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운의 무술만화편력 (7) "공태랑 나가신다!" 시리즈

  


이번 회에서 다루려는 『공태랑 나가신다!』라는 만화는, 무려 20년 동안 연재를 계속해오고 있는 만화이다. 물론 도중에 두 번 정도 연재를 중단하고 소재와 제목을 바꾸어(유도를 소재로 한 『신 공태랑 나가신다!』와 닌주츠를 소재로 공태랑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공태랑 나가신다! L』) 재개했기 때문에 시리즈물로 보긴 했지만, 같은 주인공이 같은 세계관 속에서 활약한다는 점에서 한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더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만화가 작가 히루타 타츠야의 연재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잠시 주제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장수 연재 만화가 꽤 있다. 단행본으로 따져서 총 90여권(공태랑 59권, 신 공태랑 27권, 현재 L 시리즈 7권 연재 중)에 이르고 있는 『공태랑 나가신다!』도 이런 장수 연재 만화 중에서는 서열 3위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본 적이 있으니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장수 연재 만화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화로는 한 때 ‘연극인들의 필독서’라 불리웠던 『유리가면』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을 둘러싸고도 도중에 작가가 죽어서 그 문하생이 스승의 이름을 이어받아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최근 이 만화가 드디어 대장정의 결말로 치닫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연재 만화의 스토리는 고무줄 같아서 과연 언제 쯤 연재가 끝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신문을 전전하며 연재를 계속해오고 있는 김성환 화백의 시사 만화 『고바우 영감』 등을 장수 연재 만화로 꼽을 수 있지만, 그 성격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오히려 비록 대본소용 순정만화이지만, 1986년부터 195년까지 그려져 온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더욱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신일숙은 180페이지 짜리 책 29권으로 구성된『아르미안의 네 딸들』, 일명 ‘A4’라 불리는 이 만화를 그리는데 약 10년 간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는 이 전에도 다른 만화를 그린 적이 있고, 기간 동안 다른 잡지 연재를 여러 편 병행하긴 했지만, 일반 대본소 만화와 달리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무려 10개월 만에 한 권 씩 나왔던 이 작품의 완성은 당시 순정만화 팬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기도 했다.

작품 활동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작가


한 작품을 10년 이상이나 하다 보면 좋든 싫든 그 안에 많은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굳이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개 2년 이상 장기 연재에 들어가다 보면 그림체나 연출, 캐릭터 등은 자연히 안정되고 세련되어지게 마련이고, 새로운 스토리로 이어지는 계기가 많아진다. ‘A4’의 경우도 숱한 외전 격의 에피소드를 많이 다루었고, 1권 때의 그림체와 29권 때의 그림체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라고 할 만 하다.

『공태랑 나가신다』 역시 이 만화 안에서 한 작가가 신인에서부터 연재 20년 차의 중견 작가(그러나 작품 수는 한 편! ^^)로 거듭난 만큼, 그림체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작가가 무술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으며 이를 통해 만화 역시 단순한 학원액션코믹물에서 무술만화로 거듭났다는 점에 있다.

이 만화에서 수퍼세이프티 헤드기어를
처음 알게된 독자도 많을 것이다.

초기에 주인공 공태랑은 극한류 가라테라는 무술의 계승자라는 설정으로 그려지지만, 그가 보여주는 무술은 가라테라기보다는 닌주츠(忍術 - 닌자들의 기술)에 가깝다. 이는 후에 L 시리즈에서 작가의 데뷔작 단편 만화(여기서도 주인공과 배경이 되는 학교가 똑같으므로.. 결국 이 작가는 한 작품만을 그려온 셈이다)에 대한 설명에서도 나오는데, 애초에 작가는 공태랑을 닌자로 그리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닌주츠에 대해서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는 바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자료 수집이 무난한 가라테로 주종목을 바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초기 공태랑 시리즈는 거의 중반까지 주인공의 도복이나 방호구 등에서 가라테 용품을 그리고 단편적인 지식을 토대로 격투 장면을 연출하고 있을 뿐, 여러가지 무술의 혼합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었다. 어차피 가벼운 학원액션코메디 만화였기 때문에 정확한 고증과는 거리가 멀어도 괜찮다 라는 심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한동안은 작가가 음악 쪽으로 필이 꽂혔는지, 단행본 대여섯 권 분량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공태랑은 록 밴드 활동을 하기도 한다. -_-


그러나 때는 바야흐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무술-격투기 만화가 붐을 타기 시작했고, 공태랑 역시 이 시류에 편승하게 된다. 이 때부터 공태랑은 중국무술, 그레이시 주지츠 등과 겨루면서 본격적인 무술 만화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때까지 보여왔던 극한류 가라테라는 무술의 이미지를 고수하면서도 고증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설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센주도는 유도 누운기술의 결정판이다.

그리고, 2부에 해당하는 『신 공태랑 나가신다!』에서는 유술과 그라운드 기술 붐을 타고 유도를 소재로 전향한다. 여기에서 이미 식상한 소재인 그레이시 주지츠는 등장하지 않지만, 역시 그라운드 기술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레슬링이 등장하고, 그레이시 주지츠를 통해 재조명 받게된 고류 유술과 초기 유도의 여러가지 형태를 등장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고토칸(강도관) 유도 4대천황이라 불리었던 초기 인물들이 사용했었다는 전설의 기술들인 ‘야마아라시(산폭풍)’나 텐구나게(천구던지기)’라거나, 유도의 누운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하는 고센주도(고전유도) 등을 다루었다.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사례를 소개했듯이, 고센주도 역시 이 만화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그 존재가 알려지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내용 중에 ‘삼각조르기는 유도의 누운 기술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고센 주도가 만들어낸 기술의 결정체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때문에 고센주도에 많은 서브미션 결정기가 숨어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고센주도는 어디까지나 누운 기술에 좀 더 비중을 두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경기 유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관절기나 조르기보다는 누르기 위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현재의 그라운드 기술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일부분을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전 분량의 약 4/5 정도를 차지하는 고류 유술에 관한 부분은 일본의 유명 무술 관련 출판사인 아이류도(愛隆堂)에서 발간된 『고류유술 실전기술』이라는 책(주)을 참고로 했다. 사실 참고로 했다기보다는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스토리를 썼다고 하는 편이 어울릴 정도인데, 특히 텐구나게 등의 기술적인 설명에 대해서는 이 책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고센주도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일본 유도의 역사』 등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책 내용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창작을 하는 사람의 태도로 보기에 비판의 여지도 있지만, 적어도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자세와 그 자료를 토대로 충실하게 만화 속에서 각색하고 있다는 점은 이야기꾼의 재능으로 높이 평가할만 하다 하겠다.

가끔 우리나라에서는 왜 일본 같은 무술 전문 만화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나는 무엇보다 작가의 공부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얼마 전에도 꽤 능력을 인정 받고 있는 한 만화가가 주인공이 사용하는 무술로 택견을 설정한 만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만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택견은 이름만 택견일 뿐 오히려 합기도에 가까운 관절기 위주의 무술이었다(물론 최근 택견에도 관절기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며, 일부에서는 관절기 위주의 택견이 존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작가가 그런 부분을 알고 표현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또, 주인공의 사부 격 되는 인물이 경찰청 무도 시범에서 뒷짐지고 가만히 서있다가 달려드는 경찰을 한 방에 쓰러뜨리는 장면은 전형적인 무술 영화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었다. 이는 결국 작가들이 공부를 하기보다 상상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박성우의 『천랑열전』에서 육태안 선생의 수벽치기 저서 내용을 인용하여 ‘사신무’라는 무술을 만들어낸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자료 촬용은 재미와 설득력을 모두 높여줄 수 있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데(^^;;), 그만큼 작가의 공부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대부분 일본 만화는 철저한 자료 수집과 고증을 바탕으로 한다(물론 공태랑 시리즈가 초기에 그러했듯이 가벼운 코믹물에서는 일본 만화라도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만화는 단순히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만화 매니아들은 만화를 통해 얻은 지식이 상당하다고 말한다.

현재 연재되고 공태랑 시리즈 3부인 『공태랑 나가신다! L』에서는 공태랑의 어머니가 닌자 가문의 계승자라는 설정으로 초기에 공태랑이 닌주츠 형태의 기술을 많이 사용했던 것을 합리화시켰고, 닌주츠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결국 작가 히루타 타츠야는 데뷔 때의 한(?)을 20년 만에 풀고 있는 셈인데, 이 역시 그간 공부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주_ 고류유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구해서 읽어봄직하다. 함께 발간된 『고류유술』이라는 책도 추천한다.


#류운 #만화 #공태랑 #가라테 #유도 #인술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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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

    인물들의 이름도 사이고 시로를 사이호 라든지등의 번역 오류가 많아서 읽기가 거북하더군요 출판사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출판사인데도 번역이 이러니 참 그래도 이후의 번역은 좋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004-11-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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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

    신공태랑나가신다. 참 재미있는 만화입니다.
    권아(권법소년)이후 무술에 대해 가장 잘표현한 만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도뿐 아니라 고전유술에 관한 것까지 몰랐던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근데 옥의 티라면 번역이 영 아니더군요 고전유도도 고센유도 광선유도 라고 계속 틀리게 나오고

    2004-11-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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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bijang

    권가야의 푸른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거론되는 내용이 약간 다른 것 같군요..
    어느 만화를 말씀하시는건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2004-02-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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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어제 신공태랑 나가신다를 보았습니다.

    고전유도(광선유도)란 언급이 나오던데요..

    전국

    역고등학교전문대학




    대회...이런 구절이 있지요.

    그래서 광선유도라고도 하더군요

    고전유도, 광선유도 같은 말인데...

    류운기자가 그 부분이 깅가밍가했나보네요.

    광선유도 틀린 말이 아닌데, 오타라고도 하고...

    2003-12-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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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쥬스

    성의있는 답변 감사합니다^^ 가격은 꾀하는군요.. 그래도 좋아하는 것이니 꼭 구해보겠습
    니다..

    2003-12-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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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운

    아이류도(愛隆堂-애륭당, airyudo)의 책입니다.
    저는 부산 동서서적(일본 수입 서적 전문 서점)에서 보았더랬습니다.
    서울에는 홍대 앞, 명동 등에 몇 군데 수입서점이 있지요.
    또, 교보문고에도 아이류도의 책은 잘 들어오는 편이니
    교보문고에 주문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대부분 1달 이내에 책을 받아보실 수 있고
    (단, 일본 현지에서 품절된 경우는 힘듭니다만,
    이 책은 재작년엔가에 나온 책이니 품절은 아닐 듯 싶군요)
    가격은 책 정가 엔화의 10~13배 정도 환율이 적용될 겁니다.

    책 제목은 한자로 고류유술(古流柔術)입니다.
    또 한 권의 책은 고류유술 실전기술(古流柔術 實戰技術)인지
    고류유술 실전기법(古流柔術 實戰技法)인지 헷갈리는군요.


    2003-12-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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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쥬스

    저는 고류유술을 좋아하고 조금씩 공부를 하고있는데.. 제가 다른책을 몇권 가지고 있는
    데 그책들도 구하고 싶내요.. 가지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아마존에서 구입을 했는데...
    책제목이 한글로 쓰여져 있어서 어떤책인지.. 꼭 구하고 싶습니다

    2003-12-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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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운

    오기가 있었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

    p.s : 성구님이 여기까지 행차해주시고... ^^

    2003-12-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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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구

    고센주도는 高專柔道(고전유도)로 알고 있었는데 강선유도 라고 괄호안에 발음이
    적혀있어서요, 혹시 다른언급을 하시려고 했던 것인지, 타이핑상 문제인지
    확인 바랍니다.

    2003-12-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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