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로스앤젤레스 김영숙

  


‘세계 최초의 여성 태권도장 개관’, ‘여성 최초의 국제심판’, ‘이화여대 최초의 태권도부 창설’. 태권도계 ‘여성 최초’라는 수많은 수식어를 만들어 낸 김영숙(64) 사범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선구자(先驅者)’라는 단어가 꼭 필요하다. 여성 태권도 발전을 위해 맨 앞에 섰고, 다른 여성 태권도인들보다 앞서 나갔던 이가 바로 김영숙이다. 1960년대, 바지 입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로만 여겨졌던 태권도에 치마 입은 여성의 등장 자체가 도전이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개척의 역사였다.

김영숙 사범

- 김영숙과 태권도와의 만남은?

“오빠(김영삼)의 영향이 컸죠. 중학교 1학년 때에, 무덕관에서 사범생활을 하던 오빠를 따라 도장에 갔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했죠. ‘아 나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에 오자마자 오빠에게 말했죠. 태권도를 배우겠다고요. 그런데 오빠는 일언지하에 ‘안돼!’라며 거절했습니다. 이후에도 자주 부탁을 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주변 친구들에게 동생이 운동 한다고 하면 절대로 가르치지 말라고까지 얘기했죠. 오빠가 없는 시간을 틈타 몰래 운동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배우고 싶어서 치마를 잘라서 도복을 만들어 이렇게까지 배우고 싶다고까지 하면서 몇 개월을 설득한 끝에야 겨우 배울 수 있게 되었죠. 무덕관에서 4단까지 취득했습니다.”

- 1960년대, 태권도 배우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태권도였죠. 태권도장이 금녀의 공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입관 이후 처음에는 남성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지만, 조금씩 그들도 여성 태권도인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입관할 당시만 해도 몇몇 여자 군인 훈련소 하사관들이나 운전수들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희 무덕관에서 운동을 한 그들 모두가 2단, 3단 이상을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운동은 해도 장기 수련을 하지는 못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니, 태권도를 통해 미래를 꿈꾸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처럼 말이죠(웃음). 아참, 당시 원로 사범님들께서는 여성 태권도 수련인구가 많아져야 한다면서 저의 태권도 수련에 상당히 큰 힘이 되어 주었죠.”

당시 김영숙 사범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생각이 “단이나 딸 수 있겠어?”였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한 목소리로 2단에서 3단, 또 4단으로까지의 승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들 말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김영숙 사범의 말, “900여명이 2단 심사를 보면 절반이 떨어져요. 또 이 인원이 4단을 볼 때 또 절반이 떨어지고요. 이 과정에서 단을 따기 위해 긴 기간이 소요됐죠. 낮은 합격률과 오랜 시간이 여성들을 힘들게 했지만, 저는 쉬지 않고 4단까지 100% 합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를 완전히 다르게 보기 시작했죠.”


김영숙 사범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 태권도 수련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저는 여자였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죠. 고심 끝에 격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벽돌 두장을 깨보려고 수련하기 시작했죠. 저를 지도하시는 사범님께서 하루에 30번씩 손날로 치라고 했어요. 시키는 대로 했지만, 몇일이 지나도 전혀 진전이 없었죠. 내 손이 깨지나 벽돌이 깨지나 해보자는 식으로 300번씩 생 벽돌을 손날로 내리쳤습니다. 몇몇 남자 사범들은 ‘김영숙 저러다 울겠지’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데 정말 독하게 돌을 치는 저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죠. 여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독하게 수련했습니다.”

- 이후 본격적인 여성 태권도 지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1975년에 이화여대 최초의 여성 태권도부 창설부터 이야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여성 태권도인 김영숙의 우여곡절이 시작된 것이죠. 이후 성신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미국, 칠네, 중국 등 8국가의 대사관에서 파견 직원들과 자녀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쳤어요. 1974년도에는 마포경찰서 전투경찰들을 상대로 무술을 가르쳤습니다. 미 8군에서도 가르쳤죠. 유독 군대와 인연이 많았는지 여군 훈련소에서도 태권도를 지도했습니다. 재밌는 건 주변분들이 미군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면 미국 사람 만나 결혼할 수도 있다면서 저에게 상당히 주의를 줬어요(웃음). 이런 과정에서 잠시 정난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체육 선생님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태권도 사범으로 말이죠.”

- 이화여대 태권도부 창설 당시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당시 한국 최고의 대학에 태권도부라는 것을 창설한다는 것에 대해 내외부에서 반대 여론이 강했습니다. 어떻게 명문 이화여대에 태권도가 들어올 수 있느냐며, 말이 되는 소리냐면서 단 칼에 거절당했죠. 그러던 중 이화여대의 한성일 체육대학장께서 업무차 유럽을 방문한 때에 아주 충격적인 일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바로 태권도의 위력을 느꼈던 것이죠. 당시 한성일 학장께서는 유럽의 한 고위인사로부터 ‘한국은 모르지만 태권도는 안다’, ‘당신의 나라에서는 태권도가 최고일텐데, 이화여대에서는 태권도를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질문을 한 것이죠. 거기서 한동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유럽 현지에서 이런 난처한 상황을 겪은 한성일 학장이 귀국하자마자, 이화여대에 태권도부를 창설해달라고 조르던 저를 불렀습니다. 그때 '오케이' 사인을 받은 것이죠.”


김영숙 사범 태권도장

- 미국에서의 삶

“1979년, 결혼 후 미국 미시건주에 정착했습니다. 미국 현지에서도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어 몸이 안달이었죠. 임신을 했는데도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었어요. 둘째가 뱃속에 있을때도 저는 제3회 펜암 태권도대회에서 미국 여성팀 코치로 참가했어요. 태권도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였던 까닭에 거의 쉬지 않고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오랜 수련 결과 두딸 모두 유단자가 됐고, 건강하게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로 이사를 했어요. 그리고 밸리에서 월드태권도장을 처음으로 개관했죠.”

- 김영숙만의 지도철학이 있다면?

“태권도를 통해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오로지 태권도만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었죠. 무도 정신을 잃지 않고 순전히 태권도 하나만을 가지고 말이죠. 이 덕분에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잡다한 일들에 신경 쓰지 않고 태권도 교육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됐어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것 아니겠어요?”

김영숙 사범은 1987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태권도 국제심판 3급, 2급, 1급 자격증을 차례대로 획득했다. 이정도면 제대로된 여성 최초의 사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 그녀는 2000년대 초, 미국 LA에서 한인 태권도 사범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 최초 국제 여성 오픈 태권도대회를 개최하는 등 태권도 우먼파워를 내보였다. 2005년도에는 LA시장배 태권도대회도 개최하기도 했다. 그렇게 태권도에 미쳐서 살아 온, 김영숙의 태권도 인생 50년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김 사범에게 남은 생애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역시 태권도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행여 개인적 욕심으로 보일 수 있다면서 말이다.“한국에서 미국에서 몸으로 직접 배운 태권도의 지식들을 세계인들과 나누고 싶어요. 태권도만 알고 살아온 외길 인생, 무언가 비결이 있지 않겠어요? 저의 소중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생각입니다.”

[무카스 =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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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박기사

    이런분은 정부에서 상주야해요짝짝

    2010-10-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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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지십니다

    화이팅.. 우리네 어머니상입니다. 태권도의 어머니입니다. 무카스도 여성태권도인들 더욱 많이 기사화해라~

    2010-10-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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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인

    감동적이네용글이최고군요

    2010-10-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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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큐

    1872년에 결혼을 했는데 참 젋어 보이시네요.

    2010-10-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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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숙사범님

    대단하십니다!~~

    2010-10-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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