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양승봉의 한국과 무술에 대한 무한사랑

  

당랑권과 진가태극권의 대가 게하르트 밀브라트


지난 12일 밝은빛 태극권에서 만난 게하르트 밀브라트(54, 독일)


한국 이름 양승봉 독일 이름 게하르트 밀브라트(54, Gerhard Milbrat). 독일 사람인 그가 양승봉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청년시절 뱃사람이었던 게하르트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철칙 아래 그 누구보다 거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무술을 배우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게하르트가 무술을 처음 접한 것은 1971년 아이키도를 배우면서다. 무술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느끼던 시절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스카이다이빙 도중 허리를 다친 것이다. 거동조차 힘든 상태가 된 게하르트는 무술 수련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치료에 전념하던 어느 날 부상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당시 독일에서 태극권과 당랑권을 가르치고 있던 채재균 사범이 무술을 다시 시작하길 권한다. 반신반의 하며 시작한 태극권과 당랑권은 그를 빠르게 회복시켜주었다. 그것이 한국과의 첫 인연이었다.

1985년 무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을 찾은 게하르트. 그는 태극권과 당랑권을 더욱 심층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구로 간다. 그곳에서 중국 고수 손세강 사범을 만나 수련에 매진한다. 그리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가끔 찾아가던 대구 동화사에서 인생의 반쪽을 만난다.

지금의 아내는 당시 게하르트가 미친 사람인줄 알았다고 한다. 독일 사람이 한국에 무술을 배우러 왔다고 하니 무술의 ‘무’자도 모르던 그녀로선 이해하기 힘든게 당연했다. 하지만 곧 그녀도 게하르트의 열정과 진심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둘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부모는 처음엔 파란 눈의 사위를 반대했다. 하지만 딸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 주었고 게하르트의 믿음직한 모습에 곧 그들의 결혼을 허락한다. 그리고 그녀는 고등학교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과감히 버리고 1989년에 게하르트와 함께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 있는 게하르트의 무술도장에서 제자들과 함께


게하르트가 독일에서 무술도장을 개관했을 때 첫 번째 제자가 바로 아내다. 지금은 게하르트 못지않은 무술 고수가 돼 관원생을 직접지도하고 있다. 둘 사이에 태어난 18살 아들과 15세 딸도 무술 수련에 열중이다. 무술 가족인 것이다.

게하르트는 독일에서 무술가로서 유명하다. 그는 독일 무술가 인명사전에 유명 무술가로 선정 등재 돼 있다. 또 동양의학을 배워 독일에서 정식 의학마스터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그의 도장에서는 태극권과 당랑권은 물론 간단한 의학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게하르트에게 물었다. 그는 “한국은 제2의 조국이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한국만큼 마음이 편한 곳이 없다”며 “양승봉이라는 내 한국 이름을 사랑하고 나의 아내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술을 통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만들어 준 한국을 사랑한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게하르트는 현재 진가태극권 19대 장문인 진소왕 노사의 20대 전인(정식제자) 배사를 받고 진소왕 노사를 따라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번 한국방문도 진소왕 노사 한국 세미나에 앞서 먼저 들어온 것이다. 아쉽게도 아내를 이번엔 같이 오지 못했다. 그녀도 진소왕 노사의 20대 전인이다.

게하르트에게 무술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는 “무술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라고 간단하지만 의미 있는 말을 던진다. 그러기 위해선 “강한 정신을 가지고 자신을 절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게하르트의 다음 목표는 간단하다. 그는 “계속 수련하고 배우고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 또 자신이 배운 무술을 전해주고 그로 인해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며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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