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재 칼럼] 훌륭한 지도자는 이야기꾼이다

  

자기수행 방도로 태권도 가르치기


옛말에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이 난다고 했다. 농부는 논과 밭에 씨를 뿌릴 때 우선 그곳에 어떤 씨를 뿌려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밭에 팥을 심어 놓고 콩이 나기를 기다리거나, 콩을 심어 놓고 팥이 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리섞기 짝이 없는 일이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일도 이와 다름 없다. 나는 어떤 밭에서 누구에 의해 어떤 씨앗으로 심겨졌고 어떻게 길러졌는가, 그리고 오늘 나는 어떤 씨앗을 밭에 심고 있는가? 이 질문은 그 누구라도 태권도 지도자로 일생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문해 보아야한다. 필자 역시 태권도에 입문한 이래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고 있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이제 태권도는 인생에서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취미로 태권도를 접하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세계 챔피언이 되기 위해 많은 훈련을 했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도 태권도인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지금껏 태권도와 함께 한 시간들을 돌아보면, 약 3년여 정도는 취미 활동으로 17년 정도는 선수로 그리고 나머지 20여년은 태권도를 직업으로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결국 처음 10여년과 선수로 활동한 10여년은 내 자신이 여러 농부에 의해 심겨진 시간이었고, 그 이후의 남을 가르킨 세월은 누군가를 ‘태권도밭’에 심는 농부의 역할이었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까지 해 온 것 처럼, 그 일을 하고 그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심고 가꾸느냐는 어떠한 열매를 수확 할 것과 직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얼마나 행복하게 그리고 보람된 삶을 살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삶의 가치와 행복은 대개 자신의 하는 일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농부는 시시때때 무슨 열매를 심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고 싹이 나면 그것을 기르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그래야 한다. 열매는 그 정성의 결정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시간에서는 자기 수행 방도로 태권도 가르치기에 관해 알아본다. 인성 교육을 위한 태권도 즉, 올바른 품성을 지닌 수련생 배출을 위해서는 태권도 수련이 수행의 방도로서 선행 지도 되어야 한다. 자기수행 방도로서의 태권도 수련,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말의 의미는 수련생들에게 태권도 수련 기저에 깔려 있는 수행 행위로서 그 가치를 가장 먼저 일깨워 주고 그 중요성을 인식 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들의 삶의 패턴은 금방 뭔가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때문에 내면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태권도 원리를 가르치는 일과 수련에 임하는 올바른 태도를 심어 주기 이전에 신체 기술을 가르치는데 급급해 하는 면이 있다.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쉽게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단순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로써 그리고 경쟁심을 이용한 스포츠로써의 태권도 수련으로 더욱 변질될 것이다. 수행이란 흔히들 하는 말로 자기를 찾는 관심과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닦을 수, 행할 행이다. 참 자아를 찾아 몸과 마음을 닦는 행동과 행위로 자신의 내면의 세계는 물론 이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궁궁적 원리로서의 도를 찾는 일. 이것이 수행이라는 것이다.

수행의 목적은 득도이다. 도를 얻는 것, 즉 나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도의 내용은 참된 자신의 모습이고, 얻는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태권도 수련을 통해 참된 나를 찾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된 나의 모습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태권도 수련을 통해서 발견 할 수 있게 지도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참된 나의 모습을 정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나 자신을 말 할때, 자기 또는 자아 (self)라고 표현 한다. 이것을 종종 에고이즘 (egoism)과셀피즘 (selfism)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기적 자기 중심주의 즉 에고이즘의 나는 이기적 마음, 내것을 놓지 않는 마음, 나에 집착하는 마음 상태의 나를 말한다. 이것은 거짓 자아이다. 그러나 셀프이즘에서 말하는 이타적 마음, 내 것을 버리는 마음, 나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나를 말한다. 이 마음은 이기적 자기를 극복하는 자아를 찾는 마음이기도 하다. 결국, 이기를 내려놓은 상태로 나타난 자기의 모습이 바로 참 ‘나’인데, 이 참 ‘나’는 대 우주의 마음과 합일되어 있다. 이런 참 ‘나’의 모습은 거짓 자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수행으로서의 태권도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이기를 버린 참 나를 발견하는 방도로의 태권도 수련은 무엇일까. 살펴 보도록 한다.

부드러움은 태권도 지도의 중핵


미국 보스톤에 위치한 김재훈 태권도장


부드러운 것 보다 강한 것은 없다. 부드러움은 태권도 지도의 중핵이다. 태권도의 기술은 힘의 조화 즉 강함과 유함이 서로 어울려 생겨난다. 태권도는 강함과 빠름을 추구한다. 그러나 강함은 부드러움 앞에 무너지고 만다. 힘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그래서 태권도는 부드러워야 한다.

태권도 수련에 강유론은 겨루기 기술과 전술을 지도하는데 중요한 요소이자 인성 교육에 빼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주제이다. 우리는 동작이나 기술을 가르 칠 때, 먼저 몸에서 힘을 빼고 부드러워지라고 가르친다. 바로 이때 태권도 지도가 수행의 방도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 기능과 함께 마음 가짐에 대해 일러 준다. 남보다 더 잘 하려드는 마음 즉, 이 거짓 자아를 내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 이것을 마음에서 내려 놓을 수 있도록 한다. 행복은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은 다만 그것을 통해 서로가 조금씩 더 발전해 가는 방법일 뿐이다. 부드러움은 우리 생활에서 배 놓을 수 없는 요소로가 아닐 수 없다.

몸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가벼운 워밍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큰 시합(큰일)을 앞둔 선수(모든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부담감을 이들의 어깨에서 내려 놓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일의 결과에 대한 믿음이 마음에 들어오게 되고, 심리적 압박이나 부담감에서 벗어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나면 의외로 난관을 처리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돕는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태권도 지도자는 훌륭한 이야기꾼이어야 하는 이유다.

얘기를 하나 해본다. 어떤 두 스님이 바락 망태를 짊어지고 마을에 시주를 얻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 앞에 큰 개울이 있었고, 날씨는 차가운데 다리가 없었다. 냇가에 아주 예쁜 아가씨 하나가 서 있었다.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물살이 너무 거세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서 있는 터였다. 스님들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개울을 건너기 시작 했다. 갑자기 한 스님이 건너다 말고 그 아가씨에게 돌아오더니, “아가씨, 이 개울을 건너려 하지요?”라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제 등에 업히세요.” 아가씨가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죄송해요” 라면서 업혔다. 그 스님이 아가씨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감사의 인사를 한 아가씨는 저쪽 길로 그리고 스님 둘은 그 반대 길로 갔다. 길을 가면서 동료 스님이 은근히 비꼬았다. “자네, 엉큼한 구석이 있었군. 그러니까 저 아가씨를 업고 건넌 거지” 그러나 그 스님은 아무런 말 없이 걸어갔다. “만일 동네 사람들이 봤다면 우린 망신을 샀을 거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 부아가 치민 동료는 더욱 강도를 높였다. “자네 같은 사람이 우리 절에 와서 분위기 다 망치고 있네” 그러자 조용히 걷기만 하던 그 스님이 드디어 한 마디 했다. “나는 개울을 건넌 후에 그 아가씨를 냇가에 내려놓았지만, 자네는 아직도 마음에서 그 아가씨를 업은 채 못 내려놓고 있는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마음에서 자유함을 얻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발견 할 수 있다.
얼마 전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세계적인 피켜 스케이터 김연아는 ‘지금 이순간도 지나 가리라’라는 독백을 통해 경기가 주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 훌륭한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네 인생은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갈 수 밖에 없다. 엄연한 이 사실을 눈에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잊고 산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자기 스스로의 삶에 갇혀 살게 된다. 자기에게 붙잡혀 사는 한 우리는 거짓에서, 음란에서, 악에서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태권도 수련을 통해 삶의 지혜를 심어 주기 위해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자. 훌륭한 이야꾼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볍게 하고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자.

박천재 교수 약력

- 한국 체육대학 졸업 (’82)
- 대한체육회장 비서실 (’86)
- University of Maryland 박사 (’95)
- 세계 태권도 대회 금메달 (’82)
- 국기원 태권도 8단 승단(‘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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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정대길 기자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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