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J-1 비자로 시작해 영주권 받은 태권도 사범


  

[박호진 변호사의 미국 진출 바로알기 12] J-1 비자로 시작해 미국 영주권 받은 태권도 사범 이야기

국내 태권도 전공생과 지도자들이 큰 관심을 갖는 미국 태권도 진출에 도움을 주고자 미국 내에서 여러 태권도 사범들의 취업비자와 영주권 업무를 담당해온 박호진 변호사를 통해 현실감 있는 ‘미국 태권도 사범 바로알기’를 연재 합니다. 미국 내에 다양한 사례의 태권도 사범의 정착기와 실패담 그리고 미국 진출에 반드시 알아야할 이슈를 앞으로 매주 목요일 소개 합니다. [편집자 주]
박호진 변호사

 

김 사범은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태권도를 전공했다.

 

밴텀급 겨루기 선수로 전국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획득한 경력이 있었다. 대학 재학 중 군대를 다녀왔고, 복학하기 전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태권도장에서 약 두 달 반 동안 인턴사범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도장에서 사범으로 일을 했다.

 

어려서부터 영어권 국가에서의 해외생활에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고, 대학 시절 인턴사범을 하는 동안 여행을 다녀 본 미국이 마음에 들어 기회가 되면 미국에서 사범생활을 하고, 나아가서 도장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싶었다. 우연히 대학 동기로부터 어느 이주공사를 통하면 인턴사범으로 미국에 갈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 이주공사에 전화해 보니 1년 동안 미국에서 인턴사범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약속을 잡고 방문해서 이모저모를 알아보니 자신이 찾던 기회라고 생각됐지만, 이주공사에 내야 하는 비용이 700만 원 정도로 적지 않게 부담되었다.

 

자신이 그동안 사범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부모님께서는 외동아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셨기 때문에 의논을 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대신 가깝게 지내던 외삼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주공사 비용을 마련했다.

 

J-1 비자를 받아서 미국에 가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J-1 스폰서는 시카고에 있는 대학교라고 했고, 인턴사범을 하게 될 도장은 조지아주에 있다고 했다. 기간은 1년인데, 도장에서 일 잘하고 관장님하고 얘기가 잘 되면 영주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중에 필자가 확인해 본 바로는, 이 프로그램은 태권도장에서 일할 사범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영어교육 프로그램이었다. J-1 스폰서 기관 측에서 일종의 편법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김 사범이 애틀란타 국제공항에 내린 것은 2012년 9월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도장 선배 사범의 차를 타고 40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해 보니 1층 상가건물에 있는 평범한 크기의 태권도장이었다. 낯선 미국 땅이었지만 태권도장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관장님은 태권도를 전공한 분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경찰 공무원이었고, 주미한국대사관에 무관으로 파견을 나왔다가 가족들이 강하게 원하여 미국에 남게 되었다고 했다. 생업으로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다.

 

관장님은 두 명의 사범과 함께 수업 지도와 신규 회원 상담을 주로 했고, 도장의 운영과 관리는 관장님의 부인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200명 정도 되는 수련생 중 절반 이상은 백인이었는데, 미국 수련생이 도장 문을 열고 들어와서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국도장에서 일할 때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영어였다. 수업에 필요한 영어는 3개월만에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린 수련생의 부모나 성인 수련생에게 상담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실력이 되기까지는 1년이 넘게 걸렸다.

 

김 사범의 J-1 비자 기간은 1년이었다. 관장님은 김 사범에게 계속 함께 일을 했으면 하니 비자 문제를 알아 보라고 했다. 도장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뭐든 이야기를 하라고도 했다. 2013년 5월, 김 사범은 처음으로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고, 필자는 그때만 해도 미국 내에서 승인 받기 어렵지 않았던 P-1 비자를 김 사범에게 권했다.

 

도장 측에서 필요한 서류를 보내 주는데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P-1비자 신청 준비에 3개월이나 소요됐다. 하지만 신청 준비가 끝난 후 이민국에 P-1 비자를 신청한 지 10일 만에 승인을 받았다. 급행케이스도 아닌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으로 빠르게 승인이 난 경우였다. 김 사범은 5년 동안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신분을 확보한 것이었다.

 

2014년 1월, 김 사범이 뉴욕에 관광 온 김에 뉴저지에 있는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하여 영주권 수속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영주권 수속을 시작하기 전에 스폰서 회사의 재정능력을 미리 검토하기 위해 도장의 세금보고서류를 요청한 지 2개월이 지나고 필자가 전화로 재촉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도장 측으로부터 세금보고 서류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2014년 3월, 김 사범의 영주권 수속이 시작됐다. 김 사범의 영주권 수속은 초반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수속 초반에 미국 연방 노동부에 영주권용 연봉을 신청하여 결정을 받는데, 김 사범 케이스에서는 노동부 심사관들의 실수로 두 번 연속으로 연봉이 너무 높게 책정되었다. 다른 케이스 같으면 두 달 걸릴 일을 7개월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김 사범 영주권 수속이 진행되는 중에 영주권 문호가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 덕분에 2015년 3월에 연방 노동부로부터 외국인을 고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자마자, 김 사범은 스폰서 도장이 제출하는 이민청원과 함께 본인의 영주권 신청서까지 한꺼번에 이민국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보통 태권도 사범들이 ‘2단계, 3단계’라고 부르는 과정을 한꺼번에 진행했던 것이다.

 

영주권 신청서가 제출되고 나서 약 4개월이 지난 2015년 여름 어느 날, 김 사범은 다시 뉴욕에 올 일이 있다면서 필자를 직접 만나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두 시간 반이나 비행기를 타고 오는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에 필자는 ‘오시면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가끔 클라이언트들과 식사를 하는 일이 있는데 영주권을 받기 전의 클라이언트에게는 필자가 밥을 사고, 영주권을 받은 클라이언트에게는 밥을 얻어먹는다. 그저 필자가 재밋거리삼아 나름대로 정한 룰이다.

 

2015년 8월 말, 뉴저지의 어느 한식당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김 사범은 “지금 도장을 옮기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P-1 비자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주권 수속이 진행 중인 태권도 사범이 도장을 옮기게 되면 P-1 비자도 새 도장으로 옮겨야 하고, 더군다나 영주권 수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필자는 우선 그런 내용을 설명한 후에 왜 그러는지를 물었다. 김 사범은 자신이 겪는 고충에 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도장 사범생활 자체는 만족스럽다고 했다. 본인이 정통 태권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관장님은 수업 운영방식 등에 대해 사범의 제안을 잘 들어주는 분이라고 했다. 관원들도 김 사범 자신을 잘 따른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잦은 회식과 그 회식에서의 음주문화였다. 회식을 싫어하는 직원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김 사범의 말로는 관장 사모님이 주로 회식을 하기로 결정하는데 그 횟수가 너무 잦고 더군다나 회식 자리에서 사범들에게조차 심한 주사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관장님이 아니라 그 부인이 그런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회식 자리가 생기면 갖은 핑계를 대고 빠지려고 해도 회식에서 빠지고 나면 관장 사모님이 매우 불편하게 대하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고 했다.

 

드문 경우였다.

 

식사 후 커피를 들고 필자의 사무실로 왔다. 김 사범의 영주권 파일을 열어 봤다. 김 사범의 영주권 신청서가 이민국에 제출된 지 4개월이 조금 넘은 것을 확인하였다. 필자는 김 사범에게 “앞으로 두 달 정도만 더 견디면 영주권 수속을 그대로 다른 도장으로 옮길 수 있으니, 두 달만 더 버티라”고 조언했다. 영주권 수속 중 최종단계에서 영주권 신청서를 이민국에 제출하고 나면, 접수된 날로부터 180일이 지난 후에는 다른 회사로 영주권 스폰서쉽을 옮겨서 수속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이 미국 이민법의 규정이다.

 

다시 조지아로 돌아간 김 사범은 계속 그 도장에서 일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옮겨갈 도장을 알아보았다. 그로부터 한달 반 정도가 지났을 때, 김 사범은 메릴랜드에 있는 도장에 다시 취업이 되었다고 알리면서 그 도장으로 영주권 스폰서를 옮길 수 있는지 물어왔다. 이렇게 영주권 신청서 제출 후에 옮겨가는 스폰서 도장의 경우에는 딱히 재정능력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김 사범이 일할 새 도장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확인한 후 ‘옮겨가도 괜찮다’고 알려 주었다.

 

2015년 할로윈데이가 가까웠던 어느 날, 필자는 김 사범의 영주권 스폰서를 옮기는 신청서류를 이민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2016년 2월 눈이 많이 오던 날 필자는 김 사범에게 영주권 승인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호진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과대학과 비즐리 로스쿨 출신의 뉴욕주 변호사로 현재 뉴저지 포트리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뉴저지로 옮기기 전에는 맨하탄 소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한 로펌에서 이민법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주 최대 웹커뮤니티 헤이코리안 닷컴을 통해 10년 가까이 무료 법률상담을 제공해 오고 있다. 현재는 태권도 사범의 미국 진출을 위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콘 컨설팅의 고문변호사로도 활동 중이다.


[글 = 박호진 변호사ㅣ lawyer@beaconi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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