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운의 무술만화편력 (8) 『권투암흑전 세스타스』

  

『권투암흑전 세스타스(拳鬪暗黑傳 CESTVS)』 - 와자라이 시즈야 / 대원씨아이(주)


『권투암흑전 세스타스』는 유명한 로마 시대의 폭군 네로 황제가 막 즉위한 후 얼마 지나지 않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야말로 암흑기 로마 시대의 한 소년 권노(격투기 경기에 내보내지는 노예) 세스타스의 자유를 향한 사투를 다룬 만화이다.

사실 주인공의 이름인 세스타스란 고대 복싱에서 사용하던 글러브의 일종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금속 또는 유리 같은 것을 박아넣은 가죽끈으로 손을 감싼 이 글러브는 선수의 손을 보호하기보다는 상대에게 피를 부르고 더 심한 부상을 입히게 하는 일종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복싱이 로마 후기에 자극적인 폭력 문화로 전락하던 즈음의 시점에 나온 것으로, 한 때 올림피아 제전의 가장 신성한 경기 중 하나였던 격투스포츠의 암흑기를 극명하게 상징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겠다.

고대 복싱에서 사용했던 가죽 글러브. 가장 오른 쪽이 세스타스



고대 격투기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 만화에서는 고대 격투기 중에서도 복싱과 판크라티온을 주로 다루고 있다. 고대 복싱은 지금의 복싱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잡거나 걸어넘어뜨릴 수 없으며 오로지 주먹으로 상대를 때리는 것만 허용되었다. 반면, 판크라티온은 복싱과 레슬링이 혼합된 형태로 치고 차는 것이 모두 허용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잡거나 넘어뜨려 조르고 꺾어서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는 경기였다. 그야말로 오늘 날의 종합격투기와 같은 형태라고 보면 된다.

주인공인 세스타스는 복싱 경기에 나가는 권노이다. 그는 스승 자하르에게 매우 뛰어난 복싱 기술을 배워 경기마다 승리해나간다. 그런가 하면 극 중에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나 후에 적대 관계로 돌아서게 되는 루스카는 황궁 무위관으로 판크라티온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들의 격투 장면 묘사를 보면 상당히 현대적인 격투기의 냄새가 많이 난다.

아니, 이 기술은 홍주표 선수가 스코트 시리에게 사용했던 그 기술? ^^



예를 들어 세스타스는 다른 권노들과 달리 잽과 컴비네이션, 스텝을 사용하는 고도의 기술 복싱을 한다. 그에 따른 훈련도 매우 체계적이며 현대적이다. 또, 루스카의 판크라티온 기술은 현대 MMA 경기에서 나올 법한 서브미션 기술이 등장하는가 하면, 약간은 동양(중국) 무술적인 요소도 겸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고대 격투기에 대한 기술적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며, 현대 격투기 매니아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작가적 임용일 것이다. 고대를 다루는 만화에서 이 정도 픽션은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래도 보다 보면 ‘에이, 설마 이렇게까지 싸웠겠어? 좀 더 무식하게 주먹다짐이나 하고 그랬겠지.’싶은 생각도 들만 하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 격투기의 기술적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리스 격투스포츠』(권오선, 오동섭 저/대한미디어 발행)에 따르면 놀랍게도 당시 기술 수준이 상당했다고 한다. 특히 복싱이나 레슬링은 신화에서부터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체육을 장려했던 당시 문화적 배경과 국가 간 대결이었던 올림피아 경기, 그리고 전쟁에서의 육박전을 대비한 훈련 등으로 인해 매우 활발하게 격투 스포츠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기술 역시 고도로 발달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철학자들은 막무가내식 힘으로 이한 폭력적 형태보다 기술에 의한 경기를 훨씬 값어치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업어치기 모습. 그 형태가 매우 정교함을 알 수 있다.



복싱의 경우, 오른손잡이는 대개 왼손을 방어용으로 앞으로 내밀고 있었으며 그 왼손을 이용하여 상대를 견제하고 오른손으로 결정적인 공격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하지만 왼손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기도 하고 양손을 이용한 컴비네이션과 방어 등을 사용했으며, 머리를 공격하는 것과 몸통을 공격하는 각각의 효용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레슬링 역시 현대 레슬링에서도 유효한 손싸움, 맞잡기, 끌어안기, 태클, 메치기 공격 기술이 정립되어있었으며, 목조르기 등을 허용했기 때문에 조르기 기술도 상당히 발달했다고 한다. 판크라티온은 이런 레슬링과 복싱을 베이스로 하여 탄생했고, 눈찌르기와 물어뜯기를 제외한 모든 기술 사용이 가능했던 만큼, 조르기와 꺾기를 포함한 다양한 기술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회가 되면, 고대의 격투 스포츠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다뤄보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서, 그리스 시대에 이미 이 정도의 기술적 체계가 잡혀 있었다면 로마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발달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만화에서만큼 세련된 형태는 아니었겠지만 당시의 격투기 수준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주인공 세스타스. 손을 감고 있는 헝겊은
현대 복싱의 밴디지를 참고하여 그린 듯



태어날 때부터 노예라는 신분이었던 세스타스가 자유를 찾기 위해 싸움을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만화 『권투암흑전 세스타스』는 고대의 격투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도 이채롭지만, 단순히 ‘폭군’이라는 이미지로만 아려져있던 네로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도 색다르다. 물론 네로가 예술을 사랑하던 젊은이였으며 후에 정신병으로 인해 폭군이 되었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바일 것이다. 이 만화는 그 점에 착안하여 당시 로마 황실의 퇴폐적이며 타락한 문화와 정치적 관계로 순진한 소년 황제 네로가 점점 망가져가는 과정을 꽤나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어 단순한 액션 만화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

#류운 #만화 #세스타스 #복싱 #판크라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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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멘트

    정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격투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의 배경이나 문화랄까....그런걸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는거 같아서 좋아요

    2004-10-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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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쥬스

    세스타스도 제가 재미있게 본 만화중에 하나죠^^ 제가 질문하고싶은것은 제가 공태랑편에
    서 책을 구입하는 방법을 물었었는데 답변을 잘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 드리는
    데 혹 무술계통의 비디오를 구입할수있는 방법좀.. 격투기시합같은 비디오 말고요 교본같
    은것으로.. 아시는분은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4-01-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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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명

    ^^*

    2003-12-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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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러 가야지~ ^^

    2003-12-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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