라 아들의 혈통이 정해지므로, 비대공보다 진흥의 골품이 더 높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법흥왕의 외손자인 진흥이 나이 7세로 신라 제24대 왕이 되고, 지소태후가 섭정에 들어갔다. 지소태후는 우선 먼저 옥진의 남편 영실을 높은 위(位)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그리하여 진흥이 왕이 되는데 공을 세운 삼엽공주의 아들 미진부공(未珍夫公)의 아내 남모(南毛)로서 다시 원화(源花)를 세웠다. 남모는 또한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宝果公主) 사이에 나온 공주로서, 지소태후에게는 이복 여동생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자, 명분도 없이 폐위된 원화 준정(俊貞)은 남모(南毛)가 원화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지소태후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 남모가 원화가 되었다.

이에 준정은 분노하였고, 남모를 자기 집에 데려다가 술을 먹여 강에 빠뜨려 죽였다. 이 일로 지소태후는 원화제도를 폐지하였고, 진흥이 왕이 되는데 큰 공을 세운 위화랑(魏花郞)을 제1세 풍월주(風月主)로 세우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화랑도의 우두머리는 때에 따라서 원화(源花) 풍월주(風月主), 국선(國仙)이라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남모(南毛)가 죽자 미진부공(제2세 풍월주)은 후에 묘도부인과 미실 낭주를 낳았는데, 미실은 진흥왕으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진흥왕의 총애로 권력을 쥐게 된 미실은 568년 풍월주(風月主)를 폐지하고 원화(源花) 제도를 다시 부활시켰다. 제6세 풍월주인 세종전군(진흥왕의 동생이자 미실의 남편)을 폐하고, 미실 자신이 원화가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원화(源花)가 폐지된 지 29년만에 다시 원화가 부활되었다. 이에 신라는 연호를 고쳐 대창(大昌)이라고 하였다. 미실이 원화가 된 첫해가 바로 대창(大昌) 1년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측근들로 인하여 동륜태자가 개에 물려죽자, 미실은 원화 자리에서 잠시 내려왔다. 그러다가 진흥왕이 죽고, 진지왕 대에 이르러 미실은 다시 원화가 되었다. 그리고 남편 세종전군(世宗殿君)을 상선(上仙), 문노(文弩)를 아선(亞仙)으로 삼아 진지왕을 폐위시키고, 진평왕을 앉혔다. 이유는 진지왕이 미실 덕분에 왕이 되었는데, 색을 밝히고 방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미실의 원화 임명을 계기로 하여 신라가 대창(大昌)이라고 연호까지 개원(改元)한 것을 보면, 또 원화(源花)가 왕을 폐위시키기까지 한 것을 보면, 신라 국정에서 원화가 얼마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원화(源花)는 명실공히 신라의 권력 순위 2인자였던 것이다.



* 위 내용은 외부 기고문으로 본지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 = 정현축 원장 ㅣ 국선도 계룡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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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부채도사/ 귀신 ~

    2012-01-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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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채도사

    12일 이후에... ^^

    2012-01-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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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도인

    읽어봤죠 ! 당연히 한국 사람인데 !

    2012-01-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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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

    무도인님은 자유 대한민국의 바른 소리, 훈민정음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셨을까...?

    2012-01-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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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

    사이버 잡지 댓글과 헌법이라 .. 극과 극처럼 보이는군요.. ^^

    2012-01-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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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머, 무셔라 ~ ㅎㄷㄷ

    2012-01-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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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도인

    원장님 자유 대한민국의 헌법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셨습니까 ?

    2012-01-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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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님

    저는 30대 중반 남자인데요. 정원장님한테 10일 명상단식 하고 등허리에 있는 여드름이 몽땅 없어졌구요. 얼굴도 하얘졌어요. 중국 가시기 전에 며칠이라도 시간 내서 명상단식 하고 가시길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 보식도 끝내고 중국 가셔야 하니까 ,구정 끝나면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시간을 내보시지요? ^^

    2012-01-1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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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어서 악플을 올려 주세요. ^^ 악플이 그리워요 ~ ^^*

    2012-01-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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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

    2012-01-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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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석현

    국선도 대단히시네요 잉! 전라도말로 최고랑께!!

    2012-01-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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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엽

    국선도 짱!!!

    2012-01-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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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충성님, 1등 1번 ! ^^

    2012-01-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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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성

    국선도가 짱~~~~

    2012-01-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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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보고싶당~ ^^*

    2012-01-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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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끽도님도 이젠 추종자로 전향하셨습니껴? ^^ 줄서, 줄 ~ ㅋㅋ

    2012-01-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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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감사합니다, 똘똘이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2012-01-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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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똘똘이

    내용을 보다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떠오르는군요^-^...좀 알고 보았으면 더 재미있었을것을......감사합니다, 정 작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2012-01-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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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님

    보고싶당 ~ ^^*

    2012-01-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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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선

    흥미 있는 우리 역사. 해박한 필자의 역사 지식에 가탄합니다.

    2012-01-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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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그래서 10人 10色이라는 말이 나왔겠지요.. 후훗

    2012-01-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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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

    끽도님과 저와는 항상 생각이 다른 걸 발견해요.^^ 제가 이번 글은 참 좋구나.. 생각하면 꼭 끽도님은 딴 소리를 하더라구요.. ^^

    2012-01-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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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님이

    가만보면.. 질투가 많으셔 ~ ㅋㅋ.

    2012-01-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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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ㅎ

    똘끼라 함은 즉 똘똘함 을 ㅍ ㅎㅎㅎ

    2012-01-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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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끽도님

    방가방가! ^^ 근데 똘끼가 뭐죠?

    2012-01-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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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자리비움님, 고맙습니다. *^^*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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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남선

    대한민국, 조선, 고려, 발해, 고구려, 백제, 신라, 고조선 등등.. 이름은 달라도 땅덩어리는 하나..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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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남선

    국선도, 화랑도, 밝돌법, 조의선인, 풍류도, 고신도, 신선도 등등.. 이름은 달라도 내용은 하나.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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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비움

    대구에 원화여고가잇는데 아마 신라의 원화 명칭을 따른것이겟죠.정원장님 새해에도 일취월장하시길 기원합니다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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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학도

    국선도가 바로 화랑이고.. 화랑이 바로 국선도라.. 그것도 몰라? ^^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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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아래 닉네임 사범. 사범도 아닌 것이 사범인 척 해가지고 .. 어느 나라나 너 같은 것들이 꼭 한두 명씩은 있지..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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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범

    그런데 국선도와 화랑이 도대체 무슨 관계? 아무 관계 없는거 다들 아는데, 왜 역사얘기는 지루하게 하시는건가요?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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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학자.

    역시 조선민족이 조선민족일 수 있었던 것은 화랑도라는 정신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2-01-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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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돌고 도는 가운데..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야겠지요.. 후훗.

    2011-12-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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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학도

    역사는 돌고 돌지요. ^^

    2011-12-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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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도인

    다 ! 지난 옛날 이야기죠 ? 하긴 뭐 재미있긴 하네요.

    2011-12-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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